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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뛰라
성경본문 : 잠언 19장 1-3
1.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2.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
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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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일 목사
할렐루야!
이번 주간에는 추석 명절이 들어 있습니다. 좋은 때이고 고향을 찾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수해를 당한 고향에 가려면… 마음이 무거우실 겁니다.
예수 믿지 않는 친척들이 많은 분들은 명절에 갈등을 많이 느끼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잘 지키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명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명절에 추모예배를 드리도록 순서지를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예배 후에 꼭 받아가셔서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명절이라는 이유로 주일 성수하는 일을 접어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손님과 생선은 사흘이면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가서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주일 전에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어디에 가든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으로 부끄러움 없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잠언 19장 1~3절 말씀 가운데
▶ 19장 1절 :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나으니라”
1절은 두 가지 상황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그 하나는 가난하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성실한 생활을 하는 사람의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어리석으면서도 제 고집을 버리지 않고 완고하게 행동하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 19장 2 절 :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
2절은 아무런 생각 없는 열심이나 그릇된 충고를 따라가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19장 3절 :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3절은 그릇된 길로 들어선 자에 대한 설명인데… 결국 그 사람 자신이 만들어낸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고난을 겪으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원망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열심히 하더라도 바르게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열정적으로 무엇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못되면,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용서되거나 칭찬 받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뛰더라도 목적지를 향해 뛰어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열정적인 성품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침울해 보이는 적 없이 언제나 즐거움이 넘쳐 보이고 활력이 넘칩니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면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흥이 나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정적인 사람 "디도"
성경에도 그런 인물이 있습니다.
[디도]라는 사람입니다.
[디도]는 [디모데]와 함께 [바울]에게 믿음의 아들이었습니다.
디도는 부탁(권함)을 받고 바울과 그 일행보다 더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자진해서 고린도에 갔습니다(고후 8:17).
고린도후서 8장 17절 : "저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For Titus not only welcomed our appeal, but he is coming to you with much enthusiasm and on his own initiative. (NIV)
디도는 모든 일에(여러 가지 일에) 열심이 있는,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22절 :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 것을 여러 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은고로 더욱 간절하니라"
In addition, we are sending with them our brother who has often proved to us in many ways that he is zealous, and now even more so because of his great confidence in you. (NIV)
이처럼 열정이 넘치는 사람…, 활력이 넘치는 사람… 열심인 영적 생활은 감탄할 만한 자질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도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열정적인 것이 옳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열정이 지식과 함께 하지 않으면 해로울 수 있습니다.
잠언 19장 2절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
로마서 10장 2절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복잡한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식 없는 열정이 재난을 불러올 수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 예를 들어 도로교통법과 자동차 운전방법을 모르는 무면허자가 운전하고 싶은 열정이 있다고 해서 운전을 한다면 자신도 불행해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 시계의 작동방법이나 제작 기술을 모르는 사람이 시계를 고쳐야겠다는 열정만으로 시계를 뜯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열정적으로 하는 것도 좋지만 알고 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기로 결심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신앙생활의 기본에 대해서 배우지 않고 성경적인 지식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열정적인 활동을 한다고 해도
-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거나…
- 신학적인 오류에 빠져 이단적인 행동을 하거나…
- 교회의 전통적인 질서를 무너뜨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 다른 성도들에게 아픔을 주고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 - 지식 없는 소원을 가진 자
본문 말씀(잠언 19장 1~3절)에 보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 그들은 지식 없는 소원을 가졌습니다(2절).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지식 없는 소원을 가진 자들입니다(2절).
어떤 지식이 없습니까?
"구원"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믿게 하시는지, 왜 이 땅에 살 게 하시는 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미련한 자는 입니다.
잠언에서 흔히 사용된 '지식', '지혜'라는 말은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통합니다.
잠언 1장 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믿고, 참된 길을 가고, 참된 진리를 따르고, 영생을 확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기는 믿지만 바르게 믿지 못합니다.
