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정리하며, 영화계 핫 이슈를 정리하는 이 순간이 가장 곤혹스럽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산재한 가운데, 혹여 빠트린 것이 없는지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다. 물론, 그런 부담감이 여기 게재된 내용에 일정부분 반영된 결과라 보면 되겠다. (지극히 사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1년 동안 한국영화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다시 한번 새겨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박찬욱·김기덕 감독, 세계 영화제 석권
독특한 연출방식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57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뒤를 이어 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이 6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이로써 한국영화계는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니스 영화제,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등을 모두 석권하는 쾌거를 이뤘다. 참고로, 이창동 감독은 <오아시스>로 59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임권택 감독은 <취화선>으로 5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각각 수상했다.
한편, <올드보이>는 올해 국내외에서 치러진 각종 영화상에서 주요 부문상을 휩쓸며 그 진가를 재확인시켰다. <빈 집> 또한 국내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몇 몇 해외영화제에서 주요 부분상을 독차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 한국영화 리메이크 붐
최근 소재 고갈로 곤경에 처한 할리웃 제작사들이 독특한 소재의 한국영화에 눈길을 돌려 ‘할리웃 리메이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95만 달러에 판매된 <조폭마누라>를 필두로 200만 달러의 <장화, 홍련>, 75만 달러의 <엽기적인 그녀>, 50만 달러에 <시월애>와 <선생 김봉두>, <령>, 30만 달러에 <달마야 놀자>, 이밖에도 <가문의 영광> <광복절 특사> <폰> 등 리메이크 판권이 판매됐다.
* <태극기 휘날리며> 초유의 흥행 기록
1천만 관객의 신호탄이 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를 누르고,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각종 흥행의 진기록을 세우며 총 1,170만 명의 관객을 동원, 명실공히 최고 흥행 영화로 올라섰다. 한편, 사회 일각에서는 한국영화관객 1천만 시대의 도래가 ‘외화내빈’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2004년 영화시장 분석에 따르면(제공: IM Pictures), 매년 제작편수도, 관객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오히려 편당 수익은 전년에 비해 32%나 감소했고, 국내 매출도 편당 평균 5억 9천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 해외 최고 배우들 잇따라 내한
한국 관객들의 환심을 사기라도 하듯, 봇물 터지듯 해외 최고의 배우들이 영화 홍보차 잇따라 내한했다. 한국에 단 한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배우들이기에 관객들의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이 사실. <내셔널 트레져>의 니콜라스 케이지를 비롯해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의 르네 젤위거, <하나와 앨리스>의 이와이 슌지 감독, 아오이 유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츠마부키 사토시, <역도산>의 나카타니 미키와 하기와라 마사토, <옹박>의 토니 자 등이 한국을 다녀갔다. 한편, <청연>에 출연 중인 나카무라 토오루는 영화 촬영차 잠깐 다녀갔다.
* 종로영화제,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출범
올 해 첫 선을 보인 ‘종로영화제’와 ‘메가박스 일본영화제’가 본격적인 영화제로의 닻을 올렸다. 9일간 젊음의 거리 종로에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로 계획된 ‘종로영화제’와 15일간 일본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서로간의 문화의 폭을 넓히자는 취지로 계획된 ‘메가박스 일본영화제’는 관객들의 열띤 성원에 힘입어 성황리에 치러졌다. 이에 영화제 측은 앞으로도 꾸준히 열 것을 계획하고 있다.
* 예술영화 배급, 숨통 트이다
작품성은 높지만 예술영화로 치부돼 개봉에 난관을 겪은 영화들을 위해 영화사 스폰지와 국내 최대 벤처 캐피탈인 KTB 네트워크가 발표한 새로운 배급라인 ‘Cine,休’를 설립했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프리머스, 시네코아, 씨네시티 등 멀티플렉스를 포함한 일반 상영관을 중심으로 배급 전략을 구사한 ‘Cine,休’는 작품당 별도 배급 대신, 전체 배급 라인업을 묶어 일괄적으로 마케팅과 배급을 수행해 효율성은 높이고, 비용은 줄인다는 방침을 세우고, 최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나쁜 교육>을 개봉 시켰다. 이밖에 아네스 자누이 감독의 <룩 앳 미>, 미라 네어 감독의 <베니티 페어>,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의 <에쥬케이터>, 최양일 감독의 <블러드 앤 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에로스> 등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 제한상영관, 다시 논란
성인만을 위한 제한상영관이 지난 5월, 제한상영관 체인 듀크시네마에 의해 처음 오픈했다. 그간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개봉에 난관을 겪었던 몇 몇 영화들은 마침내 관객들과 조우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한 것. 하지만 수입추천제와 까다롭기 이를데 없는 설치 규정이라는 장벽은 제한상영관의 개점휴업이나 다름없는 상황으로 내몰려 있다. 올해만 해도 까트린느 브레이야 감독의 <로망스>와 <지옥의 체험> 등이 매직시네마 등 몇 몇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긴 했지만, 협소한 극장시설과 맞물려 제대로 관객들과 소통하지 못했다. 이에 듀크시네마 측은 진땀을 흘리며 동분서주하고 있는 상태로,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체계 개혁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 코아아트홀 폐관, 서울아트시네마 이전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영화들을 상영, 종로 예술영화상영의 중심지로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코아아트홀이 시설낙후의 이유로 폐관했다. 현재, 코아아트홀의 재개관 예정은 없고, 코아아트홀의 역할은 시네코아가 대신 할 예정이다.
한편, 폐관 위기에 처했던 국내 유일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가 2005년 2월, 구 서울역사로 이전해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운영을 잇고 있다. 90년대 이후 진행된 시네마테크 운동과 관객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2002년 5월 개관, 작은 영화와 예술영화의 산실로 영화인들과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서울아트시네마는 그동안 장 르누아르, 프리츠 랑, 나루세 미키오, 허우 샤오시엔, 알프레드 히치콕, 로베르 브레송, 칼 드레이어, 구로사와 기요시 등 거장들의 회고전을 통해 영화 팬들의 명소로 자리매김을 해왔다.
* 장동건, 첫 그랜드 슬래머 등극
<태극기 휘날리며>로 2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장동건이 청룡 역사상 남자배우로는 처음으로 그랜드 슬래머(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신인상, 인기스타상)가 돼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남자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장동건은 1997년 <패자부활전>으로 신인상을,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남우조연상을,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
* 실존인물 영화화
1천만 관객의 포문을 장식, 근 현대사의 인물을 바탕으로 극을 연출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와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향으로 현 영화계의 제작 방식은 과거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실존 인물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올해만 해도 <도마 안중근>의 ‘안중근 의사’, <바람의 파이터>의 ‘최영의’, <슈퍼스타 감사용>의 ‘감사용’, <역도산>의 ‘역도산’ 등이 스크린을 통해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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