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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계씨(季氏) 제십육(第十六)
▣ 계씨(季氏) 제십육(第十六)
『洪氏曰 此篇은 或以爲齊論이라 凡十四章이라』
『 홍씨(洪氏)가 말하였다. “이 편(篇)을 혹자는 제논(齊論)『[제(齊)나라 《논어(論語)》]』이라 한다.”
모두 14장(章)이다.』
『○ 논어 ; 계씨 ; 제1장+1』
『○ 논어 ; 계씨 ; 제2장+2』
『○ 논어 ; 계씨 ; 제3장+3』
『○ 논어 ; 계씨 ; 제4장+4』
『○ 논어 ; 계씨 ; 제5장+5』
『○ 논어 ; 계씨 ; 제6장+6』
『○ 논어 ; 계씨 ; 제7장+7』
『○ 논어 ; 계씨 ; 제8장+8』
『○ 논어 ; 계씨 ; 제9장+9』
『○ 논어 ; 계씨 ; 제10장+10』
『○ 논어 ; 계씨 ; 제11장+11』
『○ 논어 ; 계씨 ; 제12장+12』
『○ 논어 ; 계씨 ; 제13장+13』
『○ 논어 ; 계씨 ; 제14장+14』
*논어 ; 계씨 ; 제1장
▣ 제1장(第一章)
『季氏將伐컉臾러니』
『 계씨(季氏)가 전유(컉臾)를 치려 하였는데,』
『컉臾는 國名이니 魯附庸也라』
『 전유(컉臾)는 나라 이름이니, 노(魯)나라의 부용국(附庸國)이다.』
『2有季路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컉臾리이다』
『 염유(2有)와 계로(季路)가 공자(孔子)를 뵙고 말하였다. “계씨(季氏)가 전유(컉臾)에서 일을 벌이려고 합니다.”』
『按左傳, 史記컨대 二子仕季氏不同時어늘 此云爾者는 疑子路嘗從孔子하여 自衛反魯하여 再仕季氏라가 不久而復之
衛也라』
『 《좌전(左傳)》과 《사기(史記)》를 살펴보면, 두 사람이 계씨(季氏)에게 벼슬한 것은 때가 같지 않은데,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마도 자로(子路)가 일찍이 공자(孔子)를 따라 위(衛)나라로부터 노(魯)나라로 돌아와
다시 계씨(季氏)에게 벼슬하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위(衛)나라로 가서 <벼슬한> 듯하다.』
『孔子曰 求야 無乃爾是過與아』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구(求)『[염유(2有)]』야! 이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냐?”』
『2求爲季氏聚斂하여 尤用事라 故로 夫子獨責之시니라』
『 염구(2求)는 계씨(季氏)를 위하여 세금을 거두어들여, 더욱 일을 주도하였으므로, 부자(夫子)께서 홀로 그를
꾸짖으신 것이다.』
『夫컉臾는 昔者에 先王以爲東蒙主하시고 且在邦域之中矣라 是社稷之臣也니 何以伐爲리오』
『 “저 전유(컉臾)는 옛적에 선왕(先王)께서 동몽산(東蒙山)의 제주(祭主)로 삼으셨고, 또한 우리나라 안에 위치
하고 있으니, 이는 사직(社稷)의 신하이다. 어찌 정벌할 수 있겠는가.”』
『東蒙은 山名이라 先王이 封컉臾於此山之下하여 使主其祭하니 在魯地七百里之中이라 社稷은 猶云公家라 是時에
四分魯國하여 季氏取其二하고 孟孫叔孫이 各有其一하고 獨附庸之國이 尙爲公臣이러니 季氏又欲取以自益이라
故로 孔子言컉臾는 乃先王封國이니 則不可伐이요 在邦域之中하니 則不必伐이요 是社稷之臣이니 則非季氏所當伐也
라하시니라 此는 事理之至當이요 不易之定體어늘 而一言盡其曲折이 如此하시니 非聖人이면 不能也니라』
『 동몽(東蒙)은 산(山) 이름이다. 선왕(先王)이 전유(컉臾)를 이 산(山) 아래에 봉하여 그 제사(祭祀)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노(魯)나라 땅 7백리(里) 안에 있었다. 사직(社稷)은 공가(公家)란 말과 같다.』
『 이 때에 노(魯)나라를 4분(分)하여 계씨(季氏)가 그중 둘을 차지하고, 맹손(孟孫)•숙손(叔孫)이 각각 그 하나씩을
차지하였으며, 오직 부용국(附庸國)만이 아직도 노(魯)나라의 공신(公臣)이 되었는데, 계씨(季氏)가 또 이것을
취해서 자기에게 보태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저 전유(컉臾)는 곧 선왕(先王)이 봉한 나라이니,
정벌할 수 없으며, 노(魯)나라 안에 있으니 굳이 정벌할 필요가 없으며, 사직(社稷)의 신하이니 계씨(季氏)가 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사리(事理)에 지극히 마땅하고 바꿀 수 없는 정해진 대체(大體)
인데, 한 마디로 그 곡절(曲折)을 다하시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니, 성인(聖人)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2有曰 夫子欲之언정 吾二臣者는 皆不欲也로소이다』
『 염유(2有)가 말하였다. “부자(夫子)『[계손(季孫)]』께서 하시려는 것이지, 저희 두 신하는 모두 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夫子는 指季孫이라 2有實與謀로되 以夫子非之라 故로 歸咎於季氏라』
『 부자(夫子)는 계손(季孫)을 가리킨다. 염유(2有)는 실제로 모의에 참여하였으나, 부자(夫子)께서 그 일을 나쁘다
하셨으므로 계씨(季氏)에게 허물을 돌린 것이다.』
『孔子曰 求아 周任有言曰 陳力就列하여 不能者止라하니 危而不持하며 顚而不扶면 則將焉用彼相矣리오』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구(求)야! 주임(周任)이 말하기를, ‘능력을 펴서 대열에 나아가 능히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만두라.’고 하였으니, 위태로운데도 붙잡지 못하며 넘어지는데도 부축하지 못한다면 장차 저 상(相)
『[도와주는 신하]』을 어디에다 쓰겠느냐?』
『周任은 古之良史라 陳은 布也요 列은 位也라 相은 줥者之相也라 言二子不欲이면 則當諫이요 諫而不聽이면
則當去也라』
『 주임(周任)은 옛날의 어진 사관(史官)이다. 진(陳)은 폄이다. 열(列)은 자리이다.
상(相)은 고자(줥者)『[봉사]』의 상(相)『[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이 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간해야 하고, 간해도 듣지 않으면 마땅히 떠나야 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且爾言이 過矣로다 虎«~出於탊하며 龜玉毁於¥~中이 是誰之過與오』
『 또 네 말이 잘못되었다. 호랑이와 들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며, 구갑(龜甲)『[거북 등 껍질로]』과 옥(玉)이
궤 속에서 망가졌다면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는 野牛也라 탊은 檻也요 ¥~은 ¤#也라 言在탊而逸하고 在¥~而毁는 典守者不得辭其過니 明二子居其位而不去
면 則季氏之惡을 己不得不任其責也라』
『 시(«~)는 들소이다. 합(탊)은 우리이다. 독(¥~)은 궤이다. 우리에서 뛰쳐나오며, 궤 속에서 망가졌다면 맡아
지키는 자가 그 잘못을 회피할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니, 두 사람이 그 지위에 있고 떠나지 않았으면 계씨(季氏)의
악행을 자기들이 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히신 것이다.』
『2有曰 今夫컉臾固而近於費하니 今不取면 後世에 必爲子孫憂하리이다』
『 염유(2有)가 말하였다. “지금 저 전유(컉臾)는 <성곽이> 견고하며 비읍(費邑)에 가까우니, 지금 취하지 않으면
후세(後世)에 반드시 자손(子孫)의 우환(憂患)이 될 것입니다.”』
『固는 謂城郭完固라 費는 季氏之私邑이라 此則2有之飾辭라 然이나 亦可見其實與季氏之謀矣라』
『 고(固)는 성곽(城郭)이 완고(完固)함을 말한다. 비(費)는 계씨(季氏)의 사사로운 읍(邑)이다.
이것은 염유(2有)가 꾸며서 한 말이나, 그가 실제로 계씨(季氏)의 모의에 참여한 것을 볼 수 있다.』
『孔子曰 求아 君子는 疾夫舍曰欲之요 而必爲之辭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구(求)야! 군자(君子)는 하고자 한다고 말하지 않고 굳이 변명하는 것을 미워한다.”』
『欲之는 謂貪其利라』
『 욕지(欲之)는 그 이익을 탐함을 말한다.』
『丘也聞 有國有家者는 不患寡而患不均하며 不患貧而患不安이라하니 蓋均이면 無貧이요 和면 無寡요 安이면 無傾
이니라』
『 나『[구(丘)]』는 들으니, 나라를 소유하고 집을 소유한 자는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며,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고 한다. 고르면 가난함이 없고, 화(和)하면 적음이 없고,
편안하면 기울어짐이 없는 것이다.』
『寡는 謂民少요 貧은 謂財乏이라 均은 謂各得其分이요 安은 謂上下相安이라 季氏之欲取컉臾는 患寡與貧耳라 然이나
是時에 季氏據國而魯君無民하니 則不均矣요 君弱臣强하여 互生嫌隙하니 則不安矣라 均則不患於貧而和하고 和則不
患於寡而安하고 安則不相疑忌而無傾覆之患이라』
『 과(寡)는 백성이 적음을 말하고, 빈(貧)은 재물이 모자람을 말한다. 균(均)은 각기 그 분수를 얻음을 말하고,
안(安)은 상하(上下)가 서로 편안함을 말한다. 계씨(季氏)가 전유(컉臾)를 취하려 한 것은 <백성의> 적음과 가난함을
근심해서이다. 그러나 이때 계씨(季氏)가 나라를 점거하고 노(魯)나라 군주(君主)는 백성이 없었으니, 고르지 못한
것이며, 군주(君主)는 약하고 신하(臣下)는 강하여 서로 혐의와 틈이 생겼으니,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고르면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아 화(和)하고, 화(和)하면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아 편안하며, 편안하면 서로
의심하거나 시기하지 않아 나라가 기울고 전복되는 근심이 없게 된다.』
『夫如是故로 遠人不服이면 則修文德以來之하고 旣來之면 則安之니라』
『 이와 같으므로 먼 지방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덕(文德)을 닦아서 그들을 오게 하고, 이미 오게 했으면 편안
하게 하는 것이다.』
『內治修然後에 遠人服이라 有不服이면 則修德以來之요 亦不當勤兵於遠이니라』
『 안의 다스림이 닦아진 뒤에야 먼 지방 사람이 복종하는 것이다. 복종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덕(德)을 닦아서
오게 하여야 할 것이요, 또한 먼 곳에 군사를 동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今由與求也는 相夫子하되 遠人不服而不能來也하며 邦分崩離析而不能守也하고』
『 지금 유(由)와 구(求)는 부자(夫子)『[계씨(季氏)]』를 돕되, 먼 지방 사람이 복종하지 않는데도 능히 오게 하지
못하며, 나라가 분열되고 무너지는데도 능히 지키지 못하고,』
『子路雖不與謀나 而素不能輔之以義하니 亦不得爲無罪라 故로 倂責之시니라 遠人은 謂컉臾라 分崩離析은 謂四分
公室하고 家臣屢叛이라』
『 자로(子路)는 비록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본래 의(義)로써 보필(輔弼)하지 못하였으니, 또한 죄(罪)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울러 꾸짖으신 것이다. 원인(遠人)은 전유(컉臾)를 이른다. 분붕리절(分崩離折)은 공실
(公室)을 넷으로 나누고 가신(家臣)이 여러 번 반란함을 말한다.』
『而謀動干戈於邦內하니 吾恐季孫之憂不在컉臾而在蕭墻之內也하노라』
『 그런데도 창과 방패를 나라 안에서 사용할 것을 꾀하니, 나는 계손(季孫)의 근심이 전유(컉臾)에 있지 않고 병풍
안에 있을까 두렵노라.”』
『干은 楯也요 戈는 戟也라 蕭墻은 屛也라 言不均不和하면 內變將作이러니 其後에 哀公이 果欲以越伐魯而去季氏
하니라』
『○ 謝氏曰 當是時하여 三家强하고 公室弱이어늘 2求又欲伐컉臾以附益之하니 夫子所以深罪之시니 爲其瘠魯以肥
三家也니라 洪氏曰 二子仕於季氏에 凡季氏所欲爲를 必以告於夫子하니 則因夫子之言而救止者宜亦多矣라 伐컉臾
之事가 不見於經傳하니 其以夫子之言而止也與인져』
『 간(干)은 방패이며, 과(戈)는 창이다. 소장(蕭墻)은 병풍이다. 고르지 못하고 화(和)하지 못하면 내부(內部)의
변란(變亂)이 장차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 뒤에 과연 애공(哀公)이 월(越)나라의 병력으로 노(魯)나라를
쳐서 계씨(季氏)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이 때를 당하여 삼가(三家)『[계손씨(季孫氏)•맹손씨(孟孫氏)•숙손씨(叔孫氏)]』가
강하고 공실(公室)이 약했는데, 염구(2求)가 또다시 전유(컉臾)를 정벌하여 그에게 덧붙여주려 하였다.
