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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삼십일 왕에 대한 승리/수 12:1-8
설교자 김덕복 목사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여호수아서 12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정복하면서 가나안땅에 거주하고 있던 31명의 왕들을 쳐부순 승전보고서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전체가 24장으로 구성이 되어져 있는데 1장부터 12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서 기록이 되어있고 그 다음부터 그 땅을 분배하고 그 땅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좀 짜증나는 그런 부분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사람 이름들이 계속 반복되어 나오든지 아니면은 지명들이 계속해서 나올 때에 성경을 읽다 짜증스러운 그런 경험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성경을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뛰어 넘어가는 그런 경우들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여호수아서 12장도 그런 장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1. 요단강 동편의 왕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내용은 약 7년 이상의 전쟁기간을 다루고 있는데 그 기간동안에 이스라엘이 싸워 이겼던 전체 33명의 왕들의 기록을 여기에 남겨놓고 있습니다.
1절부터 6절까지는 요단강 동편에 거주했던 왕들을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겼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그 다음 7절부터 24절 사이에는 요단강 서편 즉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가나안땅을 어떻게 점령했는가, 그 중에 거기에 거했던 이방 족속들의 왕들은 누구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장면입니다.
우리가 먼저 요단강 동편에 거했던 왕들을 생각해 봅시다.
1절부터 6절 사이를 보시면 거기에는 두 사람의 왕이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2절에“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이렇게 되어있고 그 다음 4절에“또 르바에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이라”이 바산 왕 옥과 아모리 왕 시혼은 요단강
서편에 있었던 31명의 왕들을 비겨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왕들이었습니다.
앞에 6절까지의 두 왕에 대한 기록은 여호수아가 쳐부순 왕의 이름이 아니고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을 인도해서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갈 때 길목에서 만났던 두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이스라엘이 이들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만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이들을 쳐부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1절에 보면“요단 저편 해 돋는 편”이라 이렇게 되어있는데 엄밀하게 봤을 때 과거에는 요단강이 북쪽 갈릴리에서 남쪽 사해바다까지 이렇게 남으로 쭉 흘러내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출애굽을 해서 나오면서 바로 북상을 해가지고 약속의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고 이리저리 광야를 헤매다가 사해바다
남쪽을 빙 둘러 애돔지역을 통과하고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만나는 헤스본의 아모리 사람 시혼의 지경과 그리고 바산 왕 옥의 나라를 통과하고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동쪽에서부터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의 중부지방에서부터 이제 정복 전쟁을 펴기 시작을 합니다. 남쪽의 16왕 북쪽의 15왕을 쳐부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이제 차지하게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는 무려 31명의 왕들이 조그만한 성읍들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1절에서 6절 사이는 모세를 중심으로 해서 요단강을 건너기 이전에 만났던 두 왕을 그들은 어떻게 쳐부수었나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2절을 보시면은 거기에“아모리의 사람의 왕 시혼이라”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어떤 전쟁이 있었는지 그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구약성경 민수기를 찾아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21장 21절부터 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 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다 왕의 대로로만 통행하리이다 하나 시혼이 자기 지경으로 이스라엘이 통과함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파하고 그 땅을 아르논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그랬습니다.
그 다음 민수기 21장 33절부터 3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는 바산 왕 옥과의 전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는지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그와 그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이에 그와 그 아들들과 그 백성을 다 쳐서 한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 땅을 점령하였더라”
지금 성경은 그렇게 우리에게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그냥 예사의 왕들이 아니었습니다. 요단강 서편에 있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있던 왕들에 비해서는 굉장히 강력한 통치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취하에 한 60개 이상되는 성읍들을 거느리는 아주 큰 왕들이었습니다. 이 두 왕들에 대해서 이스라엘에서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가려고 하면은 당신의 땅을 밟고 지나가야 되는데 우리가 당신의 땅을 밟고 좀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 달라 그 다음엔 우리가 당신의 땅을 지나갈 때 밭이든지 포도원이든지 들어가서 짓밟지 않고 우물물도 우리가 함부로 마시지 않고 당신의 지경을 다 벗어날 때까지 길만 따라서 갈 테니까 길만 좀 허락해 달라 이랬을 때에 이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단호히 거절하고 이스라엘을 향해서 먼저 선재 공격을 가해오게 되어졌습니다.
선재 공격을 당했던 이스라엘은 이들을 그냥 둘 수 없어서 그들을 치게 되었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두게 되어졌습니다.
