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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우사에 미혹될 수 있다 출32:1-6 사44:9-20 행17:16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점심을 갖고 일하는 일꾼들에게 가지고 가면 일꾼들은 밥을 먹기 전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주변에 던지면서 고수레 하는 것을 본 것이 생각이 난다. 식사 전 고수레라는 말은 의지할 곳 없는 고씨라는 한 노파가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호의로 끼니를 이어 가며 연명했다가 세상을 떠나자 들일을 하던 사람들은 죽은 고씨 노파를 생각하고 음식을 먹기 전에 첫 숟가락을 떠서 고씨네하고 허공에 던져 그 여인의 넋을 위로하는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이 고수레 일반적 이야기이다.
이런 것이 계기가 되어 고수레라고 한 사람의 논은 흉년을 벗어나게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농부들은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첫 숟가락을 떠 그 영혼에 바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는 고수레를 하지 않고 음식을 먹으면 체하거나 혹은 재앙을 받게 된다는 속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수레하는 그 행위는 불양(祓禳:귀신에게 빌어 재앙을 물리침)을 위한 주술로 발전하였다. 여기서 첫 숟가락의 음식은 첫 수확의 곡물이나 과일이 그러하듯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알고보면 고수레라고 한 음식들은 신에 의하여 감응될 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그것을 먹어도 괜찮다는 안전이 보장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고수레라는 말도 조상 숭배 사상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런 조상 숭배 사상은 후손의 번영과 영화를 기원한다는 것과도 일치되며, 여기에 농작물의 풍요를 바라는 농민의 기구(祈求)에서 시작한 이 설화가 자연스럽게 확산되어왔는데 이런 것과 관련된 설화는 남아메리카의 페루에서도 보이는데 음식물(술 포함)을 입에 가져가기 전에 대지에 뿌리면서“대지여, 어머님이시여! 우리에게 훌륭한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십시오.”라고 축원한다고 한다. 인간은 언제부터인지 이처럼 자신들의 연약함을 채우기 위해 자연과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아왔다. 옛날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만 우상을 숭배하였던 것은 아니라 오늘날 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철에서 가끔 눈에 띄는 것은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묵주를 손으로 한알씩 굴리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물론 저 사람은 카톨릭신자이구나 생각하지만 저 묵주 한알씩 굴리어야 믿음이 좋아질까 아니면 마음이 평안해질까하는 마음이 들면서 이런 것이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고수레 우상숭배는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1. 왜 인간이 우상을 섬기게 되었는가?
인간은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떻게 세상에서 나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면서 깊은 사색을 하지만 오직 내가 누구인가하는 인간창조에 대한 것은 성경이외는 아무데도 없다는 것이다. 성경은 천지만물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창세기 첫 장에서 밝히고 있다. 천지창조는 오늘날의 하루가 아닌 일정한 주기를 가진 6일간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첫째 날 빛과 어두움을 둘째 날 하늘을 셋째 날 땅과 바다와 땅위의 풀과 나무를 넷째 날은 해와 달과 별을 다섯 째 날은 하늘의 날짐승과 바다의 물고기들을 여섯째 날은 땅의 짐승들과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명확하게 기록을 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최고의 존재입니다. 식물들이나 동물들의 세계도 신비롭고 아름답다할지라도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은 동식물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영혼을 주셨던 창조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며(창1:26) 그리고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창1:28).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위임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피조물도 사람위에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마귀에게 미혹당하면서 하나님께 죄를 범했으므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으며 더 이상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 범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살지 못하니 약해져서 피조물을 다스려야 할 존재가 오히려 피조물들에게 자신을 도와 달라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서 신을 찾게 되었고 우상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죄는 사람을 어느 정도로 나약하게 했냐하면 땅을 정복하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는 인간이 지배하여야 할 피조물에게 도와 달라고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복을 비는 것이고 둥근 달을 보고도 복을 비는데 달은 커졌다 작아졌다 하니까 이왕이면 큰 달이 더 잘 도와 줄 것이라고 믿고 정월 대보름달이나 팔월대보름달을 보고 비는 것입니다. 나무도 어린 나무 보다는 크고 오래 된 고목나무가 자신을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크고 오래된 나무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복을 달라고 빕니다. 그래서 속이 빈 고목을 보고 사람들은 복을 빌어도 줄 복이 없어 속이 비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피조물을 보고 빌다가 이제는 피조물의 형상을 만들어 그 우상 앞에 복달라고 빕니다. 그 형상도 사람이나 짐승들뿐만 아니라 사탄의 형상인 뱀,용 같은 형상을 만들기도 합니다. 만물을 다스릴수 있는 최고의 복을 누리고 살아야 할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나니 이렇게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했을 지라도 하나님께 용서를 빌면 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아예 찾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헛된 우상을 만들어 그 우상 한데 도와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죄를 범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있어 온 일이라서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한 현대인들이나 미개한 원시족까지도 우상을 섬깁니다. 수천년전 동굴 벽화같은 것을 보면 인간이 우상에게 비는 모습들이 남아 있습니다. 브라질 아마존 밀림 속에는 아직도 많은 원시족들이 옷도 입지 않고 자신의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신을 찾고 우상을 섬깁니다. 최고의 영장인 사람이 죄로 인해 영안이 어두워지니까 인간은 자기만도 못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상에게 복을 달라고 빌고 있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자화상입니다.
