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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씌어진 이름』 해설--이승만--복거일 저
2023.04.26. 22:24조회 10
『물로 씌어진 이름』 해설
이승만은 우리에게 전혀 낯선 인물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남들을 질타하기 위해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은 그 질문은 자책에 가깝다.
나 자신이 바로 그런 부끄러운 사람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알고 있기는 했지만, 나의 앎은 그저 막연하고 추상적이었을 뿐이었다.
만일 내가 그 인물에 대해 제대로 배워서 알고 있었다면
복거일의 『물로 씌어진 이름』을 읽으면서 별로 흥분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토록 여러 번 무릎을 치고, 그토록 자주 자책하고, 그토록 자주 전율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자주 ‘내가 이토록 무지했단 말인가? 몰라도 어찌 이 정도로 몰랐단 말인가!’라고
자책했던가! 지식인 행세를 하며 살아온 자에게는 무지가 죄이다.
그러니 나는 죄를 지어도 너무 큰 죄를 지은 셈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이 소설 덕분에 그 무지에서, 그것도 단번에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아슬아슬한 운명 가운데 탄생했는지,
우리 민족이 그동안 어떤 세월을 겪어 왔는지,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왔고 살게 되었는지 이제라도 정확히 맥을 알고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으니
정말로 다행일 수밖에 없다. 나를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준 이 소설에,
이런 훌륭한 소설을 선물로 준 뛰어난 작가 복거일에게 고마움과 찬사를 전할 수밖에 없다.
『물로 씌어진 이름』은 일종의 전기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일반적인 전기소설과는 다르다.
첫째, 대부분의 전기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살아온 개인적인 행적을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인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주인공의 배경 구실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다르다. 이 소설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가 펼쳐지지 않는다.
물론 이 소설의 축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는 이 소설의 핵이면서 동시에 소재이기도 하다.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소재로 하여 그가 살았던 시대의 세계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얼핏 보기에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유기적 관계로 긴밀하게 맺어져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승만의 삶의 행적을 세계사적 맥락에서 파악한 작가의 안목 덕분에
그런 소설이 탄생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이승만의 안목, 행동 하나하나가 이미 세계사적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이라는 개인은 당시 격변기 세계사를 꿰뚫고 있었고,
세계 전체를 조망하고 있었으며
더 나가 세계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딱 한 가지가 결핍되어 있었으니,
자신의 식견과 안목을 실행할 힘, 바로 그것이었다.
국적조차 없는 식민지의 한 개인이 바로 그였다.
범세계사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안목을 실행할 현실적 정체성과 힘이 없었다는 것,
거기에 이승만의 고뇌가 있고 비극이 있다.
그리고 그 고뇌와 비극을 딛고 극복해냈다는 것, 거기에 이승만의 위대함이 있다.
이승만의 비극과 위대함의 드라마는 바로 대한민국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바로 이승만이라는 인물의 비극과 위대함과 함께한다.
감히 말하지만,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는 바로 이승만의 과거, 현재, 미래이기도 하다.
둘째, 대부분의 전기, 혹은 전기소설은 대개 주인공의 미화(美化)로 이루어진다.
실상(實狀)은 아름다운 각색 아래 다소간 부끄럽게 숨겨져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정반대이다.
이 소설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의 실상을 그야말로 덤덤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이승만이라는 이름에 덧붙여진 온갖 왜곡된 편견들을 벗겨내 준다.
그렇기에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향한 우리의 감동은 배가된다.
‘우리가 그동안 몰라도 정말 너무 몰랐구나!’라는 자책과 함께하는 감동이기 때문이다.
덧씌워진 것들을 벗겨내고 실상을 알게 되니 오히려 감동을 주는 인물이 진정한 위인이다.
그리고 세계사에 그런 인물은 정말로 드물다.
전기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작품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한 문학적 각색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해 그 인물의 실상과 진실을 효과적으로 전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이 감동적인 작품이 가끔 담담한 르포, 혹은 에세이의 모습을 띠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문학이라는 형식을 객관적 진실을 밝히는 매개로 사용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문학적 감동을 짙게 준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로 씌어진 이름』은 그 어려운 일을 훌륭하게 수행한 작품이다.