오늘 이 성경에는 간단하게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스라엘 역사책들을 보면은 이 전쟁이 엄청나게 치열한 전쟁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왕은 요단강 동편 지역을 다 다스리는 가장 강력한 왕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두 왕으로 말미암아서 굉장한 두려움에 떨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136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시를 지어서 부를 때“아모리 왕 시혼을 죽인 이에게 감사하라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하는 감사의 찬송을 지어 부를 만큼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아주 중요한 전쟁이었고 어쩌면 이스라엘이 위기에 몰렸던 그런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바산 왕 옥을 키가 엄청나게 큰 거인이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철침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철침대의 길이가 아홉규빗이나 될 만큼 엄청난 거인이 사용하는 그런 철침대를 가졌다는 이것을 봤을 때 학자들은 이 바산 왕 옥과 아모리 왕 시혼은 아주 신체가 장대하고 포악하고 힘이 강한 누구도 덤빌 수 없는 그런 왕이었고 그 나라는 이미 이스라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을 말해주느냐 하면 그 당시 가나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철 병거를 가졌습니다.
철병거와 철침대를 가졌다는 것은 이스라엘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전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당시 청동기 문화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구리를 다룰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을 가졌다 하면은 이 가나안에 살고 있던 이방 족속들은 벌써 철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오늘날 군사적으로 비교한다면은 이스라엘을 재래식 무기를 가진 군대요 이 이방 족속들의 군대는 최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는 핵무기를 가지고 미사일을 가진 군대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연정 연승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군사 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는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여호수아서 12장이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보여주는 가운데 오늘 1절부터 6절 사이에서 만약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왕 시혼과 또 바산 왕 옥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고 이스라엘에게 길을 내어주었더라면은 이들은 패배하지도 않았고 이들은 멸망 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목표는 요단강 동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계획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대항하고 대적해 옴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은 이들을 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 두 왕을 쳐부수고 그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 수 있도록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는 그런 장면을 우리는 민수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한 전쟁
우리가 이 본문 말씀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바로 이스라엘의 승리가 군사력에 의한 승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 전쟁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40년 동안 광야를 헤쳐 나오면서 그들은 지치고 지치고 또 지쳤습니다. 이제 대충 싸우고 그냥 주저앉아서 둥지를 틀고 살고 싶다 할만큼 그들은 사실 피곤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잘 훈련된 군사력을 갖추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던 그 왕들은 최신의 철재무기를 가졌고 고도로 훈련된 군대를 가지고 있는 그런 왕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워서 백전백패를 하는 장면을 오늘 성경은 보여준다는 겁니다.
우리가 오늘 이 성경 본문을 통해서 31명의 요단가 서편에 있는 왕이 이스라엘에게 패배했고 두명의 요단 동편에 있는 왕들이 패배해서 33명의 왕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장면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의 출발에서부터 끝나는 과정까지를 우리가 쭉 지켜보면은 그 전쟁은 군사력의 우위에 의한 전쟁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들과 불신앙인들이 싸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전쟁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한 전쟁임을 우리에게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수아서 11장 23절을 보면은“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7년 이상 계속되었던 전쟁을 이제 마무리 짓고 전쟁의 승전 보고서를 12장에서 기록을 하면서 여호수아서 전편을 지금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바로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해라 이렇게 싸워라 하신 그 말씀대로 그 명령대로 행했기 때문에 그들이 이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 인생의 승패는 세상적인 어떤 힘이나 능력에 좌우된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바로 믿고 그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할 때 우리는 우리의 험난한 인생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 방식대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어릴때부터 부모님에게 불순종하고, 이제 자라면서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불순종하고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떄에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체질화 된 사람은 계속해서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권위에 대해서 어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말씀에 대해서 내 자신이 온전히 순종하고 그 뜻을 따를 때 우리 자 신들은 인생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은 나의 나 된 것이 나의 실력이나 나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나의 나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합니다.
