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오도송(悟道頌)
盡日尋春不見春 진일심춘불견춘 仄仄平平仄仄平
芒鞋踏破壟頭雲 망혜답파롱두운 平平仄仄仄平平
歸來隅過梅花下 귀래우과매화하 平平平平平平仄
春在枝頭已十方 춘재지두이시방 平仄平平仄仄平
요연비구니<了然比丘尼>
하루종일 봄(春)을 찾았으나, 봄(春 )은 보이지 않고,
이산, 저산, 헤맨다고, 짚신만 다 떨어졌네!
지쳐 돌아와 뜰 모퉁이, 매화나무 아래를 지나니,
봄(春)은 가지마다, 이미 와 있네그려!
이 게송(偈頌)은 당나라 때 요연비구니(了然比丘尼)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 오도송(悟道頌)이다. 압운(押韻) 춘(春)은 상평성(上平聲) 진통(眞統) 운족(韻族)이고, 운(雲)은 상평성(上平聲) 문통(文統) 운족(韻族)이고, 방(方)은 하평성(下平聲) 양통(陽統) 운족(韻族)이다. 상하평성(上下平聲) 세 운족(韻族)으로 작게(作偈)했다. 사성평측(四聲平仄)은 근체시(近體詩) 작법(作法)으로 보면 맞지 않다. 선시(禪詩) 거개(擧皆)가 당체시(唐體詩) 작법(作法)은 아니다. 이 오도송(悟道頌)도 소개인(介人)마다 글자도 오자(誤字)투성이다. 그래서 화옹이 원래(元來)한시(漢詩) 게송(偈頌)에 맞게 바로 잡았다. 요연비구니(了然比丘尼)에 대한 문헌(文獻)은 자세(仔細)한 것이 없다, 그래서 중국(中國) 인명사전(人名事典)을 찾아보니, 송(宋)나라 때 요연(了然)이란 이름이 나온다, 그 요연이 그 요연이 아닌가? 짐작(斟酌)할 뿐이다, 호(號)는 지통(志通)이라 하고, 태주(台州) 백련사(白蓮寺)로 출가했고, 이십년(二十年) 간 천태교학(天台敎學)을 강연(講演)했다고 하니, 이 게송 내용만 보아도 틀림없는 요연비구니 같다, 이 기록은 예지종기(預知終期)라는 사전(辭典)에 쓰여 있다, 요연 비구니는 죽을 날을 미리 알았다고 한다, 임종 게(臨終偈)도 있다고 하니, 틀림없는 깨친 비구니다. 이 오도송(悟道頌)을 보면 봄을 찾아 이산 저산 헤맸다고 했다, 봄을 찾는 것은 수행 상(修行像)을 표현한 말이다, 봄 찾은 다는 것은 마음 찾은 다는 말이다, 마음을 찾은 다고 몸은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다 된 것을 짚신만 다 떨어졌다고 비유(譬喩)를 든 것이다. 이 선방(禪房), 저 선방(禪房), 용하다는 고승(高僧) 선지식(善知識)은 다 친견(親見)해 보아도 밖으로 찾는 수행은 결국 몸과 마음만 지치게 하고 만다는 뜻이 함축(含蓄)되어 있다. 심외멱불(心外覓佛)은 헛” 수고라는 말이다, 마음 밖에서 마음 찾는 것은 안된다는 말이다, 봄의 화신(花信)은 매화(梅花)다, 매화(梅花)는 불성(佛性)에 비유(譬喩)한 말이다, 이 절 저 절 선지식 다 참방(參榜) 해보아도 결국 도는 자기 마음(佛性), 뜰에 핀 매화(本性)라는 말이다, 매화꽃은 견성성불(見性成佛)에 비유한 말이다. 선시(禪詩)를 읽고 감상(感賞)할 때 유의할 점이 그 점이다. 안목(眼目)이 없는 지견(知見)으로 보면 그냥 읊어 놓은 한시(漢詩)로만 본다. 지난번에 우리나라의 큰 선지식의 오도송을 소개했더니, 어떤 거사님 말씀인즉 자연 풍광을 읊어 놓았다고 해서다. 오도송(悟道頌)은 오자(悟者)의 자내증(自內證) 소리다. 말 속에 담긴 참뜻(眞意)은 보지 못하면 그런 말은 구업(口業)만, 질뿐이다, 모르면 입 닫고 자기 내면이나 살피는 것이 좋다.
선시(禪詩)는 깨달은 자의 소리다, 삼매(三昧)의 채로 걸러진“참” “말”이다, 뼈를 깎는 수행(修行)의 결정체(結晶體)가, 오도송(悟道頌)이다. 안으로 반조(返照)하여 깨달은 경지(境地)를 표현(表現)해 놓은 언구(言句)가, 오도송(悟道頌)이다. 그래서 수행을 좀 해본 사람에게는 선시(禪詩)는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된다. 공감(共感) 공명(共鳴)이 된다, 요연비구니의 오도송은 선사(禪師)들이 애송(愛誦)하는 오도송 중의 하나다. 멋진 선시(禪詩) 아닙니까? 멋과 “참” 삶의 맛이 살아난 오도송(悟道頌)이다. 이런 오도송(悟道頌) 하나 짓고 간다면, 인생(人生)을 헛산 것은 아니다. 오도송은 도(道)‘ 깬 소리다. 수행의 결산(決算)이 오도(悟道)이다, 지난해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 눈과 매화는 (雪中梅)라 해서 예부터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이 많은 시(詩)를 남겼다. 요연비구니의 열반송(涅槃頌) 보자, 수행한 흔적이 역역하다, 오온 망상 무더기 그대로 옛 불당이요, 비로자나 부처님 밤낮으로 옥호광명을 발하시네, 만약 이곳에서 같고 다름없는 이치를 알아낸다면 곧바로 화엄의 가르침이 시방에 두루하리라.< 五蘊山頭古佛堂 毘盧晝夜放毫光 若知此處非同異 卽時華嚴遍十方> 이 열반송(涅槃송)도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 게송이다. 중생(衆生)의 오온(五蘊) 이대로가 불당(佛堂)이라는 말이다. 오온을 떠나서 따로 부처가 있지 않다는 말이다. 마음이 부처라는 말이다.<心卽是佛> 오늘은 요연비구니의 오도송과 열반송을 운통(韻統)에 맞추어서 반추(反芻)해 보았다. 여여법당 화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