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서해안으로 놀러 간다고 하면, 대부분 태안이나 안면도를 떠올리게 된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그나마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바닷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의 서해안 고속도로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그만큼 사람들이 사랑하는 관광지라고 볼 수 있다.
올해 여름에 거의 집에만 있었던지라 문득 바다가 그리워졌다. 강원도보다는 서해안이 나았지만, 서해안에도 사람들이 많이들 찾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에는 우리는 겁이 많았다. 수차례 검색 끝에 서해안이면서 한적한 곳으로 꼽히는 '원산도'에서 캠핑을 즐기기로 결론을 내렸다. 보령시에서 서쪽으로 11km에 있는 이 섬은 원래 배를 이용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2019년 12월에 안면도 영목항과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가 생기면서 이동이 편리해졌고, 한적한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
다리가 생겼지만, 여전히 원산도는 우리에게 먼 곳이었다. 충청남도까지 가는 길도 먼데 거기서 또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너야만 원산도가 나왔다. 마지막에 원산안면대교가 눈에 보이자,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기분상으로는 저 멀리 강원도 바다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 싶었지만 한적한 원산도의 풍경을 보자마자 이내 그런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한적함이 그만인 원산도
다리가 생기고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원산도는 서해안의 다른 관광지와 다르게 개발이 덜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여전히 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지만, 그 나름의 풍경도 매력이 있었다. 비포장된 길을 지나, 모래밭이 길게 펼쳐진 해수욕장으로 들어서면서 그 풍경은 점점 더 멋있어졌다.
해외 여행길이 막히고 나서 사람들은 국내로 발길을 돌렸다. 그 덕분에 유명하다는 관광지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게 되었다. 한적한 매력이 있던 산도, 바다도 어딜 가나 사람들이 북적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국내 여행을 다니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함을 느꼈다. 모두들 답답한 마음에 나왔을 것이지만, 다 같이 제대로 된 휴식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사람들의 손길이 아직 덜 닿은 곳부터 찾게 된다. 그래서 원산도를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었다. 마치 이 해변을 우리가 전세 낸 것처럼, 해변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바다의 풍경이 훨씬 더 눈에 잘 들어왔다. 아침나절 푸른빛으로 어슴푸레 밝아오는 모습, 낮의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모습, 그리고 노을의 수려함을 한껏 담은 바닷가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해변가에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모를 충만함을 느낀 이유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즐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찾아드는 철새의 모든 것, 서산 버드랜드
원산도의 여유로움을 눈과 마음에 담은 우리는 이어서 자연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산도와 가까운 곳에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로 알려진 천수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충청남도 서산시에 위치한 천수만은 수심이 얕고 작은 섬들과 암초가 많은 지역이며 1980년부터 진행되어온 간척 사업으로 논과 저수지가 형성되어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다. 이곳의 사계절은 늘 새로 가득하다. 봄, 여름이 되면 여름 철새들이 모여들고, 가을, 겨울에는 오리와 기러기 같은 새들이 군집을 이루어 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천수만에 대해 제대로 알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산 버드랜드'다. 천수만을 체계적으로 보전 및 관리하며 생태관광 활성화에 주력하기 위하여 조성된 생태문화공간이기 때문이다.
버드랜드에서는 천수만에 서식하는 큰기러기, 가창오리, 큰고니 등 200여 종에 가까운 철새의 표본 및 전시자료를 접할 수 있는 철새 전시관, 다양한 철새를 입체감 있게 체험할 수 있는 4D영상관, 철새들을 망원경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오리 기러기 전망대, 버드랜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둥지 전망대, 약초원, 연못,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은 자생식물원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가득했다.
코로나 때문에 아쉽게도 4D영상관이 운영되지 않는 점은 아쉬웠지만, 천수만을 찾아오는 새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또한 '새'를 테마로 했기 때문에 실내외 곳곳에 새의 조각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철새 전시관과 주차장 사이를 운행하는 전기 자동차 또한 새 모양으로 꾸며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새에 대한 모든 것이 있는 이곳의 가장 큰 즐거움은 원산도와 마찬가지로 '풍경'에 있었다. 이곳을 상징하는 둥지 전망대에서 보는 시원한 풍경이란! 전망대 아래에 조성된 정원과 간척 사업으로 조성된 논의 풍경은 답답했던 마음을 뻥 뚫리게 했다. 비록 시간대가 맞지 않아 서산천수만 철새기행전이나 철새탐조투어와 같은 체험 프로그램은 즐기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시설의 모습을 즐긴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태안의 먹거리를 한눈에, 태안 로컬푸드직매장
여행의 마지막은 역시 그곳의 먹거리를 즐기는 것에 있다. 이미 안면도의 항구에서 게국지를 맛보긴 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산에서 태안군, 안면도 그리고 원산도를 다니면서 도로 곳곳에 이곳의 명물로 꼽힌다는 호박고구마, 고추, 호박 등을 하나 가득 늘어놓고 파는 행상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냥 도로에 있는 상가에서 특산품을 사기에는 우리가 너무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친절하고, 깔끔하게 특산품을 판매하는 마트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우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태안 로컬푸드직매장'이었다. 이곳은 태안지역 농업인과 어업인이 직접 수확한 다양한 품목의 특산품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었다. 매장 입구에서부터 여행하는 동안 수없이 보아왔던 고구마, 고추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태안 전체의 특산품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었다. 덕분에 도로를 지나가며 군침만 흘렸던 농수산품들을 편하게 쇼핑할 수 있었다. 여기에 지역에서 직접 만든 전통차, 맥주 등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만 몰랐을 뿐이지, 사실 이곳은 태안, 안면도 등으로 여행을 떠나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였다. 어떤 사람은 하나로 마트보다 더 알찬 지역의 특산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곳만의 다채로운 매력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곳이다. 아쉬울 수도 있었던 여행의 마지막을 충실하게 마무리하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원산도에서 즐겼던 휴식은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말끔히 풀어주었다. 집에만 있어서 답답했던 마음을 해소하기 그만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산안면대교로 이동하는 것도 나름 편리해서 좋았지만, 앞으로 보령시와 원산도 구간에 해저터널이 연결된다고 하니 더 이동하기 편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해저터널이 생긴 후에 다시 찾아가 보기로 결심했다.
*여행지 정보
서산 버드랜드
위치 충남 서산시 부석면 천수만로 655-73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 화요일 휴관)
하절기 (3월-10월) 매일 10:00 - 18:00
동절기 (11월-2월) 매일 10:00 - 17:00
입장료 성인 3,000원 / 어린이 2,000원 / 서산시민 무료
https://birdland.seosan.go.kr/
태안 로컬푸드직매장
위치 충남 태안군 남면 안면대로 1641
운영시간 평일 09:00-20:00 / 금-토요일 09:00-21:00
http://www.taeanlf.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