부자(夫子)께서 깊이 꾸짖으신 까닭은 그 노(魯)나라를 수척하게 해서 삼가(三家)를 살찌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 홍씨(洪氏)가 말하였다.
“두 사람이 계씨(季氏)에게 벼슬하면서 무릇 계씨(季氏)가 하려 한 일을 반드시 부자(夫子)에게 아뢨으니,
그렇다면 부자(夫子)의 말씀으로 인하여 만류해서 중지(中止)시킨 것도 마땅히 많을 것이다. 전유(컉臾)를 정벌한
일이 경전(經傳)에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부자(夫子)의 말씀 때문에 중지(中止)하였는가 보다.”』
*논어 ; 계씨 ; 제2장
▣ 제2장(第二章)
『孔子曰 天下有道면 則禮樂征伐이 自天子出하고 天下無道면 則禮樂征伐이 自諸侯出하나니 自諸侯出이면 蓋十世에
希不失矣요 自大夫出이면 五世에 希不失矣요 陪臣執國命이면 三世에 希不失矣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天下)에 도(道)가 있으면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이 천자(天子)로부터 나오고,
천하(天下)에 도(道)가 없으면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이 제후(諸侯)로부터 나온다. 제후(諸侯)로부터 나오면 10세
(世)에 <정권을> 잃지 않는 자가 드물고, 대부(大夫)로부터 나오면 5세(世)에 잃지 않는 자가 드물고, 배신(陪臣)이
국명(國命)을 잡으면 3세(世)에 잃지 않는 자가 드물다.』
『先王之制에 諸侯不得變禮樂, 專征伐이라 陪臣은 家臣也라 逆理愈甚이면 則其失之愈速하니 大約世數不過如此라』
『 선왕(先王)의 제도(制度)에 제후(諸侯)는 예악(禮樂)을 변경하고, 정벌(征伐)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배신(陪臣)은 가신(家臣)이다. 이치를 거스름이 더욱 심하면 그 잃음이 더욱 빠르니, 대략 세수(世數)『[대수(代數)]』
가 이와 같은 데 지나지 않는다.』
『天下有道면 則政不在大夫하고』
『 천하(天下)에 도(道)가 있으면, 정사(政事)가 대부(大夫)에 있지 않고』
『言不得專政이라』
『 <대부(大夫)가> 정사(政事)를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天下有道면 則庶人不議하나니라』
『 천하(天下)에 도(道)가 있으면 서인(庶人)들이 의논(議論)『[비난]』하지 않는다.”』
『上無失政이면 則下無私議니 非箝其口하여 使不敢言也라』
『○ 此章은 通論天下之勢하니라』
『 위에서 실정(失政)이 없으면 아랫사람들이 사사로이 의논(議論)함이 없는 것이니, 그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
감히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 ○ 이 장(章)은 천하(天下)의 대세(大勢)를 통론(通論)하셨다.』
*논어 ; 계씨 ; 제3장
▣ 제3장(第三章)
『孔子曰 祿之去公室이 五世矣요 政逮於大夫가 四世矣라 故로 夫三桓之子孫이 微矣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녹(祿)이 공실(公室)에서 떠난 지 5세(世)가 되었고, 정사(政事)가 대부(大夫)에게
미친 지 4세(世)가 되었다. 그러므로 저 삼환(三桓)의 자손(子孫)이 미약해진 것이다.”』
『魯自文公薨에 公子遂殺子赤하고 立宣公하여 而君失其政으로 歷成襄昭定에 凡五公이라 逮는 及也라 自季武子始專
國政으로 歷悼平桓子에 凡四世而爲家臣陽虎所執이라 三桓은 三家니 皆桓公之後라 此는 以前章之說로 推之而知其
當然也라』
『○ 此章은 專論魯事하니 疑與前章皆定公時語라 蘇氏曰 禮樂征伐이 自諸侯出이면 宜諸侯之强也로되 而魯以失政
하고 政逮於大夫면 宜大夫之强也로되 而三桓以微는 何也오 强生於安하고 安生於上下之分定이어늘 今諸侯大夫皆陵
其上하니 則無以令其下矣라 故로 皆不久而失之也니라』
『 노(魯)나라는 문공(文公)이 죽자, 공자수(公子遂)가 자적(子赤)을 살해하고 선공(宣公)을 세우면서 군주(君主)가
그 정권(政權)을 잃게 되었는데, 이때로부터 성공(成公)•양공(襄公)•소공(昭公)•정공(定公)을 거쳐 모두 다섯 공(公)
이다. 체(逮)는 미침이다. 계무자(季武子)가 비로소 국정(國政)을 전단(專擅)한 뒤로부터 도자(悼子)•평자(平子)•
환자(桓子)를 거쳐 모두 4대(代)인데, <환자(桓子)는> 가신(家臣) 양호(陽虎)에게 붙잡힘을 당하였다.
삼환(三桓)은 삼가(三家)이니, 모두 환공(桓公)의 후손이다. 이것은 앞 장(章)의 말로 미루어 그 당연함을 안 것이다.』
『 ○ 이 장(章)은 오로지 노(魯)나라 일을 논하였으니, 의심컨대 앞 장(章)과 더불어 모두 정공(定公) 때의 말씀인
듯하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이 제후(諸侯)로부터 나오면 마땅히 제후(諸侯)가 강성하여야
할 터인데 노(魯)나라는 정권(政權)을 잃었고, 정사(政事)가 대부(大夫)에게 미치면 마땅히 대부(大夫)가 강성하여야
할 터인데 삼환(三桓)이 미약해짐은 어째서인가? 강함은 안정(安定)에서 생기고, 안정(安定)은 상하(上下)의 분수
(分數)가 정해진 데서 생기는 것인데, 지금 제후(諸侯)와 대부(大夫)가 모두 그 위를 업신여기니, 그 아랫사람들을
명령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오래지 않아서 <정권을> 잃은 것이다.”』
*논어 ; 계씨 ; 제4장
▣ 제4장(第四章)
『孔子曰 益者三友요 損者三友니 『友直하며 友諒하며 友多聞주:우직우량우다문』이면 益矣요 友便µ?하며 友善柔
하며 友便쨻이면 損矣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유익한 것이 세 가지 벗이요, 손해되는 것이 세 가지 벗이니, 벗이 곧으며,
벗이 성실하며, 벗이 문견(聞見)이 많으면 유익하고, 벗이 한쪽『[외모]』만을 잘하며, 벗이 유순하기를 잘하며,
벗이 말을 잘하면 손해(損害)된다.”』
『友直則聞其過요 友諒則進於誠이요 友多聞則進於明이라 便은 習熟也라 便µ?은 謂習於威儀而不直이요 善柔는
謂工於媚悅而不諒이요 便쨻은 謂習於口語而無聞見之實이라 三者損益은 正相反也니라』
『○ 尹氏曰 自天子以至於庶人에 未有不須友以成者요 而其損益이 有如是者하니 可不謹哉아』
『 벗이 곧으면 자신의 허물을 듣게 되고, 벗이 성실하면 성실(誠實)에 나아가고, 벗이 문견이 많으면 지혜가 밝아
짐에 나아가게 된다. 편(便)은 익숙함이다. 편벽(便µ?)은 위의(威儀)『[외모]』에만 익숙하고 곧지 못함을 이르며,
선유(善柔)는 아첨하여 기쁘게 하는 데만 잘하고 성실치 못함을 이르며, 편녕(便쨻)은 말에만 숙달하고 문견(聞見)
의 실제가 없음을 이른다. 이 세 가지의 손해(損害)됨과 유익함은 정반대(正反對)가 된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벗을 필요로 하여 이루지 않는 자가
없는데, 그 손해 됨과 유익함이 이와 같음이 있으니, 삼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논어 ; 계씨 ; 제5장
▣ 제5장(第五章)
『孔子曰 益者三樂『(요)』요 損者三樂니 樂節禮樂하며 樂道人之善하며 樂多賢友면 益矣요 樂驕樂하며 樂佚遊하며
樂宴樂이면 損矣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유익(有益)한 좋아함이 세 가지이고, 손해(損害)되는 좋아함이 세 가지이니,
예악(禮樂)을 따르기 좋아하며, 사람의 선(善)함을 말하기 좋아하며, 어진 벗이 많음을 좋아하면 유익(有益)하고,
교만함과 방종함을 좋아하며, 편안히 노는 것을 좋아하며, 향락에 빠짐을 좋아하면 손해(損害)가 된다.”』
『節은 謂辨其制度聲容之節이라 驕樂則侈肆而不知節이요 佚遊則惰慢而惡聞善이요 宴樂則淫溺而狎小人이니
三者損益이 亦相反也니라』
『○ 尹氏曰 君子之於好樂에 可不謹哉아』
『 절(節)은 <예(禮)의> 제도(制度)와 <악(樂)의> 성용(聲容)의 절도(節度)를 분변함을 말한다. 교만하고 방종하면
잘난 체하고 방자해서 절도를 알지 못하고, 편안히 놀면 태만해져서 선(善)을 듣기를 싫어하며, 행락에 빠지면 음탕
하여 소인(小人)을 가까이 하니, 세 가지의 손해 됨과 유익함도 또한 서로 반대된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좋아하고 즐김에 있어서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논어 ; 계씨 ; 제6장
▣ 제6장(第六章)
『孔子曰 侍於君子에 有三愆하니 言未及之而言을 謂之躁요 言及之而不言을 謂之隱이요 未見顔色而言을 謂之줥
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를 모심에 세 가지 잘못이 있으니, 말씀이 미치지 않았는데 말하는 것을
조(躁)『[조급함]』라 이르고, 말씀이 미쳤는데 말하지 않는 것을 은(隱)『[숨김]』이라 이르고, 안색(顔色)을 보지
않고 말하는 것을 고(줥)『[봉사]』라 이른다.”』
『君子는 有德位之通稱이다 愆은 過也라 줥는 無目하여 不能察言觀色이라』
『○ 尹氏曰 時然後言이면 則無三者之過矣리라』
『 군자(君子)는 덕(德)과 지위(地位)를 소유한 이의 통칭이다. 건(愆)은 잘못이다. 고(줥)는 눈이 없어서 말을
살피고 안색을 볼 수 없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때에 맞은 뒤에 말하면 세 가지의 잘못이 없을 것이다.”』
*논어 ; 계씨 ; 제7장
▣ 제7장(第七章)
『孔子曰 君子有三戒하니 少之時에는 血氣未定이라 戒之在色이요 及其壯也하여는 血氣方剛이라 戒之在鬪요
及其老也하여는 血氣旣衰라 戒之在得이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에게 세 가지 경계함이 있으니, 젊을 때엔 혈기(血氣)가 정해지지 않았
으므로 경계함이 여색(女色)에 있고, 장성해서는 혈기(血氣)가 한창 강하므로 경계함이 싸움에 있고,
늙어서는 혈기(血氣)가 쇠하므로 경계함이 얻음에 있다.”』
『血氣는 形之所待以生者니 血陰而氣陽也라 得은 貪得也라 隨時知戒하여 以理勝之면 則不爲血氣所使也라』
『○ 范氏曰 聖人이 同於人者는 血氣也요 異於人者는 志氣也라 血氣는 有時而衰로되 志氣則無時而衰也라 少未定,
壯而剛, 老而衰者는 血氣也요 戒於色, 戒於鬪, 戒於得者는 志氣也라 君子는 養其志氣라 故로 不爲血氣所動이라
是以로 年彌高而德彌邵也니라』
『 혈기(血氣)는 형체(形體)가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니, 혈(血)은 음(陰)이며 기(氣)는 양(陽)이다.
