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바오로(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원주노숙인센터장)
10년 넘게 노숙인센터에서 지내다 보니 이곳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이 신앙체험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는 현장실습장이 아닐까. 분명 체험하는 일은 같은데 어떤 사람은 천국을 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지옥을 본다. 신앙이 있고 없고는 결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앞을 보고 희망의 끈을 잡고 사는 사람은 세상살이 자체가 천국이 되진 못할지라도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며 ‘옛날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왜 이 모양으로 사나, 이러느니 죽는 게 났지’ 하고 한탄하고 한숨만 쉬는 무리는 살아 있어도 지옥에서 사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만날 때마다 ‘울 언니’ 하고 불러주는 한 노숙인 할머니가 계신다. 열여섯 살부터 집창촌에서 생활해온 분이다. 남자가 돈이고 곧 일이었으니 싫든 좋든 그 일 속에서 봄날을 보내고 황혼을 맞았다. 나이 들어서는 일을 할 수 없어 호객행위로 입에 풀칠하고 지냈는데, 이젠 그마저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됐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는 노숙인센터를 찾아와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펄펄 날던 청춘이 엊그제 같은데 내 몸 하나 거느리기 힘드니 이젠 죽어야 하지 않겠어?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지저분한 개울 말고 아무도 없어도 좋으니 깨끗한 골짜기에 뿌려줘. 그 부탁하러 들렀어.”
할머니는 지금까지 정말 기구한 70년의 세월을 보냈다. 할머니에게는 함께 사는 아들이 하나 있다. 그 아들은 할머니가 60세 되던 무렵 한 남자와 동거를 했는데, 그 남자의 세 아들 중 몸이 가장 약해 일할 수 없는 막내란다.
할머니가 노숙인센터를 찾아온 것은 태어나서 따뜻한 인간 냄새를 맛본 곳이 이곳이었기에 당신의 죽음까지 의지해볼 모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는 센터장인 나를 진심으로 믿고 의지했기에 이런 부탁까지 남겼는데, 혹시 내가 평소에 한 번이라도 할머니를 건성으로 대하지는 않았나 깊이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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