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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강은 조선시대 한강 정구(1543-1620 조선중기) 선생께서 일찌기 터를 잡으셨던 낙동강 지류중 한곳인
김천-성주구간의 무흘 구곡이 자리했던 회천(85km)지류중 가장 긴 안림천 47km이다.
안림천은 낙동강 제2지류 격이며, 발원지로는 백두대간 초점산에서 분기되는 황강 좌측의 산길로 수도산을 지나 가야산
정상 직전 두리봉에서 가야산 정상으로 가지않고 우측으로 틀어 남산을 지난다.
산길은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초막동)와 경남 거창군 가북면 우혜리 경계 지점인 988봉 인근 전나무 숲에서 발원해
국립공원 가야산 남쪽의 물을 모두 고스란이 담아내며 천년고찰 해인사를 지나 경북 고령군 고아2리로 가는 46km의 강이다.
가야산 국립공원은 경상 남,북도에 걸처 있으며 예로부터 "가야산은 해동 10승 또는, 조선 팔경의 하나로 산세가 천하의
절승하고 지혜의 덕은 해동 제일이라" 극찬 하였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경판전"과 "팔만 대장경"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인사 앞자락으로 굽이치는 홍류동 계곡과 소나무 군락은 국립공원 가야산을 대표하는 경관이기도 하다.
새벽에 자가용으로 고령군 고아리"고령군 생활 하수 처리장" 부근에 주차를 하고,고령 택시를 불러 가야산 국립공원에
자리하는 가야면 초막동으로 찾아간다.
천년 고찰이 자리하는 해인사 바로 위로는 전날 눈이와서 빙판길이라며 택시 기사께서 더 이상 차가 못 올라 간다며
내리라 하니 발원지 아랫동네 초막동까지 약 4km이상을 걸어 올라 갈 일이 막막하다
택시는 떠나고 빙판길을 조금 올라가니 뭐임!~ 초막동 마을을 오고가는 차들은 쉽게 부릉 부릉 잘도 올라 가는데
택시 잘못타서 애꿎은 발품만 팔게 생겼으니 그래도 "내운이겠지" 하며 눈구경 삼아 초막동까지 쉬엄 쉬엄 오른다.
해인사의 암자중 하나인 법기암을 지나고
나는 누구인가? 택시 잘못타서 걸어 가는 일인이다.
초막동으로 올라 가는길에 보는 가야산 국립공원
이곳 가야면 치인리 마을은 파프리카로 유명한 마을이기에 온통 비늘 하우스 뿐이다.
초막동 목림 친환경까지 올라가야 한다.
합천 가야면 초막동에서 거창 가북으로 넘어가는 초막고개로 올라가는길
차로는 더이상 올라가지 말라며 낡은 폐 타이어가 동그란 눈을 치켜뜨고 누워있다.
올라 가는 길에 본 황강111km의 좌측 산길 두리봉 방향(수도 지맥길)
산줄기 넘어로 흐르는 물은 모두 회천이며 오늘 가는 안림천 물과 만나 낙동강과 합류 하는 물이된다.
원래 계획은 이곳(초막동)까지 택시 타고 올라와야 했는데 빙판길이라며 대충 내려주고 돈만 받아간 기사님 덕분에
1시간 이상 걸어 오느라 오늘 일정이 엉망이 되었고 강행길이 빠듯할것 같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올라와 지맥길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좌측은 거창군 가북면 가는길 직진은 가야산으로 가는길, 우측은 초막동으로 가는길
지맥길로 조금 올라오면 지도상 988봉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 지맥 마루금에서 좌측 전나무 숲이 안림천 최고 빗물 꼭지점이며, 발원지인 셈인데 우측은 황강이 되어 합천댐을 거처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안림천 물은 이곳에서 시작되어 초막동-해인사 앞 홍류동 계곡-가야면 -야로면-고령군 쌍림면-고령군 대가야읍 고아2리에
서 무흘 구곡의 회천에 합류해서 고령군 객기리에서 낙동강 품에 안긴다.
안림천 유래는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 마을 이름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곳에서 흐르는 동안 오도산에서 흘러온 묘산천과
만나는 지점 약 25km를 흘러 쌍림면에서 부터 안림천으로 불리우게 된다.
