"오래 뛰었으니 그런가 보다"
상원고 코치로 새 출발한 김승관
대구=김효경 기자 / 2008-07-01
 |
삼성과 롯데에서 뛰던 김승관은 이제 모교 상원고에서 코치로 새 출발을 시작했다.
사진 이종일 | |
 |
야구는 언제 시작했나.
초등학교 때 공 멀리던지기 선수였다. 대구시 대표까지 할 정도로 기록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육상대회가 끝나고 다른 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이 나에게 야구를 해 보지 않겠냐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나무 막대기를 갖고 야구를 했다.
야구를 하기 위해 전학을 하려고 했는데 학교에서 전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6학년이 돼서야 옥산초등학교로 전학을 해 야구를 시작했다. 너무 늦게 전학해 경기에는 별로 못 나갔다.
야구를 늦게 시작한 게 선수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초등학교 때 ‘나보다 못하는 애들도 경기를 뛰는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중학교 때 열심히 했다.
여러 포지션에서 뛰었지만 주로 1루수를 봤다.
대구상고에 들어가서도 1루수였다. 고등학교 때는 야구를 하는 게 참 즐거웠다.
전국대회가 시작되면 신문에 학교별 전력 분석 기사가 나온다. 그때 ‘김승관이 이끄는 대구상고’라는 기사가 실리면 뿌듯했다.
같은 지역에 이승엽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좌승엽 우승관’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경북고와 붙으면 관중도 많고 팬들의 관심을 많이 받아서 재밌었다.
대학에 가지 않았는데.
고려대로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빨리 프로선수가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삼성 라이온즈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계약금으로 9천5백만 원을 받았다. 고졸로선 큰 액수였는데.
사실은 1천2백만 원을 더 받아 1억7백만 원이었다. 고졸 신인에겐 큰 액수였다. 그런데 고졸 신인들 몸값이 오를까 봐 구단에서 축소해 발표했다.
프로 2년째인 1996년 1군에서 기회를 잡았다.
당시 백인천 감독이 삼성을 맡고 있었다. 그때 2군에서 3할9푼5리를 쳤다. 1군으로 올라간 첫날 선발로 나갔다.
이승엽이 외야수를 보고 내가 1루수를 봤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타수 2안타를 치고 다음 날도 4타수 2안타를 쳤다. 그래서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에 있었다. 2할7푼9리로 시즌을 마쳤다.
이제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했겠다.
다음 시즌을 앞두고 미국과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했는데 몸 상태가 좋았다. 시범경기에서도 3할3푼3리를 쳤다. 전체 7위인가 그랬다.
당연히 1군에서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코치진에게 별다른 얘기를 듣지 못해 충격이 컸다. 야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좌절을 느꼈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배웠다. 상심이 커 운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크게 꺾였다. 5월에 1군에 올라갔지만 이미 마음가짐이 흐트러져 있었다.
2군에서 기량을 쌓아서 1군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열심히 했지만 기회가 별로 없었다. 승엽이가 워낙 잘 하다 보니. 일본이나 미국은 하위리그에서 유망주들을 키운다.
하지만 우리나라 2군 선수는 1군의 빈자리를 메우는 선수일 뿐이다. 2군 선수 연봉은 기껏해야 2천만 원이다.
2군에서 함께 있었던 선수로는 누가 있나.
최익성, 신동주, 이동수 등과 같이 뛰었다. 삼성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1군에서 뛸 기회를 잡은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삼성이 워낙 우승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에 2군에서 키우기보다는 외부에서 영입해 온 선수들이 많았다. 그래서 더욱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2군 생활을 했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군 선수들이 1군에 올라가서 적응을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1군에 올라가는 것이 완전한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타격감이 좋아야 1군에 올라가는데 그 타격감을 살릴 기회가 정작 별로 없다.
한 경기에 한두 타석씩 나가서는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런 기회를 살려야 하는 것이 선수가 해야 할 일이지만 쉬운 게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힘들었나.
우선 야간경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거다. 1군 선수들은 낮 경기보다 야간경기가 편하다고 한다. 익숙해지면 덥지도 않고 몸도 잘 움직여진다.
낮 경기만 하던 2군 선수가 1군 야간경기에 나서면 공이 더 빠르게 보인다. 그렇잖아도 1군 투수들의 공이 2군 투수들보다 빠른데. 미트에서 나는 소리도 훨씬 위력적으로 들려 주눅이 든다.
