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걷는 길에서/전성훈
스페인 산티에고 순례길이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면서 용기 있는 사람들이 그 길을 찾아 떠났다. 제주도 올레길이 유명해지면서 어딘가로 길을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해졌다. 2012년 회갑을 맞으면서 홀로 걷는 여행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미루다가 육체적 건강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2013년 5월 하순 경북 영덕 고래불 해안에 내려가서 강원도 강릉까지 홀로 걷는 여행에 도전하였다. 동해안 관동팔경 옛길을 따라 걷는 ‘새파랑길’코스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5월에는 강화도 일주 길에 나섰다. 준비물은 속옷 두벌, 수첩, 우산과 소형 손전등 등 아주 간단하게 배낭에 넣고 출발하였다. 여행코스와 일정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가기로 하였다. 식사는 식당에서 해결하고 잠은 찜질방에서 잤다. 걷는 동안에는 버스나 승용차 등 교통수단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경상북도 울진군 병덕(영덕부근)의 고래불 해변에서 걷기 시작하여 강원도 삼척시 경계에 있는 호산 버스터미널까지 걷었다. 호산 버스터미널에서 동해시까지 버스를 이용하였고, 다시 강원도 동해시에서 강릉시 옥계면사무소까지 걸었다. 약 30시간 동안 120km 정도 걸었다. 당초에는 강원도 고성까지 걸어갈 계획이었는데 발바닥과 무릎 사정으로 중도에서 그만두게 되었다.
5월 하순은 동해안 해안가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없는 비수기였다. 때문에 예상외로 영업을 하는 음식점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음식점을 찾을 때까지 걷고 또 걷고 무작정 걸었다. 저녁에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해안가를 벗어나 시내 번화가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관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저렴한 가격에 마음 놓고 물장난을 할 수 있고 몸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찜질방을 애용하였다. 나처럼 혼자 걷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하였다. 강원도 망상해수욕장 부근에서 도보 여행하는 젊은이 두 명을 그리고 자전거 여행하는 외국인 남녀를 보았을 뿐이었다.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말은 왜 먼 거리를 이토록 고생하며 걸어가는가? 왜 혼자서 걸어가는가? 혼자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두렵고 심심하고 외롭지 않느냐? 등등 이었다.
물론 여행은 일행과 함께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수 있다. 오랜 시간 걷는 도보여행은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가 자주 생긴다. 길을 잃거나 몸(다리)이 아프거나 몹시 배가 고프거나 할 때는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 생각이 다를 수 있어 서로 간의 작은 간극으로 마음고생을 할 수 도 있다. 걷는 여행은 나 홀로 마음의 그림자와 더불어 떠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길에서 만났다. 울진 망양정 해변 한적한 곳 음식점 젊은 여주인은 눈물을 보이며 당신의 신세한탄을 내게 들려주었다. 덕분에 푸짐하게 차려준 늦은 점심을 잘 먹고 푹 쉬면서 인생의 선배로서 상담사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하였다.
간혹 길을 물을 때 귀찮은 표정으로 불친절에게 대해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목이 마르고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길을 헤매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당신들이 먹으려던 과일과 음료수를 나누어준 삼척 해변 어느 골목의 친절한 아주머니들. 얼음 냉커피를 생수병 가득히 넣어주셨던 마음씨 따뜻한 죽변 해안가 어느 음식점 여주인. 여행객의 속옷 빨래를 허락해 준 찜질방 종업원 아저씨, 이런 모든 분들의 따뜻한 정을 잊을 수 없다. 혼자 걷는 여행은 자동차나 배를 타거나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여정이다. 혼자 걷는 길은 영혼과 육체가 하나이고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느끼는 귀중한 체험의 시간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는 자신과 창조주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또한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곳에서 혼자만의 고독을 느끼며 하느님을 만나는 ‘피세정념’(避世靜念)의 과정이기도 하다.
도보 여행은 체력과 인내력 그리고 여행의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사진을 전혀 찍지 않은 것은 출발하기 전 사진은 마음의 창에 담아두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특별한 고민이나 생각거리를 가지고 간 것이 아니기에 걷는 동안 외롭다거나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걷기 시작한 지 이틀째부터 다리가 매우 아파서 걷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오로지 걸어 가야하는 것밖에 달리 방안이 없었다. 5월 23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버스 정류소에 앉아 그 동안 행적을 바라보니 내 스스로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였다.
낙이불착(樂而不着)의 마음에 담고 앞으로 삶을 향해 걸어가야겠다. ( 2016년 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