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헨리 퍼킨은 18세 때 런던 왕립화학대학에서 아우구스트 폰 호프만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호프만은 독일 출신으로 런던 왕립화학대학의 초대 학장이 된 유명한 화학자였다. 1856년 호프만은 퍼킨에게 석탄 타르에서 나오는 아닐린으로 퀴닌을 합성하는 과제를 주었다. 당시 퀴닌은 말라리아 치료에 수요가 엄청났고, 유일한 공급원은 페루 키나 나무의 껍질이었다. 실험실에서 퀴닌을 합성하라는 과제는 지금 보면 불가능한 일이었고, 퍼킨의 유리기구에는 끈적한 찌꺼기만 계속 생겼다.
어느 날 유난히 녹지 않는 찌꺼기를 마주한 그가 알코올로 플라스크를 헹궈 보니, 놀랍게도 자연에서 얻은 어떤 보라색보다도 선명한 보라색의 용액으로 변했다. 우연히 ‘세계 최초의 합성염료’를 만든 것이다. 모브(mauve)로 불린 이 염료는 패션 유행을 일으키는 데서 나아가 화학을 혁신했다. 퍼킨 자신도 이어 여러 염료를 합성했고, 영감을 받은 다른 화학자들이 그의 길을 따랐다. BASF, 바이엘, 획스트, 아그파 같은 독일 기업들이 곧 세계 합성염료 시장을 장악했으면, 이들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석탄 타르로 실험실에서 염료를 만들 수 있다면 다른 물질은 왜 안 되겠는가? 염료 생산업체로 출발한 이 회사들은 곧 아스피린, 헤로인, 해열제 안티피린을 생산하게 되었다. 17세기에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은 현미경 렌즈를 개발해, 물, 침, 정액 시료 속에서 작은 ‘극미동물’(animalcules)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1828년 크리스티안 에렌베르크는 이 작은 생물에 ‘작은 막대’를 뜻하는 그리스 말에서 따 ‘박테리아(세균)’라고 불렀다. 그러나 세균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 것은 19세기 중반 루이 파스퇴르가 질병의 세균설을 제안한 뒤였다. 이제 질병이 체내 세균의 존재와 관련 있는지 밝히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현미경으로 세균의 대략적인 모양은 보였지만, 세균이 거의 투명해서 세부 구조는 구별할 수 없었다. 1875년 독일 의사 카를 바이게르트와 로베르트 코흐는 갓 발견된 합성염료로 조직 시료 속 세균을 염색해 눈에 보이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고, 파울 에를리히에게 염료에 독성 물질을 결합해, 염료를 흡수한 세균을 죽일 수 있다는 착상을 하게 해 주었다. 그 독성 물질은 비소였고, 매독에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어 1910년 최초의 항균 의약품 살바르산이 시판되었다.
한편 1884년 덴마크 의사 한스 크리스티안 그람은 폐렴으로 사망한 환자의 폐 조직에서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미생물을 관찰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바이게르트와 코흐에게서 영감을 얻은 그는 여러 염료를 시험했고, 요오드와 석탄 타르 염료인 젠티안 바이올렛(gentian violet)으로 시료를 처리하자 일부 세균이 눈에 보이게 되었다. 이 실험을 기반으로 이 염료를 흡수하는 세균과 그렇지 않은 세균을 각각 ‘그람 양성’, ‘그람 음성’이라 부른다.
이후 바이게르트는 또 다른 석탄 타르 염료 사프라닌(safranin)을 ‘대조 염색약’으로 개발해 그람 음성균을 붉게 염색했다. 염색 반응이 다른 것은 세균의 세포벽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며, 이 구조는 세포가 여러 항생제에 얼마나 민감한지도 결정한다. 심각한 감염 환자에게는 즉각적인 항생제 치료가 필요하며, 항생제 선택은 감염을 일으킨 세균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 정확한 동정을 위해서는 세균을 배양해야 하는데 24~48시간이 걸려 치료 시작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길 수 있다. 반면 신속 그람 염색은 15분이면 가능하며, 세균의 분류를 좁혀 표적 항생제 치료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람은 세균을 분류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실험 보고서에서 겸손하게 이렇게 썼다. “이 방법이 아직 매우 미흡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연구자들의 손에서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며 발표한다.” 그의 바람은 확실히 들어맞았다.
퍼킨의 우연한 염료 발견은 염료 산업은 물론 제약 산업의 초석을 놓은 화학사의 기념비적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