2.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종교는 다 우상을 섬기는 종교이다.
수십년전 까지만 하여도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불교이었다. 불교는 부처를 만들어 그 앞에 제물을 놓고 절을 합니다. 불교 교리는 죽은 자를 위하여서도 삼일제니 사십구제니 제사를 드리면 다음 세상에는 다른 모습으로 환생한다는 윤회설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지식이 있는 사람도, 권력이 있는 사람도, 정치하는 사람들도 부처앞에 절을 하며 복을 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불교만 그럽니까? 카톨릭교는 성당안에 가면 각종 성상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카톨릭의 본산인 베드로 성당에는 많은 성인들 형상을 비롯하여 뱀의 형상까지 각종 우상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곳에 가는 사람들마다 그 형상들 앞에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말씀인 성경에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고 만든 우상앞에 절하지 말라고 십계명에 선포 하고 있습니다.
(출20:3-5) 3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4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곧 네 주 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헛되고 그들이 기뻐하는 것들은 유익을 끼치지 못하리니(사44:9)라고 우상 섬기는 자들의 헛되고 어리석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우상을 만들기 위해 ‘대장장이는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 가운데서 일하며 쇠망치로 그것의 모양을 내며 자기의 팔의 힘으로 그 일을 한다’(12)라고 했습니다. 또 우상을 만들기 위해 목수는 백향목이나 편백나무나 상수리나무를 ‘줄로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땔감으로 사용도 하고 일부는 음식도 만들어 먹는데 쓰이기도 하지만 그것의 나머지로 신 곧 자기의 새긴 형상을 만들어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당신은 내 신이니 나를 건지소서’(17)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망치로 두들겨 만든 우상이든 나무로 만든 우상이든 그 우상들은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그 우상 앞에 ‘당신은 나를 구원하는 신이라’고 하며 복을 구하는 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 믿기 전에는 우상 앞에게 절하고 복을 달라는 허망한 짖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상에게 복을 비는 사람의 어리석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1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과 눈을 열어 주셔야만 우상이 거짓이고 헛된 것임을 알게 되는데 다행히 우상 섬기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늦게라도 알게 된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마음이 어두워져서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므로 눈에 보이는 우상의 형상에 미혹되어서 우상도 큰 것을 더 좋아하면서 불상도 큰 것을 자랑합니다. 대구 팔공산에 큰 바위에 불상을 새겨진 것이 많습니다. 갓바위 부처(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는 대구의 진산 팔공산(1,193m) 남동릉 허리께에 솟은 갓바위(850m)정상에 있다. 산정의 암봉을 그대로 다듬어 불상과 좌대가 한 덩어리로 붙어 있는 불상에게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만큼은 꼭 들어 준다는 소문듣고 전국 각지에서 하루에도 수천명이 이 갓바위 부처를 찾는다고 한다. 음력 초하루나 입시 때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고 한다. 바위로 만들어진 불상이 무엇을 도와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잘되게 해 달라고 복을 비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그것들이 헛되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영적무지 때문입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자가 없으며 지식도 없고 명철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일부를 불로 태우고 또한 그 그것의 숯 위에서 참으로 빵을 굽기도 하며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그것의 나머지로 가증한 것을 만들리요? 내가 나무줄기에 엎드리요 하는 자가 없나니’라고 했습니다(19).