오직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유명해지고 출세하고… 보란듯이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도 그런 문제만을 해결해 주는 분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무당처럼 생각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해결해 주는 해결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종합병원 원장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병이 들었을 때만 육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게 되고 급기야는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복 주시면 부자도 되고 병도 나을 수 있습니다.
저도 기도 받고 병 고침 받았던 체험이 있고, 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고 병이 나았다는 간증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만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만을 생각한다면 결국 자신에게도 유익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부르신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 하나님의 자녀된 삶을 살며 이 세상에서 많은 인생의 어려움과 슬픔, 기쁨을 함께 경험하면서 비록 힘이 들고 어려워도 빛 되고 소금된 삶을 살며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천국을 소개하고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광스럽게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의 영화로운 것만을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염장 식품(소금에 절여 만든 식품)의 부패방지의 염량은 3%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사실 교회에서 나온 통계들도 정확히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 기둥교회에서도 교역자들이 매월 통계를 냅니다.
저는 교역자들 각자 맡은 지역의 가정수가 얼마이며, 누가 나오는지, 안나오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매달 이사간 성도, 별세한 성도, 이민간 성도…등 각 지역의 변동사항에 대해 정확하게 보고 받습니다.
그런데 전국에 있는 교회에 "교인수가 얼마나 됩니까?"라고 물으면 "우리 교회는 몇 명 모입니다"라고 답하는 숫자를 모두 합하면 대한민국 전체 국민 숫자보다 많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숫자만 늘려서 통계를 내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기독교인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줄이고 줄여도 20%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예수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20%가 넘는데도 이 땅이 여전히 어둡고 죄가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3%의 소금만 있어도 맛을 내고 썩지 않는다고 하는데 20%가 넘는 기독교인들이 이 땅에 있다고 하지만 어떤 모임에 가보면 그곳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들이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스스로 녹아져서 다른 것들을 썩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소금의 모양만 갖추고 있고 녹지 않으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 - 자신의 길을 스스로 굽게 하는 자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 집사, 권사, 장로, 목회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불평하고 원망하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바른 소원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은
● 자신의 길을 스스로 굽게 하는 자입니다(2,3절).
하나님과 사람을 잘 원망하는 사람은 발이 급하여(성질이 급하여… 참아 기다리지 못해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굽게 하는 자입니다(2,3절).
대표적인 경우는 이스라엘 백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모세의 인도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였습니다.
홍해를 지나 광야를 지날 때 먹을 것이 없어 힘들어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계속 똑같은 만나를 먹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애굽에서 살던 때를 회상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며 불평하고 투덜댑니다.(출16:1-3, 민11:1-6)
그때 모세는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출16:8) 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원망은 계속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접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원망했습니다(민14:1-3).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민14:27)하시며 땅을 탐지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40년 간을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하며 자신들의 죄짐을 질 것을 경고하셨습니다(민14:34).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참지 못하여 40일이면 도착하였을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불평하던 사람들의 후손들만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때로 인간적인, 세상적인 생각으로 불평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박국에 보면 하박국처럼 "어느 때 까지리이까?"(합1:2) 하며 탄식합니다.
"어찌하여"(합1:3)하며 탄식합니다.
모든 과정을 거쳐 하박국 3장 17절에서 19절에 보면 하박국이 변화되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3:17~19)
상황이 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어느 때 까지입니까,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습니까"하며 탄식하던 사람이 나중에는 "이것이 없어도, 저것이 없어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찬양했던 하박국과 같은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와서… 배우라.
죄악된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어쩌면 버려진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에게 '내게로 와서 고쳐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명하셨습니다.
고쳐 배우려면 겸손해져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해져야 하며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빈 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소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10:17)"고 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설교 말씀을 잘 듣기만 해도 성경 말씀을 잘 배울 수 있습니다.
배우는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 했습니다.
