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카인의 후예.hwp
카인의 후예 / 황순원
[01~0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아바진 또 요새 왜 그러우?” / “글쎄 말이다.”
“오마니가 좀 말을 해요.” / 어머니가 놀라는 눈을 이리 돌렸다.
“요새 아바지가 박 선생한테 너무해요. 디나간 일두 생각해야디 나빠요. 이제 토디 개혁인가 뭔가 된다구 해서 그럴 수가 있이요? 오마니가 좀 말을 해요. 오마닌 왜 아바지한테 말 한마디 못 하구 삽네까?”
오작녀 아버지 도섭 영감은 이십여 년 동안이나 훈네 토지를 관리해 온 마름이었다. 그동안 웬만한 지주 못지않게 잘살아 왔다. 그것이 요즈음 토지 개혁이란 걸 앞두고는 모든 행동에 있어서 달라진 것이었다. 그게 오작녀에게는 못마땅했다.
딸의 말에 오작녀 어머니의 눈이 더 놀라고 겁먹어 갔다. 이 애가 어쩌자고 갑자기 이런 소릴 해 쌓는지 모르겠다. 가만있지 못하고. 이 애가 이러다간 집안에 큰 풍파를 일으킬라.
“그리구 또 삼득인…….”
오작녀 어머니의 손이 가늘게 움직였는가 하자, 손은 그대로 있는데 바느질감만이 무릎에서 흘러 떨어졌다.
“가만!” / 그러고는 떨리는 손길이 딸의 팔을 와 붙들며 나직한 말로,
“아바지다!”
오작녀도 그만 흠칫하고 귀를 기울였다. /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바지야!”
어머니가 다시 숨소리만으로 속삭였다. / 수십 년 같이 살아오는 동안, 이 여인은 이처럼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남편의 인기척을 알아듣는 것이었다. / 좀 만에 과연 뜰로 들어서는 인기척이 들렸다. 오작녀는 저도 모르게 훌 일어섰다. 그러고는 문고리를 잡고 생각난 듯이,
“삼득이 들어오믄 낼 바주* 엮게스리 좀 보내 주우.”
그러나 어머니는 그저 바느질감만 뒤적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 자기네가 나타내고 있는 낯빛을 남편에게 눈치채이지 않기 위한 몸짓이기도 했다.
오작녀는 섬돌에 올라선 아버지와 어겼다. 고개를 수그린 채 총총걸음을 쳤다.
㉠문득 좀 전에 어머니한테 한 말이 후회되었다. 정작 어머니가 아버지더러 무슨 말을 해서 풍파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 그러나 다음 순간 오작녀의 가슴속에는 좀 전 어머니한테 말할 때보다도 더 굳센 어떤 딴 힘이 머리를 들고 일어섬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든 한 번은 벌어질 일이다. 아버지가 나쁘다. 아버지가 박 선생에게 그럴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삼득이도…….
[중략 부분 줄거리] 농민 대회가 열리고 박훈의 숙부이자 지주인 박용제 영감은 재산을 빼앗기고 면인민위원회에 끌려간다. 박훈 역시 같은 위기에 놓이는데, 오작녀가 박훈과 부부가 되었다고 말하여 박훈을 구해 준다.
도섭 영감은 비석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비석과 정면으로 마주 섰다.
일찍이 이 훈의 할아버지의 송덕비는 도섭 영감 자신이 감독하여 지대를 닦는다, 콘크리트를 한다, 하여 세운 비였다. 그때도 그는 이렇게 정면에 서서 비가 면바로 섰는가 어쨌는가를 몇 번이나 겨냥해 본 것이었다.
지금 그가 이 비석과 정면으로 마주 섬은 그때와는 다른 것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대번에 이 빗돌을 넘어뜨릴까 하는 노림인 것이다.
도섭 영감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눈썹꼬리가 몇 번이고 피끗거렸다.
마침내, 에잉! 하는 소리와 함께 도끼가 후려쳐졌다.
비석 한중동이 헤짝하게 금이 가더니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 메아리 소리가 들려왔다.
또 한 대 후려쳤다. 또 한 대 후려쳤다. 모주리 때레쥑에라! 모주리 때레쥑에라! 도끼가 내릴 적마다 비석은 돌가루를 뿌리면서 부서져 나갔다.
이 소리에 칠성이 어머니가 밖을 내다보고는 깜짝 놀라,
“여보, 오작네 아반이 비석을…….”
아까부터 윗목에 무릎을 안고 앉아 담배만 빨고 있던 칠성이 아버지가 아내의 등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심상한 빛이었다. 그는 오늘 이보다 더 놀랍고 무서운 사실을 몸소 보고 듣고 한 것이었다.