단순히 능력을 가진다 힘있는 자가 이 세상을 승리한다면은 우리 자신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승리케 하신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가나안 동편의 왕들과 가나안 서편의 왕들과 싸워서 이긴 그 이김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긴 전쟁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오신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경험에 의하면은 지금까지 지내온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합니다. 젊었을떄는 그 말에 실감을 못한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참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로 말미암았다는 고백을 하게 된답니다. 젊어서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자는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3. 불의한 세력들과 싸워 이긴 전쟁
세 번째로 오늘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불의한 세력과 싸워 이긴 전쟁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서 진군해 올 때 불의한 세력들은 규합을 했었습니다. 그들은 호전성을 지닌 족속들이었고 이기적인 집단들이었습니다. 서로 반목 질서했고 탐욕적이었고 악을 위해서 열심을 내는 그런 무리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앞길을 가로막았던 시혼이나 또 바산 왕 옥 같은 사람도 얼마든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좋은 관계로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의하고 악한 왕들이었기 때문에 요단강 서편에 있었던 31명의 왕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이스라엘의 대적자로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완악했고, 그들의 모습은 잔인했고, 그들의 모습은 때로는 비겁하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하고 믿는 사람들을 대적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악인의 발은 빠르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빠른 악인의 발은 결국 멸망을 향해서 달
려갈 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최후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을 오늘 성경을 우리에게 증언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정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져야 됩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악의 세력은 우리 믿는 자를 쓰러뜨리고 넘어뜨리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그때 우리 자신들이 영적으로 담대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순종하고 바로 서지 못할 때 우리는 악의 세력에 의해서 패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중심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서 그들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4. 분열된 자들은 승리할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 전쟁
오늘 이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이 있다면은 분열된 자들은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9절부터 24절까지에서는 요단강 서편에 있었던 왕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에 아이 왕이요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압둘람 왕이요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그렇게 16절까지를 보시면은 전부 16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16명의 왕을 치는데 는 이스라엘이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16명은 이스라엘의 남부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왕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16명의 왕을 치는데는 단시일 내에 그들을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17절부터 24절에 나오는 이 왕들을 치는데는 굉장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7년의 정복 전쟁기간동안에 3/2이상을 이 북쪽 15왕을 치는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힘을 쏟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16명의 왕 그리고 북쪽의 15명의 왕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의 지경이 되는 그 가나안 땅에는 모두 왕들이 31명이 통치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어집니다.
이 31명의 왕들이 다스렸던 전체 면적 넓이는 얼마만하다고 그랬습니까? 제가 앞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의 넓이가 우리 나라의 강원도만 하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이스라엘 하면은 엄청나게 큰 나라라고 착각을 하기 쉬운데 사실 이스라엘은 우리 나라 강원도 크기 정도밖에 안돼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힘있는 또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유대 민족들이 사실 불과 얼마 안되지만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그들이 역사 속에서 남긴 그런 족적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요단강을 건너서 점령한 그 땅의 넓이는 강원도만 했고 그 점령한 땅을 통치하고 있었던 왕들은 31명이었다는 겁니다.
그 땅을 만약 31등분을 해서 놓았을 때 얼마정도 되겠습니니까?
아마 어떤 나라들은 우리 나라 조금 큰 면만 할 것이고 어떤 나라들은 조금 작은 군만 할 것이고 군과 면사이쯤 될 줄 생각이 되어집니다. 좋게 말하면은 면장 또는 군수정도 수준이 되는 왕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제 이스라엘을 대항했습니다.
여러분, 조그만한 나라에 일곱 족속들이 살았고 일곱 족속들이 그냥 일곱 나라들을 구성하고 사는 것이 아니고 거기를 31개 나라로 쪼개어서 그들이 거기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유고슬라비아 같은 나라도 과거에 유고슬라비아가 쪼개어져서 세르비아 코소보 모테그로 등등 많은 나라로 쪼개어진 것도 민족과 종교 이런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라가 쪼개어 지고 거기에 전쟁이 일어나고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공격에 들어가서 점령한 이 땅에 있는 31명의 왕들은 전부다 소 영역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왕들이었습니다. 크게 나누면은 7개로 나뉘는데 7개도 결국은 합칠 수가 있는 그런 여러 가지 여건이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내가 잘났다 아니다 내가 잘났다 전부다 잘난 사람들만 설치고 그 잘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나라가 31개로 쪼개어져 있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 인간의 탐욕 인간의 자기 중심적인 생각들이 바로 그 좁은 땅덩어리를 31개로 나누어서 이스라엘에 대항을 해 왔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이스라엘에 의해서 다 패배를 하고 마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여러분, 지방 자치제를 우리 나라에 이제 시작한지가 불과 몇 년이 됩니다만 아직도 지방 자치제에 많은 패망들이 우리 사회에 상존하는 것을 보면서 참 안타까움을 금치 못합니다. 이 지방 자치제가 제대로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보다 그 제도를 움직여 나가는 사람들이 변화되어야 되겠고 그 사람들 마음속에 탐욕이나 이기적인 생각 그리고 소영웅주의 이런 것이 없어져야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정착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간의 갈등 지역적인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가 판치는 그 가운데 이 지방자치제는 여러 가지 모습만 이렇게 드러내는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방자치제가 성공하는 선진국들의 예를 우리가 보면서 이 지방자치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변화되고 인간이 성숙해 져야만이 지방자치제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이 지금 점령해 들어간 그 땅들은 지방자치제가 철두철미하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31개의 왕국으로 쪼개어져 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제도적이나 외형상으로는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그들은 하나되지 못했고 서로서로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그러다 보니까 힘을 하나로 모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방을 공격하고 북방을 공격함으로 말미암아서 그들은 완전히 거기에서 전멸을 당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 줍니다.
