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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0일 대림절 둘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36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5:1-14절(신403)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어린 양과 두루마리
오늘은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계4장에서 ‘이리로 올라오라’는 주 예수의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듣고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에 들어간 요한의 두 번째 환상을 통해 보좌와 창조주 하나님과 그 배경을 보았고, 그분에 대한 네 생물의 찬양과 이십사 장로의 찬양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계5장)은 여전히 하늘에서 요한이 4장과는 약간 다른 새로운 환상을 소개하는 ‘내가 보매’(1)로 시작합니다. 1절입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그러나 4장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언급은 오늘 본문(5장)이 4장의 창조주 하나님의 배경으로 주어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 (위)에 있는 안팎으로 (오래전에) 기록되어 온, 그리고 일곱 인으로 (오래전에) 봉인되어 온 두루마리를 보았습니다(1).
‘봉인’의 비유는 단12장에서 발견됩니다. ‘그때(종말)’(단12:1)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단12:1-3)을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하라’(단12:4, 9)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루마리가 일곱 인으로 봉하였다는 것’은 종말까지 감추어져 있다가, 종말에 비로소 알려지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두루마리 내용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는 언제 여호와의 날(종말)이 임할 것인가의 질문도 암시됩니다. 본문을 읽으신 후에 답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과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를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6장부터 시작되는 두루마리 내용(환상들)을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을 도울 것입니다.
요한은 또 다른 장면을 보고 들었습니다(2-5).
먼저 그는 ‘누가 그 인을 떼기 합당하냐’라는 천사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2-4절입니다.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때문에) 내가 크게 울었더니.”
‘힘 있는 천사’가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2)고 외칩니다. 여기서 ‘합당한(앜시오스)’은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가진 자격’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인을 떼는 것’은 내용을 계시할 뿐만 아니라 시행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 천사의 외침은 누가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그 두루마리의 내용을 알려주고, 시행할 수 있는 합당한 자격을 가지고 있느냐의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자격을 가진 자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3), 요한은 크게 울었습니다(4).
요한은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그 인을 떼시리라’라는 한 장로의 대답을 들었습니다(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보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그 장로는 요한에게 ‘울지 말라’고 하면서, ‘보라,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기 위하여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셨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5)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기셨다’는 부정과거로 과거에 단번에 최종적으로 이기셨다(완성된 승리)는 의미입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는 창49:8-12절을 근거하여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실 유다의 후손으로 오실 사자와 같은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창49:9절입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그리고 ‘다윗의 뿌리’(사11:1, 10)는 ‘여호와의 날(종말)’에 다윗 언약을 성취하실 다윗의 후손(메시아)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그 장로의 대답은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가 이기셨기 때문에 그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게 되었다(5)는 기쁜 소식(복음)이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그것의 인을 뗄 수 있게 되는 구약이 예언한 ‘여호와의 날(종말)’이 이미 왔다는 의미입니다(행2:16-17). 갈4:4절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언제 여호와의 날(종말)이 올 것인가’의 구약의 질문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 종말이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종말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여야 합니다.
그 장로의 기쁜 소식(5)을 들은 요한은 ‘유대의 사자 다윗의 뿌리이신 메시아가 어떻게 이기었기에 그 인을 떼게 되었을까’라고 생각하며, 아마 ‘사자와 같이 그의 강한 힘으로 이겼을 것이라’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요한은 아주 이상하게도 사자가 아니라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가운데 서 있는 어린 양을 보았습니다(6-7).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요한은 ‘용맹과 위엄있는 사자’가 아니라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은 한 어린 양’(6)을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죽임을 당한(에스파그논) 것 같은 어린 양’은 단지 죽임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했으나 지금 살아 있다(부활)는 의미이며, 그의 죽음의 효력이 현재 계속되고 있다(완료시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 양’은 ‘유다의 사자’(5)로서 승리하신 메시아의 이미지를 완전하게 바꾸어버립니다. 그는 사자와 같이 승리하신 것이 아니라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함으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의 죽음이 그의 승리의 방법입니다. 골2:15절입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오직 십자가로 절대적으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그 어린 양의 죽음으로 승리한 결과인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6)를 보았습니다. 여기서 ‘일곱 뿔’은 그의 전능하신 권세, 즉 그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만물의 주(왕)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성령’으로,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한없이 성령을 받으신 그의 전지하심을 의미하며, 만물의 주로서 그가 종말의 오순절 날에 성령을 땅에 있는 교회에게 보내셨음을 의미합니다(행2:33).