득(得)은 얻기를 탐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 경계할 줄 알아 이치로써 <혈기(血氣)를> 이기면 혈기(血氣)의 부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이 일반인과 같은 것은 혈기(血氣)이며, 일반인과 다른 것은 지기(志氣)
이다. 혈기(血氣)는 때에 따라 쇠함이 있으나, 지기(志氣)는 때에 따라 쇠함이 없으니, 젊을 때 정해지지 않음과
장성해서 강함과 늙어서 쇠해짐은 혈기(血氣)이며, 여색(女色)을 경계하고 싸움을 경계하고 얻음을 경계함은 지기
(志氣)이다. 군자(君子)는 그 지기(志氣)를 기른다. 그러므로 혈기(血氣)에 동요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이가 많아질수록 덕(德)이 높아지는 것이다.”』
*논어 ; 계씨 ; 제8장
▣ 제8장(第八章)
『孔子曰 君子有三畏하니 畏天命하며 畏大人하며 畏聖人之言이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세 가지 두려워함이 있으니, 천명(天命)을 두려워하며,
대인(大人)을 두려워하며, 성인(聖人)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畏者는 嚴憚之意也라 天命者는 天所賦之正理也니 知其可畏면 則其戒謹恐懼가 自有不能已者하여 而付퓒之重을
可以不失矣라 大人聖言은 皆天命所當畏니 知畏天命이면 則不得不畏之矣리라』
『 외(畏)란 엄히 여기고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천명(天命)은 하늘이 부여해준 바의 정리(正理)이다.
이것이 두려워할 만한 것임을 알면 곧 삼가며 두려워하는 것이 스스로 그만둘 수 없어서 부여받은 소중한 것을 잃지
않을 것이다. 대인(大人)과 성인(聖人)의 말씀은 모두 천명(天命)에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바이니,
천명(天命)을 두려워할 줄 알면 그것『[대인(大人)과 성인(聖人)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小人은 不知天命而不畏也라 狎大人하며 侮聖人之言이니라』
『 소인(小人)은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인(大人)을 함부로 대하며 성인(聖人)의 말씀을
업신여긴다.”』
『侮는 戱玩也라 不知天命이라 故로 不識義理而無所忌憚이 如此라』
『○ 尹氏曰 三畏者는 修己之誠에 當然也라 小人은 不務修身誠己하니 則何畏之有리오』
『 모(侮)는 희롱함이다.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므로 의리(義理)를 알지 못하여 꺼리는 바가 없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세 가지 두려워함은 몸을 닦는 성실함에 당연한 것이다. 소인(小人)은 몸을 닦고
자신을 성실하게 함을 힘쓰지 않으니, 어찌 두려워함이 있겠는가?”』
*논어 ; 계씨 ; 제9장
▣ 제9장(第九章)
『孔子曰 生而知之者는 上也요 學而知之者는 次也요 困而學之는 又其次也니 困而不學이면 民斯爲下矣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태어나면서 아는 자가 상등(上等)이요, 배워서 아는 자가 다음이요,
불통(不通)하여 배우는 자가 또 그 다음이니, 불통(不通)한데도 배우지 않으면 백성으로서 하등(下等)이 된다.”』
『困은 謂有所不通이라 言人之氣質不同이 大約有此四等이라』
『○ 楊氏曰 生知, 學知로 以至困學에 雖其質不同이나 然이나 及其知之하여는 一也라 故로 君子惟學之爲貴니
困而不學然後에 爲下니라』
『 곤(困)은 통하지 못하는 바가 있음을 이른다. 사람의 기질(氣質)이 같지 않음이 대략 이 네 가지 등급(等級)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생지(生知)와 학지(學知)로부터 곤지(困知)에 이르기까지는 비록 그 기질(氣質)이
같지 않으나 그 앎에 미쳐서는 똑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오직 배움을 귀하게 여긴다.
불통(不通)하여도 배우지 않은 뒤에야 하등(下等)이 되는 것이다.”』
*논어 ; 계씨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孔子曰 君子有九思하니 視思明하며 聽思聰하며 色思溫하며 貌思恭하며 言思忠하며 事思敬하며 疑思問하며
忿思難하며 見得思義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아홉 가지 생각함이 있으니, 봄에는 밝음을 생각하며, 들음에는
귀밝음을 생각하며, 얼굴빛은 온화함을 생각하며, 모양은 공손함을 생각하며, 말은 충성함을 생각하며,
일은 경건함을 생각하며, 의심스러움은 물음을 생각하며, 분함은 어려움을 생각하며, 얻는 것을 보면 의(義)를
생각한다.”』
『視無所蔽면 則明無不見이요 聽無所壅이면 則聰無不聞이라 色은 見於面者요 貌는 擧身而言이라 思問則疑不蓄
이요 思難則忿必懲이요 思義則得不苟니라』
『○ 程子曰 九思는 各專其一이니라 謝氏曰 未至於從容中道하여는 無時而不自省察也라
『雖有不存焉者주:수유불존언자』라도 寡矣니 此之謂『思誠주:사성』이니라』
『 봄에 가리운 바가 없으면 밝아서 보지 못함이 없고, 들음에 막히는 바가 없으면 귀밝아서 듣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색(色)은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며, 모(貌)는 온몸을 들어 말한 것이다. 물을 것을 생각하면 의심이 쌓이지
않고, 어려움을 생각하면 분함을 반드시 징계할 것이며, 의(義)를 생각하면 얻음에 구차하지 않을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구사(九思)는 각각 그 하나에 오로지 하는 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자연스럽게 도(道)에 맞는 데 이르지 못하면, 때때로 스스로 살피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비록 본심(本心)이 보존되지 못함이 있더라도 적을 것이니, 이것을 ‘성(誠)을 생각한다
『〔思誠〕』.’고 하는 것이다.”』
*논어 ; 계씨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孔子曰 見善如不及하며 見不善如探湯을 吾見其人矣요 吾聞其語矣로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선(善)함을 보고는 미치지 못할 듯이 하며, 불선(不善)을 보고는 끓는 물을 더듬는
것처럼 하는 자를 나는 그러한 사람을 보았고, 그러한 말을 들었노라.』
『眞知善惡而誠好惡之니 顔曾2閔之徒蓋能之矣라 語는 蓋古語也라』
『 선(善)과 악(惡)을 참으로 알아서 진실로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하는 것이니, 안자(顔子)•
증자(曾子)•염백우(2伯牛)•민자건(閔子騫)의 무리가 이에 능하였을 것이다. 어(語)는 옛말이다.』
『隱居以求其志하며 行義以達其道를 吾聞其語矣요 未見其人也로라』
『 숨어살면서 그 뜻을 구하고, 의(義)를 행하며 그 도(道)를 행하는 것을, 나는 그러한 말만 들었고 그러한 사람은
보지 못하였노라.”』
『求其志는 守其所達之道也요 達其道는 行其所求之志也라 蓋惟伊尹太公之流가 可以當之라 當時에 若顔子亦庶乎
此나 然이나 隱而未見『(현)』하고 又不幸而蚤死라 故로 夫子云然이시니라』
『 그 뜻을 구한다는 것은 행할 바의 도(道)를 지키는 것이요, 그 도(道)를 행한다는 것은 그 구하던 바의 뜻을 행
하는 것이다. 이는 오직 이윤(伊尹)과 태공(太公)의 무리가 이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안자(顔子) 같은
분도 또한 이에 거의 할 수 있었으나 숨어서 나타나지 아니하였고, 또 불행히 일찍 죽었으므로, 부자(夫子)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논어 ; 계씨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齊景公은 有馬千駟하되 死之日에 民無德而稱焉이요 伯夷叔齊는 餓于首陽之下하되 民到于今稱之하나니라』
『 제경공(齊景公)이 말 천사(千駟)를 소유하였으나, 죽는 날에 사람들이 덕(德)을 칭송함이 없었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수양산(首陽山) 아래에서 굶주렸으나 사람들이 지금에 이르도록 칭송하고 있다.』
『駟는 四馬也라 首陽은 山名이라』
『 사(駟)는 4필의 말이요, 수양(首陽)은 산(山) 이름이다.』
『其斯之謂與인저』
『 그 이것을 말한 것이다.』
『胡氏曰 程子以爲第十二篇錯簡『誠不以富亦祇以異주:성불이부역지이이』가 當在此章之首라하시니 今詳文勢컨대
似當在此句之上하니 言人之所稱이 不在於富而在於異也라 愚謂 此說近是而章首에 當有孔子曰字니 蓋闕文耳라 大抵
此書後十篇은 多闕誤라』
『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정자(程子)는 제12편(篇)의 착간(錯簡)인 ‘성불이부(誠不以富) 역지이이(亦祇以異)’가
마땅히 이 장(章)의 머리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문세(文勢)를 자세히 살펴보니, 마땅히 이 구(句)의 위에
있어야 할 듯하다. 이는 사람들의 칭송함이 부(富)에 있지 않고 다만 특이(特異)한 행동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 내가 생각하건대, 이 말이 옳은 듯한데, 장(章)의 머리에 마땅히 ‘공자왈(孔子曰)’의 글자가 있어야 할 것이니,
아마도 궐문(闕文)일 것이다. 이 책에 뒤 10편(篇)은 빠지고 잘못된 것이 많다.』
*논어 ; 계씨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陳亢이 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아』
『 진항(陳亢)이 백어(伯魚)에게 물었다. “그대는 역시 특이한 들음이 있는가?”』
『亢以私意窺聖人하여 疑必陰厚其子라』
『 진항(陳亢)이 사사로운 뜻으로 성인(聖人)을 엿보아 반드시 그 아들에게는 몰래 후하게 하심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對曰 未也로라 嘗獨立이어시늘 鯉趨而過庭이러니 曰 學詩乎아 對曰 未也로이다 不學詩면 無以言이라하여시늘
鯉退而學詩호라』
『 <백어(伯魚)가> 대답하였다. “없었다. 일찍이 홀로 서 계실 때에 내『[리(鯉)]』가 빨리 걸어 뜰을 지나는데,
‘시(詩)를 배웠느냐?’하고 물으시기에 ‘못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였더니, ‘시(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
’하시므로 내가 물러가 시(詩)를 배웠노라.』
『事理通達而心氣和平이라 故로 能言이라』
『 <시(詩)를 배우면> 사리(事理)가 통달(通達)해져서 심기(心氣)가 화평(和平)해진다. 그러므로 말을 잘하게
된다.』
『他日에 又獨立이어시늘 鯉趨而過庭이러니 曰 學禮乎아 對曰 未也로이다 不學禮면 無以立 이라하여시늘
鯉退而學禮호라』
『 다른 날에 또 홀로 서 계실 때에 내가 빨리 걸어 뜰을 지나는데, ‘예(禮)를 배웠느냐?’하고 물으시기에 ‘못하였
습니다.’하고 대답하였더니, ‘예(禮)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 없다.’하시므로 내가 물러 나와 예(禮)를 배웠노라.』
『品節詳明而德性堅定이라 故로 能立이라』
『 <예(禮)를 배우면> 품절(品節)에 자세하고 밝아져서 덕성(德性)이 굳게 정해진다. 그러므로 능히 서게 된다.』
『聞斯二者로라』
『 이 두 가지를 들었노라.”』
『當獨立之時하여 所聞이 不過如此하니 其無異聞을 可知라』