독일이 지금은 세계의 선진국 대열에 끼여 있지만은 불과 몇 백년 전만 하더라도 독일은 후진국이었습니다. 유럽에서 하나의 후진국에 불과했습니다. 땅덩어리는 프랑스나 영국 못지 않게 유럽의 중심국가이긴 했습니다만 독일은 종교개혁이 일어날 그 시기에는 나라가 한 300개에서 350개 정도로 이렇게 막 쪼개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여기 성경에 나타나는 요단강 서편의 31명의 왕들과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여러분 독일 동화들이 많지 않습니까? 독일 동화들 읽어보면은 뭐 나라를 반을 쪼개어서 누구에게 주고 또 누구에게 주고 하는데 그 나라 반조각 해 봐야 사실 우리 나라 면이나 이 정도밖에 안됐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계속 열악한 후진국으로 전락해 갔고 그 독일을 다스리는 집권세력은 사실 어쩌면은 독일 사람이라기 보다는 지금의 체코 왕가가 독일을 다스리게 됐고, 오스트리아 왕가가 600년을 독일을 다스리게 됐고, 다른 스페인 왕가에서 독일을 다스렸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이센이라는 조그만한 나라가 독일을 하나씩 하나씩 통일함으로 말미암아서 결국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해서 독일이 통일되고 독일이 이제 유럽의 중심국가로 등 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분열된 상태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31명의 이름도 없이 지역만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는 왕들의 모습,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처절하게 패배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시는 그 원리를 따라서 정말 사랑의 끈으로 하나되어지고 힘을 모을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이스라엘도 12지파로 나뉘어져 있지 않았습니까? 12지파로 나뉘어져 있었지만은 이스라엘은 이들과 싸우면서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기 지파의 어떤 이기심이 때때로 불쑥 솟아올랐고, 탐욕이 생겨 났지만은 그러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해서 그들은 하나 되었고 그들은 가나안 복지의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가 세계 모든 기독교회들보다도 더 철두철미하게 분열되어져 있다는 사실에 우리 자신들은 주목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한국만큼 교파가 많은 나라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만큼 이단이 많은 나라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바로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반성해야될 첫 번째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됩니다. 여러분, 지역적으로 동과 서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전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국 교회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하나되는 역사를 이루어내기 전에 우리 한국 교회는 남북 통일이니 지역갈등이니 말 할 자격이 없습니.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회계하고 반성해야 될 부분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만큼 많이 분열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민족 복음화를 부르짖으면서 뒷전에서는 교회를 쪼개어 나가고 분열하는 일들이 다 반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령이 하나되게 하시는 이 원리를 따라서 교회가 하나되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교회들이 모습들을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2절부터 3절을 보면은“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했습니다.
우리들도 교회 안에서 서로서로 용납하고 수용하고 사랑하고 그 사랑의끈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가정이 하나 되고, 교회가 하나 되고, 사회가 하나 되고, 직장이 하나 되고 이렇게 서로서로 하나 되는 운동을 우리는 벌여 나가야 도리라 믿습니다.
하나 되는 운동은 내 자신이 양보하고 상대를 수용하고 용납하는 정신이 없이는 결코 하나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점령하고 있었던 31명의 왕들은 이 하나되는 일에 등한히 했고 그들은 이기심과 탐욕과 아집과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서 그 좁은 땅덩어리를 쪼개고 쪼개서 결국은 이스라엘에게 정복을 당하는 사실을 우리 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31왕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싸웠던 자들의 승리였습니다.
최선의 힘을 다해서 싸웠던 자들의 승리였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서 믿음을 가지고 싸웠던 자들의 승리였습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승리였고, 적극적인 믿음의 승리였고, 진취적인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협력하며 하나되어 승리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