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의 ‘나라 걱정’에 답하다
윤승원 수필문학인,『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저자

▲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 김동염 씨의 시어머니가 붓글씨 쓰시는 모습 - 94세 연세임에도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안 보고 읽고 쓰신다고 한다.
오늘(2019.08.23)아침, 초등학교 동창생 단체 채팅방에서 여자 동창생 김동염 씨가 짧지만 뜻이 깊은 ‘나라 걱정’을 올리셨습니다.
“우매한 국민을 어리석지 않게 하는 게 위정자(爲政者)의 의무일진대 어쩌다 이렇게 걱정스러운 일이 자꾸만 벌어지느냐”는 탄식이었습니다.
무던히도 참다가 한 마디 올리셨구나! 느꼈습니다. 귀여운 손주의 재롱이나 보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가정의 할머니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할 수만은 없어 저렇게 한마디 하시는구나! 느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행간 속에 묻혀 있는 순수한 할머니의 애국심에 공감하면서 나도 참았던 한 마디 전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나는 공정하지 못한 방송과 신문은 아예 안 보고 살아갑니다. 진정으로 나라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유튜브만 선택적으로 봐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대강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는 “적폐가 적폐를 수사해 왔다”는 김광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나지막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을 유튜브를 통해 들었습니다.
입으로는 온갖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편법, 불법, 비리 종합백화점 의혹을 받고 있는 어떤 관직 후보자의 논란이 거세지는 시점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나는 이 시대 덕망 있는 학자의 의미심장한 말씀을 들으면서 삿갓 쓴 방랑시인 김병연선생이 이 시대에 우리 앞에 나타나면 무어라 대꾸할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다 하늘의 뜻이지, 하늘의 뜻이어~’
방랑시인 김삿갓이 던지는 이 말씀 한마디 속에 우리가 얻고자 하는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나라를 크게 걱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벼슬아치들에 대하여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이 다 시켜서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권력은 칼입니다. 칼을 잘못 휘두르면 또다른 칼잡이한테 당하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장관이면 판서벼슬입니다. 판서벼슬이면 성공한 인생이지요. 하지만 벼슬이란 것이 다 좋아 보이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온 집안 욕보이는 일이 될 수도 있지요.
벼슬 잘못하면 하루아침에 귀양 간 사람도 역사에 많습니다. 목에 칼 쓰고 옥살이한 사람도 역사에 한 둘이 아닙니다.
나는 순박한 내 고향 청양 사람들 중에 비록 많이 배우진 못했어도 삶의 법도를 올곧게 지키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성실한 분들을 많이 보면서 자랐습니다.
예의를 알고, 자기 분수를 알고, 훌륭한 가문의 전통을 오롯이 이어 받아 자녀들도 반듯하게 교육해 오신 동네 어르신들을 존경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어르신들은 거창하게 정의를 부르짖지도 않았습니다. 육법전서에 나오는 법조항을 단 가지도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 분수를 지키고 살아가는 삶이 곧 법이고 상식이었습니다.
대대로 선량하게 살아오신 조상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의 평범한 상식임을 몸으로 느끼면서 살았습니다.
아흔을 훌쩍 넘긴 김동염 씨의 시어머니께서 쓰신 붓글씨를 좀 보십시오. 천자문도 쓰시고, 명심보감도 쓰십니다. 첨단 과학은 그 속에 들어 있지 않을지라도 영원 불변의 진리와 생활 철학은 그 속에 빼곡히 담겨 있습니다.
<운필(運筆)의 묘(妙)>란 먹의 농도(濃度), 팔뚝 힘의 강도(强度)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도 유년 시절부터 붓을 잡았지만 붓글씨 쓰는 예술행위를 <서도(書道)>라 하는 숨은 뜻도 새겨 볼만합니다. 절제된 내면을 가꾸는 삶의 아름다움에 비유할만합니다.




▲ 초등학교 동창생 김동염 친구가 지난 해 내게 보내준 사진과 대화내용
최고 명문대학교를 나온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라고 해서 인품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시골 사랑방에서 먹을 갈아 한자 한자 써내려가는 구순(九旬) 노인의 붓 끝에서 정치인들보다 훌륭한 고매한 인품이 묻어납니다. 존경합니다. ■
2019. 8. 23.
-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 김동염 친구의 카톡방 글에 윤승원이 답하다.
첫댓글 올바른 말씀입니다. 보통사람도 역사관 올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역사의 주인공들이십니다. 윤선생이나 김동염씨, 그리고 그 시어머님 훌륭하시고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임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 시어머님께서 한 글자 한글자에 정성을 쏟아 반듯반듯하게 쓰신 글자마다 인생의 짙은 향기가 묻어나고 있습니다. 어르신의 만수무강을 저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정 박사님의 귀한 말씀이 더해지니 김동염 친구의 시어머님 글씨가 더욱 값지게 느껴집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삶의 멋과 가치가 무엇인지 가르침을 주시는 어른의 모습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장수의 비결도 運筆의 묘와 같이 절제 있는 반듯한 생활 방식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의 꽃밭을 가꾸고 사시는 어른의 모습에서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식은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은 더 어렵고 중요한듯 합니다.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 책으로 출판되겠습니까. 이러한 점에서 어르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듯 하여 기분이 좋아집니다.
94세 어른이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먹갈아 쓰시는 쓰는 이유는 두가지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인격도야와 수양, 반복적 학습을 통한 지식의 풍부를 누릴 수 있으며 또 하나는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식 며느리 손주에게 이만한 교육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선생님이 잘 설명해 주셨듯이 지식의 실천이야말로 삶의 최고 가치입니다. 나라 걱정도 깨어 있는 국민이 하는 것입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