전체적인 물은 상류마을부터 파프리카 농사를 짓거나 밭농사, 그리고 해인사 앞 식당가를 지나며 물때가 조금씩
보이지만 가야면을 지나면서 물은 다소 깨끗해 지기도 한다.
물은 좀 더 흘러 합천군 야로면을 지나면서 조금씩 더러워지기 시작해 고령군 쌍림면 신촌 유원지 아래에서 만나는
묘산천(16km)물과 만나는 지점부터 물은 물때가 생겨 더러워지게 되며,고령군 쌍림면 백산 마을의 성림축산과 그외
몇몇 돼지 농장을 지나면서 물은 물 이끼가 덕지 덕지 붙으며 형편없게 흐른다.
지나간 경로
강길 39번째 누적거리 4,965km
안림천 주위의 산들
이제 눈길, 잡목을 쓰다 듬으며 한발 한발 아래로 내려간다.
인증도 한장 담고
전날 내린눈이 마치 목화 솜같이 할짝 피어났다.
아름드리 전나무 숲속으로
조금전에 올라왔던 초막고개로 가는길
이제는 잡목 구간은 끝나고 쉬운길로 걸어 가지만
겨울 가뭄과 엄동설한에 물찾기가 쉽지 않아 잠시 내려 가본다.
밭과 수목 한계선 그옆으로 안림천 발원지 도랑이 있지만 한겨울에 물이 흐를리 만무하고
해발 800고지
밭 옆에 만들어진 수도 파이프 라인이 보인다. 이곳이 안림천 발원지라 생각이 들어 인근 주위를 찾아보니
파이프 라인은 좀더 윗쪽 산아래 땅에 묻어 두었고 조금 깨진 파이프로 물이 흘러 나온다.
물이 나오는곳에는 작은 습지가 있는지 질퍽질퍽하고
지맘대로 자란 전나무 군락지
이곳에서 물이 흘러 가다가 가야산 정상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면서 홍류동 계곡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초막동 안림천 최 상류의 마을이며 대부분 파프리카 농사를 짓거나 그외 밭 작물을 키우는 마을이다.
아직은 개울 수준이며
개울 옆으로는 온통 비닐 하우스 단지다.
해인사의 작은 암자인 도솔암 앞으로 물은 흐르고
도솔암 입구에서
내려가는길
돌담장 위로는 전날 내린 눈이 가득하여
고향 마을을 연상케 할 정도로 소담스럽다.
누구집 담벼락 옆에 터를 잡은 가스통 두개를 보니 가스통 할배가 생각난다.
가스통 할배께서는 요즘 정맥길 진행중이라 바쁘셔
강바람 쐬어 오시라 할 처지가 못된다.
개울 수준이던 물이 국립공원 가야산 안으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홍류동 계곡이란 이름으로 흐른다.
물은 맛도 냄새도 없지만 상류에 농사를 짓기에 암모니아성 질소와 질산성 질소가 포함되어 흐른다.
아침에 택시가 못 올라와서 걸어서 올라왔던길 다시 내려가본다.
비료 포대기 하나 있으면 타고 내려가면 좋겠는데...
가야에서 만나는 첫 폭포 용문(龍門) 폭포
가야산에 살던 용이 등천(登天)을 하려고 이곳에서 목욕하고 하늘로 승천(昇天) 했다는 곳이다.
용이란 상상의 동물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긴 동물이며,비늘은 잉어의 비늘과 흡사하다.
자연에서 가장 긴것은 꿈틀대며 넘어가는 산줄기와 흐르는 물 밖에 없을 것이다.
물이란 산에서 태어나 이산, 저산을 휘돌아 막히면 돌아가며 시(市)와 군(郡),면(面) 구분할것 없이 넘나 다니며
온갖 더러운것을 다 담아내며 세상 풍파와 시련을 겪으며 흘러 大海로 간다.
용문 폭포와 등용문
중국의 황하(黃河)강 상류에 용문이란 거친 폭포가 있는데 그곳 용문을 통과한 물고기를 등용문에 통과하였다고 하며
용문에서 유래된 등용문(登龍門)은 훗날 청나라 과거 시험을 볼때 중국 각지에서 1차 시험을 보고, 2차 시험은 현재의
자금성에서 봤는데 1차 시험에 장원 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중국 각지역에서 장원한 사람들이 자금성까지 올라온것
만으로도 등용문에 올랏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공무원 시험은 미국 하버드 대학에 들어 가는것 보다 더 힘들다고 하니, 청나라 과거 시험에서 합격하는것
보다 대한민국에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것이 더 힘들것이라 생각해본다.
