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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성탄
제목 : 성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다!
성경 : 요 1:14~18
찬송 : 125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21218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말씀이 육신이 된 성탄은 왜 필요할까요? 죄인들이 하나님과 다시 친밀하게 교제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필요하였습니다. 성탄절 기간은 단순히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거나 자선을 베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기회를 얻은(히 4:14~16) 사람들이 세상으로, 그것도 열악한 곳으로 나아가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여러분!
성탄의 영광은 화려한 조명 불빛이나 트리 그리고 선물 꾸러미나 상업주의적 과시에 있지 않습니다. 성탄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들어오시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에서 드러납니다. 성탄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입니다.
√성탄의 영광은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성육신’으로 번역된 단어의 뜻은 ‘육신으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성육신’은 이론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의인화된 순간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을 가져다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성육신을 통해 이 세계에 들어오심으로써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한은 “말씀”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로고스”로 예수님을 묘사합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이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본질적인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라는 중요한 사실을 주장합니다.
요한복음 1:14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요한은 모든 증거를 내보이며 하나님이 이 세상에 들어오신 사건이 단순한 ‘통과 의례’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 살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지성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고자 하시는 열망을 상징하는 곳이자 죄인들을 만나시는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방문과 거주의 차이가 뭡니까? 방문은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거주는 다릅니다. 그곳에 정착하여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거주하는 집으로 선택하신 것이 중요합니다. 로고스이신 말씀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또한 요한은 자신과 제자들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요 1:14)을 봤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독특한 속성을 나타냅니다. 그분은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은 유일한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힘을 다해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옹호하고, 어떤 유명 인사나 역사적 인물이나 정치적 인물도 구세주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십니다.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소유하신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분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문화 환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특권인 동시에 도전을 의미합니다. 특권이라 함은 15절에 언급된 세례 요한을 비롯해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믿음의 조상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도전이라 함은 우리가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인임을 알고, 예수님의 말씀에 적대적인 문화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증인의 본보기입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의 영광을 가로챌 만한 인물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가 보여 준 믿음은 깊은 겸손을 나타냅니다. 그는 화제의 중심에 있었고, 많은 무리가 그의 가르침을 듣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자 찾아왔습니다. 사역의 정점에서 세례 요한은 대중을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꺼릴 만한 행동을 합니다. 곧 자신이 물러나리라는 것을 발표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이에게로 돌린 것입니다. 실제로 요한은 자신이 이끌었던 운동의 방향을 바뀌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소원하십니까? 나는 사라지고 예수님만 영광을 받도록 하는 것이 세례 요한을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따르는 사람들,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받도록 해야 합니다(고전11:1).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골 1:19).
√성탄의 영광은 우리에게 은혜와 진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인정하면 얻게 될 유익은 무엇입니까?
요한은 오늘 본문 16~17절에서 그 해답을 줍니다.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성육신을 인정하면 얻게 될 유익이 있는데 바로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진리를 골로새서에 기록했습니다.
√골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두 사도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고 설교하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영적 필요를 충족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신성은 우리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줍니까?
하나님은 성육신하시어 이 땅에 “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심으로써 우리 심령 가운데 거하십니다.
롬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엡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 1: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자기 육신의 소욕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나설 수 있도록 힘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구속받지 못한 육신으로 살면서(롬 7:7~25) 여전히 죄를 저지릅니다. 그리하여 성령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책망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도록 인도하십니다(요일 1:8-10).
구원은 성육신의 은혜가 확장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계속해서 더해 주고 계십니다. 즉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보다 더 많은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이해한다면, 죄 사함을 죄 지음의 핑계로(롬 6장)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이끄시며 깊은 사랑을 부어주시는 사랑의 아버지께서 열어 두신 기회로 여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시는 까닭은 우리가 더 이상 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와 진리를 경험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기준을 보여 주는 데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므로, 그 온전하심의 기준을 누군가를 위해 낮추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순전하신 요구는 온전히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율법의 진리는 레위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레 11: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성자 예수님은 성육신을 통해 타락한 세상에 들어오셔서 자신을 모세의 율법 아래 두셨습니다(갈 4:4-5). 그분이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의 온전하신 삶은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해 대속하여 치르신 값이었습니다(막 10;45). 예수님은 무덤에서 직접적이고 실제적이며 가시적으로 육신의 부활을 보여 주심으로써 하나님이 대속의 값을 받으셨음을 입증하셨습니다(롬 4:24-25).
이제 믿음으로 그분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의롭다 함을 주시고(롬 5:1-5), 우리 죄의 목록은 예수님의 피로 영원히 깨끗하게 씻겼습니다(엡 1:7).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무죄’로 인정해 주십니다. 믿습니까?
√성탄의 영광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신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으며,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성육신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출애굽기 33:20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모세가 하나님을 어렴풋이나마 보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브루스는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여운”이라고 묘사합니다.
요한은 18절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강조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사이에 아주 특별한 관계 덕분에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인간에게 계시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살펴봅시다.
“독생하신”(요1:18)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모노게네스”라고 하는데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이란 뜻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관계는 하나님이 다른 인간과 맺으신 어떤 관계와도 다릅니다.
이 관계의 본질을 요한복음의 첫 구절은 이렇게 규정합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보이스가 말한 대로 “예수님은 태초부터 존재하셨으며,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 요한복음의 첫 구절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완전한 진술을 담고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독특한 관계는(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두 분이 동등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로 요약됩니다(참조, 행 5:3-5, 고전 2:10-11, 고후 3:18). 그 덕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을 인류에게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님의 행하심으로 자신의 역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16-23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일하시기 때문에 자신도 일할 뿐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격노했습니다. 은근히 신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인류의 심판과 관련해 자신과 아버지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이래로 자신이 창조하셨던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요 3:19-21).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인류를 심판할 권한을 위임받으셨습니다(요 5:22-30). 그러므로 인류는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성육신의 진리를 나누는 것을 자기 일로 삼아야 합니다. 제자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자(요 14:8), 예수님은 자신을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증거 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우리 삶에서 지금 역사하시는 주님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이웃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잊지 않으셨음을 보여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거하십시오.” 성육신의 원리는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감내하는 사랑입니다. 즉 인내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역이 우리 삶 가운데 이뤄지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구세주가 우리 주변 사람들의 삶에도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기를 고대해야 합니다.
결론
구원의 징표 중 하나는 다른 이들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려는 열망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냉냉하게 대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 열망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거하기 위해서 오신 놀라운 역사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