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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에서 만나는 넓적바위다. 예전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여근석이다. 이곳 넓적바위도 아래마을 동제의 대상이었을 것이고 조선시대에는 아들 낳기를 바라는 여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는 호젓한 산속이었지만 둘레길이 나면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곳이 되었다.
백사마을 통과한다. 중계동 104번지, 백사마을은 노원구 중계동 불암산자락에 위치한 서울 마지막 달동네다. 소위 백사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중계동 104번지는 대한민국발전사에 그늘처럼 남아 있는 마을이다.
공릉산으로 오르는 깔딱고개가 시작된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이 구간만 오면 다른 깔딱고개는 다 잊어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길이 되어버린다.
가끔 반갑게 이마를 어루만져 주는 나무, 그사이 많이 자라서 인지 키가 훌쩍 자란 것 같은 느낌이다.
공릉산 정상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 리기다소나무의 고향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대서양 연안이 원산지인 리기다소나무는 약 25m까지 자랄 수 있는 소나무 종류지만 우리 토종 소나무나 곰솔과는 달리 줄기의 여기저기에서 맹아가 많이 나와 여간해선 죽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나무라고 한다.
불암산으로 오를 수 있는 갈림길이다.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던 산이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금강산, 하면 빼어나기로 아름다운 산이다 그런 곳에 있던 불암산은 아무리 생각해도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나 같으면 가라고 등 떠밀어도 그냥 눌러 있겠구만. 조선왕조가 들어서 도읍을 정하는데 한양에 남산이 없어서 못 정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자기가 한양의 남산이 되고 싶어진 것이다.
사람이나 산이나 출세를 하려면 서울(한양)으로 가야해, 하면서 금강산을 떠나 한양으로 온 불암산. 그런데 이런, 한 발 늦었다. 한양에는 이미 남산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소문이란 믿을 게 못 되는 법, 하면서 돌아가면 좋았으련만 불암산은 그냥 한양 언저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래도 출세를 하겠다고 떠나온 고향에 빈손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나 보다. 불암산은 헛소문을 퍼뜨린 한양이 영 못마땅해 돌아앉은 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갈림길에서 머지않은 곳에 전망 쉼터가 있다. 그렇게 조망이 시원한 곳은 아니지만 육사 교정이 내려다보이는 곳다.
공릉동 쉼터에 내려선다. 잠시 쉬어간다. 공릉동은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서 서울시로 편입 될 당시에는 서쪽에 공덕리 동쪽에 태릉, 강릉이 있고 그 안에 능골이라는 큰 마을이 두개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태릉동으로 정하였다가 공덕리 주민들의 반대로 동명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두 마을 주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자연부락인 공덕리의 '공'자와 태릉의 '릉'자를 따서 공릉동이라 하여다고 한다.
불암산을 내려서는 희망길 그리고 백세길, 임도를 따라 내려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공릉산백세문이다. 원자력병원 건너편에 있으며 불암산 등산로 나들목이기도 하다.
송림마을을 지나면 옛 경춘선 철길, 추억의 철길이다.
오랜만에 서울둘레길에서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