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베트남 전쟁
프랑스가 물러난 후 월남의 고딘디엠 정권은 미국의 지원 아래 월맹과 전쟁이 시작되는데 제2차 베트남 전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비둘기부대를 필두로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 등을 파월하여 미국을 포함, 자유진영 동맹군과 함께 호치민이 이끄는 공산주의 월맹과 맞서 지루한 소모전을 전개한다.
짜빈동 전투 1,2 / 월남전 비극의 상징인 소녀 판 티 킴 푹(벌거벗고 뛰어오는 소녀)
월남전의 악몽
위 사진에서 울면서 벌거벗고 뛰어오는 소녀는 판 티 킴 푹(Phan Thi Kim Phuc)인데 미군이 투하한 네이팜탄(Napalm:燒夷彈)에 집이 불타고 온몸에 화상을 입어 뛰쳐나오는 장면이다.
1972년 당시 7살이었다니 올해(2020)에 55세가 되겠다. 저 사진을 찍은 베트남의 AP 통신 사진기자 닉 우트(Nick Ut)는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받았고, 킴 푹은 유엔 평화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작년에(2019) 인권평화상을 수상(受賞)했다고 한다.
사진작가 닉 우트와 킴 푹 / 세계 인권평화상 수상 / 화상 흔적 / 손자와 함께
짜빈동(茶平東) 전투는 우리나라 청룡부대인 제2해병여단 3대대 11중대원 294명이 월맹군 2,400명의 기습을 받지만, 끝까지 분투하여 대승을 거둔다. 결과는 청룡부대원 전사 15명, 부상 33명이었고, 월맹군은 전사 243명, 포로 2명으로 한국 해병대가 대승을 거둔, 세계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전투이다.
8년간 계속된 지루한 월남전은 국제적 여론에 밀려 미국이 1973년 휴전협정에 조인하고 물러서자 우리나라도 같은 해 철군을 한다. 그러나 월맹은 협정을 깨고 1975년 대공세를 전개하여 4월 30일 마침내 사이공을 함락시키고 남북 월남을 합쳐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합하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 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Saigon)을 호치민시(胡志明市)로 개명한다.
호치민은 공산화 성공 이후 소련 및 동구권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경제 부흥에 발버둥치지만 1990년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결국,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호치민은 아시아 및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민간 기업들에 대한 자유화 조치를 시행하는 등 유화(宥和)정책을 펴면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