* * *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은 후세 사람들인 우리들만 알 수 있을 뿐
그들 자신은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그런 일을 수행한 것이다.
그것이 행동하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인간 사회에서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숙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진형준 역, 『전쟁과 평화Ⅱ』, 56쪽, 살림 출판사)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개인의 역할은 미미하다고 톨스토이는 말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인류의 거대한 역사는 개인의 의지와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온
갖 우연과 예기치 않은 사건, 혹은 운명 등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위의 글에 이어서 톨스토이는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를 비롯한 전쟁의 주역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 행동이 자신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단지 역사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쓴다. 공감할 부분이 상당히 많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물로 씌어진 이름』을 읽으면서 이승만이라는 인물은 참으로 예외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그 결과도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세계사가 지향할 방향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미래도 전망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혜안을 인품과 도덕심이 뒷받침하고 있었으며
애국심과 이타심과 인류애가 자양분을 이루고 있었다. 참으로 드문 일이며 드문 인물이다.
그런 큰 인물의 두드러진 특징 한 가지를 꼭 집어내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과감하게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혁명가라고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싶다.
‘그는 출발부터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려는 급진주의자였다’(1권 53쪽)라고 작가도 쓰고 있다.
혁명이나 급진주의자라는 말에 놀랄 필요는 없다.
이승만에게 혁명이나 급진주의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가 이른바 <급진주의 혁명이념>에 충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승만이 29세 되던 해인 1904년 감옥에서 집필한 <독립정신>의 내용에는
급진적이거나 혁명적인 내용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주권확립을 통한 독립의 중요성, 세계사적 안목과 외교의 중요성, 헌법에 의한 국정 운영, 자유의 존중, 독립국 백성의 각성 등을 역설하고 있는 그 책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온당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성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독립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당시의 국제적 정세를 정확하게 분석하면서 쓴 그 책은 지극히 현실적인 책이지 낭만적인 혁명이념을 주장하고 있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그 책을 당시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극히 급진적이고 혁명적이다. 혁명적인 투쟁을 통하여 그런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에서 혁명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당시 아무도 감히 품을 수 없는 생각을 글로 썼다는 의미에서 가히 혁명적이며, 조선 말기의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왕조를 완전히 뒤집어서 인간적이고 정상적인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는 뜻에서 혁명적이다. 그리고 이승만은 해방 후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세계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로 만듦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명을 이룩한다.
현대사에서 혁명이라는 단어는 주로 공산주의와 연결된다. 그러나 나는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을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는 의미에서의 진정한 혁명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진실을 정확히 밝혀준다. 그 실상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진술 속에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스탈린의 꿈은 본질적으로 제정 러시아의 부활이었다.
이제 유라시아에서 러시아군에 대항할 만한 군대가 없어졌으니,
러일전쟁과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잃은 제정 러시아의 영토를 되찾을 기회가 왔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러시아가 이미 점령한 동유럽에서 우월적 지위를 지니는 것을 공식화할 속셈이었다. (1권 294쪽)
복거일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스탈린의 러시아는 제정 러시아의 부활을 의미할 뿐 아니라 거기에 공산주의 이념이 덧붙여진 것이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제정 러시아의 부활을 위해 공산주의 이념과 혁명이 동원되었을 뿐이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며 북한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산주의 이념을 내세운 나라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과거로 회귀하면서 진보와 혁명이라는 허울을 씌웠을 뿐이다. 북한이 김일성 세습 왕조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고 그것을 이룩한 대한민국에서는 혁명이 이룩된 셈이고, 공산주의 혁명을 내세운 러시아, 중국, 북한은 혁명은커녕 과거로 회귀한 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힘겨운 노력 끝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을 혁명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반면에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제정과 왕정으로의 복귀를 꿈꾼 기회주의자였을 뿐이다.