『 홀로 서 계실 때를 당하여 들은 바가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 특이한 들음이 없음을 알 수 있다.』
『陳亢이 退而喜曰 問一得三하니 聞詩聞禮하고 又聞君子之遠其子也로라』
『 진항(陳亢)이 물러 나와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하나를 물어서 셋을 들었으니, 시(詩)를 듣고 예(禮)를 들었으며,
또 군자(君子)가 그 아들을 멀리하는 것을 들었노라.”』
『尹氏曰 孔子之敎其子가 無異於門人이라 故로 陳亢이 以爲遠其子니라』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 그 아들을 가르침에 문인(門人)과 다름이 없었으므로,
진항(陳亢)은 공자(孔子)가 아들을 멀리한다고 말한 것이다.”』
*논어 ; 계씨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邦君之妻를 君稱之曰夫人이요 夫人自稱曰小童이요 邦人稱之曰君夫人이요 稱諸異邦曰寡小君이요 異邦人稱之에
亦曰君夫人이니라』
『 나라 임금의 처(妻)를 그 임금이 일컬어 부인(夫人)이라 하고, 부인(夫人)이 스스로 일컫기를 소동(小童)이라
하며, 나라 사람들이 일컬어 군부인(君夫人)이라 하고, 다른 나라에게 <말할 때에> 일컫기를 과소군(寡小君)이라
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컬을 때에도 군부인(君夫人)이라 한다.』
『寡는 寡德이니 謙辭라』
『○ 吳氏曰 凡語中所載에 如此類者는 不知何謂니 或古有之인지 或夫子嘗言之인지 不可考也니라』
『 과(寡)는 덕(德)이 적은 것이니, 겸사(謙辭)이다.』
『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무릇 《논어(論語)》중에 기재된 내용으로 이와 같은 유(類)들은 무엇을 말한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혹 옛적에 있었는지, 혹은 부자(夫子)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것인지 상고할 수 없다.”』
*논어 ; 양화(陽貨) 제십칠(第十七)
▣ 양화(陽貨) 제십칠(第十七)
『凡二十六章이라』
『 모두 26장(章)이다.』
『○ 논어 ; 양화 ; 제1장+1』
『○ 논어 ; 양화 ; 제2장+2』
『○ 논어 ; 양화 ; 제3장+3』
『○ 논어 ; 양화 ; 제4장+4』
『○ 논어 ; 양화 ; 제5장+5』
『○ 논어 ; 양화 ; 제6장+6』
『○ 논어 ; 양화 ; 제7장+7』
『○ 논어 ; 양화 ; 제8장+8』
『○ 논어 ; 양화 ; 제9장+9』
『○ 논어 ; 양화 ; 제10장+10』
『○ 논어 ; 양화 ; 제11장+11』
『○ 논어 ; 양화 ; 제12장+12』
『○ 논어 ; 양화 ; 제13장+13』
『○ 논어 ; 양화 ; 제14장+14』
『○ 논어 ; 양화 ; 제15장+15』
『○ 논어 ; 양화 ; 제16장+16』
『○ 논어 ; 양화 ; 제17장+17』
『○ 논어 ; 양화 ; 제18장+18』
『○ 논어 ; 양화 ; 제19장+19』
『○ 논어 ; 양화 ; 제20장+20』
『○ 논어 ; 양화 ; 제21장+21』
『○ 논어 ; 양화 ; 제22장+22』
『○ 논어 ; 양화 ; 제23장+23』
『○ 논어 ; 양화 ; 제24장+24』
『○ 논어 ; 양화 ; 제25장+25』
『○ 논어 ; 양화 ; 제26장+26』
*논어 ; 양화 ; 제1장
▣ 제1장(第一章)
『陽貨欲見孔子어늘 孔子不見하신대 歸孔子豚이어늘 孔子時其亡『(無)』也而往拜之러시니 遇諸塗하시다』
『 양화(陽貨)가 공자(孔子)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공자(孔子)께서 만나주지 않으시자, 양화(陽貨)가 공자(孔子)
에게 삶은 돼지를 선물로 보내주니, 공자(孔子)께서도 그가 없는 틈을 타 사례하러 가시다가 길에서 마주치셨다.』
『陽貨는 季氏家臣이니 名虎니 嘗囚季桓子而專國政이라 欲令孔子來見己나 而孔子不往하신대 貨以禮에 大夫有賜
於士어든 不得受於其家면 則往拜其門이라 故로 瞰孔子之亡而歸之豚하여 欲令孔子來拜而見之也라』
『 양화(陽貨)는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니, 이름은 호(虎)이다. 일찍이 계환자(季桓子)를 가두고 나라의 정사를
전횡하였었다. 그는 공자(孔子)로 하여금 찾아와서 자기를 만나게 하려고 하였으나, 공자(孔子)께서 가지 않으셨다.
양화(陽貨)는 예(禮)에 대부(大夫)가 사(士)에게 선물을 하거든 사(士)가 자기 집에서 직접 받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대부(大夫)의 집에 찾아가 사례하여야 한다 하였으므로 공자(孔子)가 계시지 않은 틈을 엿보고서 삶은 돼지를 선물
하여 공자(孔子)로 하여금 사례하러 오게 한 뒤 공자(孔子)를 만나려고 하였던 것이다.』
『謂孔子曰 來하라 予與爾言하리라 曰 懷其寶而迷其邦이 可謂仁乎아 曰 不可하다 好從事而짞失時가 可謂知乎아 曰
不可하다 日月逝矣라 歲不我與니라 孔子曰 諾다 吾將仕矣로리라』
『 공자(孔子)에게 말하기를 “이리 오시오. 내가 그대와 말을 하겠오. 훌륭한 보배를 품고서 나라를 어지럽게 버려
두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공자(孔子)께서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셨다.
양화(陽貨)가 “종사(從事)하기를 좋아하면서 자주 때를 놓치는 것을 지(知)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공자(孔子)께서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셨다. 양화(陽貨)가 “해와 달이 흘러가니, 세월은 나를 위하여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알았습니다. 나는 장차 벼슬을 할 것입니다.” 하셨다.』
『懷寶迷邦은 謂懷藏道德하여 不救國之迷亂이라 짞는 數『(삭)』也라 失時는 謂不及事幾之會라 將者는 且然而未必
之辭라 貨語皆譏孔子而諷使速仕하니 孔子固未嘗如此요 而亦非不欲仕也로되 但不仕於貨耳라 故로 直據理答之
하시고 不復與辯하여 若不諭其意者하시니라』
『○ 陽貨之欲見孔子는 雖其善意나 然이나 不過欲使助己爲亂耳라 故로 孔子不見者는 義也요 其往拜者는 禮也요
必時其亡而往者는 欲其稱也요 遇諸塗而不避者는 不終絶也요 隨問而對者는 理之直也요 對而不辯者는 言之孫而亦
無所짌也라 揚氏曰 揚雄謂 孔子於陽貨也에 敬所不敬하여 爲짌身以信『(伸)』道라하니 非知孔子者라 蓋道外無身
이요 身外無道하니 身짌矣而可以信道는 吾未之信也로라』
『 보배를 품고서 나라를 어지럽게 한다는 것은 도덕(道德)을 간직하고서도 나라의 어지러움을 구원하지 않는
것이다. 기(짞)는 자주이다. 때를 놓친다는 것은 일의 기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장(將)은 앞으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꼭 기필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양화(陽貨)의 말은 모두 공자(孔子)를 풍자하여 넌지시 공자(孔子)로 하여금 속히 벼슬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공자(孔子)는 진실로 일찍이 본래 양화(陽貨)의 말과 같지 않으셨으며, 또한 벼슬하고자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양화(陽貨)에게 벼슬하지 않으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치대로만 대답하고 다시 그와 변론하지 않으시어
그의 뜻을 깨닫지 못한 것처럼 하신 것이다.』
『 ○ 양화(陽貨)가 공자(孔子)를 만나고자 한 것은 비록 좋은 뜻이었으나 공자(孔子)로 하여금 자기를 도와
난(亂)을 하려는 데에 불과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만나주지 않은 것은 의(義)이며, 찾아가서
사례한 것은 예(禮)이다. 반드시 양화(陽貨)가 없는 틈을 타서 찾아간 것은 양화(陽貨)의 행동에 맞추고자 한
것이며, 길에서 마주쳤을 때 피하지 않은 것은 끝까지 끊어버리지 않으신 것이다. 질문에 따라서 대답한 것은
이치의 바름이며, 대답만 하고 변론하지 않은 것은, 말씀을 공손하게 하되 역시 굽히신 바가 없는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양웅(揚雄)은 ‘공자(孔子)가 양화(陽貨)에게 공경하지 않을 사람을 공경하셨으니,
이는 몸을 굽혀서 도(道)를 펴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하였으니, 공자(孔子)를 아는 사람이 아니다. 도(道) 이외에
몸이 따로 없고 몸 밖에 도(道)가 따로 없는 것이니, 몸이 굽혀지고서 도(道)를 펼 수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못한다.”』
*논어 ; 양화 ; 제2장
▣ 제2장(第二章)
『子曰 性相近也나 習相遠也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성품(性µ;)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習慣)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게 된다.”』
『此所謂性은 兼氣質而言者也라 氣質之性은 固有美惡之不同矣라 然이나 以其初而言이면 則皆不甚相遠也로되
但習於善則善하고 習於惡則惡하여 於是에 始相遠耳니라』
『○ 程子曰 此는 言氣質之性이요 非言性之本也라 若言其本이면 則性卽是理니 理無不善이라 孟子之言性善이
是也니 何相近之有哉리오』
『 여기에서 말한 성(性)은 기질(氣質)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기질(氣質)의 성(性)이 본래 좋고 나쁜 차이가
있으나 그 처음을 가지고 말한다면 모두 서로 크게 멀지 않으나, 다만 선(善)에 습관이 되면 선해지고 악(惡)에
습관이 되면 악해지는 것이니, 여기에서 비로소 서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것은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말한 것이요,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 근본으로 말하면 성(性)은 곧 이(理)요, 이(理)는 선(善)하지 않음이 없으니,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신
성선(性善)이 바로 이것이다. 어찌 서로 비슷하다는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논어 ; 양화 ; 제3장
▣ 제3장(第三章)
『子曰 唯上知與下愚는 不移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上智〕』와 어리석은 자『〔下愚〕』는 변화시킬 수
없다.”』
『此는 承上章而言人之氣質이 相近之中에 又有美惡一定하여 而非習之所能移者라』
『○ 程子曰 人性本善이어늘 有不可移者는 何也오 語其性則皆善也나 語其才則有下愚之不移라 所謂下愚有二焉하니
自暴自棄也라 人苟以善自治면 則無不可移니 雖昏愚之至라도 皆可漸磨而進也어니와 惟自暴者는 拒之以不信하고 自
棄者는 絶之以不爲하니 雖聖人與居라도 不能化而入也니 仲尼之所謂下愚也라 然이나 其質은 非必昏且愚也요 往往
强戾而才力有過人者하니 商辛是也라 聖人은 以其自絶於善이라하여 謂之下愚라 然이나 考其歸則誠愚也니라 或曰
此與上章當合爲一이니 子曰二字는 蓋衍文耳라하니라』
『 이것은 위 장(章)을 이어서 사람의 기질(氣質)이 서로 비슷한 가운데에도 좋고 나쁨의 일정함이 있어서 습관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의 성(性)이 본래 선(善)한데,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있음은 무슨 까닭인가?
