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개역개정] 시편 95:8
성도에겐 처한 상황과 환경을 달리 볼 수 있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함이 있다. 이는 처한 상황과 환경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왜 처한 상황과 환경때문에 마음을 몹시도 사납게 하는가?('완악하다'는 히브리어로 '카샤'인데 그 뜻은 '몹시 사납게하다, 고통스럽게하다' 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을 역사(애굽과 광야)속에서 경험했다. 그 경험은 애굽에서는 선행된 말씀의 성취로, 광야에서는 한 개인의 간구함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로보건데 믿음은 두 단계에 걸쳐 주어진다.
어떤 이는 말씀을 듣고 믿는다. 어떤 이는 경험을 통해 믿는다. 그러나 말씀은 반드시 경험된다는 것이다. 믿음은 내용(들음)이 있고 실체(경험)가 반드시 있다.
왜 성도임에도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가? 매번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하는가?
성도가 처한 상황과 환경은 원망하고 시비 걸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실하고 성실하신)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해 보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내용과 실체)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마음을 빼앗겨 몹시 사나운 상태가 되지 말고 마음을 지키라. 무엇으로 어떻게?
신앙하며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였는가? 이루 셀 수 없을 많큼 많지 않는가! 상기하면 된다. 잠시 추억에 젖어보자. 그때에 하나님이 지금의 하나님이시지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보다 지금의 나를 더 사랑하고 계신다. 나와 더 하나되길 원하신다.
성도가 처한 상황과 환경은 결국 복이 된다. 시가 된다. 노래가 된다. 믿음의 실체가 된다.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사나운 사람이 되지 말자. 안그래도 사나운 세상인데 성도까지 사나우면 해가 뜬들 세상이 밝아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