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Mesopotamia]
서아시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지역 일대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현재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시리아의 북동부, 이란의 남서부가 포함된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부근을 경계로 하여 홍적대지(洪積臺地)인 북부의 아시리아와 충적평야인 남부의 바빌로니아로 나누어지며, 바빌로니아는 다시 북부의 아카드와 남부의 수메르로 나누어진다.
수메르에서 일어난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을 모체로 하여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형성되었다.
강 유역을 제외한 지역은 사막 또는 반사막이며, 연간 강수량도 200mm 이하로 건조하다. 유역 일대는 연간 300mm 이상의 강우량과 하천 관개에 의하여 쌀·밀·보리·대추야자 등이 산출된다.
북부 및 동부의 습곡(褶谷)산지는 중요한 유전지대이며, 키르쿠크와 모술이 그 중심지이다.
1) 메소포타미아문명의 특색
이집트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의 기원과 형성기는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쪽이 사막으로 막힌 가늘고 긴 나일 계곡과 많은 지류에 비하여 사방이 확 트이고 평탄한 메소포타미아 하상지대(河床地帶)는 그 지리적 조건이 대조적으로 다르다.
자연적인 방벽(防壁)이 거의 없는 비옥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어느 쪽으로부터도 외적이 침입할 수 있었으므로 이집트처럼 단일 지도자에 의한 통일국가 형성이라는 이상(理想)은 이루어지기가 어려웠으며, 그러한 야망이 있었던 왕일지라도 그 명맥을 오래도록 지속시켜 나갈 수는 없었다.
예컨대 수메르인 도시국가의 경우, 왕은 진짜 주권자인 각 지방신(地方神)들의 단순한 집사(執事)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들이었음이 알려져 있다.
그것은 지방신이 정치·경제·노동력·생산 등의 일체를 장악하는 이른바 <신권적 사회주의(神權的社會主義)>하의 통제사회였기 때문이며, 신전이 그 행정적인 중심지였다.
따라서 수메르의 도시국가에서는 성역(聖域)에 창고·작업장·서기(書記)의 방 등을 짓고, 그 주위에 주택을 밀집시키는 도시계획이 실현되었다.
그리고 이 성역의 중심을 이루는 높은 지대(地臺)에 신전이 건축되었다.
이러한 인공적인 고지대(高地帶)는 곧 거대한 규모로 발전하였고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견줄 만한 위용을 지니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지구라트(ziggurat)이고, 평원에 있어서의 지표적(地標的) 효과는 사막에 있어서의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기능과 상징하는 의미는 파라오의 분묘인 피라미드와 현저한 차이가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오랜 역사에 있어서 각 지방의 대립항쟁, 외적의 침입, 새로운 세력의 흥망 등은 예사로운 일이었으므로, 전란은 끊이지 않았다.
이와 같은 혼란에도 불구하고 메소포타미아문명은 수메르 이후 약 3000년에 이르렀고, BC539년에 신 바빌로니아왕국이 멸망될 때까지 뚜렷한 특질을 유지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미술에서는 수메르미술·바빌로니아미술·아시리아미술, 그리고 신 바빌로니아미술로 구별하여 각각 관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