그래서 요한은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7)를 보았습니다. 여기서 ‘나아와서’는 부정과거로서 과거의 결정적인 사건(승천)을 가리키며, ‘취하시니라’는 완료로서 그것을 취하신 효력이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죽임을 당한 것 같은(죽음과 부활의) 어린 양’이 그 두루마리를 계속 계시하시며 시행하시는 영원한 주(왕)가 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그 어린 양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제 그 두루마리의 인이 떼어지고 그것이 시행될 ‘여호와의 날(종말)’이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한 시기’(단7:12)가 되어 단7:13-14절의 성취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면, 하나님의 두루마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약의 ‘여호와의 날(종말)에 오실 메시아’의 예언(약속)과 관계있으며, 그것의 인을 떼실 합당한 자격은 오직 그 어린 양의 죽음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오직 그의 죽음으로 구약의 예언(약속)이 성취되는 여호와의 날(종말)이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저(그) 날’ ‘그때’ ‘다가올 날’ 등등으로 표현되는 ‘여호와(주)의 날(종말)’은 하나님이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악한 세상(이스라엘 포함)을 최후로 심판하시는 진노의 날이며, 그 심판을 통하여 그에게 속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날입니다. 요한도 요한계시록에서 ‘진노의 큰 날’(6:17), ‘전능하신 이의 큰 날’(16:14), ‘하루 동안’(18:8)으로 표기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날’이 ‘하루(day)’로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에게 주요 관심은 ‘그 날의 시간의 양(길이)’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실 ‘그 날의 시간의 질(그의 심판과 구원의 사실)’에 있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과 같기 때문입니다. 벧후3:8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이처럼 ‘여호와의 날(종말)’은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어린 양의 죽음으로 두루마리의 인이 때어져 성취되기 시작하여 완성까지의 모든 시간과 역사(그의 초림과 재림까지)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두루마리’는 창세 전에서 삼위 하나님 사이에 세우신 구속 언약(하나님 구원의 협정)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날(종말)에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 심판을 통한 하나님 백성의 구원을 약속한 구약성경과 그 어린 양의 죽음으로 그 모든 약속을 성취한 신약성경(복음과 새 언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두루마리의 안에는 창세 전에 기록한 신약성경이 있고, 그것의 겉에는 구약성경이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복음)’(1:1), ‘이후에 일어날 일들’(4:1, 1:1, 19),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1:2), ‘이 예언의 말씀’(1:3)이며, ‘6장부터의 환상들’(6장-22장)이며,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22:18-19)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을 그 어린 양에 대한 네 생물과 장로들과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의 경배와 새 노래의 찬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8-14).
그 어린 양이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은 그 어린 양에게 경배와 찬양을 드렸습니다(8-10).
먼저 8절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여기서 그들은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어린양 앞에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거문고’는 새 노래의 찬양을 상징하며(9-14), ‘금 대접’은 성도의 기도들(8)을 가리킵니다.
이제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새 노래의 찬양입니다(9-10).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왜냐하면)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속량)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새 노래’에서 ‘새’는 시간적인 새로움(네오스)가 아니라, 질적인 새로움(카이넨)을 의미합니다. 이는 어린 양의 죽음으로 ‘여호와의 날(종말)’이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죽음(복음)이 그의 부활 이후의 인류 역사(시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 노래’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관련되어 하나님 승리를 찬양하거나 그의 새 창조를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새 노래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9b)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이유입니다(9c). ‘왜냐하면, (어린 양이) 일찍이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죽임을 당하사’는 부정과거로서 어린 양이 단회적 죽음, 즉 오직 그의 유일한 죽음만이 두루마리의 인을 떼기에 합당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셋째는 그 결과입니다(9d). ‘(어린 양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속량)셨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고,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여기서 ‘왕 노릇 하리로다’는 사본에 따라 미래와 현재 시제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원문이 미래 시제라 할지라도 성도의 왕 노릇은 어린 양의 죽음의 관점에서 미래를 가리킬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의 피(죽음)’로 속량을 받은 우리는 어떤 환경(시간)에서도 ‘땅에서’ 현재 어린 양과 함께 왕 노릇하는 ‘나라와 제사장’(1:6)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에게 환난은 창조(행위) 언약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그의 피로 속량 받은 우리에게 동일한 환난은 그의 심판이 아니라, 우리 구원을 위한 그의 사랑의 섭리입니다(롬8:28-39). 롬8: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는 어린 양의 죽음이 우리에게 합력하여 선(유익)을 이루도록 우리의 모든 것(시간)을 질적으로 새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14:13)라고 하늘의 음성이 하신 것입니다.
또한, 요한은 수많은 천사도 어린 양을 큰 소리로 계속 찬양하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11-12).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여기서도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12)의 이유가 ‘죽임을 당하심’으로 제시됩니다. 7개(완전한)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이유가 오직 ‘그의 죽임을 당하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온 새로운(질적) 변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창조주와 어린 양에 대한 모든 피조물의 경배와 찬양(13-14a), 그리고 네 생물과 장로들의 화답과 경배를 들었고 보았습니다(14b).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모든 피조물도 창조주 하나님의 모든 속성(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두루마리를 취하신 그 어린 양께 합당한 것으로 돌립니다. 그 어린 양이 그의 죽음으로 두루마리의 인을 떼고 시행하는 합당한 권세를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결국 모든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롬8:21).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은 계속 ‘아멘’하며 이에 동의하고 있고, 그 어린양의 피로 속량 받은 백성을 대표한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가 흔들려도 하나님의 두루마리대로 됩니다. 즉 새 언약(복음)대로 됩니다. 그 어린 양의 죽음으로 여호와의 날(종말)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언제 종말이 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이미 종말이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종말이 완성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죽음(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사건들)을 질적으로 새롭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는 유대의 사자가 아니라 죽임당한 어린 양으로서 하나님의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고 시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는 사자가 아니라 죽임당한 어린 양으로서 우리의 고난(약함)을 통하여 이기게 하십니다(고후12:10). 이것을 알고 경험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그의 복음을 알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복음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시며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주사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죽임당하신 어린 양의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게 보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엡1:17). 아멘.
찬송 250장을 부르신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