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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2월 24일 월요일
[(녹)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이에게서 벙어리 영을 몰아내시고,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다.>
▥ 집회서의 시작입니다. 1,1-10
1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
2 누가 바다의 모래와 빗방울과 영원의 날들을 셀 수 있으랴?
3 누가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넓이를, 심연과 지혜를 헤아릴 수 있으랴?
4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고
명철한 지각도 영원으로부터 창조되었다.
5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계명이다.
6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계시되었으며 지혜의 놀라운 업적을 누가 알았느냐?
7 지혜의 슬기가 누구에게 나타났으며 지혜의 풍부한 경험을 누가 이해하였느냐?
8 지극히 경외해야 할 지혜로운 이 한 분 계시니 당신의 옥좌에 앉으신 분이시다.
9 주님께서는 지혜를 만드시고 알아보며 헤아리실 뿐 아니라
그것을 당신의 모든 일에,
10 모든 피조물에게 후한 마음으로 쏟아부으셨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주님의 사랑은 영광스러운 지혜이며
그분께서는 당신을 보여 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29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14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황홀하고 경이로운 체험을 하고 타볼산에서 막 내려온 예수님과 세 제자가 마주한 현실은 일상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삶의 전형적인 그늘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를 향한 예수님의 탄식은 그분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토록 믿음을 가르쳐도 딱히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답답하실 법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귀머거리 영을 쫓아내심으로써 더러운 영에 붙들려 자신을 잃어버렸던 아이를 본연의 자기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 앞에서 발악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고 그 아이의 몸속에 있는 더러운 영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살아가면서 죄와 악으로 그 모습이 더럽혀질 위협을 당합니다.
믿음과 기도, 이 두 가지가 더러운 영의 공격 앞에서 우리 안의 하느님 모습을 지켜 낼 수 있게 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믿음이, 제자들에게는 기도가 부족하였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의 아버지와 제자들에게는 두 가지가 다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겸손한 기도로 믿음을 얻고 해방된 아이를 되찾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우리는 믿기 위하여 기도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믿는다고 말하면서, 기도하기 위하여 믿고 기도하게 하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하자고 초대합니다. “믿음은 기도를 샘솟게 하고 샘솟는 기도는 믿음을 튼튼하게 해 줍니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남은 인생 여정, 좀 더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출신 대학교 이름만 들어도 뒤돌아보게 되는 명문대 출신에다가, 그 어렵다는 통과 의례를 거쳐, 권력의 최상층 부까지 치고 올라간 사람들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인생무상을 실감케 합니다.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들이 어찌 그리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 그 원인이 무엇일까? 거듭 고민을 해봅니다.
한 인생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적인 양성뿐만 아니라 인간적, 영적, 상식적인 교육도 골고루 받았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지적인 측면에만 투자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혜가 결여된 지식의 위험성을 오늘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희 살레시오회에서는 사목자를 양성할 때 4가지 측면의 고른 양성을 강조합니다. 한 살레시오 회원이 인간적, 영적, 지적, 사목적 역량을 골고루 갖추어 균형있는 수도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숙한 식별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로움을 갖추기를 강조합니다.
오늘 우리가 첫째 독서로 봉독한 집회서에서는 참된 지혜가 어떤 것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집회서는 유다교 문학의 지혜 장르를 보여주는 탁월한 본보기가 되는 성경입니다. 집회서에서 ‘소피아’로 인격화된 지혜는 자신과 하느님의 영원한 관계에 관해 설명하고, 모세의 율법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 지혜에 대한 개념은 대폭 확장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간 자칭 지혜롭고 슬기로운 존재라고 자처했던 사람들, 비본질적인 것, 가시적인 것에 집착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것, 내면적인 것을 놓쳐버린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로움의 끝판왕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사실, 지혜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스스로 지혜의 최첨단을 걷고 있다고, 사실 가장 우둔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지상에서 가장 똑똑한 척 했지만, 사실 가장 멍청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영세세 지속되는 또 다른 세상, 하느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인식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 가장 큰 은총의 선물임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나 자신의 부족함을 기꺼이 수용하는 사람입니다. 부족하고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심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주님께서 거처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여기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어리석음의 반의어는 지혜로움입니다. 학식을 갖춰 다방면에 걸쳐 유식한 것, 식별력이나 판단력이 출중한 사람도 지혜롭다고 하지만, 진정한 지혜는 좀 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갑니다.
