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훈련>
출사표 문소영 2016.11.05.
알아차림에 차이가 있었다.
내가 말하는 알아차림이란 내가 타인에 대한 정보와 사실들의 압축인 감정을 타인에게서 그냥 보게 되는 것이었다. - 그것이 상한 마음과 쓴 뿌리 그리고 부정적인 경험의 기반에서 온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또는 무지에서 보는 것과는 구별된다. 집단 활동 진행 중 이러한 점이 개개인에게서 확인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 이것은 직관, 직감에 더 가까우며 첫인상일 수도 있다. egoless 상태의 개인의 내공이 작용한다고 해야 할까? 사는 동안 진지하며 정립한 생각과 간절함으로, 통찰력 있게 타인을 읽어내게 되고 안다고 한다면, 나는 오류가 날 때 오차 범위를 좁히는 것에 대한 소통 방식을 상호간에 표현하여, 온전하게 알아차림을 완성해가는 것으로서 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들켜도 된다. 유연성 있게 회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확인하여 분명히 하고 공모가 일어나지 않도록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하며, 정직하고 거짓이 없이 표현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그 자체가 예의이며 나 전달법이 예의의 표현이지 자기변명을 위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야 서로가 서로의 피드백 속에서 자기성찰을 하며 바로잡아 간다.
나는 이런 현장을 찾았던 것 같고, 그 현장인줄 알았으나 차이가 있었다.
유동수씨의 알아차림은 대인관계에서 매끄러운 알아차림이었다. 물론 대단한 스킬이다. 예의 바르게 정중하게 씻어버린 감정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밑바탕의 긍정적인 의도를 찾아주고 읽어낸다. 상대가 거짓을 말해도 이미 각자의 평등하지만 동등하지 않은 수준 때문에 차이가 있음에도 상대방의 들키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알아차리고 그만큼 표면적인 대화로 상대해준다. 상대적인 참 만남이다.
감정이 머물렀다가 흘러가는데 붙잡혀 있지 않아야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다. 내가 아는 바, 감정은 다스리는 것인데, 여기서는 감정을 밀어내기로 표현하였다. 지금-여기에서 느낀 감정을 사람이 성장하여 자기내면의 편안한 감정에 도달할 때,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고 하였다. 묻어두는 느낌이다.
허용되는 만큼의 진심, 순간의 알아차림, 나부끼는 낱개의 감정, 상대적 참 만남이라는 정의가 나의 전적인 진심, 통찰적 알아차림, 생각을 아끼는 집약된 감정, 절대적 참 만남의 개념과 차이가 있다.
사람을 의식하는 정도의 차이일 수도 있다.
한알, 한얼, 한울의 한마음 이론 배경과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이론 배경의 차이일 수도 있다.
차이를 인식한 앎이 나의 이번 감수성 훈련에서의 진심을 실은 요령을 터득할 마중물이다.
이제 대결이다.
첫댓글 출사표님은 정말 대단해요.
자신의 생각을 어쩌면 이리도 촘촘하게 정리하면서 살까? 이렇게 자신의 생각이 분명한데도, 다른 배움 앞에서 어쩌면 이리도 겸손할 수 있을까? 초연하게 정리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혹시 배울 게 있으면 배우겠다는 태도가 정말 남다르네요.
책의 내용에 매몰되는게 아닌 그 이상의 관계로 연결을 짓고
그 연결을 자신으로 가져오는 능력이 대단하십니다~~^^
저는 그저 오롯하게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내 관점과 상황을 이해하려했는데
출사표님의 성장관점을 배워야겠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