우상 숭배자들에게는 자신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지식이나 이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잘 표현해 줍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우상의 형상에 미혹되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잘 미혹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빠져 있을 때는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이미 인간의 마음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혹의 영에 빠져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 숭배자들은 궁극적인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나의 오른 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말하지도 못합니다. 자신이 거짓된 우상에 미혹되어 있으므로 자신들이 잘못됐다고 시인하지 못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우상의 힘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완악한 죄성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부처는 사람이 나무로 만들어서 금색깔을 칠한 불상인 줄 알면서도 거기에 물질을 드리고 기도를 하고 복을 구합니다. 나는 타종교를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사실대로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천주교는 어떻습니까? 천주교 역시 불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천주교안에는 여러 마리아 형상과 성인들의 우상이 즐비하게 있으며 문제 사안에 따라서 기도드리는 대상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천주교 최고 지도자인 추기경도 부처님 오신 날에 공식적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곤 합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다 우상앞에서는 서로 소통하는 종교인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과 그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에게는 질투하시므로 그들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시겠다고 하셨으니 우상 섬기는 자는 결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3.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스라엘의 왕인 주 곧 그의 구속자인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사44:6).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태에서부터 너를 지었다’고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므로 하나님만이 정말 유일한 신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 외 다른 신은 우리들을 구원할 수도 없는 거짓 신들이라는 것입니다. 거짓 신들은 사람들이 만든 우상들입니다(17).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므로 우리의 죄가 구름같이 빽빽할 지라도 깨끗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구속자이십니다. “내가 네 범법들을 빽빽한 구름을 지우듯 지웠고 네 죄들을 구름을 지우듯 지웠으니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느니라”(22)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빽빽한 구름 같이 있었지만 안개같이 없어지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용서해주었을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셔서 우리들을 구속하셨다고 하셨는데 구속이란 말은 죄진 자들을 일정한 장소에 잡아 가둔다는 뜻도 있지만 이것과는 전혀 다르게 성경에는 노예들을 속전을 주고 구해내는 것을 구속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죄의 노예가 된 자들을 죄에서 해방시켰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이 보혈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죄인을 구속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그 하나님께선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헛된 우상 앞에 도움을 구하지 말고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상 섬기는 자들은 정말 허망한 자들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앞으로 돌아오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일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에 관한 예를 들 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사십일 동안 내려오지 않자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가르쳐 미혹되면 사람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는 것이 우상숭배의 목적이며, 이는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대체해 섬겼던 우상숭배가 있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과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서 십계명을 받았을 때 산 아래에서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이 자신들을 출애굽 시킨 하나님이라고 외치고 춤추면서 하나님을 섬기듯이 섬겼던 것은 진리를 거짓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입니다. 산 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시간에 산 아래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섬겼건 것은 분명히 마귀의 작품이었습니다.
(출32:1-5) 1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는 것을 백성이 보고는 함께 모여 아론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우리를 위해 우리 앞에 갈 신들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사람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들과 너희 아들딸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를 빼서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3 온 백성이 자기들의 귀에 있던 금귀고리를 빼서 아론에게로 가져오니라. 4 그가 그들의 손에서 그것들을 받아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새기는 도구로 그것의 모양을 내매 그들이 이르되 오 이스라엘아 이것들은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이니라 하므로 5 아론이 그것을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선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주를 위한 명절이니라 하니라.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든 다음날 번제헌물을 드렸고 먹고 마시며 뛰놀았으며 금송아지 하나님을 칭송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전민족적 배신과 반역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 사건이 바로 시내 산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물과 음식조차 구할 수 없는 메마른 광야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에만 의지하여 살아가던 때에, 더욱이 모세가 시내 산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과 하나님의 거하시는 상징적 처소가 될 성막 관련 계시를 받는 중에 발생함으로써 그 우상숭배의 충격은 출애굽자체를 물거품으로 만들뻔 한 위기를 가져온 것이었다.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과 홍해사건, 자신들을 인도했던 불기둥과 구름기둥 등,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는 등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우상숭배를 한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그 백성들과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성경에서 주의 이름이 가짜 신(송아지)에게 사용된 경우는 이 말씀뿐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유일한 진짜이름을 사용 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주가 그들을 구원하고 인도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이미지를 변질 축소시켰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였느니라. 진리가 부패되면 거짓이 진실처럼 보입니다.
