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246) 마초와 허저의 용호상박(龍虎相搏)
다음 날 아침. 마초는 한수와 더불어 조조의 군영으로 군사를 몰아 나왔다.
그리하여 조조가 주둔한 군영을 보니, 밤새 조조군이 쌓아 올린 견고한 성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마초는 궁수들에게 활을 쏘도록 명했다.
"발사 !"
그러나 화살은 나무로 만든 성문에만 꼿힐 뿐, 조조군이 간밤에 쌓아올린 빙성(氷城)은 혹한 기온으로 인해 단단히 얼어붙어, 성벽이 단단한 돌과 같았다. 그러려니 화살은 성벽을 맞추곤 그냥 튀어 나왔다.
그때, 조조가 <호호> 뿌연 입김을 뿜으며 성루에 나타나자, 조조를 발견한 마초가 욕을 해댄다.
"조조, 이 역적 ! 간신배 ! 내 아버지와 동생을 죽인 원수놈 !"
그러자 조조가 마초를 향해 일갈한다.
"마초 ! 내가 군영을 못 세울 줄 알았지 ? 보거라, 하룻 밤 새에, 하늘에서 성벽을 내려주었다 ! 네 놈들은 내 적수가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니, 어서 나에게 투항해라. 이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니라 ! 나는 인재를 아끼는 사람이다. 따라서 네가 투항하더라도 죽이지는 않겠다 !"
"역적 주제에 헛소리를 지껄이지 마라 ! 나와 겨뤄보겠느냐 !"
"마초 ? 내가 누군지 아느냐 ? 내 이름은 허저다 ! "
조조의 옆에 서 있던 허저가 입김을 뿜으며 외쳤다.
"하하하핫 ! 네놈이 호후라는 놈이구나 ? "
"그렇다 ! 거기서 기다려라, 이 몸이 내려가서 상대해 주겠다 !"
허저는 마초가 자신을 비웃자, 마초를 향해 주먹질을 해보이며 성루에서 내려간다.
이윽고, 성문이 열리면서 허저가 장창을 비껴들고 말을 달려 나간다.
허저가 단신, 성밖으로 나오자, 이를 본 마초가 대항하여 말을 달려 나간다.
"이랴 !"
"맹기 ! 조심하거라 !"
마초에게 허저의 실력을 말해 주었던 상장군 한수가 마초에게 걱정의 당부를 쏟아냈다.
허저의 뒤에서는 조조가 성루에서 싸움을 관망하고 있었다.
양군(兩軍)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장수는 벌판 한 가운데서 싸움을 시작하였다.
허저는 반월창을 들었고 마초는 장창을 들었다. 두 장수의 말과 말이 달려들 때마다 창과 창이 부딛치는 소리가 넓디넓은 들에 쩡쩡 울렸다.
그러나 쌍방이 모두 날쌔고 용감한 터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싸움은 십 합, 이십 합, 오십 합 ...백 합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두 장수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좌충우돌 부딪쳤다.
조조가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기 위해 계속 자리를 옮겼다. 조조가 조인의 앞에서 묻는다.
"몇 합째지 ?"
"백오십 합째 입니다."
"아직 승패가 안났나 ?"
"그렇습니다."
"약한 쪽도 없구 ?"
"예, 없습니다."
"하하핫 ! ...보는 사람이 어지러울 지경이니 대단하군 ! "
조조는 두 장수의 싸움을 지켜보며 말했다.
두 장수가 그러고도 오십 여합을 더 겨루었다.
마초가 갑자기 말머리를 자기 진영으로 돌린다.
"마초, 도망가는 것이냐 ?"
허저가 소리치자, 마초가 돌아서며 창을 들어 말한다.
"허저,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말이 지쳤으니, 말을 갈아 타고 다시 삼백 합을 겨뤄보자. 해 볼테냐 ?"
"하하하 ! 그거 좋지 ! 이랴 !"
허저는 즉시 말을 돌려 빙성(氷城)으로 향했다.
이 모습을 성루에서 지켜 보던 조조가 조인에게 말한다.
"허저에게 내 말을 내줘라 !"
"예 !"
마초는 자기 군영으로 돌아와,
"숙부, 말 좀 빌려 주십시오 !"
하고, 한수에게 말하자, 한수는 즉각,
"그래 !"
