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일본군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조선정벌에서 가장 놀란 일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는 조선의 국왕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 간 사실. 둘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의병들의 출현이었다.
도읍인 한양을 점령하고 조선의 국왕만 잡으면 전쟁은 승리로 끝날 줄 알았던 고니시는 한양을 점령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리의 타깃인 조선 국왕이 도읍과 백성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의 관군(官軍)만 싸움의 대상으로 여겼던 일본군은 지방 곳곳에서 출몰하는 의병과 승병들을 맞이하자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전쟁의 양상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일본의 전쟁개념과 조선의 전쟁개념이 달랐기 때문이다. 전쟁개념의 차이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국가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당시 일본은 막부(幕府)라는 무사정권(武士政權)들의 오랜 전란을 겪은 후라 국가(國家) 및 민족(民族)과 같은 개념의 정체성(正體性)이 부재했고, 조선은 이미 신라, 고려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고유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
국가정체성이란 개개의 왕국과 왕조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하나의 역사, 언어, 문화와 지역권에 대한 소속감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백성 즉 한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지니게 된 특유의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과 의로운 민족>(Empire and Righteous Nation)의 저자인 오드 아르네 베스타 교수는 “한국인들은 현대적 ‘국가’의 개념이 창시되기 훨씬 이전부터 ‘국가’를 꾸려왔다.”고 했으며, 한국학의 대부 존 던컨 UCLA 교수는 “한국은 신라 때부터 현대적인 국가였다”고 밝혔다.
과거 중세시대에선 전쟁의 승리는 적장 또는 국왕을 쓰러뜨림으로써 마무리되었다. 또한 열세한 병력을 가지고도 기적적인 승리를 쟁취했던 사례는 기습이나 매복 같은 기막힌 전략전술로 적장이나 국왕을 먼저 쓰러뜨림으로써 가능했다. 과거 봉건사회에서 국왕은 한 국가의 중앙서버(Central Server)와 같은 존재였다. 국가는 왕을 중심으로 중앙화시스템(Centralization system)으로 운용되는 조직이었다. 이 같은 중앙화시스템에선 국왕이 중앙서버에 해당하기에 국왕을 죽이거나 사로잡으면 그 국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과거 모든 중세국가가 그렇듯 조선이란 국가도 정치적으로는 중앙화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조선백성 개개인이 지닌 국가관은 탈중앙화(脫中央化, decentralization)였다. 즉 국왕은 당연히 존재했지만 상징적일뿐 실제 조선이란 국가의 주인은 국가의 구성원인 백성(국민)들이었다. 왕이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갈아치웠고 백성들은 이에 대해 개인적 원한은 있었겠지만 무관심했다. 하지만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땐 백성들은 개별 노드(Node)로 연결되는 조선이란 국가의 분산 시스템(distributed systems)으로 작용했다.
블록체인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임진왜란을 되돌아보면 '중앙화(中央化, centralization)의 일본과 탈중앙화(脫中央化, decentralization)의 조선'이 대립한 전쟁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일본 막부정부의 중앙서버였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임란은 끝났지만, 조선은 국왕의 무능이 극에 달하여 중앙서버의 작동불능 상태에도 탈중앙화 된 분산 시스템(의병, 승병)이 자발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빼놓을 수 없지만 조선 수군의 활약 역시 중앙서버의 도움 없이 개별로 운용된 하나의 분산 컴퓨팅 역할이었다.
블록체인의 3대 기술적 특징은 첫째 탈중앙화, 둘째 불변성, 셋째 합의이다. 그 중 탈중앙화는 중앙집중화를 벗어나 분산된 개별 노드(node,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연결에 의해 피투피(P2P, 개인 대 개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블록체인 구조에서 중앙조직은 불필요하다. 블록체인 시스템이 확산될수록 기존의 은행, 보험사, 공증사무소, 포털사이트, 기업 등은 물론 법원, 정부, 국가 등 다양한 중개기관들의 중앙서버 역할이 점차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파이타임 : 정신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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