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MB 친형 이상득 의원 | | (서울) 노무현 일가의 비리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가운데 치러진 4.29 재.보궐 선거가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 속에 마감됐다.
이날 선거는 전국 16개 지역에서 전체 유권자 131만9천614명 중 45만4천714명이 투표에 참여, 잠정투표율 34.5%를 기록했다고 중앙선거관위원회가 밝혔다.
이 수치는 교육감선거를 제외한 것으로 관심을 모았던 5개 지역의 국회의원 재선거 투표율은 40.8%를 기록, 이번에 처음 치러진 교육감 선거 투표율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투표율은 23.5%에 그쳤다.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로만 따질 경우 이번 투표율은 지난 2001년 10.25 재보선 때의 41.9% 이후 최고치를 기록, 정치 혐오감이 높아가는 가운데 의외로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지역별 투표율은 △ 인천 부평을이 29.1%, △ 울산 북구가 46.7%, △ 전북 전주 덕진은 38.3%, △ 전북 전주 완산갑이 37.8%, △ 경북 경주 53.8%로 집계됐다.
또 기초단체장을 뽑는 △ 경기도 시흥의 투표율은 19.8%, △ 교육감 선거가 치러진 충남.경북 2곳의 투표율은 21.3%로 국회의원 선거보다는 다소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했다.
한편, 친이-친박 구도로 관심을 모았던 경주 선거에서는 지난해 4월 18대 총선 투표율 51.9%보다 더 높은 53.8%의 투표율을 보이며 결국 정수성 후보가 당선됐다.
이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박근혜 전 대표의 아성인데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친박연대'로 출마해 당선된 김일윤 당선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하면서 또한번 한나라당이 친이-친박 공천논란을 낳았기 때문.
한나라당은 경주지역 후보로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한 정종복 후보를 다시 재공천, 박 전 대표의 안보특보를 지낸 4성장군 출신의 친박 무소속 정수성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결국 한나라당의 공천이 또한번 무리수였음을 입증한 셈이다.
이는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을 다시한번 보여준 것으로, 한나라 지도부 책임론과 함께 무기력한 여당인 한나라당이 결국 계파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향후 정국이 표류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 수도권이라 민심의 척도로 간주, 한나라-민주 양당 모두 공을 들였던 인천과 기초단체장을 뽑는 경기도 시흥에서 민심은 '정권심판론'을 외쳤던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민주당 후보로 인천 부평을에서 출마한 홍영표 후보와 시흥시장 후보로 출마한 김윤식 후보가 각각 두곳에서 승리했다.
그런 가운데 무소속 연대를 결성, 민주당을 박차고 나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신건 전 국정원장이 전북 전주 덕진과 전북 전주 완산갑에서 각각 당선됨으써 민주당 또한 충격과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 체제 쇄신이라는 지도부 물갈이론 속에 정 전 장관 복당을 놓고 또 한차례 홍역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충격적인 소식은 울산에서 날아들었다. 한나라-민주 양당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를 선택했다. 몇차례 낙선에도 발바닥으로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조 당선자가 이념을 넘어서 정치에 염증을 느낀 서민들의 틈새를 파고든 결과라 주목된다.
결국 이번 재보선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패와 계파갈등으로 사분오열된 식물여당 한나라당의 0:5 완패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예고된 사태였다는 지적이다.
애초 지난해 18대 총선때 박근혜 전 대표를 포용하지 못하고 측근들을 내세워 공천파동을 낳은 MB 대통령의 포용력 부족과 '고소영-강부자'로 대표되는 내각 인선 실패, 또 대운하 철회를 국민들에게 말하고는 4대강 정비로 이름만 바꾼 '말바꾸기', 무리한 미디어법 강행 등으로 청와대와 여당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임기 2년차를 맞은 이명박 정권은 여당인 한나라당의 무기력함에 무기력으로 대응, 정치력을 스스로 상실하고 마는 실수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할수 없게 됐다. 이는 결국 좌파세력을 오히려 살려주는 결과로 나타났으며, 민심이 돌아서고 정치가 표류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
ㅁ www.usinsideworld.com - 손충권 논설위원
2009년 04월29일 23:21분 09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