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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남원 덕운봉을 다녀와서 ㅡㅡ
산 행 지 - 남원덕운봉(구룡계곡)745m
산 행 일 - 2019,09,01(일)
누 구 랑 - 산양산악회정기산행 (37명)
산행코스- 내송마을-개미정지-구룡봉-덕운봉-노치마을-구룡폭포-육모정
이동거리 14.3km 소요시간 5시간15분 평균속력 3.38km/h 오름 1,562m 내림 1,568m
추발지해발 220m 도착지해발 229m
ㅡㅡ 산 행 지 도 ㅡㅡ
ㅡㅡ 산 행 기 ㅡㅡ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 산악회를 결성하여 동호인들끼리 우의를 다지며 건강을 위하여 산행을 한다는 소문은 일찍 알고 있었으나 정작 참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시간이 여유가 생겨서 고향의 산악회인 산양산악회에 참석여부를 알리고 오래동안 버르던 참석이라 의미있는 산행이될것이라 생각된다
(06:30)하이마트탑승을 알리고 기다려 보는데 몇사람이 아는얼굴이 보인다 약속시간보다 10여분뒤에 버스가 도착하여 탑승하니 거의가 아는사람들이다 버스는 06시에 산양읍 당포마을을 출발하여 여러군데를 경유하여 회원들을 태우고 오기 때문에 다소 지연이 되는 모양이다 산청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못하고 오신회원님들은 아침을 해결하고 간다
(09:03)내송마을 쉼터에도착하여 화장실 이용하고 산행준비하여 기념사진 촬영하고 출발한다
(09:08)내송마을회관앞을 출발하여 마을길따라 올라간다 길옆에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들녁이 풍성해보인다 가을이가까워지면 꼭내가 부자가된것 처럼 마음이 넉넉해지는것을 느낀다 저누런들판을보면서 ~~~~~
(09:20)개미정지에 도착한다 개미정지,(서어나무쉼터) 지리산둘레길이 열리자 묵었던이곳에는 헤아릴수없는 사람들이 쉬었다 갔다 길이 새로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로 뿌리가 드러나 복토를 하고 서어나무의 안녕을 빌었다 세월의 녹이낀 서어나무는 속이 비었다 비었으나 생명의 줄기를 이어간다 신비롭기도 하다 개미정지로 일컫는 이곳은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다 여기서 잠이든 의병장 조경남의 발을 개미들이 물어뜬어 위급함을 알렸다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또한 이곳 서어나무쉼터는 재넘어 지리산속 주민들이 남원장을 다녀갈때 이고 지고 가던 짐보따리를 내려놓고 옹기종기 쉬어가던 옛주막터 이기도 하다 이쉼터을 복토하고 길을 나무아래로 새로 내어놓고 커다란 개미 한마리를 조각해 놓았다 이제부터 산길로 접어듭니다 지리산둘레길이라서 인지 바닥에 마닐라마포를 깔아놓아 걷기가 편안 합니다
(10:07)사무락,다무락 삼거리에서 뒤따라오던 일행을 기다려 봅니다 이곳에서 덕운봉을 갈사람과 구룡계곡으로 갈사람이 혜어지는곳이다 산행설명 할때 나는 덕운봉을 갈것이라고 했다 같이 동행할사람도 확인하였다
(10:24)김녕김씨묘지를 자나 갑니다 능선에 올라서고 부터는 바람이 불어 시원하여 길 걷기도 좋고 산길이 솔잎양탄자길이라 룰루랄라 콧노래가 나옵니다 여러묘지가 있었으나 유일하게 비석이 있는 묘지라서 표가 납니다
(10:41)노치산성을 지나갑니다 능선에 돌담으로 쌓은 산성터가 길게 남아 있고 확실하게 남아 있는곳도 있습니다 지도상에 노치산성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10:45)구룡봉에 올라섭니다 표지석도 없고 나무에 걸어둔 구룡봉728.2m 서레야부부의 흔적을 확인하고 되돌아 와서 일행과 덕운봉으로 진행합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이마의땀방울도 멈춰지고 길은 푹신푹신하는 양탄자길 일행들은 이런길이면 종일걸어도 걷겠다하며 좋아 합니다 마지막 오름을 올라서면 오름길은 끝나고 덕운봉에서는 내림길이 연속될것입니다
(11:16)덕운봉정상에 올라섭니다 정상부근에 움막집은 여전합니다 집주인의 스리퍼 한컬레가 움막을 지키고 있을뿐 조용합니다 움막안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듯합니다 언제인가 도인이 되어 하산하게되면 유명세를 탈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여기부터는 백두대간길입니다 백두대간의 여원재에서 수정봉을 거쳐 덕운봉을 지나 노치마을을 지나 고리봉과 만복대를 거쳐 지리산으로 가는길입니다 이곳에도 서레야부부가 걸어놓은 덕운봉745m의 표시가 알려줍니다 인정샷하고 내려 섭니다 솔향기 그윽한 소나무숲길을 지나내려서니 백두대간해설판이 설치되어 있는 당산나무가있는 곳에 도착합니다
