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농장에서 보낸 사흘, 공동체가 주는 힘
메릴랜드 하포드 카운티의 한적한 들판 한가운데, 93에이커 규모의 Restoration Farm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자연과 공동체, 그리고 신앙을 바탕으로 삶의 회복을 돕는 기독교 비영리 사역지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흙을 만지고, 숲을 걷고, 함께 일하며 다시 힘을 얻도록 돕는 공간— 그 자체로 하나의 치유의 현장이었다.
나는 같은 커뮤니티에 사는 이웃, 전직 소방관이자 프로 골퍼였던 클리프 씨와 함께 이곳에서 사흘 동안 야외용 긴 의자를 만드는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목공 봉사라고 생각했지만, 나무를 자르고, 사포질을 하고, 나사 하나를 조여 넣는 그 과정 속에서 이곳이 추구하는 ‘회복’의 의미가 조금씩 마음에 스며들었다. 클리프 씨는 소방관 시절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하고, 골프장에서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같은 목적을 위해 나란히 나무를 붙잡고 일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공동체의 아름다움이었다. 말이 많지 않아도, 함께 땀을 흘리는 시간 속에서 묵직한 신뢰와 따뜻한 우정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Restoration Farm의 사람들은 우리가 만든 의자가 앞으로 누군가의 쉼이 되고, 기도의 자리가 되고, 고단한 하루를 내려놓는 작은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단순한 목공 작업이 아니라 누군가의 회복을 돕는 일에 동참했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사흘 동안의 봉사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자연 속에서, 신앙의 울림 속에서, 그리고 이웃과 함께한 노동 속에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다. 삶의 속도가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이런 시간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 사람의 큰 결단이 만들어 낸 ‘회복의 땅’
클리프 씨는 올해 83세, 아내와 함께 미국 침례교회에 속한 신앙인이다. 그가 봉사하고 있는 Restoration Farm은 사실 한 사람의 큰 결단에서 시작된 특별한 장소였다. 이 농장의 원래 주인은 같은 침례교회에 속한 교인이었는데, 플로리다로 이주하기로 결심하면서 자신이 평생 일구어 온 건물과 농장 전체, 총 93에이커(약 110,000평, 약 293억 원 규모)를 교회에 기부(donation) 하고 떠났다. 그야말로 한 개인의 삶 전체가 담긴 땅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온전히 내어놓은 것이다. 그 후 이 귀한 땅을 인수한 침례교회 교인들은 이곳을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심신이 지친 이들을 초대해 쉬게 하고, 자연 속에서 회복을 경험하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비영리 기관으로 등록하여 누구든지 와서 숨을 고르고, 기도하고, 자연 속에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섬김의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클리프 씨는 이 사역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마음으로 Yong님과 함께 야외용 긴 의자를 만드는 봉사에 참여한 것이다. 그 의자들은 앞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누군가의 회복을 돕는 작은 도구가 될 것이다.
나눔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유산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는 많은 노인들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사회에 기부하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그들에게 재산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공동체적 유산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존스 홉킨스 메디컬 센터다. 이 병원은 비영리 기관(non-profit organization)으로 운영되며, 수많은 기부자들이 자신의 전 재산을 병원에 기부하고 떠난다. 그 덕분에 이곳을 방문해 보면 다른 주립대학 병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의료진, 첨단 장비, 그리고 연구 시설을 갖추고 있음을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다. 기부금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의료 연구, 환자 치료, 장기적 운영에 큰 힘이 된다. 결국 한 사람의 결단이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미래의 의학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Restoration Farm 역시 마찬가지다. 한 교인이 평생 일군 93에이커의 농장을 교회에 기부한 덕분에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회복을 경험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기부 문화는 개인의 삶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유산’이 되고 있다.
마지막 날, 손끝에 남은 나무 향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야외용 긴 의자는 클리프 씨가 직접 설계한 도면을 바탕으로 제작되고 있다. 83세의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꼼꼼하고 정확했으며, 나무 한 조각, 나사 하나에도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장인정신이 배어 있었다.
우리는 사흘 동안 그 도면을 따라 총 30개의 의자를 만드는 작업을 이어왔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들판에서 시작해 해가 기울어 갈 때까지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조립하며 서로의 손길이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시간 속에서 노동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누군가의 회복을 돕는 ‘섬김’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사흘간의 봉사 활동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완성된 의자들이 줄지어 놓인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의자들이 앞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쉼이 되고, 기도가 되고,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 작은 안식처가 되리라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드는 의자, 마음으로 만드는 쉼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야외용 의자에 필요한 모든 목재는 Restoration Farm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미리 구입해 이곳으로 배달해 준 것이다. 우리는 그 자재들을 하나씩 꺼내어 톱으로 자르고, 맞춰보고, 끼워 넣고, 나사로 고정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목공 작업 같지만 나무의 결을 읽고, 각도를 맞추고,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집중을 요구했다. 특히 클리프 씨가 직접 그린 설계도를 기준으로 정확한 치수를 맞추는 일은 그의 오랜 경험과 장인정신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를 자를 때마다 퍼지는 향기, 사포질을 할 때 손끝에 전해지는 거친 감촉, 조립이 끝나고 의자가 단단히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이 모든 과정이 단순한 ‘의자 제작’을 넘어 누군가의 회복을 돕는 ‘섬김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쉼이 필요한 곳마다 놓일 의자들
우리가 정성껏 만들어 온 이 긴 의자들은 앞으로 Restoration Farm의 이곳저곳, 쉼이 필요한 자리마다 설치될 예정이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 작은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그리고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그늘 아래까지— 의자들은 각기 다른 풍경 속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해 줄 것이다. 의자 한 칸에는 어른 세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공간이 있다. 함께 온 가족이 앉아 바람을 느끼거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잠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조용한 연대감을 나눌 수 있는 자리다. 우리가 손으로 만든 이 의자들이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기도가 머무는 작은 쉼터가 되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자연과 공동체, 신앙이 함께 숨 쉬는 공간
Restoration Farm 곳곳에는 조용히 걸을 수 있는 산책로, 고요한 물결이 일렁이는 낚시터, 그리고 오래된 헛간이 자리하고 있다. 농장에는 양, 염소, 닭, 소 등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 살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자연의 생명력을 그대로 전해 준다.
이곳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작은 축제와 같은 계절별 행사가 열리고, 불꽃이 튀는 대장장이 수업, 그리고 실용적인 기술과 영적인 격려가 어우러진 지역 사회 모임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다.
가족도, 교회 공동체도, 개인도 이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자연과 다시 만나고, 신앙의 숨결을 다시 느끼며, 지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Restoration Farm은 그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시 힘을 얻는 회복의 터전이었다.
사진/글 손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