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에서 세계적인 거장들이 만든 건축작품이 공개됩니다.
이름만 들어도 심쿵한 그들은 승효상 조성룡 김인철과 프란시스코 사닌.
감천문화마을의 원래 이름은 태극도마을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태극도를 믿는 신도들이 부산으로 내려왔다가 이곳에 정착한 겁니다.
어떻게 태극도마을이 도시재생의 아이콘이자 관광명소로 거듭났을까요. 16장의 카드뉴스로 만나보시죠.
부산은 신흥 종교의 성장지이자 발원지입니다 태극도의 본산인 감천문화마을도 그 중 하나죠
"1950년대 태극을 받들며 도를 닦는 4000여 명이 정착"(사하구청 발간 '사하지') 한국전쟁 당시 피란온 신도들이 이주한 장소입니다
태극도는 무극도(無極道)라는 종교로 출발해 한때 신도가 10만 명을 넘었습니다 1936년 조선총독부의 유사종교 해산령으로 교세가 위축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을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닮았습니다 빨강 파랑 노랑으로 물든 형형색색의 지붕 다닥다닥 붙어있는 나지막한 집들과 물통 구불구불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을 보면 '블록마을' '레고마을'이란 수식어가 잘 어울립니다
감천문화마을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모든 길은 통해야 한다' '뒷집 조망권을 막지 말자'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 가파른 언덕에 경사지를 이용한 남향의 계단식 집단주거 형태는 이곳만의 독특한 장소성을 보여준다"
(주경업 향토사학자)
이곳 인구는 2만여 명에서 1990년대 1만 명으로 감소합니다 개별 화장실도 하나 없는 환경 때문에 젊은이들이 떠났지요
2000년대 초반 감천문화마을에도 재개발 광풍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건설사들이 "사업성이 없다"며 덤벼들지 않았습니다
이곳에도 마침내 도시 재생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젊은 예술가의 작품과 그래피티가 마을에 활력을 넣고
2013년에는 미국 CNN에서 아시아 관광지로 소개합니다 원주민이 사생활 침해를 걱정할 만큼 명소로 부상합니다
2013년에는 건축가들이 빈집을 문화명소로 만들자는데 의기투합 2년의 준비-작업 기간을 거쳐 완성을 앞둔 작품들을 만나보시죠
◇독락의 탑
건축가 : 승효상(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대표)
주요작품 : DMZ평화생명동산, 노무현 대통령 묘역 디자인
◇별계단 집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 대표)
선유도공원, 의재미술관, 세비야엑스포 한국관
◇공공의 방
프란시스코 사닌( 미국 시라큐스 대학 교수)
이탈리아 나폴리 단테 광장, 헤이리 뉴타운
◇색즉시공
김인철(아르키움 대표)
웅진 파주사옥, 김옥길 기념관, 솔스티스
흑백사진은 1957년 최민식 작가가 촬영한 감천문화마을입니다 컬러사진은 2015년 감천문화마을의 모습입니다
50여 년의 세월 만큼이나 달라진 모습입니다 앞으로 감천 문화 마을은 어떻게 바꿜까요?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