인생에 있어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 무엇이 영원불변한 것이고, 무엇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인지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느님께 삶의 최 우선권을 두는 사람입니다. 결국 지혜로운 사람은 재물이라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 재물을 하느님 위에 올려놓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여유 있는 재물을 주인이신 주님께로 돌려드리는 사람, 가난한 이웃들과 기쁘게 나눌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남은 인생 여정을 좀 더 지혜로운 사람, 그래서 하느님으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좋은 글은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오늘은 제가 읽은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정채봉 선생님은 인생에 있어서 사람들 만남의 종류를 5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생선과 같은 만남, 꽃송이와 같은 만남, 건전지와 같은 만남, 지우개와 같은 만남,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 있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말입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말입니다. 가장 비참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닳았을 때는 던져버리니까 말입니다.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말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말입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강석준 신부님은 사랑의 종류를 3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진흙과 같은 사랑, 물과 같은 사랑, 공기와 같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겁니다. 진흙 같은 사랑은 상대방을 포용하지만 이내 굳어 버려서 나의 ‘틀’에 맞추려고 한다고 합니다. 서로가 좋아서 사랑했지만, 이런 사랑을 추구하면 답답해지고, 한쪽이 숨이 막히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가부장적인 배우자는 이런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나의 뜻대로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물과 같은 사랑은 상대방을 포용하면서 이내 굳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의 몸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물속에 오래 있으면 손과 발이 부풀어 오르듯이, 결국은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사랑입니다. 공기와 같은 사랑은 상대방을 포용하면서도 상대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활력을 준다고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사랑이라고 합니다. 지금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영광스러운 지혜이며 그분께서는 당신을 보여 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미래를 예측하는 예언의 능력일까요? 과거의 일에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추론의 능력일까요? 아직 풀지 못했던 수학의 문제를 풀어내는 지능의 능력일까요? 솔로몬처럼 옳고 그른 일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지혜의 능력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지혜를 말씀하십니다. 믿음과 기도가 참된 지혜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써,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에 따라 받는 의로움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늘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아무도 다른 이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서로에게 좋고 또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을 늘 추구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직접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기도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해지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아는 것을 삶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몸도 마음도 온전하게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온전히 함께 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때 하느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믿으신 것입니다.”
<내가 되어 주게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마르 9,19)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내가 되어 주게나
나 그대 사랑하기에
내가 먼저 그대가 되었으니
그대 나 사랑한다면
그대 이제 내가 될 수 있는 것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내가 되어 주게나
그대가 내가 되면
언제나 어디서나
그대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니
나를 품고픈 깨끗한 사랑으로
나에게 바친 아낌없는 믿음으로
나와 함께하고픈 간절한 바람으로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내가 되어 주게나
언젠가 나는 떠나야하고
나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벗들은 어디에나 있으리니
나의 빈자리가
너무 아프게 느껴질
벗들의 곁에서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내가 되어 주게나
오늘의 성인
성 로베르토 (Robert)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아르브리셀(Arbrissel)
활동연도 : 1047-1117년
같은이름 : 로베르투스, 로베르또, 로베르뚜스, 로버트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의 아르브리셀 출신인 로베르투스(Robertus, 또는 로베르토)는 파리(Paris)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렌(Rennes)의 주교로부터 초청을 받고 그곳 교구의 개혁을 주도하다가 반대자에게 납치당하였다.
그 후 그 주교의 서거 후에 석방되어 크라온(Craon) 숲에서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1096년 그는 라 로에(La Roe) 수도원을 세웠는데, 그의 성덕을 흠모하는 제자들이 날로 늘어났다.