용문을 잠시 지켜 보다가 해인사로 발길을 옮긴다.
흐르는 물 옆에 자리잡은 가야산 해인사 상가단지
상가단지 안내판
이곳 상가에서 허드렛물이 얼마나 흘러들지 불보듯 뻔 하지만
물 스스로 흐르면서 정화 되기만 바랄뿐이다.
남산-두리봉 가야산 정상에서 흘러온 물이 해인사 절 옆을 지나 안림천과 합류되기 위해 아래로 흐르는곳
이곳까지 왔으니 한국 불교 문화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법보종찰 해인사에 잠시 올라가 보기로 한다.
합천 해인사(海印寺)
법보 종찰(法寶宗刹) 해인사는 불보(佛寶)사찰인 통도사와 승보(僧寶)사찰인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대 사찰이다
해인사는 화엄종(신라의 의상이 당나라에서 배워 전파함)의 근본 도량이며, 민족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팔만 대장경을
모신 사찰이다.
해인사는 신라시대 화엄종을 정신적인 기반으로 하며 대승경전의 해인 삼매(海印 三昧:과거,현재,미래)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라는 이름은 바로 해인삼매에서 비롯된다.
해인사는 한국불교 문화의 성지 같은곳이기에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가족을 이끌고 이곳 해인사에서 말년(95세)을 보내셨
고, 조선 후기 김천 직지사로 출가 하셨던 고승이자 의병장 이셨던 사명 대사께서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셨고,
근대에 들어 성철 스님께서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셨다..
[참고]
1.법보종찰:팔만대장경이 소장된 법보전이 있고 대장경을 보존하는곳이라 법보종찰이라 부른다.
2.불보종찰:자장 율사께서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을 가져와 지은 절이기에 진신사리는 부처의 법신을 상징한다.
그래서 불보 종찰이라 부른다.
3.승보종찰:보조국사 등 16명의 국사를 배출했다고 해서 승보 사찰이라 부른다.
삼보 종찰 3곳 해인사,통도사.송광사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 12교구 본사이며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802년)때 신림(神林)의 제자였던 순응(順應)이 중국으로
수도를 떠났다가 몇년뒤 귀국하여 절을 세우다 순응이 죽자 이정(利貞)이 그뒤를 이어 창건하게 된다.
해인사는 경남 인근으로 172개의 말사 절과 부속 암자 12개를 거느리는 큰 절집이며
멀리 지리산의 대원사도 이곳 해인사 말사의 절이다.
휘어질듯 날아갈듯한 부연 석가래가 운치 있으며
고운 단청 물감이 고드름과 함께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듯하다.
연화세계의 대정적인이라는 뜻의 대적광전(大寂光殿)
화엄종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신곳이다.
대적광전에는 삼신불(三身佛)을 모시는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다.
마당 중앙에 자리잡은 부처님의 광명을 상징하는 정중삼층석탑과 전등이 보이고
해인사 대적광전은 조선말 7번의 화재로 소실 되었지만 새로 지어졌고 남아있는 그당시의 유적은 돌로된 석등과 석탑 뿐이다.
대적광전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나오니
멀리 청량사 절이 자리하는 남산제일봉이 보인다.
지난밤에 눈이와서 그런지 절집 지붕위 골골 마다 눈이 가득하고
스님들께서 절집 마당을 쓸어 놓고 참선을 하시거나, 몇몇 스님들의 경 읽는 염불소리에 잠시 정신이 나간다.
스님들 염불 소리만 들어도 가야의 극락세계에 온듯하니...
조용하게 들려오는 염불 소리를 벗삼아 비로자니불을 모신 대적광전을 나와 뒤로 돌아가면
팔만 대장경을 모신곳이 나온다.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고려는 불교문화를 통치 이념으로 삼는 국가 였으니 국난이 일어날때 마다 부처님의 도움을 받고자 많은 인원과 돈,그리고
시간을 들여 대장경을 만들었으니 1차로 만든것이 초고대장경이었다
하지만 몽고군의 침입으로 불타고 이후 대장경을 통하여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팔만 대장경을 다시 만들게 된다.
