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가 품은 뜻 = '인간은 만물의 척도'
몸에 붙여진 다양한 이름들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아야만 그 뜻 알 수 있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씨(자식)’의 뜻으로 쓰는 ‘子’자는 ‘○’ 즉 해(하늘)가 사람의 머리에 내려온 것의 표시다. 그러니까 하늘이 아버지고 사람은 해의 씨(아들, 자녀)라는 뜻이다.
또 사람의 몸에서 손은 머리가 지시하는 것을 실천하는 기관이므로 머리와 손을 주객(종속)의 관계로 설명한다.
사람의 머리에 해(하늘)가 내려와 있다고 하는 것은 우주와 자연과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철학적 사유의 단초가 된다.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우주와 사람 사이에 ‘해’를 매개로 상호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하늘이 사람의 머리에 내려와 있으므로 사람은 땅에 있으면서 하늘의 존재가 되고 머리의 지배를 받는 인체는 저절로 해를 담은 그릇(容器)이 되어 ‘신(身)’이라는 음으로 불리는 것이다.
이렇듯 한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인체가 반영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그리스의 유명한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 또한 자연에 속하는 것이고 보면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는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주의적 철학은 ‘자연을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는 자연과학적 철학과 같은 논리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서로 대립하여 갈등을 빚기도 했다.
① 사람의 머리는 하늘이 내려와 있는 곳
사람의 머리를 나타내는 한자에는 ‘首’가 있다. 이 글자에서 하늘(해)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首’자는 두 개의 뿔이 난 양의 머리 모양으로 ‘우두머리’의 뜻이다. 양 토템의 종족으로부터 기원한 글자로 ‘首’자가 하늘(해)과 관련이 있음을 말해주는 요소는 ‘수’라는 음이다. ‘머리’를 ‘수’라고 부르는 것은 ‘우주’, ‘해’, ‘하늘’의 상징인 ‘ • (점 주)’와 관련이 있다. ‘주’와 ‘수’는 서로 같은 계열에 속하는 음(소리)으로써 이것이 하나의 계통에 속해있다.
‘首(수)’자는 ‘모양(形)’이나 ‘의미(義)’로서가 아니라 ‘소리(音)’로써 ‘우주(해, 하늘, •)’의 ‘주’와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모습으로 하늘을 상징하는 데에는 이와 같은 철학적인 배경이 깔려있다.
하늘의 상징인 해는 사람의 머리에 내려와 있을 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을 나게 하고 자라게도 하며 늙게도 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해의 도움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이런 관계 때문에 해는 모든 만물의 상징으로 쓰인다. 관념적으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재로 생명현상에는 해의 작용이 일부분 관여하기 마련이다.
해와 사람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인체 내에서도 수많은 세포와 세포를 거느리는 기관과 기관을 포함하는 상위 기관들이 층층의 관계 속에서 동일 구조를 이루고 있으므로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사람은 작은 우주(小宇宙)’, ‘사람이 곧 자연(하늘, 해)’, ‘사람을 보면 자연을 알고 자연을 알면 사람을 알 수 있다’ 등의 표현을 자유롭게 사용했던 것이다.
특히 사람을 ‘소우주’라고 부르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암시가 담겨 있다.
우리 몸은 전체로는 하나지만 그 안에는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머리와 손과 심장과 간… 등 제각각의 기능을 가진 다양한 기관들의 결합으로 되어 있으며 각각의 기관들은 또 그 안에 수많은 세포조직을 거느리게 되는데 이것이 마치 우주의 구조와 닮아 있으므로 사람을 ‘소우주(小宇宙)’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소우주’라고 하는 것은 사실 인체를 우주적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주적 안목이란 요약해서 말하면 ‘모든 개체는 부분이면서 전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다.
다소 복잡한 것처럼 들리는 이 말은, 사람의 머리는 머리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우주이지만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하늘에 속한 것이며, 사람의 손은 손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우주적 존재이지만 사람의 몸에 소속된 것이며, 입은 얼굴에 소속된 하나의 부분이지만 그 자체로는 그 안에 많은 수의 해(이빨)를 가진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입은 천(天, 우주, 하늘)이고 잇몸은 지(地, 땅, 살, 몸)이며 잇빨은 인(人, 만물)이 되어 이빨을 사람과 같은 개념인 ‘치’로 발음하는 것이다)
한자에 이런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한자가 보다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며 근원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조어(祖語-뿌리가 되는 말이라는 뜻의 수사(數詞), 천문(天文), 인체어(身體語) 등이 이에 속한다)’ 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한자의 기원은 물론 한자의 생성과 응용 그리고 한자 상호간의 관계를 추구하는데 거침이 없게 된다.