그 성(性)을 말한다면 모두 선(善)하거니와 그 재(才)를 말한다면 하우(下愚)로서 변화시킬 수 없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하우(下愚)는 두 종류가 있으니, 자포(自暴)하는 자와 자기(自棄)하는 자이다.
사람이 진실로 선(善)으로써 자신을 다스린다면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 없으니,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 하더라도 모두
차츰 연마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자포(自暴)하는 자는 선(善)을 막아서 믿지 않고, 자기(自棄)하는 자는
선(善)을 끊어 버려 행하지 않으니, 비록 성인(聖人)과 함께 거처하더라도 변화하여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하우(下愚)이다. 그러나 그 기질(氣質)이 반드시 어둡고 어리석지만은 않으며,
왕왕 매우 억세어서 재력(才力)이 남보다 뛰어난 자가 있으니, 상신(商辛)이 그런 사람이다.
성인(聖人)께서는 자기 스스로 선(善)을 거절한다 하여 하우(下愚)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귀결을 살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 혹자는 말하였다. “이 장(章)은 위 장(章)과 합하여 마땅히 한 장(章)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왈(子曰) 두 글자는
아마도 연문(衍文)일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4장
▣ 제4장(第四章)
『子之武城하사 聞弦歌之聲하시다』
『 공자(孔子)께서 무성(武城)에 가시어 현악(弦樂)에 맞추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셨다.』
『弦은 琴瑟也라 時에 子游爲武城宰하여 以禮樂爲敎라 故로 邑人皆弦歌也라』
『 현(弦)은 거문고와 비파이다. 이 때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읍재(邑宰)가 되어 예악(禮樂)을 가르쳤기
때문에 고을 사람들이 모두 현악(弦樂)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 것이다.』
『夫子莞爾而笑曰 割鷄에 焉用牛刀리오』
『 부자(夫子)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莞爾는 小笑貌니 蓋喜之也라 因言其治小邑에 何必用此大道也리오』
『 완이(莞爾)는 빙그레 웃는 모습이니, 기뻐하신 것이다. 인하여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데 어찌 이런 대도(大道)를
쓸 필요가 있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子游對曰 昔者에 偃也聞諸夫子하니 曰 君子學道則愛人이요 小人學道則易使也라호이다』
『 자유(子游)가 대답하였다.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듣자오니 ‘군자(君子)가 도(道)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小人)이 도(道)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하셨습니다.”』
『君子小人은 以位言之라 子游所稱은 蓋夫子之常言이니 言君子小人이 皆不可以不學이라 故로 武城雖小나 亦必敎
以禮樂이라』
『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지위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자유(子游)가 말한 것은 아마도 공자(孔子)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일 것이니,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 모두 배우지 않아서는 안되므로 무성(武城)이 작은 고을이지만
반드시 예악(禮樂)으로써 가르친다는 것이다.』
『子曰 二三子아 偃之言이 是也니 前言은 戱之耳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얘들아, 언(偃)『[자유(子游)]』의 말이 옳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농담이니라.”』
『嘉子游之篤信하고 又以解門人之惑也라』
『○ 治有大小나 而其治之必用禮樂은 則其爲道一也라 但衆人은 多不能用이어늘 而子游獨行之라 故로 夫子驟聞而
深喜之하시고 因反其言以戱之러시니 而子游以正對라 故로 復是其言하여 而自實其戱也시니라』
『 자유(子游)가 독실히 믿고 있는 것을 가상히 여기시고, 또 문인(門人)의 의혹을 풀어주신 것이다.』
『 ○ 다스리는 데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으나 그 다스림에 있어서 반드시 예악(禮樂)을 써야 하는 것은,
그 도(道)가 마찬가지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예악(禮樂)을 쓰지 않고 있는데, 자유(子游)만이 실천
하였기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갑자기 들으시고 매우 기뻐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뒤집어서 희롱한 것인데,
자유(子游)가 정도(正道)로써 대답하므로 다시 자유(子游)의 말을 옳다고 인정하시고 스스로 그 농담을 실증하신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5장
▣ 제5장(第五章)
『公山弗擾以費畔하여 召어늘 子欲往이러시니』
『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비읍(費邑)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孔子)를 부르니, 공자(孔子)께서 가려고
하셨다.』
『弗擾는 季氏宰니 與陽虎共執桓子하고 據邑以叛이라』
『 불요(弗擾)는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다. 양호(陽虎)와 함께 환자(桓子)를 잡아 가두고 비읍(費邑)을 점거
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子路不說曰 末之也已니 何必公山氏之之也시리잇고』
『 자로(子路)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이지, 하필이면 공산씨(公山氏)에게 가시려
하십니까?” 하니,』
『末은 無也라 言道旣不行하여 無所往矣니 何必公山氏之往乎리오』
『 말(末)은 없는 것이다. 도(道)가 이미 행해지지 아니하여 갈 곳이 없거늘 하필 공산씨(公山氏)에게 가시려 하십
니까라는 말이다.』
『子曰 夫召我者는 而『豈徒哉주:기도재』리오 如有用我者면 吾其爲東周乎인저』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하릴없이 하겠느냐? 나를 써 주는 자가 있다면,
나는 동쪽 주(周)나라『〔東周〕』를 만들 것이다.”』
『豈徒哉는 言必用我也라 爲東周는 言興周道於東方이라』
『○ 程子曰 聖人은 以天下無不可有爲之人이요 亦無不可改過之人이라 故로 欲往이라 然而終不往者는 知其必不
能改故也시니라』
『 ‘어찌 하릴없이 하겠느냐?’라는 말은 반드시 나를 써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동주(東周)를 만들겠다는 것은 주(周)나라의 도(道)를 동쪽에 일으키겠다는 말이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성인(聖人)께서는 천하(天下)에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없으며,
또한 허물을 고칠 수 없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찾아가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찾아가지
않으신 것은 그가 반드시 고치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논어 ; 양화 ; 제6장
▣ 제6장(第六章)
『子張이 問仁於孔子한대 孔子曰 能行五者於天下면 爲仁矣니라 請問之한대 曰 恭寬信敏惠니 恭則不侮하고 寬則
得衆하고 信則人任焉하고 敏則有功하고 惠則足以使人이니라』
『 자장(子張)이 공자(孔子)에게 인(仁)을 여쭙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능히 다섯 가지를 천하(天下)에
행할 수 있으면 인(仁)이 된다.” 하셨다. 자장(子張)이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니, 말씀하시기를 “공손함『〔恭〕』,
너그러움『〔寬〕』, 믿음『〔信〕』, 민첩함『〔敏〕』, 은혜로움『〔惠〕』이니,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여러 사람들을 얻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의지하게 되고, 민첩하면 공이 있게 되고, 은혜로우면
충분히 남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 하셨다.』
『行是五者면 則心存而理得矣라 於天下는 言無適而不然이니 猶所謂雖之夷狄이라도 不可棄者라 五者之目은
蓋因子張所不足而言耳라 任은 倚仗也라 又言其效如此시니라』
『○ 張敬夫曰 能行此五者於天下면 則其心公平而周遍을 可知矣라 然이나 恭其本與인저 李氏曰 此章은 與六言六
蔽五美四惡之類로 皆與前後文體 大不相似니라』
『 이 다섯 가지를 행하면 마음이 보존되고 이치가 얻어질 것이다. ‘천하에『〔於天下〕』라는 말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그렇게 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니, ‘비록 이적(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과 같다. 다섯 가지의 조목은 자장(子張)의 부족한 점을 인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임(任)은 의지하고 믿는
것이다. 또 그 효험이 이와 같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 ○ 장경부(張敬夫)가 말하였다. “능히 이 다섯 가지를 천하(天下)에 행할 수 있다면 그 마음이 공평하여 두루
미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공손함이 그 근본일 것이다.”』
『 이씨(李氏)가 말하였다. “이 장(章)은 육언(六言), 육폐(六蔽), 오미(五美), 사악(四惡) 등의 종류와 마찬가지로
모두 《논어(論語)》앞 뒤의 문체와는 매우 서로 같지 않다.”』
*논어 ; 양화 ; 제7장
▣ 제7장(第七章)
『佛?이 召어늘 子欲往이러시니』
『 필힐(佛?)이 공자(孔子)를 부르니, 공자(孔子)께서 가려고 하셨다.』
『佛?은 晉大夫趙氏之中牟宰也라』
『 필힐(佛?)은 진(晉)나라 대부(大夫)인 조씨(趙氏)『[조간자(趙簡子)]』의 중모(中牟)땅 읍재(邑宰)이다.』
『子路曰 昔者에 由也聞諸夫子하니 曰 親於其身에 爲不善者어든 君子不入也라하시니 佛?이 以中牟畔이어늘
子之往也는 如之何잇고』
『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옛날에 제가 부자(夫子)게 들었사온데, ‘직접 그 몸에 착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자에게는 군자(君子)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필힐(佛?)이 지금 중모읍(中牟邑)을 가지고 배반하였는데
부자(夫子)께서 가려고 하시니, 어찌해서입니까?”』
『子路恐佛?之퐠夫子라 故로 問此以止夫子之行이라 親은 猶自也라 不入은 不入其黨也라』
『 자로(子路)는 필힐(佛?)이 공자(孔子)를 더럽힐까 걱정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을 여쭈어 공자(孔子)께서 가시
