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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빌립보서 3 : 7 - 9
제목: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일시: 2011. 2. 27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한국에 가면 언제나 어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듣는다. “아들, 밥을 줄이고 부식을 많이 먹고 과식하지 말고 맵고 짜고 단 것은 피해라.” 그러면서 가자마자 거쳐야 하는 관문은 혈당검사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도착 다음날 아침, 혈당측정기를 들고 내 머리맡에 계신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작전을 짜 놓고 있었다. 조금 화를 내듯이 진지하게 말했다. “어머니, 오늘 혈당측정 절대 안할 거에요. 하면 한달 내내 아무것도 못 먹고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는데도 문제가 되요”라고 했다. 혈당수치가 높으면 거 봐라 하면서 못 먹게 할 것이고 낮아도 지금부터 조심해야 돼 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어머니이다. 그리고 안 재는 것이 아니라, 독일로 가지 직전에 재겠노라고 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아침 딴 얘기를 자꾸 하는 데 어머님이 마치 막 생각난 듯이 “참 아들 혈당한번 재자”라고 하신다. 어머니를 피할 수 없었다. 포기하면서 “예 재세요”하고 팔을 내밀고 그날 결국 혈당을 쟀다. 그리고 머리 맡에 앉으셔서 “주여”라고 가슴 졸이시는 어머니의 피곤한 사랑을 느껴야 했다. 아버지가 당뇨가 있으니 너도 조심해라는 귀에 따갑게 듣는 잔소리다. 잔소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잔소리로 들려도 언젠가 어머님의 그 짜증나는 잔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어머님이 안 계셔도 내 스스로 재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잔소리의 유산을 자녀들에게도 말할 때가 있을 것이다.
사도바울도 오늘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임을 알면서도 빌립보교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빌3:1). 그것은 사랑의 심장에서 나오는 사도바울의 잔소리였다. 잔소리처럼 들려도 그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한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한 잔소리의 내용은 무엇인가? 3절을 보라. 육체를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육체로 말하자면 자신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4-6절을 보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사도바울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베냐민지파에 속한 정통 이스라엘사람이었다. 율법으로는 가말리엘에게 배운 바리새인이었고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II.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긴다.
사도바울은 그가 자랑할 만한 것, 유익하다고 생각한 이 모든 것들을 오히려 해로 여긴다고 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말이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7절)
사도바울이 이전에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 그만큼 주님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정도가 아니라, 액면그대로 해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을 만났지만 이전에 있던 것들은 쓸 만한 것은 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예수님을 알게 되었지만 굳이 그렇게 광신적으로 모든 것을 나쁘다고 할 것 까지는 있겠는가 싶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결단을 존중하라. 이전에 자랑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고상한 지식을 갖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오히려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좋은 것이 언제나 문제이다. 유익하던 것이 문제이다. 돈 이야기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만, 그만큼 좋다는 것이다. 문제는 돈 때문에 예수 믿기가 어려울 때 해가 되는 것이다. 명예가 나쁜 것인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명예를 추구하다보니 주님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것 때문에 문제이다. 명예가 해가 된다. 구약의 율법이나 할례가 나쁜 것인가?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귀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에게 자리를 주지 않으려니 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의 최고의 적은 바로 내게 유익하던 것들이고 나의 강한 것들이 된다. 주님과 경쟁관계에 있는 것들은 오히려 해가 된다. 그분을 사랑하는데 있어 내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해가 되는 것이다. 갈등을 일으킬 만한 것이 있는가? 그것이 아무리 좋아도 오히려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해가 된다.
예)호주의 어느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다. 꿈이 있었다. 그는 좋은 차를 사는 것이었다. 스포츠카이다. 람보르기니라는 스포츠카를 샀다. 인터넷에서 보니 정말 멋지게 생겼다. 몇 억씩 하는 차를 산 것이다. 늘 닦고 귀히 여긴다. 한참 닦고 있는데 한쪽에서 기기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못으로 차에다가 기스를 내면서 낙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버지는 너무나 화가 나서 눈이 뒤집혀 버렸다. 그 아이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때마침 있던 자동차 연장의 하나인 망치로 아이의 손을 내리쳤다. 피를 보니 더욱 화가 나는지 정신없이 계속 내리쳤다고 한다. 피가 얼마나 났는지 우는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와서 아이를 응급실로 데리고 갔고 뼈가 으스러지고 출혈이 심해 급기야 그 손을 절단해야 했다. 수술에서 깨어난 아이는 아버지에게 한 손이 없으면서 빌면서 아빠 다시는 안 그럴께요 라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 아비는 집으로 돌아와서 권총으로 자살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신문에 기사가 났다. 그 아이의 완성되지 않은 낙서와 함께... I love Da... 아빠가 그 차를 사랑하니 자기도 아빠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낙서를 한 것이었는데.. 아빠는 귀한 것으로 인해 더욱 그것이 절망적인 해가 된 것이다.