하고, 대답하며 말에서 내린다. 그리고 마초를 붙잡고 또 다시 당부한다.
"맹기,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 조심해야 한다."
"예, 걱정마십시오."
한편, 성안으로 돌아온 허저는 양팔을 벌리며,
"벗겨라,"
하고, 명한다. 그러자 병사 둘이 달려들어 허저의 갑옷을 벗겨냈다. 허저는 맹추위에 겉옷까지 모두 벗어 던지고 속 갑옷에 맨 상투 차림이 된 뒤에,
"말 !"
하고, 타고 나갈 말을 찾았다. 허저가 말에 오르자 성루에서 조조가 말한다.
"허저, 용맹한 녀석이니 조심해야 한다."
"걱정마십시오. 놈을 베어 오겠습니다."
"칼 !"
"여기 있습니다."
"이랴 !"
허저는 반원창을 손에 들자, 그대로 성문앞으로 달려나간다.
"이랴, 이랴 !"
그리하여 두 장수는 다시 결전을 시작하였다.
치고, 받고, 되치기를 모두 삼백 여합, 어느 순간 허저가 말에서 떨어졌다. 그 순간 마초가 장창으로 찌르려는 데 허저가 마초의 말을 반월도로 그어댔다. 그 바람에 땅바닥에 떨어진 마초는 본격적으로 두발로 걸어다니며 허저와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창과 창이 불꽃을 내며 부딪치고,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날아 다닐 듯이 맨 땅위에서 결전을 벌였다.
이 모습을 지켜 보던 조조가 말한다.
"마초가 살아있는 한, 내 편안치 못하리 !..."
조인이 마초군의 후방을 유심히 보다가 말한다.
"승상, 서황이 서량군의 후방을 기습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 "
"그래 ? 그렇다면 조인, 결전을 시작하자 ! "
"예 ! 성문을 열어라 ! 성문을 열어라 ! 공격개시다 ! 형제들이어 공격하라 !"
조인이 성루에서 뛰어 내려가며 소리쳤다.
그리하여 이틀 전에 서량군 후방을 기습하기 위해 떠난 서황의 육천 군사들이 마초의 후방 기습을 협공하기 위해, 조인이 본진을 이끌고 성밖의 마초군을 향해 돌격해 나갔다. 이 바람에 허저와 마초는 싸움을 멈추고 허저는 대군과 함께 마초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마초는 전,후방에서 공격해 오는 조조군을 맞아 분전하였다.
그러나 전,후방에서 협공을 당하는 서량군이 제대로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참패를 당한 마초가 급히 군사를 돌려 본진으로 돌아왔다.
"교활한 조조놈 ! 앞에서 공격하는 척 하더니, 서황에게 명하여 뒤에서 공격하다니, 이만 명이나 잃었네 !..."
마초는 분개하며 말했다. 그러자 동생 마대가 덛붙여 말한다.
"형님, 병사들 사기가 떨어졌고 군량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병력이 저놈들 보다 두 배나 더 많아 ! 단기전으로 결판을 내자구 ! 방덕, 자넨 서황을 맡아 주고, 나는 전면 공격을 내설 것이야 !"
마초가 분연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자. 한수가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연다.
"맹기, 지금 공격하는 것이 최선일까 ? 장기전으로 간다면 우리한텐 불리할 수밖에 없어. 보고도 없이 철수한 부대도 있다고 하더군."
"그럼 어떻게 할까요 ?"
"내 생각엔 잠시 철수하고 강화를 하는 것이 좋겠네, 관중(關中)을 내주고 조조에게도 위하 강 건너로 군사를 물리게 한 뒤에, 휴전하는 것이 좋겠어. 우선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이 오면, 그때 다시 계획을 세우지."
"형님, 서량을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조조가 우리의 퇴로를 막으면 위험합니다."
마대도 철수하자는 직접적인 의사는 아니지만 한수에 동조해서 말한다.
"분하구나, 아버지의 복수를 못하다니 !...
마초가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한수가 입을 연다.
"어찌하겠나, 복수는 잠시 뒤로 미루고 먼저 살아남아야지. 조조같은 자와 맞서 싸우려면 절대 조급하게 굴어서는 안 되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마초는 불쑥 이같은 말을 남기고 군막을 빠져나간다.
"아니, 형님 ?"
마대가 잠시 멈칫 거리더니 이내, 마초의 뒤를 따라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