려는 것을 저지한 것이다. 친(親)은 스스로라는 뜻과 같다. 불입(不入)은 그 당(黨)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子曰 然하다 有是言也어니와 不曰堅乎아 磨而不쬨이니라 不曰白乎아 涅而不緇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거니와, 단단하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갈아도 얇아지지 않으니, 희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검은 물을 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
『쬨은 薄也라 涅은 染짿物이라 言人之不善이 不能퐠己라 楊氏曰 磨不쬨, 涅緇而後에 『無可無不可주:무가무불가』
라 堅白不足而欲自試於磨涅이면 其不쬨緇也者幾希니라』
『 인(쬨)은 얇은 것이다. 열(涅)은 검은 물을 들이는 것이다. 남의 불선(不善)함이 나를 더럽힐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갈아도 얇아지지 않고 검은 물을 들여도 검어지지 않을 수 있어야 가(可)함도 없고
불가(不可)함도 없게 되는 것이니, 만약 단단하기와 희기가 부족한데도 스스로 갈려지고 물들여지는 데에 시험
하려고 한다면 얇아지고 검어지지 않는 자가 거의 드물 것이다.”』
『吾豈匏瓜也哉라 焉能繫而不食이리오』
『 내가 어찌 뒤웅박과 같아서 한 곳에 매달린 채 먹기를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匏는 瓠也라 匏瓜는 繫於一處而不能飮食이나 人則不如是也라』
『○ 張敬夫曰 子路昔者之所聞은 君子守身之常法이요 夫子今日之所言은 聖人體道之大權也라 然이나 夫子於公
山佛?之召에 皆欲往者는 以天下無不可變之人이요 無不可爲之事也로되 其卒不往者는 知其人之終不可變而事之
終不可爲耳시니 一則生物之仁이요 一則知人之智也니라』
『 포(匏)는 박이다. 뒤웅박『〔匏瓜〕』은 한 곳에 매달려 있어서 무엇을 마시고 먹을 수가 없으니,
사람은 이와 같지 않은 것이다.』
『 ○ 장경부(張敬夫)가 말하였다. “자로(子路)가 예전에 들었던 것은 군자(君子)가 몸을 지키는 떳떳한 법(法)이요,
공자(孔子)께서 지금 하신 말씀은 성인(聖人)이 도(道)를 체득하는 큰 권도(權道)이다. 그러나 공자(孔子)께서 공산
(公山)과 필힐(佛?)의 부름에 모두 가려고 하셨던 것은, 천하(天下)에 변화시키지 못할 사람이 없고,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며, 끝내 가시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을 끝내 변화시킬 수 없고, 그 일을 끝내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하나는 만물을 생성시키는 인(仁)이고, 하나는 남을 알아보는 지혜(智慧)이다.”』
*논어 ; 양화 ; 제8장
▣ 제8장(第八章)
『子曰 由也아 女聞六言六蔽矣乎아 對曰 未也로이다』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유(由)야! 너는 육언(六言)과 육폐(六蔽)를 들어보았느냐?” 하시자,
<자로(子路)가> 대답하였다.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蔽는 遮掩也라』
『 폐(蔽)는 가려지는 것이다.』
『居하라 吾語女하리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앉거라. 내 너에게 말해 주리라.”』
『禮에 君子問更端則起而對라 故로 夫子諭子路하여 使還坐而告之시니라』
『 예(禮)에 군자(君子)가 질문할 때에 그 화제(話題)를 바꾸면 일어나서 대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자로(子路)에게 말씀하여 하여금 다시 앉게 하고서 일러주신 것이다.』
『好仁不好學이면 其蔽也愚하고 好知不好學이면 其蔽也蕩하고 好信不好學이면 其蔽也賊하고 好直不好學이면
其蔽也絞하고 好勇不好學이면 其蔽也亂하고 好剛不好學이면 其蔽也狂이니라』
『 인(仁)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가려짐]』이 어리석게 되고『〔愚〕』, 지혜『〔知〕』
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호탕하게 되고『〔蕩〕』, 믿음『〔信〕』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해치게 되고『〔賊〕』, 정직『〔直〕』한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급하게 되고『〔絞〕』, 용맹『〔勇〕』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어지럽게 되고『〔亂〕』, 강(剛)한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경솔하게 된다『〔狂〕』.”』
『六言은 皆美德이나 然이나 徒好之而不學以明其理면 則各有所蔽라 愚는 若『可陷可罔주:가함가망』之類요 蕩은
謂窮高極廣而無所止요 賊은 謂傷害於物이라 勇者는 剛之發이요 剛者는 勇之體라 狂은 躁率也라』
『○ 范氏曰 子路勇於爲善이나 其失之者는 未能好學以明之也라 故로 告之以此하시니라 曰勇曰剛曰信曰直은 又皆
所以救其偏也시니라』
『 육언(六言)은 모두 아름다운 덕(德)이다. 그러나 한갓 좋아하기만 하고 배움으로써 그 이치를 밝히지 않으면,
각각 가려지는 폐단이 있게 된다. 우(愚)는 함정에 빠뜨릴 수 있고 속일 수 있는 유(類)와 같은 것이요, 탕(蕩)은
높은 것을 다하고 넓은 것을 다하여 그치는 곳이 없는 것이요, 적(賊)은 사물에 상해되는 것이다.
용(勇)은 강(剛)이 드러난 것이고, 강(剛)은 용(勇)의 체(體)이다. 광(狂)은 조급하고 경솔한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자로(子路)는 선(善)을 행하는 데에 용감하였으나, 그의 결함은 배움을 좋아하여 그
이치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로써 일러주신 것이다. 용(勇)이니, 강(剛)이니, 신(信)이니,
직(直)이니 하는 것은 모두 그의 치우친 점을 바로잡아 주신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9장
▣ 제9장(第九章)
『子曰 小子는 何莫學夫詩오』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詩)를 배우지 아니하느냐?』
『小子는 弟子也라』
『 소자(小子)는 제자(弟子)이다.』
『詩는 可以興이며』
『 시(詩)는 일으킬 수 있으며,』
『感發志意라』
『 뜻을 감발(感發)하는 것이다.』
『可以觀이며』
『 살필 수 있으며,』
『考見得失이라』
『 득실(得失)을 상고해 보는 것이다.』
『可以群이며』
『 무리를 지을 수 있으며,』
『和而不流라』
『 화(和)하면서도 방탕한 데로 흐르지 않는 것이다.』
『可以怨이며』
『 원망할 수 있으며,』
『怨而不怒라』
『 원망하면서도 성내지는 않는 것이다.』
『邇之事父며 遠之事君이요』
『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길 수 있게 하며,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게 하고,』
『人倫之道가 詩無不備하니 二者는 擧重而言이라』
『 인륜(人倫)의 도(道)가 시(詩)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니, 이 두 가지는 중한 것을 들어서 말씀한 것이다.』
『多識於鳥獸草木之名이니라』
『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其緖餘 又足以資多識이라』
『○ 學詩之法을 此章盡之하니 讀是經者 所宜盡心也니라』
『 부수적으로 많은 지식을 자뢰할 수 있는 것이다.』
『 ○ 시(詩)를 배우는 법(法)을 이 장(章)에 다하였으니, 이 《시경(詩經)》을 읽는 자들이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아 人而不爲周南召南이면 其猶正牆面而立也與인저』
『 공자(孔子)께서 백어(伯魚)에게 이르셨다. “너는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웠느냐?
사람으로서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爲는 猶學也라 周南, 召南은 詩首篇名이니 所言이 皆修身齊家之事라 正牆面而立은 言卽其至近之地로되 而一
物無所見하고 一步不可行이라』
『 위(爲)는 학(學)과 같다.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은 《시경(詩經)》의 첫머리 편명(篇名)인데,
그 내용이 모두 자기 몸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일이다.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선다는 것은 지극히 가까운
곳에 나가서도 한 물건도 보이는 것이 없고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子曰 禮云禮云이나 玉帛云乎哉아 樂云樂云이나 鍾鼓云乎哉아』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예(禮)이다, 예(禮)이다 하지만, 옥백(玉帛)을 이르는 것이겠는가? 악(樂)이다,
악(樂)이다 하지만, 종고(鍾鼓)를 이르는 것이겠는가?”』
『敬而將之以玉帛則爲禮요 和而發之以鍾鼓則爲樂이라 遺其本而專事其末이면 則豈禮樂之謂哉리오』
『○ 程子曰 禮는 只是一箇序요 樂은 只是一箇和니 只此兩字가 含蓄多少義理라 天下에 無一物無禮樂하니 且如置
此兩椅에 一不正이면 便是無序요 無序면 便乖요 乖면 便不知라 又如盜賊이 至爲不道나 然이나 亦有禮樂하니 蓋必
有總屬하여 必相聽順이라야 乃能爲盜요 不然이면 則叛亂無統하여 不能一日相聚而爲盜也라 禮樂은 無處無之하니
學者要須識得이니라』
『 공경을 하고서 옥백(玉帛)으로 받들면 예(禮)가 되고, 조화를 하고서 종고(鍾鼓)로 나타내면 악(樂)이 된다.
근본을 빠뜨리고 오로지 그 끝만을 일삼으면 어찌 예악(禮樂)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예(禮)는 하나의 질서『〔序〕』일 뿐이며, 악(樂)은 하나의 조화『〔和〕』일
뿐이니, 서(序)와 화(和), 이 두 글자가 많은 의리(義理)를 함축하고 있다.
천하(天下)에는 단 한 가지 일도 예악(禮樂)이 없는 것이 없으니, 우선 예를들면 두 개의 의자를 놓았는데 하나가
바르지 않으면 질서(秩序)가 없고, 질서가 없으면 괴리되고, 괴리되면 조화(調和)를 이루지 못하게 되고 만다.
또한 도적들이 지극히 불도(不道)하나, 그들에게도 예악(禮樂)이 있으니, 반드시 우두머리와 부하가 있어서 서로
명령을 들어 따라야만 도적질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란이 일어나 기강이 없어서 단 하루도 서로
모여 도적질을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예악(禮樂)은 어느 곳이든 없는 곳이 없으니, 학자(學者)들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子曰 色쪵而內荏을 譬諸小人하면 其猶穿츓之盜也與인저』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얼굴빛은 위엄이 있으면서 마음이 유약한 것을 소인(小人)에게 비유하면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적과 같을 것이다.”』
『쪵는 威嚴也요 荏은 柔弱也라 小人은 細民也라 穿은 穿壁이요 츓는 踰牆이라 言其無實盜名而常畏人知也라』
『 여(쪵)는 위엄이 있는 것이고, 임(荏)은 유약한 것이다. 소인(小人)은 백성이다. 천(穿)은 벽을 뚫는 것이고
유(츓)는 담을 넘는 것이니, 실상이 없이 이름만 훔쳐 항상 남들이 알까 두려워함을 말씀한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子曰 鄕原은 德之賊也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향원(鄕原)은 덕(德)의 적(賊)이다.”』
『鄕者는 鄙俗之意라 原은 與愿同하니 荀子原慤을 註에 讀作愿하니 是也라 鄕原은 鄕人之愿者也니 蓋其同流合汚
하여 以媚於世라 故로 在鄕人之中에 獨以愿稱이라 夫子以其似德非德而反亂乎德이라 故로 以爲德之賊而深之
하시니 詳見孟子末篇이라』
『 향(鄕)은 비속(鄙俗)의 뜻이다. 원(原)은 원(愿)과 같으니, 《순자(荀子)》에 원각(原慤)이라는 말을 주(註)에서
원(原)을 원(愿)으로 썼으니, 바로 이것이다. 향원(鄕原)은 시골 사람 중에 근후한 자이다. 유속(流俗)을 함께 하고
더러움에 영합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 중에서 홀로 근후 하다고 칭송을 받는 것이다.
