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염 치
박경선
수필-
염 치
박경선
준원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것 축하한다. 시골집에 찾아왔을 때도 고마웠고, 서울 일터로 간다며 대구 집에 찾아왔을 때도 고마웠다. 너희들이 찾아와도 선생님은 너희들 얼굴 보며 내 손으로 밥 한 끼 해 먹이는 것이 선생님의 유일한 축하법이란다. 결혼할 때면 늘 하던 대로, 크리스털 패에 축시 써서 축시 패나 선물할게. 칠십에 접어든, 초등학교 때 선생을 기억해 주는 너희들이 정말 고맙다. 수보도 지금 경대 로컬 법대 3학년이지만 곧 시험을 친다니 기대가 된다. 종일이는 경대병원에서 연세대로 옮겨갔다. 의술로 사람을 돌보는 일이니 별로 걱정이 안 되지만, 수보나 너는 법조인의 길을 간다니 솔직히 걱정되네. 험한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바른 신념으로 잘해 나갈 수 있을지.
그래도 나를 잡아주는 너에 대한 믿음 하나 있다. 초등학교 때 담임으로서, 27살에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네가 어려운 가정환경에 꺾이지 않고 바르게 살아왔기에, 너의 어려웠던 경험이, 법정에 서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도 큰 아량으로 작용할 자산이 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 믿음으로 말한다. 너는 박주영 판사처럼 따스한 법조인이 될 것 같다. 유튜브‧유퀴즈에 초대자로 나온 박주영 판사는 ‘사람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판사다’고 정의하면서 ‘판사 뒤에는 아무도 없고, 판사가 무너지면 인권이나 생명을 지켜줄 수 없으니, 판사는 염치로 살아야지요.’ 하더라. 정의와 선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염치라니!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의사나 간호사가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면, 판사나 검사, 변호사는 올바른 법으로 ’사람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염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박주영 판사는 20대 청년 3인이 모텔에 모여 동반자살을 시도하다가 잡혔는데, 구형에 앞서 청년의 환경을 조사해 보니, 앞날에 대한 꿈도 없고 의지할 가족도 없어 택한 자살 시도였단다. 그래서 한 청년에게 피붙이 여동생을 찾아가라며 책 한 권과 조카에게 선물 사줄 돈과 차비를 챙겨주며 다시 자살을 시도하지 않도록 다독여 보냈단다. 판사가 피고인을, 선생이 제자 걱정하듯 대한 그 인품에서 연대 의식마저 느껴지더라. 감동했다. 피고인 오빠의 여동생도 누리 소통망에 판사의 그런 친절을 올려 세상에 알려졌단다. 화제가 된 것은 이 사실이 아니라 박주영 판사의 수필로 쓴 판결문이었다. 판사가 형을 집행할 때, ‘양형의 이유’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반 위에서 피고인에게는 반성을, 피해자에게는 위로를, 사회 구성원에게는 각성을 주고 싶어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수필 형식으로 썼단다. ‘무슨 판사가 공적인 문서에 구형을 수필로 쓰냐?’며 비난할 때 법복을 벗을 각오로 썼단다.
판사가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수필 형식으로 판결문을 쓰면 안 되고, 근엄해서 무게 있는 딱딱한 판결문으로 써야 한다는 것은 관념에 굳어버린 사고가 아닐까? 나는 지금 쉬운 편지 형식으로 너희 이름을 부르며 수필을 쓰고 있다. 내 제자들에 대한 걱정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법조인으로 출발하는 젊은이나 법 집행에만 충실해지려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필을 편지 형식으로 쓴다고 해서 수필의 격이 떨어질까. 격이라는 게 뭐냐? 때로는 판사의 딱딱한 판결문의 격을 깨어버리고 수필 형식으로 쓴 판결문이 더 격조 높은 문장이 되어 심금을 울릴 수 있지. 기댈 곳 없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생명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그 어떤 비난도 각오하고, 판사의 염치로 쓴 수필 식 판결문은 이것이었다.
<청년들에게 쓰는 판결문>
자살을 막으려는 수많은 대책과 구호가 난무한다. 그러나 생을 포기하려는 이의 깊은 고통을 우리는 제대로 공감하기 어렵다. 밖에서 보기에 별것 없어 보이는 사소한 이유가 삶을 포기하게 만들 듯, 보잘것없는 작은 것들이 또 누군가를 살아 있게 만든다. 누군가 내민 손이 고마워서, 모두가 떠나도 끝까지 남아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미안해서, 지금껏 버텨온 자신이 불쌍하고 대견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비록 하찮아 보일지라도 생의 기로에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은 그저 그에게 눈길을 주고 귀 기울여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각설)
준원아, 네가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 ‘선생님께 글쓰기를 잘 배워서 논술을 잘 써서 합격했어요.’하는 인사말 편지를 보내온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글쓰기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던 그 실력이라면 나중에 판결문을 쓰게 될 때, 이렇게 마음 울릴 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겠다는 너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박주영 판사는 자살뿐 아니라 산재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 이야기도 하더라. 선박 건조 현장에서 한 달 사이에 네 명이 사고로 사망한 장소에 가보니, 그 환경에서는 누구라도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단다. 고용주가 돈만 생각하다 보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에 눈길 돌릴 여유가 없겠지? 그저 인력 동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하청업체에서 노동력이 헐한 미숙련자를 고용해 일을 시키다 보니 근무 하루 만에 사망하는 등, 어린 사람이나 나이 많은 사람의 사망이 많단다. 작가 김훈 선생도 <생명 안전 네트워크>를 만들며 ‘지금 죽는 젊은이들이 힘 있는 재벌, 국회의원, 정치가의 아들이면 산재가 계속 발생하겠느냐’며 사회에 그 물음을 던졌단다. 침묵하고 사는 나부터 염치없는 부끄러운 어른임을 말해주는 물음이었다. 지금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생겼다지만 법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단다.
준원아, 가진 자의 욕심을 줄여, 빈곤한 자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하는 염치가 번져가는 사회를 꿈꿔보자. 작년 5월에 86세로 돌아가신 정광진 변호사 얼굴이 크게 떠오른다. 그때 조선일보에는 1995년에 서울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한꺼번에 세 딸을 잃어 받은 보상금 6억 원 과 자신의 부동산 7억 원을 합쳐 맹아학교에 기증, ‘삼윤(三允) 장학재단’을 설립했던 정광진 변호사의 공적을 되뇌어 기렸다. 6월에는 ‘인터뷰 365’가 선한 영향력을 펼치며 이 시대의 희망과 사랑의 나침반이 되어준 제35회 '굿피플 베스트10'(2023년 6월 15일 기준)으로 고(故) 정광진 변호사를 선정했다.
준원아, 너는 지금 변화사이니까 민사사건에서는 소송대리인. 형사사건에서는 피고인의 변호인이나 고소인의 대리인이 되어 억울한 사람의 입장을 잘 대변해 주는 일에 주력할 테지. 어떤 일을 할 때라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베풀며 살다 간 염치 있는 선배 변호사가 계셨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나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고귀한 삶이지만 우리 마음속에 그런 분을 흠모로 모시며 살면, 내가 사는 곳에서부터 보잘것없는 생명이라도 존귀하게 여기며 서로 보호해 주려는 염치가 퍼져나가겠지. 나도 얼마나 더 살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지만, 사는 날까지 나 하나 꽃 피우고, 너 하나 꽃 피워, 생명을 귀히 여기는 세상, 온 세상이 꽃 필 그날을 바라며 조금씩 도우며 살아가자꾸나. 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