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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알레르기 완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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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뿌리를 찾아서 스크랩 [6] 문무왕 비문(碑文)의 미스터리
주임교수 추천 0 조회 32 16.02.03 06: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6] 문무왕 비문(碑文)의 미스터리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 30대왕 김법민(金法敏), 즉 문무왕(文武王)의 능비(陵碑) 파편 하나가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61년 경주시 동부동 주택가에서 발견되었다. 그 전 조선 정조(正祖) 때인 1796년에도 능비 파편 두 개가 발견되었으나 실물은 전하지 않고 비문의 탁본(拓本)은 청(淸)의 금석학자 유희해(劉喜海)에게 들어가 「해동김석원(海東金石苑)」에 실렸다. 이 비문은 한당류(漢唐流)의 명문장을 모방하였고, 중국의 경전이나 고사성어(古事成語)에서 따온 미사여구가 많이 들어 있다. 
  
이 비(碑)의 건립연대에 대하여는 문무왕이 죽은 서기 681년이거나 그 이듬해로 추정한다. 비문의 전체 내용은 일부의 파편만 발견된 상태에서 파악이 어려우나, 대체로 앞면에는 신라에 대한 찬미, 신라김씨(新羅金氏)의 내력,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문무왕의 치적(治績), 백제 평정 사실 등이고 문무왕의 유언, 장례, 비명(碑銘) 등이 적혀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문무왕의 시신(屍身)은 유언에 따라 봉분을 쓰지 않고 화장한 뒤 동해에 산골(散骨)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사천왕사(四天王寺) 근방에 의릉(擬陵?가짜 무덤)을 만든 것이거나, 문무왕이 창건한 이 절에 능비만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문 중에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판독불능)지(枝)가 영이(英異)함을 담아 낼 수 있었다. 투후 제천지륜(侯 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하였다.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 그 영(靈)이 선악(仙岳)에서 나와(下略)> 
  
여기서 문제가 되는 대목은 「侯 祭天之胤傳七葉」이다. 후(侯)는 한무제(漢武帝)가 흉노와 싸울 때 청년 장군 곽거병(去病)에게 포로가 되었던 흉노왕 휴도(休屠)의 아들 김일제를 가리킨다. 
  
문제는 이 김일제가 중국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유명한 흉노인이라는 데 있다. 이 비문의 문맥상 문무왕 스스로가 우리 조상은 흉노인 김일제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김일제와 그 후손들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한서와 열전(列傳)에 실감 나게 쓰여 있고 중국서안(西安)에는 김일제의 무덤도 있다. 애매모호한 신화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체가 분명한 김일제를 문무왕이 『우리 조상이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흉노 제국의 황제인 선우(單于) 아래는 여러 왕들이 있었다. 혼야왕과 휴도왕이 다스리던 곳은 옛 진나라 땅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초원(草原)이었다. 하서주랑(河西走廊)이라고 불리는 이곳을 거쳐야 西域(중앙아시아)으로 갈 수 있었다. 한무제는 흉노가 장악하고 있던 이곳을 차지함으로써 실크로드를 열고 서방과 무역을 할 이유가 있었다. 
  
한서(漢書)에 따르면 기원 전 121년 한무제의 명을 받은 청년장교 곽거병이 초원으로 쳐들어온다. 흉노 군대는 패배를 거듭한다. 곤야왕은 흉노제국의 황제인 선우(單于)로부터 문책을 당할까봐 두려워 휴도왕을 꾀어 항복하자고 한다. 휴도왕이 거부하자 그를 죽인 혼야왕은 곽거병에게 항복하는데 휴도왕의 부인 알씨(閼氏)(注-알타이=금을 뜻하는 閼智와 같다)와 아들 김일제, 그의 동생 륜(侖)은 끌려와서 곽거병의 포로가 되어 한무제에게 인계된다. 
  
한무제는 그때까지 성(姓)이 없던 김일제에게 성을 내리는데 금인(金人)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한(祭天) 집안 출신이라고 하여 김씨라고 붙여 주었다고 한다. 이 부분의 해석에 대하여 김병모 한양대 인류학과 교수는 좀 다른 견해이다. 그는 金人이란 「알타이 사람」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알타이가 고향이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을 책임진 일종의 샤먼왕 집안 출신이므로 알타이의 의미를 따서 김씨 성을 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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