애들 공부안한다고, 너무 뭐라고 하지 말라. 너무 사랑하니까 그러는 줄은 알지만, 애 스트레스 받으면 병난다. 우울증 걸리게 하면 안 된다. 더 귀한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 기 안 죽인다고 야단을 안쳐서도 안 된다. 기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혼을 내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주님을 못 알아 본다면 안 된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은 우리의 강한 것이 약점이라는 것이다. 거북이와 토끼에서 토끼의 약점은 빨리 달리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물어본 부자청년의 약점은 재물이었다. 그것으로 주님께로 오지 못했다. 그러니 얼마나 해가 되는가? 권력의 약점은 권력이다. 피아니스트의 약점은 피아노이다. 머리 좋은 사람에게 약점은 머리 좋은 것이다.
III.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겨 버리고 주님으로 채워넣는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8).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아쉬워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떨면서 놓는 것이 아니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리는 것이다. “배설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배설물은 무엇인가? 더러운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다. 누가 화장실에 가서 뒤를 돌아보는 자가 있는가?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 보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제 먹은 것이 이렇게 다 영양소화도 안되었는데, 아깝다고 해서 미련을 두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내가 어떻게 낳은 것인데”라고 하지 않는다. 배설을 해 낼 때 평안하다. 토일렛이라고 하는 화장실을 영어로 레스트룸 혹은 컴포트룸이라고 한다. 쉬는 방 혹은 평안한 방이라는 것이다. 그곳은 단어도 잘 외워지고 잊어먹던 것도 잘 생각나는 곳이다. 배설을 하기 때문이다. 나를 비울 때 생각이 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비우는 일이다. 우리는 자꾸 채우려고 한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 내가 어떠한 일을 이루고 업적을 쌓고 행동을 함으로 뭔가 해 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일이다. 사도바울은 할례를 행하고 열심을 내어 교회를 핍박하기도 하고 율법을 잘 지켜 흠이 없는 율법의 의인임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 안에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예)코스타가 1200명 이상이 와서 얼마나 성황리에 마쳤는지 모른다. 홍정길 목사님은 설립자라는 이름을 빼어냈으면 좋겠다고 한다. 섬김의 자세로 있어야 하고 누구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면 오래 못간다는 것이다. 누군가 해야겠다고 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면 그 조직은 냄새가 난다. 정치하는 이들로 인해 썩게 된다. 홍정길목사님은 코스타가 드러나면 안된다는 것이다. 코스타를 키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코스타를 통해서 커야 한다. 교회가 드러나서도 안된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야 한다. 토마스교회를 종종 바하의 교회라고 한다. 바하를 통해서 주님이 드러나야 한다. 니콜라이교회를 월요기도회의 교회라고 한다. 월요기도회를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이 드러나야 한다. 너무 귀한 일인데,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도 있지를 않는가? 나의 프로젝트, 나의 아이디어,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 심지어 자기들의 선교단체를 선전한다. 종종 자기들의 조직을 강화하려는 것인지 주님을 드러내게 하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가 사도바울이 말하는 의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육체의 자랑거리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의의 옷이다. 9절을 보라.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한다. 하나님께 우리를 보일 때는 나의 육체의 자랑이 아니라, 주 안에서 발견되어진 나여야 한다.
예)임흥규집사님이 몇 년 전에 오셨다. 작년에 방문하였을 때 간암이 발견되었다. 수술하기 아주 안 좋은 곳이었다. 그래도 건강히 지내셨는데, 지난 방문에 병원에 다시 입원하여 들어가셨다. 이미 신장투석을 하고 계셨다. 의식이 별로 없으셔서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의식이 돌아오자 보고 싶다고 하신다. 그에게 꼭 전할 말이 있었다. 그 말은 집사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로마서 8장 1절의 말씀처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에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8:1).
설교를 몇천번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밀알학교를 세워서 장애인들을 위해 일한 것도 중요하지 않다. 돈을 모아서 기부를 했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연주회를 얼마나 하고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IV.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번 코스타의 주제는 “세상을 바꿔라 예수의 심장으로”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먼저 내가 변해야 한다. 그 심장에서 뿜어내는 피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혈관속에 흐르는 피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생명의 언약의 피가 됨으로 주님의 성품에 참예한 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의 자녀이고 그 가문의 사람이기에 구원을 받았고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며 삶의 가치가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 바뀌어져야 한다.
모인 이들은 유학생들이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 성악을 하고 악기를 하는 사람, 의사공부를 하는 사람, 공대에서 공부하는 사람, 물리학을 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주 앞에 바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주 안에서 발견되어져야 한다. 사도바울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될 때 비로소 의롭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자랑거리는 자랑이 아니요 오히려 해가 되고 버릴 것이었다고 한다. 오직 주 안에서 발견될 때 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바울이 버렸다고 했지만, 과연 그것이 못쓰게 되었을까? 그의 로마시민권은 무효화되었는가? 결정적인 순간에 잘 사용되었다. 그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그리고 다른 서신서들은 그의 헬라문화배경과 히브리문화배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게 잘 기록할 수 있었다. 교회를 핍박하는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핍박을 받더라도 여전히 달려갈 수 있는 자가 되었다.
그 안에서 발견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