이승만에게서 빛나는 점은 그가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서 공산주의의 본질과 행태를 가장 먼저 간파하고 경계해온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늘 자유민주주의를 따랐고 결코 공산주의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그를 두드러진 자유주의 지도자로 꼽았다.’ (1권 458쪽)
이승만은 자신의 독립운동 매체인 『태평양 잡지(誌)』 1923년 3월호에 실린 길지 않은 글에서 공산주의의 폐단을 정확히 지적한다. 사유재산을 폐지하면 사람들이 게을러진다, 자본가를 없애면 혁신이 사라진다, 지식인을 없애면 사회 전체가 무식해진다, 종교를 없애면 덕목과 윤리가 사라진다, 공산당의 국제주의는 허울일 뿐 국가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라는 내용은 당시의 공산당의 실상을 정확히 꿰뚫어 본 글일 뿐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의 미래 운명까지 내다본 예언적인 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수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경도되어 있었고,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도 공산주의 사상가들이 대학 내 주류를 이루고 있었을 뿐 아니라 미국인 러시아 첩자들이 정·관계 요직에서 암약하고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대단한 혜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의 반공은 이념적 선언도 아니고 정치적 슬로건도 아니다. 인간애에 바탕을 둔 냉철하고 지혜로운 현실 인식의 결과물이다. 이 소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반 공산주의 신념을 가진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그 신념을 잃지 않은 채, 머나먼 미국 땅에서 어렵게 독립운동을 펼친 이야기이며, 마침내 조국이 해방되자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일본의 펄 하버 공습으로 시작되어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그 격변의 세월 안에서, 그가 어떤 식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숨돌릴 틈도 없이 파노라마처럼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설이다. 그 세월 속에서 이승만이 단 한순간도 잃지 않고 있던 염원은 조국의 독립 바로 그것이었으며 한시도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독립 이후의 조국의 미래였다.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그의 그런 모습을 무엇보다 분명하게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얄타 비밀협약 폭로 사건이다.
* * *
얄타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소련 흑해 연안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연합국 지도자인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모여 의견을 교환한 회담이다. 당시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이탈리아는 이미 항복한 뒤였고 독일은 패전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기에 세 명의 연합군 수뇌부들은 주로 독일 패전 후 독일의 처리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회담 장소도, 숙소 배정도 모두 스탈린의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영국과 미국의 두 지도자가 스탈린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한 회담이었다. 회담에 임하는 자세 자체가 미·영 지도자와 스탈린은 완전히 달랐다.
‘루스벨트는 일본과의 전쟁에 러시아가 빨리 참가하도록 스탈린을 설득할 생각이었고, 자신이 설립을 주도하는 국제연합(UN)에 러시아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공산주의 러시아의 급격한 팽창을 크게 걱정한 처칠은 러시아군이 점령한 동유럽이 자유로운 사회들로 부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및 유고슬라비아에서 자유로운 선거가 실시되어 민주적 정권들이 들어서도록 스탈린을 설득하는 것을 회담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 (……) 물론 스탈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본주의를 없애고 공산주의를 온 세계에 세우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은 볼셰비키의 지도자였다. 그는 궁극적 적은 미국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고, 곧 닥칠 궁극적 대결에서 미국을 파멸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터였다.’ (4권 287쪽)
