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울림 제33차 대전문화유산답사 >
장안진산 성지순례길
○ 일 시 : 2020년 11월 07일(토) 09:00-13:30
○ 집결시간 및 장소 : 오전 9시 대전시청
○ 코 스 : 대전시청역 1번 출구 앞(09:00)-장안진산 성지순례유래비(9:50)-대전시계(10:30)-지방리사제관(11:30)-진산성지성당(11:40)-점심(12:30)-대전시청(13:30)
○ 강 사 : 이창남-(사)대전문화유산울림 이사
11월 첫째주 토요일 문화유산울림의 제33차 답사 ‘장안진산 성지순례길’이 있었습니다. 대전에 성지순례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울림에서도 처음 걸어보는 길이었습니다. 이 의미있고 아름다운 길이 많은 대전시민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면서 후기를 남겨봅니다.
먼저 장안진산 성지순례길은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동에서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으로 이어지는 고개길을 말합니다. 장안동은 우리가 잘 아는 장태산이 있는 동네입니다. 장태산에서 더 남쪽으로 길을 따라가다보면 펜션들이 줄지어 있고 그 가운데에 성지순례길 유래비와 안내지도가 있습니다.
장안진산 성지순례길은 조선시대 천주교인들이 왕래하였던 길로 1791년(정조15년) 신해박해의 원인이 되었던 진산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증손자 윤지충과 무수천하마을의 이름의 기원이 된 무수옹 권기의 고손자 권상연은 친족 간으로 진산에 살았습니다. 윤지충의 어머니(권상연의 고모)도 천주교 신자였고, 돌아가시면서 제사를 모시지 말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어머니의 유언과 천주교의 교리에 따라 신주를 불태우고 유교식 제사를 거부했는데 이는 당시 조선의 성리학 이념에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이 둘은 결국 조선 조정에 의해 사형당한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 윤지충의 나이 33세, 권상연의 나이 41세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가는 전주한옥마을의 전동성당이 당시의 전주 남문 밖, 이들의 순교 장소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동성당에는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거행된 124위 시복식에서 윤지충은 대표 순교자가 되었으며, 권상연도 시복되었습니다.
이들이 살았던 진산은 전라도에 속한 군이었으나 진산사건을 계기로 5년간 현으로 강등되고 진산 군수 또한 유배를 당하였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의 제사 거부가 삼강과 오륜을 저버린 강상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지역 전체가 연좌의 벌을 받은 것입니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자 이 지역에서 살던 천주교 신자들은 고향을 떠나 산속으로 숨어들어 새로운 신앙공동체들을 형성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대전 서구의 장안동입니다.
이번 울림 답사 길이 바로 진산과 장안을 오가는 천주교 신자들의 통행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장안동에서는 한재권이라는 분이 태어나고 자란 곳인데 한때 진잠 장안동 신도회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박해를 피해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리골로 옮겨살다 결국은 붙잡혀 1866년 12월 13일 전주에서 순교하였는데 1984년 모두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성지순례길 유래비에서 시작하여 계곡을 따라오르니 깊은 가을의 정취가 밀려옵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주인이 이소하고 떠난 빈 둥지는 그린 듯 아름답습니다. 경사가 제법 있는 길이지만 지그재그로 길을 내고 로프가 매어져 있어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이 버거워 질 때 쯤 다행히도 고개마루에 다다릅니다.
