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길게 쓰지 말자, 이런 생각 중입니다.
그런데 생각만 그런지 쓰다 보면 길어집니다.
아마도 이 문장의 근거가 뭐지? 하면서 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학술적인 글은, 고유한 논리가 있어야 하며 아울러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가 있어야 됩니다.
물론 제가 여기에 쓰는 글 다수가 학술적 논문은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근거를 중시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문헌들을 찾게 됩니다.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같은 느낌입니다. 인형 안에 인형이 계속 있는 ...
어느 선에서 끊을 수 있는 능력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길게 쓰지 말자면서 여덟 줄을 썼습니다.
유학 생활 중 초기의 일화입니다.
독일 남부의 에얼랑엔-뉘른베르크 대학에서 적을 중부의 괴팅엔 대학으로 옮겼었습니다.
에얼랑엔의 오토 메르크 교수님과 컨택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인사하고 이사를 했습니다.
이 남부의 도시, 에얼랑엔 시청이 사람을 들들 볶아대서 독일은 이렇구나 했는데, 중부로 올라가니 이건 파라다이스입니다.
괴팅엔에서 공부를 하면서 독일어, 헬라어 시험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히브리어도 시험 준비 해야 되네 하면서 다시 에얼랑엔에 가서 박사과정을 할까 하는데, 혹시 괴팅엔에서 공부를 진행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면서 교수님들의 면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약성서신학 교수 중에는, 오래전부터 계신 S 교수, 새로 오신 젊은 B 교수 그리고 그중에 L 교수가 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의 카페테리아에서 한국인 동료들과 대화하다가 독터파터(박사과정 지도교수) 컨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문득 생각납니다. 유학 중에 경험한 것은, 유학생들이 자기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부에 이렇게 진전이 있고, 저렇게 방향을 잡고, 이런 얘기지요.
물론 친근한 경우 이야기도 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존심에 걸릴까요?
다수가 공부의 성취와 재정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남에게도 묻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지요?
자기는 입 꼭 다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순진한 사람에게는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던지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개요를 읽어보고 문장이 어떻느니 평가를 하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L 교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양반 신학이 대단히 래디컬해서 많은 이들에게 관심거리가 되는 중이었습니다.
마치 튀빙엔의 한스 큉 교수처럼 대학과 지역교회에서 염려하는 조짐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분의 수업을 두어 번 듣기도 했는데,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몰라도 자기 공부에는 철저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런 저의 생각이 대단히 걱정되었나 봅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 “그 양반에게 공부해서 한국에서 장사하지 못해요!”
그 양반에게 공부해서 한국에서 장사하지 못한다라...
학문이 장사와 치환될 수 있는 그런 것일까?
언제나 시원하게 대답할 말은 나중에나 생각나는 법입니다.
그때는 뭔 이따위 소리가 다 있나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에 김이 오르는 느낌입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겁니다.
그냥 결론 냅니다.
오늘의 결론; 호기심에 묻는다고 다 대거리할 필요가 없다.
다 까밝힌다고 고마워하지 않더라. 말거리만 될 뿐.
그리고 진정 하고자 한다면 가리지 말고 우직하게 공부할 뿐이다.
공부는 사랑과 같아서 이리저리 재다가는 거래라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당연히 목회도 그러하다.
그저 은밀하고 우직하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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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저는 약속대로 남부의 도시 에얼랑엔에 다시 이사 와서 제 공부과정을 계속 진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