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12월04일 겨울을 재촉하듯 비가 내리고 난 후...
중구 회현동에서 오르기 시작하여 백범 광장과 안중근 기념관을 지나
계단길을 따라서 남산 정상 팔각정과 nTOWER까지 오른 후에.
한성도성길(순성길)코스를 따라서 장충단공원으로 하산하는 길.....
오름과 내림의 족적 족적에 대한 DATA 남산봉우리 뱃지외
족적에 따른 해발고도와 속도
스마트핸드폰 스포츠 앱(TRANGGLE_GPS)에 나타난 각종 DATA
회현동 남산공원 입구에서 오르는 길, 복원한 석조성곽이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초대 부통령이신 "성재 이시영"님의 좌상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이셨던 "벅범 김구"님의 입상..
안중근 기념관 앞의 "안중근"의사 입상..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안중근의사 휘호 비)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비가 그친 뒤의 운무에 싸인 남산 nTOWER
잠두봉 PHOTO_POINT와 이곳에서 내려다 본 서울시내...
멀리 인왕산과 북악산(백악마루)가 운무에 어렴풋이 눈에 들어 온다...
오랜 세월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 온 남산성곽과 남산타워..
CABLE_CAR STATION 지붕위의 미모저모...
CABLE_CAR STATION 지붕위에서 올려다 본 남산타워...
정상에 올라서서 봉수대와 팔각정을 만난다..
남산하면 떠 올리는 "팔각정"의 모습...
올라오던 길과 반대방향으로 내려 가는 길에서 몇대에 걸쳐 축조한 한양성곽..
장충단공원으로 내려서기 전의 삼일독립운동기념탑..
유관순열사 동상....
이준열사 동상..
奬 忠 壇 ( 장춘단 )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가 살해된 지 5년 뒤인 1900년 9월, 고종은 남소영(南小營) 자리에 장충단을 꾸며 사전(祠殿)과 부속건물을 건립, 을미사변 때 순사한 장졸들의 영혼을 배향하여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처음에는 을미사변 때 전사한 시위대장 홍계훈(洪啓薰), 영관(領官) 염도희(廉道希)·이경호(李璟鎬)를 주신으로 제향하고 대관(隊官) 김홍제(金鴻濟)·이학승(李學承)· 이종구(李鍾九) 등 장병들을 배향하여 제사지냈다. 그러나 ‘창선(彰善)·표충(表忠)의 일이 어찌 군인에게만 한할 것이랴.’는 육군법원장(陸軍法院長) 백성기(白性基)의 제청에 의해 다음해부터 을미사변때 순국한 궁내부대신 이경직(李耕稙)을 비롯, 임오군란· 갑신정변 당시에 순의(殉義), 사절(死節)한 문신들도 추가, 문무의 많은 열사들이 장충단제향신위(奬忠壇祭享神位)에 포함되었다. 당시 이 같은 항일 ·배일(排日)의 인물들을 장충단에 제향한 일은 장병들을 크게 감격 고무시켰으며 일제의 횡포가 극심함에 따라 일반의 장충단에 대한 경모심도 더욱 커졌다.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전후하여 애창된 《한양가(漢陽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어 그러한 일면을 말하여 준다.>
"남산 밑에 지은 장충단 저 집 나라 위해 몸바친 신령 뫼시네/
태산 같은 의리에 목숨 보기를 터럭같이 하도다/
장한 그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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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봤습니다
70년전에는 퇴계로에 해군본부가있었고 60년전에는 내가다니던회사의본사가있어 점심먹고도 남산을 올라가곤한곳입니다
옛날을생각나게해줘서 감사합니다.
그때는 숫총각때라 남산에서 많은 로멘스도 있었슴을 고백합니다
BM om님 즐겨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옛날을 회상하시면서 남은 생이 전보다 더 행복해 지시기를 빌겠습니다.
옛날의 즐거운생각만하고살면 늙을시간이없데유
BMom님이 늙지 않는 비결이 거기에 있었군요... 부럽습니다..
3년전퇴계로를갔는데 옛날 해군본부자리에 무슨백화점이생ㄱ켰더군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군요?? yb는 그 위치를 몰라서 답을 못해 드리겠습니다,
작년에 저도 서울역에서 부터 자둥차 육교를 인도로 만든 길을 지나 저 코스 성곽옆으로 남산을 올라 케이블 카로 남산 송신탑까지 같다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이 사진을 보니 다시 납니다....
육교공원... 만들기 전에는 갑론을박 찬반이 시끄러웠는데.. 서울에 살면서 이번에 첫발을 딛어봤숩니다...ㅎㅎ
그러고 보니 정오엠님은 케이블카를 타셨군요.. 케이블카 요금이 아까워서 않타고 갈때마다 걸어 올라 다닙니다..
세월이 자근자근 씹고 간 남산입니다.
못 된 인간들이 싫도록 밟기도 하고,
인물 난 우리 형제들이 화려하게 장식했을 아픈 젖 무덤입니다.
성스럽게 생각해야 할 듯 합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아직도 나에게 줄 젖은 품고 있다고 상상하거든요.
일년 내내 한 번도 못간 내 엄니의 젖가슴이 그립습니다.
그 엄마의 젖무덤이 그리우시면 언제든 찾아 볼 수 있도록 QRV하겠습니다. 함께 찾아가는 영광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