고려말 제작된 팔만 대장경은 보관상 이유로 창살안으로 구경할 수 있었고
고려 국민을 하나로 뭉치고, 몽고군을 물리 칠 수 있도록 불법의 힘으로 16년간의 대역사 끝에 만들어 졌다.
산벚나무로 만든 판은 모두 8만1352개에 달하며,8만 4천개의 경전에 말씀이 실려있어 팔만 대장경이라 부른다.
고려 팔 만대장경은 처음부터 이곳 합천 해인사에 있었던건 아니며
경남 남해에서 만들어 이후 강화도 선원사에 옮겨져 보관하고 있었던것을
조선 태조 7년에 해인사로 옮겨와 현재까지 보관하고 있는것이다
어느 부지런한 스님께서 새벽에 일어나 쓸고 가셨는지
바다의 도장이라는 해인(海印)을 벗어나려니 아름드리 전나무가 배웅을 한다.
내려 가는길에 10여년전에 열반하신 퇴옹당 성철스님 사리탑으로 가 보기로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이말은 성철 스님께서 처음 하신말이 아니다 8세기 중엽에 당나라 "청원" 선사의 말이며
"경덕전등록"에 나오는 선화(禪話)다
"30년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였다
그러나 후에 훌륭한 스승을 만나 깨우침을 받고 보니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였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다 정말 깨우침을 이루고 보니 "산은 그대로 산이요 물은 그대로 물이었다." "山是山 水是水"
5공때 전두환 대통령이 합천 고향집에 방문 하는길에 합천의 성철 스님 얼굴이나 볼까하여 수행원을 해인사로
보내 성철 스님을 "오시라고 하자" 성철 스님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이렇게 하셨다.
서로가 갈길이 따로 있으니 굳이 찾지 말라는 뜻일듯하다.
퇴옹당 성철 스님(1912년-1993년) 해인 총림의 방장과 대한 불교 조계종 6대 종정
퇴옹당 성철스님 사리탑
스님의 사리탑을 한바퀴 돌아 보며 생전에 그분이 하신말씀 "자신을 바로보라"는 말이 생각나다.
바다의 도장이라는 해인사를 나와 가야천 옆 도로길을 버리고 최근에 만들어진 가야산 소리길로 진행하며
강길 산길을 두루 구경하게 된다.
가야산 소리길
낙화담
절벽 사이로 폭포가 흐르는 모습인데 경치가 아주 좋다.
지나온 계곡길
낙화담 깊이을알 수 없지만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겨울 잠을 자는듯 하고
내려온 계곡길과 길상암
아름다운 절집 해인사 말사의 길상암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어 가볼까 말까 잠시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길상암 스님께서 곱게 쓸어 놓으신 가파른 계단이 깨끗해 보여 올라본다.
전날 내린 눈을 곱게 쓸어내린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니
길상암 대웅전에 멋진 선그라스를 쓰고 염불을 외우시던
주지 스님을 뵙게되어 인사 드리고
길상암의 윤장대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것과 같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윤장대가 있는 절은 예천 용문산 아래 용문사(龍門寺)와 팔만대장경을 잠시 보관하던 고려 2대 사찰중 하나인
강화도의 선원사 두곳 뿐인걸로 알고 있는데 이곳에도 윤장대가 있다니 다소 놀라게 된다.
농산정 (籠山亭)
신라말 당대 최고의 학자셨던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말년에 이곳 홍류동 계곡에 은둔하며 수도 하셨던곳이다.
정자 마루 바닥에 잠시 걸터 앉아 지나는 바람소리,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당대 최고의 학자셨던 고운 최치원 선생을
생각해본다.
무릉 도원이라면 이 정도는 되야지 이곳 홍류동 계곡은 가을 단풍이 화려할때 와야 제격이라며
올 가을에 다시 한번 더 와보기로 하고 농산정을 뒤로 하며 지난다.
농산정 앞 홍류동 계곡 모습
물색은 하늘을 담아 좋고
마침 이곳 가야산 소리길로 올라오는 분이 있어 인증 부탁해서 한장 담고
홍류동 계곡이 끝날무렵 가야면 사람사는 동네가 보이기 시작하고
해동 제일 가야산이 보인다.