일단 공을 하나 보자는 생각을 하지만 위압감에 몸이 움츠러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불리한 카운트로 몰린다. 2군 선수들에게 하나 충고하자면 1군에 올라가면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노리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포지션에 이승엽이 있었다. 포지션 변경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나.
몇 번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가 끝까지 시킨 적이 없었다. 훈련 도중에 흐지부지되곤 했다. 감독이 자주 바뀐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승엽이가 원망스럽진 않았다. 워낙 잘 했으니까. 지금도 대구에 오면 서로 연락한다. 친한 사이다.
미국의 경우 룰5드래프트가 있어 마이너리거들에게 기회를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그런 얘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것이 나였다. 구단으로서는 내보낸 선수가 다른 팀에 가서 잘하면 곤란하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전상렬 같은 선수를 봐라. 이적이 득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선수에게 맞는 팀과 감독이 있다. 그런 선수들이 묻히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빨리 시행돼야 한다.
2004년 노장진과 함께 롯데로 트레이드됐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9년 동안 승엽이에게 가려서 기회가 없었다. 이제야 기회가 주어져 잘 해보려고 했는데 트레이드될 줄 몰랐다. 트레이드 전날 수원에서 홈런을 쳤다.
다음 날이 휴식일인 월요일이라 대구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서울로 가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선동열 수석코치가 미안하게 됐다고 하면서 트레이드 사실을 알려 줬다. 크게 상심했다.
삼성에서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려서부터 삼성에서 뛰는 것만을 생각했는데. 섭섭했지만 그래도 삼성이 싫지는 않다. 어려서부터 좋아한 팀이니까.
마해영이 떠난 뒤 롯데 1루는 취약 포지션이어서 기회였는데.
독하게 마음을 먹지 못했다. 삼성을 떠난 게 마음의 상처가 됐다.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삼성을 만나면 이를 악물고 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나.
내가 생각해도 운이 좋은 선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삼성에 있을 때는 승엽이가 워낙 잘 쳤다. 롯데에 갔더니 이대호가 잘했다.
롯데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이대호가 그렇게 잘하진 않았는데. 이대호는 좋은 선수가 될 줄 알았다. 큰 체구에 비해 스윙이 참 부드러웠다.
2군 통산 홈런과 타점, 안타 등 대부분 부문에서 1위다. 알고 있었나.
최길성보다 많나? 오래 뛰었으니까 그런가 보다. 홈런 기록은 곽용섭(삼성)이 깰지도 모르겠다(웃음).
2006년과 지난해 경찰청에서 뛴 곽용섭은 벽제구장(좌우 91m, 중앙 105m)에서 친 홈런이 많지 않나.
하긴 벽제구장이 작긴 작다. 나도 그곳에서 홈런 몇 개 쳤다.
지난해 롯데에서 방출됐다.
지난해 10월이었다. 구단에서 연락이 왔는데 방출됐다는 거였다.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하고 수화기를 내려놨다.
처음으로 야구를 그만두라는 말을 듣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20년간 해 온 야구를 이렇게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팀에 갈 수도 있지 않았나.
많이 고민했다. ‘다른 팀에서 나를 받아줄까’하는 생각도 했고 타향살이를 하는 것에도 회의가 들었다. 그러다 11월에 모교인 상원고(옛 대구상고)에서 코치를 해 보지 않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코치 생활은 어떤가.
처음에는 막막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하는 거다”라고 가르치면 “네”라고 대답하는데 이게 정말 알아서 대답을 하는 건지 아니면 대답만 “네”라고 하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매일 늦게까지 아이들 붙잡고 훈련하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잘 따라오면 기분이 좋다.
선수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왜 없겠나. 특히 지도하다 보면 직접 보여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선수로 더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프로야구 중계는 보는가.
(이)상목 형이랑 친해서 상목이 형 경기는 꼭 챙겨서 본다. 삼성이나 롯데는 같이 운동했던 선수가 많아서 특히 더 보게 된다.
중계를 보면 사실 마음이 편하진 않다. 그래서 안 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요즘에 워낙 야구 중계가 많다 보니.
SPORTS2.0 제 109호(발행일 6월 23일)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