결과적으로 루스벨트와 처칠은 스탈린에게 철저히 속았다. 특히 루스벨트는 ‘지도자들 사이의 개인적 친분’(4권 286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으며, ‘나는 스탈린을 다룰 수 있다.’(4권 286쪽)라고 측근들에게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전쟁 기간에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교섭을 쭉 지켜본 외교관 조지 케넌(George Kennan)은 루스벨트의 실책들이 “러시아 공산주의의 성격과 그것의 외교 역사에 관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무지”(4권 288쪽)에서 나왔다고 진단했다. 이승만에 비할 때 국제 정세에 대한, 특히 공산주의에 대한 루스벨트의 식견은 형편없이 짧고 얕았다. 게다가 루스벨트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었기에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었다. 국무부 요직에 러시아 첩자가 있다는 구체적 증거를 접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가 러시아에 대해 얼마나 우호적이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처음부터 스탈린에게 속을 준비가 된 채 회담에 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 명의 연합국 수뇌부는 미국·영국·프랑스·소련 4개국이 패전 후의 독일을 분할 점령한다는 원칙 및 기타 패전국들과 신생 독립국들에 대한 포괄적인 원칙을 발표했다. 이승만은 얄타회담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독립을 합의한 카이로 회담 특별 조항의 원칙이 그대로 유지될 것인지 그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두루뭉술한 합의 사항만으로는 한국에 대해 실제로 어떤 논의가 막후에 오갔는지 실상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얄타회담이 있은 지 두 달 남짓 지난 4월 15일에 이승만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바로 에밀 고브로(Emile Gauvreau)라는 인물과의 만남이다. 통신사 INS의 기자로서 오로지 정의감에서 이승만을 열심히 도와주었던 윌리엄스라는 사람이 그를 이승만에게 소개한 것이다. 한때 영향력이 컸던 언론인이었던 고브로는, 당시 펜실베이니아주의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고브로는 안면이 있던 윌리엄스에게 조선 문제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고 알렸다. 윌리엄스가 오랫동안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해 온 것을 알았으므로 그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윌리엄스는 고브로가 얻은 정보를 한 달 가까이 확인했고, 믿을 만한 정보라 판단하자 이승만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4권 345쪽)
고브로는 이승만에게 얄타회담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협약 이외에 비밀협약이 있었으며 일본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선을 러시아의 영향 아래 두기로 했다는 것이 그 비밀협약의 내용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미국과 영국은 일본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선에 대해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카이로 선언의 폐기는 물론이고 한반도의 운명을 러시아에 넘긴다는 것이 그 비밀협약의 내용이었다.
고브로가 이승만에게 알려준 비밀협약의 내용도 엄청나지만 고브로와 이승만의 만남 자체도 감동적이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어렵게 독립운동을 할 때 영향력 있는 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도와주었다. 그들이 이승만을 도와준 것은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승만의 인품에 반해서 그를 도와주었으며 오로지 정의감에서 그를 도와주었다.
‘고브로의 행적과 글에서 이승만은 정의에 대한 열정을, 불의를 시정하려는 의지를, 특히 약한 자들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지금까지 그를 도와준 외국인 친구들은 존 스태거스나 제이 윌리엄스처럼 정의감이 강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4권 350쪽)
고브로와 만난 이승만은 그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을 중대 결심을 한다. 얄타회담에서 비밀협약이 있었다고 폭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승만은 우선 미국 최대의 신문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언론재벌 허스트(William R. Hearst)에게 ’얄타의 비밀협약‘을 알려주는 편지를 쓴다. 이어서 5월 8일부터 「시카고 트리뷴 The Chicago Tribune」,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The San Francisco Examiner」, 「로스앤젤레스 이그재미너 The Los Angeles Examiner」 등 대형 언론사들이 그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특히 허스트계 신문들은 이승만의 폭로내용을 미국 전역의 언론 망에 상세히 보도했다.