가야산 소리길 시작되는곳
가야면 소재지 모습
해인사 소리길 7,2km
소리길은 이곳에서 해인사로 오르게 되지만 중간지점인 홍류문(매표소)에서 입장료 내는곳을 지나야 한다.
가야산은 어디로 오르던 돈을내야 하는곳이지만 이른 아침에 오른다면 입장료 없이 오를 수 있다.
깨끗하게 흐르는 물과 김해 가락국 왕이였던 김수로왕의 어머니 정견 모주를 산신으로 모신 가야산이 지척이다.
가야면으로 가는 하림교 아래서 본 모습
가야면 땅는 지나고 합천군 야로면 하림리 마을에 들어와
가야천에 자리하는 가남정(伽南亭)
사우정이라 불리우는 이 정자는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정인기"를 비롯한 인함, 인휘, 인지 등, 사산정씨(瑞山鄭氏) 4형제를
추모 배향하는곳이다.
입구 한켠에는 수령 450년된 느티나무가 자란다.
가남정 앞 풍경
가남정 담장 옆에는 정인함 신도비(神道碑)가 있으며
아름드리 450년된 느티나무는 정인함 선생께서 손수 심으셨다고 한다.
나무는 큰 상처없이 주위로 가지를 뻗으며 자랏다
가남정을 내려와 이곳에서 물 한번 건너주고
앞은 월광사지 3층 석탑이 자리는 하는 월광교
잠시 길은 없어 지지만 물이 많지않아 갈대숲 사이로 쉽게 지날 수 있는곳이다.
아직까지 깨끗하게 흐른다.
월광사지 삼층 석탑
동,서쪽에 각각 하나씩 배치되어 있는 쌍탑으로 전형적인 신라 석탑이며
월광사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이던 도설지왕 (월광태자)가 창건 했다고 해서 월광사라 전한다.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의 아들인 마애태자와 더블어 대가야의 마지막 비운의 황태자인 월광태자(김수로왕의 어머니
정견모주의 10세 손이다)
아버지는 대가야의 이뇌왕 이였고 어머니는 신라의 이찬 비지배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결혼을 빌미로 나라간 동맹 결혼을 했으나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게 되면서 마음이 백제로 기울어지니
백제와 함께 신라를 공격하다가 562년 진흥왕때 이사부와 사다함이 거느린 신라군 5천에 의해 대가야국은 멸망하게 된다.
어지간하면 보리문디 신라와 잘 좀 하시지 않고 ...
쌍탑 바로 위에 월광사라는 절이 있으나 최근에 지어진 절이다.
마실 나오신 할배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니
예전에는 강에 물고기가 많았지만 지금은 오염이 되어 물고기가 없다고 하신다.
조금 깊은곳에는 물고기가 조금 있긴하다는 말씀과 함께
멀리 고령땅의 최고봉인 미숭산(757m)이 지척이다.
안동 장군 이미숭 본관은 여주이며 휘는 미숭이다
안동 장군이란:삼국시대의 사안(四安)장군의 명칭이며 안동,안서.안남,안북 장군을 뜻하며 벼슬은 조선시대 종 3품과
비슷하니 요즘으로 치자면 대령쯤 되겠다.
고려 충목왕 태생이며 용맹하고 병법이 뛰어나 정몽주의 문인으로 학문을 읽혀 안동장군에 이른다.
장군은 고려의 재건을 위해 진서장군 최신(崔臣)과 함께 미숭산(상원산)을 근거지로 이성계에 항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게 된다.
그 이후로 상원산은 미숭산으로 바꾸어 부르며, 산 정상으로는 성터와 연병장등 곳곳에 장군의 자취가 남아있다.
이곳에서도 물한번 건너주고
지나온 가야산 구간
길가에 자리잡은 축사 분뇨가 들판에 들어가기전에 강가 인근 임도길에 자리를 접령해 있다.
물속 오염의 최대 주범인 녀석이다.
강가에 날아 다니는 비닐 쓰레기는 주우면 되지만 이녀석들은 빗물에 녹아 들기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합천군 야로면
이곳에서 점심겸 식사를 하기로 하고
어느 잔치국수집으로 들어와서
물은 가야면을 지나 합천군 야로면에 들어 오면서 서서히 흐려져 혼탁해진다.
그렇다고 생할 쓰레기나 비닐은 보이지 않으니 어디서 부터 잘못 된건지...