“제발 당신 오늘은 밖에 나댕기디 마소.”
도섭 영감은 비석 밑동까지 다 때려 부수자 이번에는 맨 처음에 넘어뜨린 빗돌 윗동강을 또 몇 조각이고 내리쳐 부수는 것이었다. 꼭 무엇에 취한 사람 같았다.
그 일도 다 끝나자 도섭 영감은 붉어진 눈으로 자기 둘레를 한번 훑어보고는 휙 훈네 집 쪽을 향해,
“독사를 쥑일래믄 깨깨 쥑에야 한다아!”
그 소리가 메아리가 돼 돌아왔다. 그러고는 조용해졌다.
칠성이 어머니가 살그머니 다시 밖을 내다보더니,
“여보, 오작네 아반이 갔나 붸다. 나가서 어디 방칫돌감이나 하나 있나 보소.”
㉡그네는 좀 전부터 그걸 궁리하고 있은 것이었다. 다듬이질할 적마다 분디나뭇집 할머니한테 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때 다듬잇돌을 하나 장만한다면 오죽 대견하랴. 더구나 저 비석돌이면 면판이 얼음처럼 매끄러운 다듬잇돌이 될 게라.
[A] <칠성이 아버지는 잠자코 담배만 빨고 있었다. 아까 용제 영감네 집에서 여자 고무신 한 켤레 집어 온 것만도 속이 개운치 않은 것이었다.
“여보, 어서 다른 사람이 주워 가기 전에 나가 보소.”
벌써 좀 전에 남편더러 오늘은 제발 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한 말 같은 건 잊고 있었다.
칠성이 아버지는 그냥 잠자코 담배만 빨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이었다. 저 부서진 비석돌은 고무신과는 다르다. 저건 벌써 비석이 아니고 그저 보통 돌멩인 것이다. 흔히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누가 주워 가도 좋은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 주워 와도 상관없지 않은가.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그중 제일 큰 비석 조각을 하나 집어 들었다. 글자가 많이 새겨져 있어 다듬잇돌로는 마땅치 않았다. 반반한 놈을 골라잡아 보면, 그건 또 좀 작아서 마음에 안 들었다. 이왕 깨 놓으려면 좀 쓸 만하게 깨 놓지 않고 이게 뭐람.>
*바주: ‘바자’의 방언. 대, 갈대, 수수깡, 싸리 따위로 발처럼 엮거나 결어서 만든 물건. 울타리를 만드는 데 쓰임.
01. ㉠, ㉡의 공통점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서술자가 특정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② 한 인물의 시각에서 다른 인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③ 서술자가 인물의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④ 한 인물이 다른 인물들과 갈등을 벌이는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⑤ 서술자가 인물의 행위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의 결과를 예측하고 있다.
02.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에 보인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은 북한의 토지 개혁을 배경으로, 국가 권력이 민족 구성원을 둘로 가르면서 폭력적으로 사회를 재편할 때 벌어지는 상황을 보여 준다. 마름이던 도섭 영감은 일제 강점기에 지주인 박훈의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해방 후 토지 개혁이 시작되면서 박훈이 잠재적 죄인으로 지목되자, 도섭 영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박훈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노력한다. 도섭 영감의 딸 오작녀는 박훈과 이전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기에, 도섭 영감과 오작녀는 갈등을 빚게 된다.
① 도섭 영감에 대해 ‘디나간 일두 생각해야디 나빠요.’라는 오작녀의 말에서 오작녀는 박훈과의 이전 관계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군.
② 마름을 하며 ‘웬만한 지주 못지않게 잘살아 왔다.’라는 것을 통해 도섭 영감이 일제 강점기에도 자신의 이익을 좇으며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군.
③ ‘낯빛을 남편에게 눈치채이지 않’으려는 오작녀 어머니의 행동에서 남편과 딸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오작녀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군.
④ ‘송덕비’는 박훈의 집안과 친밀했던 지난날을 환기하는 것으로, 이를 도끼로 후려치는 것에서 도섭 영감이 박훈과의 이전 관계를 끊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군.
⑤ 도섭 영감이 ‘자기 둘레를 한번 훑어보고는 휙 훈네 집’을 향해 ‘독사’라고 외치는 것에서 도섭 영감이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여 박훈을 죄인으로 지목하였음을 알 수 있군.
03. [A]에서 ‘칠성이 아버지’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위해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다.
②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과정에서 타인의 잘못된 선택을 원망하고 있다.
③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서 타인의 생각을 지지하려 하고 있다.
④ 타인의 비극적인 상황에 침묵하는 자신을 보며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고 있다.
⑤ 타인의 요청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요청하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