얄타 비밀협약의 폭로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행동이었다. 그는 고브로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에밀, 어차피 정의롭지 못한 ‘비밀협약’은 공개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의 독이 제거됩니다. 그것의 존재를 폭로하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만일 그들이 ‘비밀협약’이 있다고 인정하면, 우리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 나서도 세상이 그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없다고 주장하면, 우리는 그것이 집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소비에트가 몰래 한국을 장악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4권 375쪽)
이어서 작가는 그런 결심을 한 이승만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가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렇게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 위험함을 이승만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었다. 사실 그런 정보를 얻으면, 누구나 그런 정보의 진위에 마음을 쓰게 된다. 그래서 그것의 진위가 확인된 뒤에야 그것을 이용할 길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 정보의 진위나 그것에 의존할 때 안을 위험 너머를 바라보고, 그 정보가 가져다준 기회를 알아본 것이었다. 한반도의 운명이 강대국들의 비밀스러운 거래들로 결정되는 상황에서 아무런 발언권이 없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최소한의 언질이라도 얻으려면, 미국 사회의 관심을 끌어 미국 정부의 팔을 비틀어야 한다는 것을 이승만은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인식했고, 그가 얻은 정보에서 그렇게 할 기회를 이내 알아본 것이었다. 나아가서 그런 기회를, 손으로 잡기 어려울 만큼 위험한 기회를 머뭇거리지 않고 움켜쥔 것이었다. 그런 통찰과 행동은 오직 민족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면서 자신에게 퍼부어질 억측과 비난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품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 그것이 이승만의 위대함이었다. (4권 388-389쪽)
만일 이승만의 폭로가 없었다면 한국은 폴란드를 비롯한 동구권 전체가 걷게 된 길을 걸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폴란드에서 벌어진 일은 지금도 우리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에서는 나치 독일에 항거하는 바르샤바 봉기가 발생한다.
2차 대전 역사상 나치에 저항한 가장 거대한 봉기이다.
폴란드 본국군은 서쪽에서 진격해 오는 미군과 영국군에 합류해서 조국을 해방하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독일군의 동부 전선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러시아군이 폴란드를 해방시킬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1944년 8월 1일 폴란드 본국군은 나치에 저항해서 봉기를 일으킨다.
바르샤바가 러시아군에 의해 해방되면 본국군은 설 땅이 없어지고 폴란드가 러시아에 종속되리라는 두려움에서
스스로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봉기는 실패한다.
바르샤바 동쪽 15킬로미터 지점까지 진출해 있던 러시아가 전혀 돕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8월 1일 본국군이 봉기했을 때 스탈린은 러시아군에게 진격을 멈추라고 지시한다.
본국군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스탈린에게 런던 망명 폴란드 정부와 연합군의 일부로 싸워온 폴란드군은 폴란드 장악의 장애물일 뿐이었다.
‘바르샤바 봉기는 독일군의 손을 빌려 본국군을 처치할 기회를 그에게 준 셈이었다.’ (4권 181쪽)
바르샤바 봉기를 외면한 것은 러시아뿐이 아니었다. 영국과 미국은 폴란드에 관련된 작전을 동부 전선의 문제로 여겨서 러시아의 승인을 받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바르샤바 봉기는 스탈린의 의도대로 흘렀다. 폴란드
민족주의 세력의 핵심인 폴란드 본국군은 궤멸했고, 러시아에 충성하는 공산주의자들의 군대가 폴란드를 장악했다.
만일 이승만의 얄타 비밀협약에 대한 폭로가 없었다면 한반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승만의 폭로는 스탈린의 한반도 장악 야욕을 저지한 너무나 중요한 결단이었다.
처칠, 루스벨트와 이승만이 다른 점은 너무 명료하다.
앞의 두 명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궁극적 가치를 가볍게 버리고 ‘현실 정치’라 불리는 냉소적 흥정에 몰두함으로써
전체주의 세력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도를 스스로 포기했다. 반면에 이승만은 늘 자유민주주의를 따랐고
결코 공산주의에 현혹되지 않았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전체주의자들과 협상을 통해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승만은 전체주의자들은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얄타 비밀협약의 존재에 대한 이승만의 폭로는 그러한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폭로는 세계 정치의 흐름을 크게 바꾸었다. 우리로서는 조선의 독립을 확실하게 함으로써
국제 정세의 흐름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무엇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폭로가
국제정치에 미친 영향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얄타회담 비밀협약 폭로를 계기로 미국 정부에 침투한
러시아 첩자들의 존재가 뚜렷이 드러났으며 외교에서 일방적으로 러시아에 밀리던 미국이 저항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
여기서 우리는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을 만난다.
바로 조지프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이다.
’매카시즘‘이라는 용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매카시는 미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킨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매장해 버린 사람으로
악명이 높으며 그런 행위를 우리는 매카시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복거일은 다음과 같이 과감하게 서술한다.
