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내용은 칼럼과 보도된 뉴스를 바탕으로 각색된 추리소설입니다.
이수연은 특검 사무실 문을 열며 담배 냄새 대신 먼지 냄새를 맡았다.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인 방 한가운데, 강민준이 낡은 태블릿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게 그 태블릿입니까?" 이수연이 물었다.
"복제품입니다. 원본은 이미 국과수에 있죠." 강민준이 화면을 켰다. "문제는 이 안에 있는 파일들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입니다. 생성 시각이 조작된 흔적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두 사람이 이번 사건에 투입된 건 열흘 전이었다. 임세은이라는 부대변인이 김용이라는 정치인에게 전달한 자료 속에서 조작된 문건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였다. 김용은 대법원 판결을 앞둔 채로 출마를 선언한 인물이었고,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그의 발언은 벌써 여론을 둘로 갈라놓고 있었다.
"자기 재판도 안 끝났는데 개혁을 하겠다니 아이러니하죠." 이수연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창밖 전깃줄에는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까치는 이내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강민준은 대답 대신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이것도 봐야 합니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메모. '연락망 구축 지시'라고 적혀 있죠. 특검은 이걸 내란 가담 정황으로 보고 있어요. 그런데 홍 전 차장 측은 이 메모 자체가 나중에 조작됐다고 주장합니다."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직접 연결은 아닙니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강민준이 태블릿 화면을 이수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누가, 왜 진실을 비틀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밝힐 수 있는가."
두 사람은 먼저 임세은을 만나러 갔다. 그녀는 침착했지만 눈빛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제가 전달한 자료는 정상적인 정책 자료였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 안에 이상한 파일이 섞여 있었다면, 그건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자료 전달 경로를 추적해봤습니다." 이수연이 서류를 펼쳤다. "당신 손을 거치기 전, 최소 세 사람이 그 문건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누구라도 파일을 심을 수 있었죠."
임세은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럼 저는 누명을 쓴 겁니까?"
강민준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진짜 조작자는 영원히 그림자 속에 숨을 겁니다."
수사는 다음 날 국정원 자료 보관실로 이어졌다. 홍장원의 메모 원본을 확인하러 간 자리에서, 담당 직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원본 메모의 보관 기록이 일부 비어 있습니다. 누군가 열람한 뒤 재봉인한 흔적이 있어요."
"언제입니까?"
"특검 수사가 시작되기 사흘 전입니다."
이수연과 강민준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누군가 특검보다 먼저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사무실에 남아 그동안 모은 자료를 정리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처마 밑으로 참새 몇 마리가 비를 피해 모여 있었다.
"결국 우리가 쫓는 게 사람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수연이 말했다. "태블릿 조작도, 메모 조작 의혹도, 어느 한 사람의 악의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요."
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속영장이 계속 기각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수사력 부족이라고 비판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어요. 2차 특검이 처음부터 예산도, 인력도, 시간도 부족한 채로 시작됐다는 것. 조작이 이뤄질 수 있었던 건 어느 한 사람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시스템 곳곳에 빈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범인은 누굽니까?"
"범인은 있겠죠. 자료를 바꿔치기한 손, 메모를 열람한 손. 그 손을 찾아낼 겁니다." 강민준이 창밖 참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손 하나를 잡는다고 이 사건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서류 하나가 조작될 수 있었던 구조, 그걸 아무도 막지 못했던 구조. 그게 진짜 우리가 밝혀야 할 진실입니다."
며칠 후, 두 사람은 마침내 자료 접근 기록을 통해 재봉인의 흔적을 남긴 인물을 특정해냈다. 그는 특검 내부와 여야 양쪽 모두에 연줄을 대고 있던 하급 실무자였다. 하지만 강민준의 예상대로, 그를 체포한 뒤에도 사건은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다.
"이 사람 하나가 전부 꾸민 게 아닙니다." 이수연이 조서를 덮으며 말했다. "위에서 묵인했거나, 적어도 알고도 방치한 정황이 있어요."
강민준은 창가에 서서 비 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깃줄에 앉아 있던 참새 한 마리가 날개를 털고 날아올랐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 어느 한쪽의 승리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가 말했다. "이건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이 구조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문제니까요. 우리가 오늘 잡은 손은 하나지만, 그 손을 움직이게 한 빈틈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수연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참새는 이미 빗물 고인 거리 저편으로 사라진 뒤였다. 저울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지만, 적어도 오늘은 한 뼘 더 진실 쪽으로 기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