목천천이 가야천에 유입되는곳
물속 세상은 마치 동해 바닷속 물 미역을 연상 시킨다.
부 영양화로 생긴 녹조류 물이끼와 청태가 목천천을 가득 매워 있으며 이물이 곧바로 가야천에 합류하여 흐른다.
이런 물에 뭐가 살고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식성 좋은 물고기는 살아갈듯
가야천 옆에 자리하는 돼지 농장
지나는 길에 돼지 농장이 많으며 고령군 까지 돼지 농장은 이어진다.
가야할 강길
광주 -대구 고속도로인 야로대교
야로 대교 아래로 돼지 농장이 두곳 있으며 바람이 불때마다 돼지 똥 냄새가 심한곳
강길 따라 끝까지 들어오면 더이상 길은 없어지고 물을 한번 건너야 한다.
4륜 구동이나 트랙터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얉은곳
우리나라 60만 국군이 신고 다니는 천하무적의 군용 전투화가 제격이라 백미터 뛰어 가듯 제빨리 뛰어 건넌다.
ㅎㅎㅎ 다행이 신발 속으로 물 한방울 들어오지 않았으니 맨발로 건널일 없어 좋다.
조용한 강길에 만나는 논
여유 자금이 있으면 이곳에 땅 좀 사두고 싶어진다.
이런곳에 팬션이나 텐트 야영장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
전망 좋은곳이지만 꼴짝이라 조용하기만 하고
야로면 동촌 마을앞 풍경
이곳 수중보를 건너면 고령군 쌍림면이다.
수중보를 지나며
돼지 농장을 지났지만 물은 그런대로 깨끗하다.
합천군 오도산에서 흘러온 묘산천과 가야천이 만나면서 본격적인 안림천이란 이름으로 흐르는 곳
두물이 만나는곳에는 신촌 유원지가 있으며 이곳부터 물은 더러워진다.
멀리 뽀족한곳은 오도산 그옆의 긴능선은 두문산이다.
쌍림면 신촌리
생할 쓰레기 태운곳이고
양파도 보이고
이런 쓰레기는 강물을 어느 정도 오염시키지만 그렇다고 많이 오염시키는 주범은 아니다.
안림천이 묘산천과 만나 흐르는 동안 물속 풍경은 그야말로 엉망이다.
물이끼와 청태가 강 물속 자갈을 빼곡하게 덮고 자란다.
쓰레기와 안림천
강은 언제나 하늘을 닮아 푸르게 보일뿐 그 물속은 보는것과 확연하게 다르다.
가까이서 본 물속 세상은 이렇고
물고기 한마리 못 살듯한 숨막히게 흐르는 모습이다.
이런 청태가 남자들 정력에 좋다면 한달내 없어 질듯한데
누가 한번 먹어 보면 안되나?
고령군은 돼지로 유명한곳이다.
강가에 자리잡은 돼지 농장
돼지 농장은 500미터 가량 이어지며 돼지 축사에는 수만 마리쯤 되어 보이는 돼지들이
하늘 한번 못보며 살아간다.
어제 저녁에 맛있게 먹던 삼겹살이 이곳에서 살다가 판매 되었다면...
멀리서 보는 물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고
물속으로는 물이끼와 청태가 많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건 그저 푸른빛의 강물만 눈에 들어 온다.
쌍림면에 들어와 사과, 물 하나 사서 넣어두고
시간이 부족하니 좀더 빠르게 진행 해본다. 해질 무렵에 두물머리인 회천에 도착할지 모르겠지만
강 물의 오염 주 범인 축사 퇴비
이녀석들이 논과 밭으로 가면 60%는 땅으로 흡수 되고, 나머지 인,질소는 빗물에 녹아 강으로 흘러든다.
강물로 흘러 들어오면, 부 영양화로 녹조류가 발생하며 이끼와 청태가 자라게 된다.
도로 공사로 문닫은 돼지 농장
이녀석은 별 문제가 아니지만
돼지 농장 옆에 자리하는 돼지 오줌과 똥물
예전에는 이런 시설이 없으면 농장 허가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사 바로 옆에 땅을 파고 오염된 축사 똥물을 저장하던곳이다.
가로 140m×세로 60m 깊이는 안들어 가봐서 모르겠고
커다란 돌 하나 던져 보니 그저 풍덩 소리만 들린다.