미국의 참전과 국제연합의 참전 촉구로 다섯 달 전엔 파멸을 피할 수 없다고 여겨진
대만의 중화민국과 남한의 대한민국은 ‘한번 해볼 만한 처지’가 되었다.
그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극적 반전이었다.
(……) 그런 기적이 나오도록 한 사람은 이름 없는 위스콘 신 출신 초선 상원의원 매카시였다. (……)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시민들은 영원히 매카시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누리는 자유와 풍요는 그의 통찰과 용기에서 연유했다. 그것은 매카시에 대한 세평과 무관하다.
설령 그를 미워하고 혐오한 사람들이 그에게 뒤집어씌운 얘기들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두 나라의 시민들은 그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오직 그에 대한 경의와 감사만으로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빚을 졌다.
(……) 매카시는 대만과 남한의 주민들 몇천만 명과 그들의 후손들이 억압적이고 비참한 공산주의 체제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것을 막아 주었다. 그것은 인류 전체를 위한 공헌이었다. (……)
현대 역사에서 자신의 통찰과 용기만으로 그런 공헌을 한 사람을 또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5권 127쪽)
매카시에 대해 거의 공인되다시피 한 악평과 복거일의 평가 사이에는 그 얼마나 큰 간극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 간극이 하도 크기에 이 짧은 해설에서 그 내용을 소상히 소개할 수도 없고 소개할 필요도 없다.
나는 독자 여러분이 그 부분을 자세히 읽고 스스로 판단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만 매카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당시 과연 미국 정부에 침투한 러시아 첩자들이 그토록 많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는 사실만은 지적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무고한 사람에 대한 모함의 뜻으로 쓰이는 매카시즘이라는 용어는
정확히 말한다면 ‘공산주의 러시아에 대한 거칠고 맹렬한 공격’의 뜻을 품고 있다. 공산주의 러시아가 더없이 위험한
전체주의 국가라면 그 공격이 맹렬하다는 것은 역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매카시라는 인물이 그런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당시 미국 내 정·관계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러시아 첩자가 많았기 때문이고 그들이 앞장서서 매카시를 매도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복거일은 다음과 같이 쓴다.
이처럼 매카시의 활동을 폄하하고 오도하는 말이 처음 쓰인 곳은 미국 공산당 기관지 <데일리 워커>다. 원래 이 말을 고안한 것은 러시아 비밀경찰 NKVD였다. NKVD의 계산대로, 미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이 말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여 무차별적으로 썼다.
매카시가 미국 정부에 침투한 러시아 첩자들의 수와 영향력을 터무니없이 과장했다는 얘기도 근거가 없음이 드러났다. 매카시가 그의 소위원회 청문회들에 부른 사람들 가운데 헌법 수정 제5조를 들어 증언을 거부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뒤에 러시아 첩자나 미국 공산당 당원이었음이 드러났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혐의가 구체화되자 해외로 도피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1990년대에 이르러 미국 육군의 비밀 감청 사업에 관한 자료들이 공개되면서 끝났다. 매카시는 미국에 대한 공산주의 첩자들의 위험을 과장한 적이 없었다. 실은 미국 정부에 침투한 공산주의 러시아 첩자들은 그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았고 그들이 끼친 해독도 훨씬 컸다. (5권 167쪽)
만일 매카시에 대한 복거일의 그런 평가를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은 발언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냉전이 고비를 맞았던 1950년 초에 매카시는 혼자 힘으로 도도하던 공산주의의 물살을 막고 위태롭던 남한의 대한민국과 대만의 중화민국을 지켰다. 애치슨이 ‘방어선 연설’로 공산군들에게 남한과 대만을 침공해서 공산주의 영토로 만들라고 공개적으로 초대장을 보냈을 때, 그는 공산주의의 위협에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미국 시민들에게 일깨웠다. 그래서 남한과 대만은 자유로운 세상으로 남아 자유와 번영을 누렸다. 비록 지금 남한과 대만에서 그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만, 그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도록 했다는 사실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더라도 위업이다. (5권 162-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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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물로 씌어진 이름』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깨우치게 되며 우리의 편견을 시정(是正)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벌어진 우리와 무관해 보이는 듯한 역사적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군데군데에서 또 다른 큰 선물들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 책에서는 구한말 조선의 역사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의 근현대사의 핵심이 그야말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뿐이 아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다루면서 복거일은 유대인의 역사를 너무나 명료하게 정리해서 우리에게 알려준다. 