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맥을 이은 연 제작 명인 김정옥 씨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연을 날리는 좋은 시기가 됐다.
3대째 맥을 이으며 한국 전통의 혼이 담긴 연 제작의 명인 김정옥(75) 씨. 그는 광주 남구 포충로 빛고을공예창작촌 107호에서 여름철에도 땀을 흘리며 연을 만들고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 씨는 연을 만들기 위해 바삐 움직이면서도 반딧불이 사는 마을인 남구 대촌동 야평경로당 (대한노인회광주남구지회 소속)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사용했던 ‘통신연’을 비롯해 해방 이전 전라도에서 사용했던 동갱이연, 홍어딱지연(가오리연)과 제비연, 독수리연, 도굿대연 등 우리의 전통미와 혼을 담은 연 등이다.
우리나라 연은 ‘방구멍연’이 특징이다. 연 한가운데에 동구란 구멍을 뚫은 ‘방패연’을 말한다. 여기에 태극무늬를 그려 넣으면 태극연이 된다. ‘방패연’은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강한 바람에도 잘 상하지 않는다.
연날리기는 3가지 방법이 있는데 ◇ 높이 띄우기 ◇ 재주부리기 ◇ 끊어먹기(연싸움) 등이다. 높이 띄우기는 연을 얼마만큼 멀리 높이 띄울 수 있는가를 겨루는 놀이이고 재주부리기는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연을 왼쪽 오른쪽 급상승 급강하 등 다양한 곡예를 말한다.
끊어먹기(연싸움)는 2개 또는 그 이상의 연이 서로 교차하여 연실을 비벼서 끊어먹기를 겨룬다. 이를 위해서는 연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기술이 요구된다.
훈장이었던 김정옥 씨의 할아버지와 고수였던 선친은 모두 연의 명인이었다. 3대째 전통연을 만드는 김 씨는 90년대 말부터 각종 전시회와 전수교육 및 계승활동을 해오고 있다.
김 씨는 2009년 고 김대중 대통령의 국상을 맞아 하얀 가오리연 400개를 이은 ‘상주연’을 국회의사당 하늘에 띄워 고인의 명복을 빌기도 했다. 그는 각종 행사 때 초대를 받아 연을 날린다.
파란 하늘에 연을 날리기 위해 빨갛게 언 손으로 열심히 얼레를 돌리는 아이들이 있는 풍경은 우리나라 겨울 농촌의 대표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김수곤(76) 씨는 “어렸을 때 겨울에 햇볕이 든 시골 고향의 집 흙담에 기대어 연을 날렸다.”라며 “그때가 매우 그립다.”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연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진덕여왕 때 비담(琵曇)과 염종(廉宗)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유신 장군이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고려 말엽 최영 장군은 탐라국을 평정할 때 군사를 연에 매달아 병선(兵船)에 띄워 절벽 위에 상륙시켰으며 불덩이를 매단 연을 적군의 성안으로 날려 보내 성을 불태워 공략했다고 <동국세시기>에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는 세종대왕 때 남이 강화도에서 연을 즐겨 날렸다는 기록과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연을 이용해 섬과 육지에 소식을 전하거나 작전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영조는 연날리기를 즐겨 널리 민중에게도 보급될 수 있도록 적극 장려하였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민족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54년 연날리기 대회가 광복 후 처음으로 전라도에서 열렸다고 전해진다. 1956년 서울에서 개최한 제1회 전국 연날리기 대회에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대회장에 나와 관전할 만큼 연에 관한 관심이 높았다.
오늘날에는 지방별로 각종 행사 때 연날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어 연이 우리 전통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자리 잡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