(11:41)당산나무 소나무가 500여년이 넘었다고 하는소나무가 다섯그루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상을 차립니다 고구마한개로 허기진 곱창을 달래줍니다 갈길이 멀어서 늑장부리며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구룡계곡으로 바로 간일행들과 1시간30분이상 차이가 날것이니 부지런히 걸어야 합니다
(12:15)노치샘에들여 그유래를 읽어 봅니다 현재노치샘은 원래고려시대 절터로 고승들이 도솔로 판샘이라고 한다 바위에서 나오는 생수는 물맛이 뛰어나 염병(장티푸스)같은 돌림병이 심하게돌던때도 이물을 마신 사람은 신기하게 병에 걸리지않고 병을 이겨냈다고 전해오고 있다 혹시 물을 쓰다 부족할 때에는 우물속 달팽이 모양에서 물을 떠야 하는데 반드시 마을처녀가 물을 퍼 올려야 할만큼 정하게 여겼다 주산제 때는 정원초하룻날 우물을 품고 새끼로 금줄을 처서 아무도 들어갈수 없게 해놓고 당산제 당일 이른새벽 제사에 올릴 정안수를 뜨려가면 산신인 호랑이가 샘주의를 돌며 지키다가 제사가 시작되고 첫물을 올리는것을 확인하고 사라지는 모습를 보셨다는 어르신들도 많다 이렇듯 마을사람들이 신성시 하는식수로 또 병을 이기게 해주는 약수로 신비로운 전설의성수로 오늘도 백두대간을 찾는 탐방객이 한모금 목을 축이며 쉬어가고 있다 (해발550m) 지금도 연신 맑은물이 흘려내리고 있다 노치마을은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속하는마으로 행정구역 통폐합당시 회덕리와 노치리응 병합하면서 회덕과노치두마을의 이름을 따서 덕치리가 되었다 노치마을은 덕음산,지리산,만복대등의 산줄기의 높은곳에 갈대가 많아 갈재라고 하다가 "갈대노(蘆)"를 사용하여 한자식표기인 노치리가 되었다 노치마을은 조선전기에 경주정씨와 경주이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에는 수령500년의 소나무가 위치하고 있어 백두대간을 찾는 사람들이 방문하기도 한다
(12:36)회덕마을에 내려선다 마을 표지석아래에 이런글을 적어 놓았다 "고향산천" (포근한 부모님품있고 의지할곳 정이있어 좋은 우리고향산천 산,계곡,맑은물,넓은들판 수놓여있는 우리의 고향땅 나무내음 풀내음에 도취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수있는 우리의 보금자리 수많은 추억들 살아숨쉬고 고향의 향기를 느낄수 있는 우리의 고향 산천을 우리들가슴속에 영원히 간직 하리라!) 이런 향수에젖은글을 읽어보고 갑니다
(13:08)구룡폭포에 내려선다 많은 사람들이 뿜빈다 귀가멍멍할정도의 우렁찬 폭포수소리 그래도 소음과는 달리 아름답게 들린다 더불어 내속의 그간 응어리진 마음속 때가 폭포수에 순간 씻겨 내려간다 이윽고 맑고 깨끗한 가슴속으로 차곡차곡 채워지는 희열들~~~~놓치못하고 붙잡고 매달리던 집착들이 순간 허물어짐이 느껴진다 사실 알고보면 다 부질없는 일인데~~~ 인생뭐별건가? 그래 그런지 대장님 이런데오길 잘했어요 하는 일행들의 목소리에 찡하다 폭포위부분에는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이라는 글이 음곽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등산로 보수중이라고 통제하고 있다 자세히보니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하는것이 아니고 공사회사에서 안내를 하는 글이여서 막아둔 금줄을 넘어서 내려가는데 공구와 자재가 산재해있는것으로 볼때 점심식사 시간인것 같아 보인다 조금지나니 공사구간은 없다 700여m 내려오니까 일행에게 연락이 온다 그길로 가지말고 되돌아 올라 오라한다 일행들 모두 못올라간다고 한다 이길로 내려가면 갈수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 가는길은 맞는데 멀다고 해도 내려가자고 한다 4.3km을 더걸어야 한다 앞선일행들이 마음이 급한지 속도감이 생긴다 뒤따라가는내가 내림길에서 땀이 흔근하다 계곡에 들어가 족욕을 하는사람 온통알탕을 하는사람 가지각색이다 깨끗한물에 발을 담그고 나니 발이 생글생글 웃으며 좋아라한다