거대한 돼지 똥물 담는 곳이며 얼마나 많은 똥물이 땅속 지하수로 스며 들었을지 의문이다.
더러버 죽겠다.
지나온 길에 해는 넘어가고
폐교된 안림 초등학교와 쌍림면 안림마을 이곳은 딸기로 이름난 곳이다.
멀리 안동장군(육군대령) 이미숭 장군의 미숭산이 보이고
딸기농장
딸기농장 앞 강가 쓰레기
지나온 강길과 멀리 대구-광주 고속도로가 보이며 그곳 다리 아래는 완전 똥물수준이었다.
무슨 지꺼기가 뭉쳐 덩어리를 이루어 물에 떠 다니니
그곳이 바로 안림천이다
지난번에 다녀온 성주군 초전면,월항면으로 흐르는 백천은 물이 더러운곳이 절대 아니기에
강가에 쓰레기를 줍거나, 버리지 않으면 나름 깨끗한 강인데 이곳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그런강인듯하다.
안림천이 회천에 합류하는곳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며
이곳은 고령군 생할 하수 종말 처리장이 자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안림천은 이곳에서 수도산-단지봉-가야산 북쪽 인근에서 내려온 물과 합류하며,
낙동강을 앞에둔 고령군 우곡면 앞을 지나면서 어느정도 깨끗하게 흘러간다.
지나는 이가 없기에 혼자 인증담고
싫어하는 야간 운전 고속도로를 80km로 달려 대구로 향한다.
이곳 안림천은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흘러온 깨끗한 물이지만
사방 10리를 못가서 더러워 진다는걸 다시한번 더 느낀걸음이다.
다음 강은 우리나라 국가대표급 물인 가지산 도립공원내 배네골에서 흘러 밀양댐을 거처 밀양강으로 흘러드는
단장천 47km로 가 봅니다.
첫댓글 대단 하십니다. 항시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 합니다^*^
국민들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모든게 엉망이 될듯합니다..
추운데 혼자서도 잘가십니다..
주중에 막걸리 마시러 가겠습니다
방장님의 강행기는 단순한 강행기 뿐 아니라 상세한 배경설명까지...대단합니다. 방장님 혹시 사학과 출신이신가요?
길상암~예전에 읽었든 책중에 길상암이 나왔든 그책이 생각나네요ㅋ 제목은 모르겠고 여스님의 인생이야기였는데ㅋ 기억력이 많이 부족한가봅니다^^
방장님 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흐를수록 혼탁해지고 더러워지는것 같습니다
가야산의 고찰 해인사에 대한 방장님의 이야기보따리 덕분에
해인사에 많은 것을 알고 배웁니다
겨울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걸으신 강길 고생하셨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며 다니세요
어느 시골을가나 농장이 말성인거 같습니다
규제가 넘 허술해서 몇마리 정도는 단속도 없다네요
방장님덕에 절에대한거 많이 알고갑니다
추운데 고생많으셨습니다
대장님.오랜만에 얼굴뵙게되어 넘반가웠어요..올해도 건강히 산행하며 좋은일만 가득하길바랄께요.먼길 오시느랴 수고많으셨고,감사합니다.
@페가소스(안정미) 나도 반가웠어요 다음에 봐요
오염의 주범은 도시나 큰공장들만 생각했는데 시골도 장난이 아니군요.
나부터 쓰레기줄여야겠단생각하고
가야산 주변 공부 잘하고 갑니다.
사진으로 봐도 쉽지 않은 고행의 길인데
글을 다 읽고 나면 " 나도 저 길을 걷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건
적나라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방장님의 글솜씨 덕분인것 같습니다.
아직 동장군의 위세가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봄을 향해 줄달음 치는 세월은 어찌 막을 수가 없겠지요.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행길 이어가세요...^^
야로에서 모여서 하룻저녁 놀고 시산제 지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나면서 자경산인님 생각이 나셨겠습니다. 문득 그때 생각이 나는군요.
물은 하류로 내려가면서 깨끗해지지는 않는 듯 합니다.
눈길에 고생하셨습니다.
가야산 해인사도 한번 가보야 할 곳이군요. 지나치기만 해서.....
가야산 소리길은 다녀와본터라 많이 익숙하네요.
그 깨끗한 물이 얼마못가 더러워지니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