우리 기둥교회에서 성경신학원(PB Academy)을 개설하여 성경을 가르칩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려고 성경공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 들어야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되기 때문에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읽어야 합니다(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습니다.
☛읽으면 깨달아집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가만히 앉아 책만 본다고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를 내어 읽으면 좋습니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그 소리를 귀로 듣는 것이 그냥 읽는 것보다는 공부의 효과가 더 큽니다.
배우면 확신하게 됩니다(딤후 3:14).
여러분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깨달아지면 확신하게 되고, 확신하게 되면 확신한 대로 살 결심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배우려 하지 않고, 읽지 않기 때문에, 듣지 않기 때문에 깨달아지지 않고 확신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번 읽었다고 해서 읽는 것을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①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책입니다.
② 가장 잘 전수된 책입니다.
③ 가장 많이 보급된 책입니다.
④ 읽고 또 읽는 책입니다.
남여노소, 빈부귀천, 학식의 고하를 막론하고 읽고 또 읽으면 읽을 때마다 은혜 받는 말씀이 성경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다가 병고침 받고, 성경을 읽다가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제가 중학교 때는 중국의 무협영화가 유행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무협영화를 보러 잘 다녔습니다.
무협소설도 많이 읽었습니다. 지금도 주인공 이름이 다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그때 봤던 영화와 소설을 지금 또 보고 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 예수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 읽는 것입니다.
성경은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새롭습니다.
왜 여러분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배우라고, 쓰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할까요?
성경말씀에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고 하셨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성경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지 않으면 열심히, 열정적으로 일하더라도 일을 망칠 수 있습니다.
교회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임원을 시킬 때 성경공부 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임원으로 선출되면 성경공부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일하기로 약속했는데 사실 지금까지 공부하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는지도 모르고, 안그런척 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꿈이 충동적이고 단순히 열정적이기만 하다면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야망이나 열정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고후12:2)
그것을 위해 기도해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인지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셨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꿈과 소원이 여러분이 지닌 능력과 재능에 합한 것이고 그것을 위해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면 그 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십시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순히 꿈만 꾸고 있다면 그것은 몽상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배우십시오.
늙었어도 배우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게 됩니다.
우리 기둥교회에도 나이드신 분들 가운데도 휴대전화를 갖고 계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걸고 받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배워야 합니다. 아들, 며느리, 손자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세요.
돌아서면 잊어 버려도, 안되더라도 자꾸 배워 익혀야 합니다.
제가 송구영신예배를 마치고 아는 분들한테 휴대전화로 "2002년이 복된 삶이 되시고 평안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문자 메시지 기능을 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서는 답장이 오는데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전화해서는 "왜 전화했어?"라고 묻습니다.
바르게 배우고 배운 것을 바르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드셨어도 TV도 보고, 뉴스와 신문도 보고, 잘 모르는 얘기가 나오면 알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기계의 기능도 익히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래야 치매도 안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게 좋은 것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제가 1년 반 전에 목 수술을 하고 설교를 할 수 없어 미국에 사는 동생 집으로 쉬기 위해 공항에 갔습니다.
다른 때는 배웅하러 별로 나오지 않았는데 그때는 우리 교회 신학생들과 교육전도사님들이 모두 나왔습니다.
그런데 모두 검은 양복을 입고, 넥타이도 같은 것으로 매고 나왔습니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와 준 사람들이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려고 들어가는데 "~님!"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교회 전도사님이 부르는 것 같아서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신학생들과 교육전도사님들이 일렬로 서서 마치 조폭영화에 나온 사람들처럼 "잘 다녀오십시오"하고 90도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얼마나 챙피하던지요….
저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한 이벤트였지만 "영화를 보더라도 안좋은 것을 너무 많이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것을 보고 듣느냐에 따라 다음 행동도 똑같아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바른 것을 보고, 바른 것을 배우고, 바른 것을 행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명절 때 고향에 갈 것이고, 친척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뛰어야 멀리 뛰고 오래 뛸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잘 했다" 칭찬 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