(13;31)비폭동(飛瀑洞)에 내려선다 구룡계곡의제7곡으로 비폭동앞의 봉우리인 반월봉에서 흘려내린 계곡물이 이곳폭포에서 떨어지면서 아름다운물보라가 생기는데 그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모습처럼 보인다 하여 비폭동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13:49) 지주대(地柱臺)구룡계곡의6곡으로 계곡주변의 기암절벽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듯 자그마한 봉우리가솟아 있어 지주대라한다
(13:54)유선대(遊仙臺)에내려선다 구룡계곡의 5곡으로 반반한 바위에 금이 많이 그어져 있어 선인(仙人)들이 바둑을 두며 즐겼다는 전설에서 유선대라 불리우며 주변절벽은 선인들이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기위해 병풍을 쳐놓은것 같다하여 은병선(隐仙屛) 이라고도 한다
(14:08)서암(瑞巖)에당도하니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있다 구룡계곡4곡으로 스님이 끓어 앉아 독경하는모습 같다하여 서암이라고하며 "구시소"라고 더알려져 있다 또 챙이소란말도 있다 "챙이"란 "키"를 말하는데 전라도 방언이다 "키"는 수확한 곡식을 까불어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를 말하는데 빠른물살에 패인 바위의모양이 "챙이"모양처럼 생겼다하여 챙이소라고도 한다
(14:18)용호서원이 있는 육모정(六茅亭)에 도착한다 이곳은 아홉마리의용(龍)이 노닐던 곳이라하여 용호정(龍湖亭)아라 불리었으며 약400년전 이지역의 유림(儒林)들이 용소(龍沼)앞 넓다란 바위위에 6각형모양의 정자를 지어 육모정(六茅亭)이라 이름 하였습니다 원래의 육모정은 뒤에 보이는 변바위 위에 있었으나1960년 큰비로 유실되어 현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춘향묘역을 들려본다 남원시가 조성한 성춘향의 무덤으로 지리산 국립공원 구룡탐방지원세터옆에 있다 춘향이 실존인물이 아닌만큼 진짜는아니다 1962년 현위치에서 성옥녀지묘(成玉女之墓)라 새겨진 지석(訨石)이 발견되어 묘역을 단장하였고 1995년정비 작업을 하여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 무덤앞에는 "만고열녀성춘향지묘(萬古烈女成春香之墓)"라고 쓰인비석과 망주석,상석이 놓여있다
남원원동향약(南原原同鄕約) 유형문화재제146호 을 보고간다 원동향약은 선조5년(1572년)에 설립된것으로서 인조16년(1638년)에 작성한 향약록(鄕約錄)과 숙종원년(1675년)영조21년(1745년)정조4년(1780년)에 만들어진 표창록(表彰錄)등 20여권의 당시 문서가 보전(保全)되고 있다 지질은 대부분 한지이며 크기는 조금씩 다르다 현재 보전되고 있는 20여권의 문서는 다음과 같다
원천향안(源泉鄕案),원천동약중수안(源泉洞約重修案),원천원동수안(源泉元洞修案),동약중수안(洞約重修案),원천동약안(源泉洞約案),위로연기(慰老嬊記),원천재계안(原泉財禊案),원동계안(原洞禊案),용호계안(龍湖禊案),용호정중건계안(龍湖亭重建契案),원동향약계중수안(原洞鄕約契重修案),용호계(龍湖契)용호계시사(龍湖契詩社),원동계용호시사(原洞契龍湖詩社),시도기(詩到記),애감록(哀感錄),부의록(賻儀錄)등이 있다 지금 새로 건물을 건축하고 성역화사업을 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14:35)춘향묘을 둘려보고 주차장에 도착하고 산행종료한다
ㅡㅡ 산 행 사 진 ㅡㅡ
내송마을 쉼터에서 출발합니다
개미정지을 복원해 놓았습니다
사무락,다무락 (구룡계곡 삼거리)
능선에 있는 김녕김씨묘역
노치산성
구룡봉
덕운봉정상부의 움막집 스리퍼 한컬레가 움막의 주인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동행하신 경희씨
힘들어 하면서도 장거리종주산행을 하겠다고 따라나선 현숙씨 대단합니다
소속산악회 리본하나 걸어놓고 인정샷 합니다
오늘 최고령의 광수형님 종주하신다고 수고 많았습니다
노치마을위의 당산나무옆에 설치해놓은 백두대간 해설판
소나무 당산 여기서 점심먹고 갑니다
노치샘 지금도 깨끗한물이 철철 흐르고 있습니다
노치마을의 들판과 억새
회덕마을 표지석
옛 초가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구룡폭포
비폭동의 모습
유선대
서암 (챙이소)
용호서원
성춘향묘역
"만고열여성춘향지묘"라는 비석이 세워놓았습니다
육모정
지리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