물론 그중 압권은 무엇보다도 19세기 말 격변기 조선의 역사이다. 우리가 그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구한말 중요 인물들의 사유와 행동은 물론, 그 의미를 이토록 정확하면서도 간결 명료하게 소개한 글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무지했음을 자책하며 얼마나 자주 무릎을 쳤는지 모른다. 나는 독자들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이 책이 주는 선물은 그뿐이 아니다. 이 책에는 2차 세계대전 장면이 무수히 나온다. 마치 2차 세계대전이 주요 무대인 것만 같다. 이전에 나는 넷플릭스에서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즐겨 보았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기뻐했었다. 그런데 이 책이 주는 선물은 그 이상이다. 2차 세계대전의 전투 하나하나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것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야말로 세계사적인 안목에서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큰 선물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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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이승만이라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전기소설이다. 그런데 복거일은 이 소설에 『물로 씌어진 이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사람들의 나쁜 행태들은 청동에 새겨져 남는다. 그들의 덕행들을 우리는 물로 쓴다.’라는 셰익스피어의 탄식에서 따온 제목이다. 복거일은 ‘사람들은 이승만 이름 석 자를 물로 썼다. 그리고 그의 작은 허물들을 청동에 새겼다.’라고 쓴다. (4권 425쪽)
청동에 새겨진 이승만의 허물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한 헌법의 ‘대통령 3선 금지’ 조항을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폐지한 것이다. 그것은 시민들의 뜻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한다는 자유민주주의 이념, 그가 평생 소중히 지켜왔으며 대한민국을 건립하는 데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그 이념을 스스로 허문 것이었다. 복거일은 이승만의 노년의 행태에 대해,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권력을 추구해 온 그가 권력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삼게 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쓴다.
그와 함께 복거일이 들고 있는 이승만의 또 하나의 중요한 허물이 있다. 고브로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행동이다. 고브로는 살아 있는 동안 이승만을 계속 옹호하고 높이 평가한다. 그에 반해 이승만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뒤에 그를 외면하고 평생 만나지 않았다. 앞의 허물에 비해 작아 보일 수 있는 그 허물에 대해 어찌 보면 복거일은 더 단호하다. 복거일은 사회의 근본 원리는 개인들 사이의 신의라고 단언하면서 신의를 저버리는 것은 그 어떤 경우라도 사소한 일일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게다가 ‘이승만의 인품이 워낙 훌륭했고 신의를 저버린 경우가 드물었으므로 이승만이 고브로에게 보인 행태는 유난히 초라하게 다가온다.’(4권 427쪽)라고 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신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작가 복거일의 인품을 슬쩍 엿본다.
나도 복거일과 마찬가지로, 이승만의 허물을 허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허물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라고만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기에 복거일도 이승만이 보인 그 허물이 노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덧붙여 설명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이승만이라는 위인은 곧바로 그 허물을 씻어낸다.
이승만은 ‘4월 혁명’이 일어나고 경무대를 찾은 시민 대표들로부터 하야를 원한다는 건의를 받자 선뜻 결단을 내린다. 그는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라고 발표한 후 국회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혁명에 앞장선 젊은이들 앞에서 이승만이 “얘들아, 장하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자신 앞에서 물러나라고 외치는 젊은이들에게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키워나가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읽어 내고는 그의 입에서 저절로 “장하다”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심겠다는 평생의 뜻이 이루어졌음을, 자신에게 물러나기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에 대해 복거일은 ‘이승만의 참모습이 한순간 다시 드러난 것이었다.’(4권 429쪽)라고 쓴다.