(롬1:25)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한마디로 거짓을 진리인양 가르치면 우상숭배의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아론은 모세와 달리 출애굽전에 하나님을 대면하지도 아니했고,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 시내산에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가 만든 하나님의 형상은 83년 동안 살았던 이집트에서 배운대로 아론의 내면에서 그 형상이 나온 것입니다. 그는 이집트인들이 섬기던 신을 반영한 온갖 형상들을 보고 살았을 것 입니다. 그래서 그는 송아지가 이집트의 어떤 우상이 아니라 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게 된 근본 동기는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때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신이 필요하였던 것이고 그 필요에 따라 금송아지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두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 아침에 만나 잘 먹고 나온 사람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통해 오늘 다시 결단하여야 하는 것은 어려운 시절에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지금 돌아봐 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은혜를 절대 잊지 마십시오. 성경은 어떻게 이런 우상숭배가 그렇게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어리석고 참담한 역사를 가감 없이 기록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금송아지 사건은 우리에게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혹시 나의 인본주의에 맞춰 우상숭배는 하지 않았는지 예방주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보면 흔적도 없던 금송아지 우상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둔갑시키는 몰지각한 자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웅장한 교회를 건축해 놓고 마치 하나님이 지으시게 한 것 처럼 여기는 자들이 있는데 이것이 구약시대 금송아지 우상숭배자들의 망령이 나타난 것은 아닌지요?
그러나 또 우상숭배의 경고를 생각하면서 분명히 말하건대 저 원수 사단의 사주를 받아, 태초 에덴 동산의 선악과를 범한 이래, 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불신과 반역의 뿌리가 그 얼마나 모질고 깊은 것인가 하는 사실에 새삼 전율하게 됩니다. 그저 인간의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금번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을 통해 나타난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와 반역 그리고 배은망덕은 실로 그 정도를 벗어나 이해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태초 선악과 범죄 이후, 타락하고 어두워진 우리 자신의 영성과 이 세상의 공중 권세를 잡고(엠 2:2), 알게 모르게 우리의 영육을 노리고 있는 사단의 사주가 빚어낸 참으로 통탄스러운 엄연한 현실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같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섬겼듯이 오늘날도 모양만 다른 금송아지를 섬기는 사람들은 꾸준히 이어갈 것입니다. 이런 영적 현실은 마침내 사단과 그의 모든 추종 세력들이 최종적으로 멸절될 세상 끝날 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더욱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과학과 문명이라는 허울과 미명 아래, 아예 무신론적 내지, 반신론적 사고가 오히려 진리인 양 득세하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는 이같은 왜곡된 현상의 이면에는 인간의 몽매한 영성과 사단의 궤계가 담겨져 있는 영적 현실의 실체를 직시하여야 하고 나아가 행여, 스스로가 현대판 맘몬을 사랑하는 일만악의 뿌리가 되는 금송아지 우상 숭배에 동참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요, 결국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유일성을 거절하는 범죄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중간 지대가 용납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편과 저편 중간에서 서로 화해시키고 중개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이 뛰어난 정치인으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는 중간 지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편이 되든지, 아니면 우상을 섬김으로 사단의 편이 되든지 둘 중 어느 한편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우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자가 있다면 이 사람은 결국 사단에게 속한 자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무관하며, 하나님 앞에서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행여라도 우리들의 생활 속에 우상 숭배적인 요소가 침투해 있다면 즉각 이 악한 습관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5 우상숭배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
우상이 무엇인가 반드시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만이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그 어떤 피조물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이 우상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맘몬은 현대인들이 섬기는 대표적인 우상이고 이 외에도 쾌락이나 취미나 동호인모임이라도 아니면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라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런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전10:14-15) 14 그런즉 나의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를 피하라. 15 내가 지혜로운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내가 말하는 바를 판단하라. 우상숭배를 피하려면 두 가지를 잘하면 됩니다.
(1)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게 된 것은 한 마디로 참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에 십자가의 사랑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된 것입니다.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라는 책을 보면 ‘동굴의 비유’가 나옵니다. 플라톤은 인간이 어리석게 살아가고 때로는 정신적인 노예로 살아가는 이유를 이 동굴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깊은 동굴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사람들은 동굴 속의 환경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동굴 밖을 나가보지 못한 이 사람들은 동굴 안에 유폐된 생활세계를 자신들의 유일한 생활세계로 알고 자족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일부의 사람들이 동굴 밖의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에 밝은 빛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큰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계에 크게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동굴로 돌아와 이 정보를 전해줍니다. 동굴 속의 사람들은 감사하기는 커녕 자기들의 안정된 질서를 뒤 흔든다고 저들을 반동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용기 있는 사람들은 동굴 밖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비유에서 보듯이 자기가 참신이라고 믿었던 종교가 마치 영적으로 동굴 속에서 갇혀 살아가는 것과 같지는 않은지요?