그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7월 29일)로부터 '설교자'로 임명되었고, 1100년에는 푸아티에
(Poitiers) 회의에 참석하여 프랑스의 필립 왕을 파문하는데 협력하였다.
성 몬타노와 루치오 및 동료 순교자들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59년
성 몬타노 (Montanu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59년
같은이름 : 몬타누스, 몬따노, 몬따누스
성 레노 (Rhenu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59년
성 루치오 (Luciu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59년
같은이름 : 루치우스, 루키오, 루키우스
성 빅토리코 (Victoricu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59년
성 율리아노 (Julian)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59년
성 플라비아노 (Flavian)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59년
성 몬타누스(또는 몬타노), 성 루키우스(Luc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빅토리쿠스(Victoricus),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성 레누스(Rhenus)와 두 명의 동료들은 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그들 중 몇 명은 258년 발레리아누스 황제 때 순교한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9월 16일) 주교의 성직자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행적은 전적으로 확실한데, 감옥에서의 행적 부분은 그들 스스로 기록했고, 그들의 순교에 대해서는 목격증인들이 기록하였다.
성 키프리아누스의 순교 이후 지방총독 갈레리우스 막시무스는 사망하였다.
그러나 로마로부터 새로운 총독을 기다리는 동안 지방 행정장관인 솔론(Solon)은 계속해서 박해와 폭정을 거듭하였다.
결국 카르타고(Carthago) 시민들은 솔론의 폭정과 학대에 못 이겨 폭동을 일으켰고, 솔론은 관련자를 찾기보다는 고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혐의를 뒤집어 씌워 체포하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심문을 받은 후 관례대로 투옥되었고, 이때 무고하게 갇힌 성 몬타누스와 그 동료들에게는 소량의 음식물만 제공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허기와 갈증으로 거의 빈사상태가 되었다.
그러던 중에 성 몬타누스는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은 그의 부족한 사랑을 기워 갚으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는 7개월 동안 허기와 갈증을 영웅적으로 감내하고, 나약해진 성 루키우스를 격려하여 순교의 월계관을 받게 하였다.
그들은 오히려 박해자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용기까지 보이다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녀 아델라 (Adela)
신분 : 과부 여왕
활동연도 : +1137년
영국의 정복자 윌리엄(William) 왕의 딸인 성녀 아델라는 프랑스 블루아(Blois)의 스테파누스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생애 동안 영국내의 정치적인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수도원과 성당에 많은 기부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복자 마르코 마르코니(Marc Marconi)
활동년도 : +1480-1510
신분 : 수도자
같은 이름 : 마르코, 마르코니
마르코 마르코니는 1480년 만투아 근처 밀리아리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신심이 깊은 단순한 사람들이었다.
일찍부터 그는 뛰어난 성덕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의 3회 회칙을 지키며 만투아에서 살고 있던 성 예로니모의 은수자들에게 특별히 마음이 끌렸다.
그들의 기도신심과 겸손에 탄복하여 그는 만투아에 있는 성 마태오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청했다.
수도생활 처음부터 지극히 평범한 일에서 어려운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활동을 할 때 그가 지녔던 헌신과 쾌활한 자발성으로 인해 수도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유일한 바람은 가능한 한 완전하게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종의 신심을 보시고 예언과 기적의 능력을 선물로 응답해 주셨다.
사람들은 그를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그의 수도복 옷자락이라도 잡아보려고 했다.
30세 때 이미 하느님은 그가 하늘나라에 합당하다고 여기시고 천상으로 부르셨다.
그의 시신은 부패되지 않은 채 만투아 성 마태오 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그는 “만투아의 영광”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1906년 3월 2일 교황 비오 10세는 하느님의 이 종에게 영원한 경배를 드리도록 허락했다.
기도
오 하느님,
당신의 증거자인
복자 마르코의 축일로
저희를 기쁘게 해주셨으니,
그의 축일을 지키는 저희가
그의 생활양식을 본받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묵상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총의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고,
또한 보상을 받을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그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종은 복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당신의 업적들을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비밀을 자기 마음속에
간직하는 종은 복됩니다.
영적인 권고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