대전시와 금산군의 경계에 오르면 평상이 있어 쉬어가기도 딱입니다. 물로 목을 축이고 가져온 간식들로 당도 채우고 이창남 강사님의 나무와 숲 이야기를 들으며 한숨 돌립니다. 아마 이 길을 넘던 천주교 신자들도 이 고개마루에서 지친 다리를 쉬어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원래 장안진산 성지순례길은 바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새로 난 길을 따라가기로 하고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갔습니다. 내리막길이 가파른데다 낙엽이 덮여 약간은 걱정되는 길인데 다행히도 돌계단이 놓여있습니다. 이런 산길에다 누가 돌계단을 놓았을까 너무 힘들었겠다 너무 고맙다 싶던 차에 그 주인공들도 만났습니다. 천주교 대전교구에서 만들고 있는 길인데 저희 울림이 처음으로 지나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수고하십니다. 고맙습니다~^^
원래는 막현리 삼거리쪽으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새로난 길로 내려오면 사제관, 진산 쉼터 쪽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거기에서 순례길 유래비에서 헤어졌던 대표님을 다시 만나 차를 타고 진산 성지성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 진산 성지성당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927년 처음 지어진 건물로 초기 한식 목구조의 고유한 양식과 의장적 요소가 남아있는 한국 천주교 유산으로서의 건축적 가치가 높아 2017년 5월 29일 등록문화재 제68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ㅇ 개요
진산지역은 조선조 후기에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받은 윤지충이 가족들에게 천주교를 전파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최초의 박해였던 신해박해(1791년)의 진원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후 1887년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어 천주교인들이 다시 모일 수 있게 되자 공소형태로 종교집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민가에서부터 시작된 교회건물이 몇 차례 지어졌고 1927년에 건립된 성당건물이 현재까지 미사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신해박해 때 순교한 두 신도(윤지충, 권상연)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시복됨(2014년 8월16일)으로써 천주교의 성지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ㅇ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동서로 긴 축을 가진 3량식 바실리카 형식으로 맞배지붕, 중앙종탑의 중규모 성당건축의 전형적 모습을 하고 있다. 목조구조는 내외부에 모두 노출되어 있는데 내부에서는 중앙통로(내이브)의 상부 지붕을 받쳐주는 기둥들이 가지런하게 배열되어 더욱 차분한 느낌의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중앙통로 상부에 高窓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지만 양쪽의 측랑보다 높은 지붕을 설치하여 기본적인 바실리카식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벽기둥 사이의 공간은 징두리를 상부를 모두 유리창으로 마련하여 밝은 분위기의 성당내부를 연출하고 있다. 주출입구 상부에는 중2층을 두어 성가대석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2004년 수리 때 철거하였다. 외벽은 원래 비늘판 벽이었으나 후에 몰탈을 덧씌웠고 종탑 또한 목조였으나 1983년 철거하고 시멘트벽돌 조로 새로 만들고 현관도 새롭게 덧붙였다. 원래 남녀 구분된 현관이 양쪽에 있었는데 가운데로 합쳤고 양옆의 공간은 고해실과 준비실로 사용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문화재청에는 1983년에 종탑을 고쳤다고 되어있는데 성당 안내판에는 2004년이라고 되어있습니다.ㅠㅠ
고운 성모마리아상과 오랜 역사를 품은 성당 뒤로는 진산역사문화관이 있습니다. 진산초등학교 지방분교가 있던 자리에 2018년 개관하였는데 좌우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진산사건 사료실에는 천주교 대전교구 유지재단에서 보유하고 있는 진산사건관련 사진, 문서 등 사료를 바탕으로 국내 최초의 천주교 박해인 신해박해(진산사건)의 배경과 한국역사 속의 진산사건의 위치를 재조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의 진산문화실에는 행정구역의 변동 등이 잦았던 진산의 역사, 문화, 교육, 사상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진산역사문화관을 마지막으로 순례길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날 좋은 분들과 함께한 성지순례길.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역사의 한 부분을 몸으로 느껴보는 뜻깊은 답사였습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순례길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핸드폰에서는 기종에 따라 세로 사진이 누워있는 경우가 있는데 역시 한번 클릭하시면 제대로 보실 수 있어요.^^
행사가 겹쳐 함께 못해 아쉽습니다.
상세한 답사후기 잘 읽고 갑니다.
가을 장안진산성지순례길이 사진 속에 그려집니다. 임간사님 글도 정겹습니다. 정리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