바울이 원래 이렇게 살았습니다. 유대교가 가르쳐주는 교리가 참된 것인 줄 알고 율법이라는 틀 속에서 왜곡된 하나님의 모습을 참 하나님인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유대교라는 동굴 속에 있었는데 다메섹으로 가는 동굴 밖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마치 동굴 속에 살던 사람이 동굴 밖의 찬란한 빛의 세계로 나온 것처럼 눈부신 영적 세계로 나온 것입니다. 이 때 바울은 눈이 멀어서 도저히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고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새롭게 보게 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해 주신 참 신이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동안 왜곡되게 알았던 하나님을 올바로 보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바울은 우상숭배의 동굴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숭배를 피하려면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만이 우리가 섬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상숭배를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삶의 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음의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린 실화를 통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창 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가를 시험해 보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100세에 나은 유일한 적자로서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이며 대를 이을 유일한 상속자이었습니다.
자기는 이제 살만큼 살았기 때문에 이 아들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이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그것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 없이 나 혼자서는 못 산다고 외치며 그 말씀을 거둬달라고 떼를 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리 이삭이 소중해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칫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우상이 될 수도 있었으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였기 때문에 이삭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식이 귀하고, 남편과 아내가 사랑스러워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나보다 더 사랑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맘몬이 좋고 사업이 소중하고, 학문이 소중하고, 명예가 소중해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자칫 그것들이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은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대단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제일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6. 우상숭배는 심판을 받는다.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너희 목이 곧은 백성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잠시라도 너희들과 함께 했다가는 내가 너희를 진멸할 것 같으니 너희들만 올라가라(출34:9).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을 했으니 천사를 너희 앞서 보내서 가나안 백성을 쫓아내고 가나안 땅을 빼앗아 너희에게 주겠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절교선언입니다. 모세가 금송아지 우상을 불에 태우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물에 타서 백성들에게 먹이고, 부모가 자식을 형제가 형제를 동료가 동료를 이웃이 이웃을 칼로 진멸하는 혹독한 댓가로 이스라엘 백성 3,000 명이 죽임 당했어도, 그리고 모세가 간절히 기도했어도 하나님의 진노는 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모세의 가슴은 얼마나 많은 생각과 회한이 소용돌이 하였겠습니까? 이집트에서 바로공주의 아들로 영화를 누리다가 졸지에 살인자가 되어 도망하고,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며 40년 세월 조용히 살다가 80세가 되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바로에게 열 번이나 가서 말했지, 하나님은 그 때마다 얼마나 놀랍게 역사하셨는지. 마지막 재앙은 장자를 죽이고 바로의 항복을 받아내던 그 유월절 사건은 정말 통쾌하고 엄청났었지. 뒤따라오는 이집트 군대, 앞에는 홍해. 그 두려운 순간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시고 우리들은 그 바다를 건넜다는 승리의 영광, 그리고 좀 힘들긴 했었지. 목마르던 사흘 길, 마라의 쓴물, 칠십 종려나무 오아시스의 기쁨, 만나와 메추라기, 므리바 반석에 물을 내시고..그리고 이곳 시내산에서 나를 불러 올리셔서 10계명 돌판을 직접 새겨 주시고, 여기까지 이렇게 왔는데? 그런데 아론이 한심하게도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들은 절하며 벌거벗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게 무슨 꼴인가?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셨을까? 금송아지를 태워 갈아 마시우고 3,000명을 죽였는데도. 차라리 저의 이름을 지워주십시오, 하고 간구했는데도 하나님의 진노는 풀리지 않는구나. 천사만 보내 가나안 족속 쫓아내면 무슨 소용인가? 하나님 없이 가나안 땅 차지하면 뭣 하나? 그 다음은 다시 이방민족들의 밥이 될 텐데. 하나님 없는 삶이라면 이집트 종살이보다 나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아, 어쩌나? 아, 나의 사명은 여기까지란 말인가? 나의 인생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인가? 모세의 심경은 막막하고 답답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사랑하시고 모세를 사랑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렙산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의 이름을 부르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식품을 제하라 하시면서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출33:5). 그래서 모세는 진 밖 멀리 성막을 만듭니다. 모든 백성들이 장식품을 제하고 장막에 서서 모세를 바라봅니다. 회막에서 하나님의 구름기둥이 선 것을 봅니다(출33:9). 모세는 간구합니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저희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저희는 죽습니다. 저를 이름으로도 아시고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 함께 하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천하만민 중에 구별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주의 백성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겠습니까?”모세는 오직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동행을 간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시고 모세를 이름으로도 아시는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냅니다.“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출33:14).” 이 말씀에 모세는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에게 축복을 빌고 소원을 성취하려고 하였다니. 이제는 하나님께서는 왜 우상은 허망하다고 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상은 결코 복의 근원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주요, 복을 주시는 반면 우상은 아무런 복을 주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심판의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복을 받으려고 우상을 찾고 손발이 닳도록 비니 얼마나 허망합니까? 그러므로 우상 숭배자는 이 땅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죽은 후 저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영원히 지옥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 종말을 예언한 계시록에서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계22:15는 우상숭배자들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가 되면 인류를 미혹하여 범죄게 한 마귀를 잡아서 성경 말씀대로 유황 지옥불못에 던져 넣습니다. 마귀를 따르는 불신자들도 지옥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계20:15).