그 뿐 아니라 한자가 사람의 모습을 이용하여 우주적 현상을 설명하는 철학적 사유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한자를 알면 우주를 알게 되고 우주를 이해하면 한자의 세계를 알게 된다. 사람의 모습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한자는 단순히 사람의 모양만을 흉내 낸 글자가 아니라 사람이 ‘우주적 존재’임을 나타내는 한자식 표현방식이다.
한편 사람과 하늘과의 특수한 관계를 이해하게 되면 사람의 표시인 ‘人(亻)’자의 심장한 의미를 알 수도 있다.
② ‘亻’자는 한자의 기원을 밝힐 단서
우리 선조들은 ‘天地人’을 ‘一二三’으로도 표현하였는데, ‘一, 二, 三’은 글자는 셋이지만 요소는 단 하나 ‘一’로 되어 있다.
이것은 ‘二’와 ‘三’으로 구분해서 쓰기는 하지만 근본 바탕은 ‘一’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二’로 표시되는 ‘땅’은 ‘두 번째 하늘’이라는 뜻이고 ‘三’으로 표시되는 ‘인’은 ‘세 번째 하늘’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人’자는 단순히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인’과 관련하여 ‘세 번째 하늘’이란 의미로 생각해야 하며 ‘세 번째 하늘’이란 뜻에서 ‘하늘을 닮았다’라는 의미를 읽어낼 수가 있다.
‘亻’자가 다른 글자들과 결합하여 ‘닮았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음의 글자들을 통해서 ‘닮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亻’자의 쓰임을 살펴보자.
休(쉴 휴) : ‘쉬다’라는 말을 ‘나무를 닮았다’라는 의미로 나타냈다. ‘쉰다’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休’자를 통해서 ‘나무를 닮은 것’이 ‘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무를 닮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木’자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仁(어질 인) : ‘어질다’라는 말을 ‘二를 닮은 것’이라는 의미로 나타냈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二’자는 바탕에 ‘어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어질다’라는 말의 개념은 ‘二’를 통해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仕(섬길 사) : ‘섬기다’, ‘벼슬하다’라는 말을 ‘士를 닮았다’라는 식으로 나타냈다. 따라서 ‘士’자는 ‘섬기다’라는 의미와 관련이 있으며 ‘섬기다’라는 말의 개념을 ‘士’를 통해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侎’자를 하나 더 살펴보기로 하자.
‘侎’자는 ‘어루만질 미’자다.
‘米’자는 ‘쌀 미’자이므로 ‘侎’자는 ‘쌀을 닮다’라는 의미를 나타낼 것이다. 뜨거운 태양이 벼를 어루만져서 결실에 이른 것이 ‘쌀’이다. ‘쌀’의 ‘해의 살’이라는 의미를 이용하여 마치 ‘햇살이 벼를 어루만지는 것’으로 여겨 ‘侎’자를 ‘어루만지다’라는 뜻으로 쓰는 것이다.
한편 ‘米’가 ‘해의 살’을 나타내므로 ‘米’에서 ‘살’을 제거하면 ‘十’이 남게 되는데, ‘해의 살’에서 ‘살’을 제거하고 남은 ‘해’와 ‘十’이 대응하여(米 -灬=十, 해의 살-살=해) ‘十’이 ‘해’를 나타내는 기호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十’자가 ‘태양을 상징하는 기호’라는 말은 고대문화의 의미와 해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다.
한자가 이런 식이다.
이것이 한자의 구조를 이해해가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논리를 잘 읽어낼 수만 있다면 많은 한자들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 가능해진다.
③ 한자는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문
‘한자(漢字)’와 ‘깨달음’이라는 말 자체가 조금은 생소한 주제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알고 보면 한자는 깨달음을 전제로 만들어진 글자다.
한자를 만든 주체들은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통하여 관념의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표현하는 문자를 창안해낸 것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체험과 깊은 수행을 통하여 자신과 세상을 망라하는 ‘천지인(天地人)’이란 하나의 사고체계를 수립하였으며 이 체계를 설계도 삼아 일사분란하게 각각의 이름을 지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크게는 우주 자연으로부터 작게는 미세한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논리체계로 인해 우리가 쓰고 있는 ‘이름’들은 어느 것 하나 체계적이지 않은 것이 없고 사소한 것이 없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나 우리 인체의 명칭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깨달음에 있어서 우리 인체는 우주의 에너지를 감지하는 감각기관(센서)이며 우주로 통하는 통로이기도 하고 우주가 내려와 머무는 정거장이며 동시에 미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몸에 붙여진 다양한 이름들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아야만이 비로소 그 뜻을 알 수가 있다.
이런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글자가 ‘文’자다.
글자를 ‘문자(文字)’라고 부르므로 ‘文’자의 풀이 여하에 따라 ‘문자’의 개념이 달라지게 되며 ‘文’자의 풀이에 따라 한자 전체의 성격규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文’자의 바른 풀이는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진다. [조옥구 한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