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교수님의 책을 보고 나름 이해한 체계불학에 대한 생각일 뿐이니,
그저 읽을꺼리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제목과 같이 불학을 셋으로 말하면.. 이와 같이 연구불학, 체계불학, 실천불학이라고 할 것입니다.
각각은 문사수에 대비됩니다.
체계불학은 중심에 있는 불학이니, 연구불학의 연구성과를 수용회통하고, 실천불학의 실천지침으로 제공검증되는 불학입니다.
다시 말해 연구불학의 성과를 받아들여, 실천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들어, 실천불학에서 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불학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연구불학(Research Buddhology)은 문헌연구라고 할 것입니다.
기존의 초기, 부파, 대승초기중기말기, 금강승에 이르기까지,
모든 불학을 문헌을 통해 연구하는 인문학적 불학이 모두 연구불학에 들어간다고 할 것입니다.
즉 인문학적 연구와 지식 불교학입니다.
여기서 기존 학설을 뒤집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면 체계불학에 수용됩니다.
지도를 만드는 소스불학을 연구불학이라 할 것입니다.
체계불학은 지도만들기라고 할 것입니다.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종합하여 실천을 위한 지침을 만드는 것입니다.
즉 신앙적 신행과 심성 불교학입니다.
불교신행에 구심점이 되어야 할 가장 중심이 되는 불교학인 각학입니다.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하나로 엮는 것이니, 마치 등산할 때 산의 지도를 만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불학에 통달한 자가 그 모든 불학을 회통하여 온전한 불학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은 흩어져 있는 불학을 회통하여 하나의 살아있는 불학을 만드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실천불학(Implement Buddhology)은 지침을 통해 삼계육도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불학이라기보다는 불교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불교이므로 삶의 현장에서, 수행의 현장에서, 보살도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실제 윤회의 삶에서, 윤회를 벗어나는 수행에서, 윤회속 보살도에서 실천해보아,
가장 실천에 부작용이 없는 완전한 지침을 찾는 피드백 역할도하는 현장불교라 할 것입니다.
굳이 학을 붙인 것은 편의상 붙인 것이고, 불교의 신앙과 수행이라고 할 것입니다.
ps)
아래 하사도에 해당하는 말은 지금의 저 자신에게 주는 말이고,
뒤의 두가지 중사도 상사도에 해당하는 말은
미래의 저 자신에게 상상 실험으로 미리 주어보는 말입니다.^^
지금 마음이 행복하지 않은데,
지금 마음이 행복할 줄 모르는데,
다음 생에 행복할까?
지금 마음이 해탈하지 못했는데,
지금 마음이 해탈할 줄 모르는데,
다음 생에 해탈할까?
지금 마음이 보리심을 발하지 못했는데,
지금 마음이 보리심을 발할 줄 모르는데,
다음 생에 보리심을 발할까?
택도 없는 소리다.
인과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은 죽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오직 도반님들의 공부가 나아가셔서,
오늘도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하고...
오늘도 해탈하고 내일도 해탈하고...
오늘도 보리심을 발하시고 내일도 보리심을 발하시기를 기원합니다._((()))_
첫댓글 도솔미 도반님, 무더위에 공부 잘 되시나요?
사실 제가 가만 보면,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입니다.
표현이 실례가 안된다면,
다듬어지지 않은 옥과 같은 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