(계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이렇게 무서운 것이 우상 숭배를 한 자들의 심판결과 입니다. 이 땅에서도 인생을 실패하게 만들고, 또 저 세상에서도 영원히 멸망을 가져다 주는 우상 숭배 행위를 철저하게 뿌리 뽑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7. 누구든지 우상에게 미혹당할 수 있다.
성도 여러분, 우상은 꼭 나무나 돌로 만든 신상 뿐만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도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탐심도 우상숭배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우상 숭배자들이 되지 말고 열심을 다해 오직 주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분만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최고의 존재입니다.
성경은 우상 숭배자들의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면을 좀 더 강조해서 말씀하기를 우상 섬기는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자가 없으며 지식도 없고 명철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일부를 불로 태우고 또한 그것의 숯 위에서 빵을 굽기도 하며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그것의 나머지로 가증한 것을 만들리요? 내가 나무줄기에 엎드리요 하는 자가 없나니(사44:19)”라고 했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에게는 우상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잘 표현해 줍니다. 우상 숭배자들이 불에 탄 재를 먹는 다는 것은 아무 영양 가치도 없고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것처럼, 어느 곳에서도 사용될 수 없는 무가치한 재와 같은 우상을 섬겨도 영혼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는 것이지만 미혹되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잘 미혹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빠져 있을 때는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이미 인간의 마음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혹의 영에 빠져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 숭배자들은 궁극적인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신을 섬기는 것과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에 제일 계명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제이 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계명은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상 섬기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늦게라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에게는 질투하시므로 그들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상 섬기는 자는 결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계 많은 나라들 가운데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 우상들이 많습니다.
불교가 성행하는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같은 나라는 불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나무로 만든 우상입니다.
기독교와 가장 가까운 천주교는 어떻습니까? 천주교 역시 불교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천주교의 최고 지도자인 추기경이 부처님 오신 날에 공식적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서로가 우상숭배에서 품앗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주 곧 그의 구속자인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 하나님 외 다른 신은 거짓 신들입니다. 거짓 신들은 사람들이 만든 우상들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태에서부터 너를 지었다’고 하셨습니다(사44:24).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구름같이 없이 하여 주시는 구속자이십니다. “내가 네 범법들을 빽빽한 구름을 지우듯 지웠고 네 죄들을 구름을 지우듯 지웠으니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느니라”(사44:22)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헛된 우상 앞에 도움 받기를 원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우상 섬기는 허망한 자가 되지 말고 우리의 죄까지도 용서해 주시는 복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과 가정을 그들의 악한 미혹과 심령적 지배로부터 지키기 위하여서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권세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사단은 사람보다 휠씬 힘이 강하지만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는 이빨 빠진 사자요 발톱빠진 호랑이와 같다는 것이므로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찿나니'(벧전5: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그러나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44:6).
하지만,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가 되면 인류를 미혹하여 저주와 고통 속으로 몰아 넣은 마귀를 잡아서 성경 말씀대로 유황 불못에 던져 넣기로 작정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신을 섬기고 있다. 그러나 그 신이 참신인지 아니면 짝퉁신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왕인 사탄마귀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미혹하여 참 신인 예수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한다. 결국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 되겠지만 이미 버스 떠나고 나서 손 흔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상에 살 때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믿어 천국에 가지만 우상을 섬긴 어리석은 사람은 결국 영생복락을 얻는 대신 불타는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비밀이다. 아뭏튼 민족 종교 세대를 초월하여 누구든지 우상에게 경배하면 사단의 백성이고 하나님께 경배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하신 목적은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말씀, 찬양, 기도를 포함한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에게 경배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당한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 외에 누구도 찬양, 기도를 포함한 예배를 받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되는 것이니 우리들은 오직 나를 구원하신 주 예수님만을 예배하는 온전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