공자(孔子)께서는 덕(德)과 비슷하나 덕(德)이 아니어서 도리어 덕(德)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덕(德)의 적(賊)이라고 말씀하여 매우 미워하신 것이다. 《맹자(孟子)》말편(末篇)에 자세히 보인다.』
*논어 ; 양화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子曰 道聽而塗說이면 德之棄也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면 덕(德)을 버리는 것이다.”』
『雖聞善言이나 不爲己有면 是自棄其德也라』
『○ 王氏曰 君子多識前言往行하여 以畜其德하니 道聽塗說이면 則棄之矣니라』
『 비록 좋은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소유로 삼지 않으면 이는 스스로 그 덕(德)을 버리는 것이다.』
『 ○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전인(前人)들의 훌륭한 말씀과 행실을 많이 알아서 자기의 덕(德)을
기르니,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면 덕(德)을 버리는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子曰 鄙夫는 可與事君也與哉아』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비루한 사람과는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
『鄙夫는 庸惡陋劣之稱이라』
『 비부(鄙夫)는 용렬하고 악하며, 비루하고 졸렬함의 칭호이다.』
『其未得之也에는 患得之하고 旣得之하여는 患失之하나니』
『 부귀를 얻기 전에는 얻을 것을 걱정하고, 이미 얻고나서는 잃을 것을 걱정하니,』
『何氏曰 患得之는 謂患不能得之라』
『 하씨(何氏)가 말하였다. “얻을 것을 걱정한다는 것은 얻을 수 없음을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苟患失之면 無所不至矣니라』
『 만일 잃을 것을 걱정한다면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小則캪癰콝痔와 大則弑父與君이 皆生於患失而已라』
『○ 胡氏曰 許昌짴裁之有言曰 士之品이 大槪有三하니 志於道德者는 功名이 不足以累其心이요 志於功名者는
富貴不足以累其心이요 志於富貴而已者는 則亦無所不至矣라하니 志於富貴는 卽孔子所謂鄙夫也니라』
『 작게는 등창을 빨고 치질을 핥으며 크게는 아비와 임금을 시해하는데, 이는 모두 잃을까 걱정하는 데서 생기는
것일 뿐이다.』
『 ○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허창(許昌)에 근재지(짴裁之)는 이런 말을 하였다. ‘선비의 등급이 대개 세 가지가
있으니, 도덕(道德)에 뜻을 둔 자는 공명(功名)이 그 마음을 얽맬 수 없고, 공명(功名)에 뜻을 둔 자는 부귀(富貴)가
그 마음을 얽맬 수 없고, 부귀(富貴)에만 뜻을 두고 있을 뿐인 자는 못하는 짓이 없다.’하였으니, 부귀(富貴)에 뜻을
두는 자는 바로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비부(鄙夫)이다.”』
*논어 ; 양화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子曰 古者에 民有三疾이러니 今也에는 或是之亡也로다』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백성들이 세 가지 병폐『〔疾〕』가 있었는데, 지금에는 그것마저도
없어졌구나!』
『氣失其平則爲疾이라 故로 氣µ;之偏者를 亦謂之疾이라 昔所謂疾이 今亦亡之하니 傷俗之益偸也시니라』
『 기운(氣運)이 화평(和平)함을 잃으면 병『〔疾〕』이 된다. 그러므로 기품(氣µ;)이 편벽(偏僻)된 것도 병
『〔疾〕』이라고 말한다. 옛날의 이른바 병폐가 지금에는 없어졌다 하셨으니, 이는 풍속이 더욱 야박해진 것을
슬퍼하신 것이다.』
『古之狂也는 肆러니 今之狂也는 蕩이요 古之矜也는 廉이러니 今之矜也는 忿戾요 古之愚也는 直이러니 今之愚也는
詐而已矣로다』
『 옛날의 광(狂)은 작은 예절에 구애하지 않았는데『〔肆〕』, 지금의 광(狂)은 방탕하기만 하고『〔蕩〕』,
옛날의 긍(矜)은 행동에 모가 있었는데『〔廉〕』, 지금의 긍(矜)은 사납기만 하고『〔忿戾〕』, 옛날의 어리석은
사람『〔愚〕』은 정직했었는데『〔直〕』, 지금의 어리석은 사람은 간사하기만『〔詐〕』 할뿐이다.”』
『狂者는 志願太高라 肆는 謂不拘小節이요 蕩은 則踰大閑矣라 矜者는 持守太嚴 直은 謂徑行自遂요 詐는 則挾私
妄作矣라』
『○ 范氏曰 末世滋僞하니 豈惟賢者不如古哉리오 民性之蔽도 亦與古人異矣니라』
『 광(狂)이란 품은 뜻이 너무 높은 것이다. 사(肆)는 작은 예절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요, 탕(蕩)은 큰 한계를 넘어
서는 것이다. 긍(矜)은 자신을 지키기를 너무 엄히 하는 것이다. 염(廉)은 모가 있어 엄격한 것이요, 분려(忿戾)는
다툼에 이르는 것이다. 우(愚)는 미련하여 밝지 못한 것이다. 직(直)은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요,
사(詐)는 사사로움을 끼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말세(末世)에는 거짓이 불어나니, 어찌 현자(賢者)만이 옛날만 못할 뿐이겠는가?
백성들 성품(性µ;)의 가려짐 또한 옛날 사람과 다르게 마련이다.”』
*논어 ; 양화 ; 제17장
▣ 제17장(第十七章)
『子曰 巧言令色이 鮮矣仁이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자는 인(仁)한 사람이 드물다.”』
『重出이라』
『 다시 나왔다.』
*논어 ; 양화 ; 제18장
▣ 제18장(第十八章)
『子曰 惡紫之奪朱也하며 惡鄭聲之亂雅樂也하며 惡利口之覆邦家者하노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자주색이 주색(朱色)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며, 정(鄭)나라의 음악(音樂)이
아악(雅樂)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며, 말 잘하는 입『〔利口〕』이 나라를 전복시키는 것을 미워한다.”』
『『朱는 正色이요 紫는 間色주:주정색』이라 雅는 正也라 利口는 捷給이라 覆은 傾敗也라』
『○ 范氏曰 天下之理가 正而勝者常少하고 不正而勝者常多하니 聖人所以惡之也라 利口之人은 以是爲非하고 以非
爲是하며 以賢爲不肖하고 以不肖爲賢하니 人君이 苟悅而信之면 則國家之覆也不難矣니라』
『 주색(朱色)은 정색(正色)이고, 자주색은 간색(間色)이다. 아(雅)는 바름이다.
이구(利口)는 말을 민첩하게 잘하는 것이다. 복(覆)은 기울고 망하게 하는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천하(天下)의 이(理)는 올바르면서 이기는 경우가 항상 적고, 부정(不正)하면서
이기는 경우가 항상 많으니, 성인(聖人)께서 이 때문에 미워하신 것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 하며, 훌륭한 사람을 불초(不肖)하다 하고, 불초(不肖)한 사람을 훌륭하다 하니, 인군(人君)이 만일
그를 좋아하고 믿는다면 국가의 전복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19장
▣ 제19장(第十九章)
『子曰 予欲無言하노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學者多以言語觀聖人하고 而不察其天理流行之實이 有不待言而著者라 是以로 徒得其言而不得其所以言하니
故로 夫子發此以警之시니라』
『 학자(學者)들이 대부분 언어(言語)로써 성인(聖人)을 관찰하기만 하고, 천리(天理)가 유행(流行)하는 실제는
말을 기다리지 않고도 드러나는 것을 살피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한갓 그 말씀만을 알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이것을 말씀하여 깨우쳐 주신 것이다.』
『子貢曰 子如不言이시면 則小子何述焉이리잇고』
『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만일 말씀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이 어떻게 도(道)를 전하겠습니까?”』
『子貢은 正以言語觀聖人者라 故로 疑而問之라』
『 자공(子貢)이 바로 언어(言語)로써 성인(聖人)을 관찰한 자이다. 그러므로 의심하여 여쭌 것이다.』
『子曰 天何言哉시리오 四時行焉하며 百物生焉하나니 天何言哉시리오』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사시(四時)가 운행(運行)되고 온갖 만물이
생장(生長)하는데,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四時行, 百物生이 莫非天理發見流行之實이니 不待言而可見이라 聖人一動一靜이 莫非妙道精義之發이니 亦天
而已라 豈待言而顯哉리오 此亦開示子貢之切이니 惜乎라 其終不喩也여』
『○ 程子曰 孔子之道는 譬如日星之明이로되 猶患門人未能盡曉라 故로 曰予欲無言이라하시니 若顔子則便默識
이요 其他는 則未免疑問이라 故로 曰 小子何述이릿고한대 又曰 天何言哉시리오 四時行焉하며 百物生焉이라하
시니 則可謂至明白矣로다 愚按 此與前篇無隱之意로 相發하니 學者詳之니라』
『 사시(四時)가 운행(運行)되고 온갖 만물이 생장(生長)하는 것은 천리(天理)가 발현(發現)하여 유행(流行)하는
실체가 아님이 없는데, 말을 기다리지 않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성인(聖人)의 일동일정(一動一靜)은 오묘한
도(道)와 정밀한 의리(義理)의 발현(發現)이 아님이 없으니, 이 또한 하늘『〔天〕』일 뿐이다. 어찌 말씀을 기다
려야 드러나겠는가? 이것도 자공(子貢)에게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하신 것인데, 자공(子貢)은 끝내 깨닫지 못하였
으니, 애석하다.』
『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공자(孔子)의 도(道)는 비유하면 일성(日星)처럼 밝은데도 오히려 제자들이 다
깨닫지 못할까 걱정하시어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안자(顔子)였다면 묵묵히
알았을 것이요, 그 이외의 사람들은 의문을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공(子貢)은 ‘저희들이 어떻게
도(道)를 전하겠습니까?’하고 여쭈었고, 공자(孔子)께서 또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사시(四時)가 운행(運行)
되고 백물(百物)이 생장(生長)한다.’라고 말씀해 주셨으니, 지극히 명백하다고 할 수 있겠다.”』
『 내가 살펴보니, 이 말씀은 전편(前篇)에 있는 ‘숨김이 없다『〔無隱〕』.’는 뜻과 서로 발명되니, 학자들은 자세히
살펴야 한다.』
*논어 ; 양화 ; 제20장
▣ 제20장(第二十章)
『孺悲欲見孔子어늘 孔子辭以疾하시고 將命者 出戶어늘 取瑟而歌하사 使之聞之하시다』
『 유비(孺悲)가 공자(孔子)를 뵙고자 하였는데, 공자(孔子)께서는 병이 있다고 거절하시고 명령을 전달하는
자가 문밖으로 나가자, 비파(琵琶)를 가져다 노래를 부르시어 그로 하여금 듣게 하셨다.』
『孺悲는 魯人이니 嘗學士喪禮於孔子라 當是時에 必有以得罪者라 故로 辭以疾하시고 而又使知其非疾하여
以警敎之也시니라 程子曰 此는 孟子所謂不屑之敎誨니 所以深敎之也니라』
『 유비(孺悲)는 노(魯)나라 사람이다. 일찍이 공자(孔子)에게 사상례(士喪禮)를 배웠었는데, 이 때에 반드시 죄를
지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병이 있다고 거절하시고, 다시 그로 하여금 병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하시어
일깨워 주신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것은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신,
‘달갑게 여기지 않는 가르침『〔不屑敎誨〕』’이란 것이니, 그를 깊이 가르쳐 주신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宰我問 三年之喪이 期已久矣로소이다』
『 재아(宰我)가 말하였다. “삼년상(三年喪)은 기년(期年)만 하더라도 너무 오래다고 할 것입니다.』
『期는 周年也라』
『 기(期)는 일주년(一周年)이다.』
『君子三年不爲禮면 禮必壞하고 三年不爲樂이면 樂必崩하리니』
『 군자(君子)가 3년 동안 예(禮)를 행하지 않으면 예(禮)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音樂)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音樂)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恐居喪不習而崩壞也라』
『 거상(居喪)하는 동안 익히지 않아서 붕괴될까 걱정한 것이다.』
『舊穀旣沒하고 新穀旣升하며 鑽燧改火하나니 期可已矣로소이다』
『 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어지니, 1년이면 그칠 만한 것입니다.”』
『沒은 盡也요 升은 登也라 燧는 取火之木也라 改火는 春取楡柳之火하고 夏取棗杏之火하고 夏季取桑칖之火하고
秋取칳楢之火하고 冬取槐檀之火하니 亦一年而周也라 已는 止也라 言期年則天運一周하고 時物皆變하니 喪至此可
止也라 尹氏曰 短喪之說은 下愚且恥言之하나니 宰我親學聖人之門이로되 而以是爲問者는 有所疑於心而不敢强
焉爾니라』
『 몰(沒)은 다 없어지는 것이고, 승(升)은 오르는 것이다. 수(燧)는 불씨를 취하는 나무이다.
