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끌어 오며~~
어느새 강산이 세번이나 변해 버린 지난 일이 떠 오르는 한가한 오후의 한나절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묶여버린 발대신 머리가 쉴새 없이 바쁘다.
내 딸이 대학을 입학 한 새내기 시절 늘 친구를 달고 다니는 아들아이와는 다르게 웬만해선 집에 친구를 데려오지 않는 딸아이가 전화로 "엄마 오늘 친구랑 집에 가도 돼" 순간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그럼 괜찮아 어떤 친군데?" 묻고 있는 나에게 "알았어"하고는 끊는다.그시절은 핸드폰이 없어 공중전화 박스에서 한게 틀림 없다.
궁굼하기 이를때 없다.대학 들어 간 두 달 사이에 남자 친구가 생긴걸까? 혼자 궁리를 하며 저녁 먹일 생각에 시장을 보고 음식을 몇가지 했다.
딸과 함께 현관을 들어 선 친구는 내 딸아이와 다르게 키도 크고 체격도 든든한 시원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아~너 은주구나! 난 금방 알 수 있었다.
지난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 온 딸아이가 무척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엄마 우리반에 은주라는 아이가 입학 첫날 나를 친구로 찍었데~"왜 너를 찍었는데?"나는 "이상한 아이구나!"하면서 경계하라고 얘기 했다.
지금까지도 어떤 특정한 친구와 어울리지도 않고 죽고 못 사는 친구도 만들지 않았던 내딸아이는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반장을 하며 두루 많은 아이들을 품었던 생각이 깊고 누구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는 냉정한 판단을 스스로 잘 해 왔기에 믿는 구석이 있었다.딸의 리더쉽은 졸업을 해서도 고마웠다고 따듯했다고 편지를 보내 오는 동창들이 참 많았다. 힘든 친구들을 외면하지 않았던 딸의 따듯한 마음은 고루고루에게 나누었기에 죽고 못사는 친구는 만들지 못 했나보다.
어느 대학이나 경영학과는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서인지 지원자가 많아 E대에도 A반 B반으로 2반이 있었다.
은주는 전라도 광주에서 전교 1.2등을 하며 E대에 왔고 프라이드도 대단 했다.
부모님은 전라도 광주의 유지였는데 중학교교사인 언니와 잠실에서 자취를 한다고 하며 위에 오빠가 하나 있는 삼남매란다.
내딸을 왜? 친구로 찍었냐는 질문에는 "서울 아이들은 알로 까졌다는데 성희는 너무 순수해서 친구 하고 싶었어요."가 답이다.그도 순수 했다.
낯선 서울이 왜? 두렵지 않았을까? 20살 다운 대답에 안 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돌아 갈때는 언니랑 먹으라며 잡채랑 몇가지 반찬을 싸 주었다.
한달쯤 지나서인가 은주가 두번째 집에 왔다.택시를 타고 들고 온 보따리 속에는 새색시가 신행을 온듯한 각종 정과가 정성스레 담겨져 있었다.
전라도 특산품을 보낸 은주 어머니는 객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신경 써 주시고 좋아하는 잡채를 해 주셔서 너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인연이 시작 되었다.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두친구는 계속 우정을 쌓으며 내딸은 2학년부터 고시를 준비하고졸업전에1차 합격과 졸업하며 2차합격으로 연수원에 들어 가고, 은주는 졸업과 함께 캐나다 어학연수를 떠났다. 내딸과 다르게 욕심도 성취력도 대단했던 은주는 캐나다에서도 2년동안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식사도 제 때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자서 장이 뒤 틀리고 상해 쉽게 치료가 안되어 한국에 돌아와 일년 이상 병원 치료를 받으며 몸이 47kg까지 빠져서 168의키에 모델 몸매가 되었다.
그동안 내딸은 결혼을 해서 남매를 키우고 은주도 치료를 마치고 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의사와 결혼 해서 아들 하나를 두었다.
지금 코로나19와 싸우는 포항의 어느병원 호흡기내과 은주(사라)남편의 따듯한 동행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너무 길어 여기서 마치고 다시 써야겠다.
수고하셔요^^힘 내세요! 응원합니다.
첫댓글 결과는 언제? 궁금합니다^^
추억이 방울방울^^
감사합니다.
곧 올릴께요~^^
아이들은 항상 내개 행복을 주지요. 나이들어도 소중한 추억이라는 선물까지요. 다음이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