불씨를 바꾼다는 것은 봄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의 불씨를 취하고, 여름에는 대추나무와 살구나무의 불씨를
취하고, 늦여름에는 뽕나무와 산뽕나무의 불씨를 취하고, 가을에는 갈참나무와 섶나무의 불씨를 취하고,
겨울에는 느티나무와 박달나무의 불씨를 취하는데, 이 또한 1년이면 일주(一周)를 한다. 이(已)는 그치는 것이다.
1주년이 되면 하늘의 운행이 한 바퀴를 돌고, 시물(時物)이 모두 바뀌니, 상(喪)도 1년이 되면 그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상기(喪期)를 줄여야 한다는 말은 지극히 어리석은 자도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재아(宰我)는 성인(聖人)의 문하(門下)에서 직접 배운 자로서 이것을 여쭌 것은 마음에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감히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子曰 食夫稻하며 衣夫錦이 於女安乎아 曰 安하나이다』
『 공자(孔子)께서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하냐?” 하시니, <재아(宰我)가> 대답하기를
“편안합니다.” 하였다.』
『禮에 父母之喪에 旣殯에 食粥퀎衰하고 旣葬에 疏食水飮하고 受以成布하며 期而小祥에 始食菜果하고 練冠ç;緣
하며 要²'不除하니 無食稻衣錦之理라 夫子欲宰我反求諸心하여 自得其所以不忍者라 故로 問之以此러시니 而宰我
不察也라』
『 예(禮)에 ‘부모(父母)의 상(喪)에는 빈소(殯所)하고 나서 죽을 먹고 거친 최복(衰服)을 입으며, 장사지내고
나서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조금 가는 베옷을 입으며, 1년이 지나 소상(小祥)이 되어야 비로소 나물과 과일을
먹고 연포(練布)로 만든 관(冠)을 쓰고 붉은 색으로 선을 두른 옷을 입으며, 수질(首²')과 요질(要²')을 풀지 않는다.
’하였으니, 쌀밥을 먹고 비단 옷을 입는 이치는 없는 것이다. 공자(孔子)께서는 재아(宰我)로 하여금 자기 마음에
돌이켜 차마 하지 못하는 단서를 스스로 터득하게 하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이것을 물으신 것인데, 재아(宰我)가
살피지 못하였다.』
『女安則爲之하라 夫君子之居喪에 食旨不甘하며 聞樂『(악)』不樂『(락)』하며 居處不安이라 故로 不爲也하나니
今女安則爲之하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해라. 군자(君子)가 거상(居喪)할 때에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니,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해라.”』
『此는 夫子之言也라 旨는 亦甘也라 初言女安則爲之는 絶之之辭요 又發其不忍之端하여 以警其不察하시고 而再言
女安則爲之하여 以深責之시니라』
『 이것은 부자(夫子)의 말씀이다. 지(旨) 역시 맛있는 것이다. 처음에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해라.’라고 하신 것은
끊은 말씀인데, 또 차마 하지 못하는 단서를 말씀하여 재아(宰我)의 불찰을 깨우쳐 주시고, 다시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해라.’라고 말씀하시어 깊이 나무라신 것이다.』
『宰我出이어늘 子曰 予之不仁也여 子生三年然後에 免於父母之懷하나니 夫三年之喪은 天下之通喪也니 予也有三
年之愛於其父母乎아』
『 재아(宰我)가 밖으로 나가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재아(宰我)의 인(仁)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
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삼년상(三年喪)은 온천하의 공통된 상(喪)이니, 재여(宰予)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父母)에게 있었는가?”』
『宰我旣出에 夫子懼其眞以爲可安而遂行之라 故로 深探其本而斥之시니라 言由其不仁故로 愛親之薄이 如此也라
懷는 抱也라 又言君子所以不忍於親而喪必三年之故하여 使之聞之하여 或能反求而終得其本心也시니라』
『○ 范氏曰 喪雖止於三年이나 然이나 賢者之情則無窮也로되 特以聖人爲之中制而不敢過라 故로 必俯而就之요
非以三年之喪爲足以報其親也라 所謂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는 特以責宰我之無恩하여 欲其有以쨥而及之爾시니라』
『 재아(宰我)가 나가자, 공자(孔子)께서는 재아(宰我)가 참으로 편안히 여겨도 된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행할까
걱정하셨다. 그러므로 그 근본을 깊이 찾아서 배척하신 것이다. 재아(宰我)가 인(仁)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버이를
사랑하는 데 박함이 이와 같다고 하신 것이다. 회(懷)는 품이다. 또 군자(君子)가 어버이에게 차마 하지 못하여
상례(喪禮)를 반드시 3년 동안 하는 이유를 말씀하여, 재아(宰我)로 하여금 이 말을 듣고서 혹시라도 자신에게
돌이켜 끝내 그 본심(本心)을 얻게 하신 것이다.』
『 ○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상례(喪禮)는 비록 3년에 그치나, 현자(賢者)의 마음은 한이 없다.
다만 성인(聖人)이 알맞은 제도를 만드셨기 때문에 감히 지나칠 수 없으므로 반드시 굽혀서 나아가는 것이지,
3년의 상례(喪禮)로써 어버이에게 은혜를 충분히 보답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고 하신 말씀은 다만 재아(宰我)의 은혜 없음을 나무라서 그로 하여금 따라가게 하려고 하신 것일
뿐이다.”』
*논어 ; 양화 ; 제22장
▣ 제22장(第二十二章)
『子曰 飽食終日하여 無所用心이면 難矣哉라 不有博奕者乎아 爲之猶賢乎已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배부르게 먹고 하루해를 마치면서 마음을 쓰는 곳이 없다면 어렵다.
장기와 바둑이라도 있지 않은가? 그것을 하는 것도 그만두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博은 局戲也요 奕은 圍쨒也라 已는 止也라 李氏曰 聖人非敎人博奕也요 所以甚言無所用心之不可爾시니라』
『 박(博)은 장기놀이요, 혁(奕)은 바둑이다. 이(已)는 그만두는 것이다.』
『 이씨(李氏)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이 사람들에게 장기와 바둑을 하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요,
마음을 쓰는 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깊이 말씀하셨을 뿐이다.”』
*논어 ; 양화 ; 제23장
▣ 제23장(第二十三章)
『子路曰 君子尙勇乎잇가 子曰 君子는 義以爲上이니 君子有勇而無義면 爲亂이요 小人有勇而無義면 爲盜니라』
『 자로(子路)가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용맹을 숭상하옵니까?”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의(義)를 으뜸으로 삼는다. 군자(君子)가 용(勇)만 있고 의(義)가 없으면 난(亂)을 일으키고,
소인(小人)이 용(勇)만 있고 의(義)가 없으면 도적질을 할 것이다.”』
『尙은 上之也라 君子爲亂과 小人爲盜는 皆以位而言者也라 尹氏曰 義以爲尙이면 則其爲勇也大矣라 子路好勇
이라 故로 夫子以此救其失也시니라 胡氏曰 疑此子路初見孔子時問答也라』
『 상(尙)은 숭상하는 것이다. 군자(君子)가 난(亂)을 일으키고, 소인(小人)이 도적질을 한다는 것은 모두
지위로써 말한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의(義)를 숭상하면 그 용(勇)이 크다 할 것이다. 자로(子路)가 용맹을 좋아하므로
공자(孔子)께서 이것으로 그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신 것이다.”』
『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자로(子路)가 처음 공자(孔子)를 뵈었을 때의 문답일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24장
▣ 제24장(第二十四章)
『子貢曰 君子 亦有惡乎잇가 子曰 有惡하니 惡稱人之惡者하며 惡居下流而챀上者하며 惡勇而無禮者하며 惡果敢
而窒者니라』
『 자공(子貢)이 묻기를 “군자(君子)도 미워함이 있습니까?”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미워함이 있으니,
남의 단점(短點)을 말하는 자를 미워하며, 하류(下流)에 처하면서 윗사람 비방하는 자를 미워하며, 용(勇)만 있고
예(禮)가 없는 자를 미워하며, 과감하기만 하고 융통성이 없는 자를 미워한다.”』
『챀은 謗毁也요 窒은 不通也라 稱人惡則無仁厚之意요 下챀上則無忠敬之心이요 勇無禮則爲亂이요 果而窒則妄作
이라 故로 夫子惡之시니라』
『 산(챀)은 비방하여 헐뜯는 것이고, 질(窒)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 남의 단점을 말하면 인후(仁厚)한 뜻이 없고,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비방하면 충경(忠敬)스러운 마음이 없다. 용(勇)만 있고 예(禮)가 없으면 난(亂)을 일으
키고 과감하기만 하고 융통성이 없으면 함부로 행동한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미워하신 것이다.』
『曰 賜也亦有惡乎아 惡徼以爲知者하며 惡不孫以爲勇者하며 惡쳿以爲直者하노이다』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賜)야! 너도 미워함이 있느냐?” 하시니,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살핌을 지혜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며, 겸손하지 않은 것을 용맹으로 여기는 자를 미워하며, 들추어내는 것을
정직함으로 여기는 자를 미워합니다.”』
『惡徼以下는 子貢之言也라 徼는 伺察也라 쳿은 謂攻發人之陰私라』
『○ 楊氏曰 仁者無不愛하니 則君子疑若無惡矣어늘 子貢之有是心也라 故로 問焉以質其是非니라 侯氏曰 聖賢之
所惡如此하시니 所謂惟仁者能惡人也니라』
『 오요(惡徼) 이하의 문장은 자공(子貢)의 말이다. 요(徼)는 사찰하는 것이고, 알(쳿)은 남의 사사로움을 들추어
내는 것이다.』
『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인자(仁者)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군자(君子)는 미워함이 없을 듯한데,
자공(子貢)이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여쭈어 그 시비(是非)를 질정한 것이다.”』
『 후씨(侯氏)가 말하였다. “성현(聖賢)의 미워함이 이와 같았으니, 이른바 ‘인자(仁者)라야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唯仁者能惡人〕』.’는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25장
▣ 제25장(第二十五章)
『子曰 唯女子與小人은 爲難養也니 近之則不孫하고 遠之則怨이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여자(女子)와 소인(小人)은 기르기가 어려우니,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 하면
원망한다.”』
『此小人은 亦謂僕隸下人也라 君子之於臣妾에 莊以쬙之하고 慈以畜之면 則無二者之患矣라』
『 여기에서 말한 소인(小人)은 또한 복예(僕隸)와 하인(下人)을 말한다. 군자(君子)『[위정자(爲政者)]』가
신첩(臣妾)에게 장엄함으로써 임하고 자애로써 기르면 이 두 가지의 병폐가 없을 것이다.』
*논어 ; 양화 ; 제26장
▣ 제26장(第二十六章)
『子曰 年四十而見惡焉이면 其終也已니라』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이가 40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으면 그대로 끝나고 말 것이다.”』
『四十은 成德之時니 見惡『(오)』於人이면 則止於此而已니 勉人及時遷善改過也라 蘇氏曰 此亦有爲而言이니
不知其爲誰也라』
『 40세는 덕(德)이 이루어지는 때인데,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그대로 끝나고 말뿐이니, 사람들에게 제때에
미쳐서 허물을 고치고 선(善)으로 나아가기를 권면 하신 것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이것도 까닭이 있어서 하신 말씀이겠으나, 누구 때문이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