나는 이승만의 참모습대로 ‘이승만’이라는 이름이 ‘물로 씌어진 이름’이 아니라 ‘청동에 새겨진 이름’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만큼 그가 대한민국에 준 선물이 크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살리고 싶다는 당연한 욕구가 들어있다. 이승만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만든 큰 인물이며 그의 과거, 현재, 미래가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목이 높은 사람만이 큰 인물을 알아본다고 했다. 나는 우리 사회 전체가 안목이 높아져 이승만이라는 큰 인물을 알아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말은 우리가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청동에 새기는 순간 우리 사회는 안목이 높은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뜻도 품고 있다..
이승만이라는 이름이 청동에 새겨진 이름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에는 또 다른 욕망이 숨어 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보면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죄인들 중 가장 무거운 죄를 지는 자들은 배신의 죄를 지은 자들이다. 그들은 지옥 가장 깊은 곳 제9 구렁에서 벌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신을 믿은 사람을 배신한 자, 조국을 배신한 자, 하느님을 배신한 자가 가장 중벌을 받는다. 배은망덕도 배신의 죄에 해당된다. 우리가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청동에 새겨진 이름’이 되게 하자는 것은, 그가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새기자는 뜻, 바로 그것이다. 배은망덕의 죄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선물한 세상에 살면서, 스스로 지옥의 제9 구렁에서 벌을 받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청동에 새기기 위해 정말로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하여 이런 세상에 살게 된 것인지 알고 싶은 간절한 욕망을 품는 것, 그것은 너무나 중요한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 그것 또한 너무 중요한 버킷리스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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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은 1987년 『비명(碑銘)을 찾아서』라는 묵직한 소설로 등단했다.
서울대 상대를 나와 16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홀연 전업(專業) 작가로 나선 그가 출간 즉시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 것이다. 『비명(碑銘)을 찾아서』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에 실패했다는
가정하에 전개되는 일종의 대체 역사 소설이다. 복거일은 등단 작품부터 그의 넓디넓은 시야를 자랑한다.
이 소설은 일견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조선의 독립이 주제를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이상이다.
이 소설은 조선의 정체성을 일찍부터 세계사적 역학 속에서 모색하고 규정하려는 작가의 드넓은 시선과
지적(知的)인 노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그는 대체 소설이라는 형식을 택한 것이다..
『비명(碑銘)을 찾아서』 이후 복거일은 『역사 속의 나그네』(1991),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 『파란 달 아래』(1992),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1994) 등 문제작을 계속 발표하며 이후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도 다수 발표한다.
2014년, 간암 투병을 시작하면서 집필에 들어간 『물로 씌어진 이름』은 지식인 작가 복거일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쓰인 역작이다. 『비명(碑銘)을 찾아서』에서 이미 선을 보인 역사의식, 세계사적 안목, 냉철한 현실 인식, 인간을 향한 애정 등이 마치 큐빅처럼 유기적인 관계를 맺은 채, 『물로 씌어진 이름』이라는 거작에서 하나가 되어 표현된 것이다.
문학이라는 형식을 빌어 그런 거대한 세계사적 질문을 던진 작품을 나는 근래에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내가 보기에 그런 진지한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진 작가로는 『마의 산』의 토마스 만, 『유리알 유희』의 헤르만 헤세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와 복거일 사이에는 약 70년 가까운 간격이 있다. 그러나 앞의 두 사람의 소설과 복거일의 『물로 쓰여진 이름』의 무대는 거의 동시대이다.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는 20세기 초엽의 격변기에 역사와 지성과 예술에 대해 폭넓은 질문을 던지면서 고민했다. 그런데 복거일이 마치 그들의 고민에 답하듯이, 세계사적 질문을 다시 소설의 형식에 담아 『물로 씌어진 이름』을 내놓았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받을 만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런 진지한 질문을 다시 던지는 현재 전 세계 거의 유일한 작품이라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노벨 문학상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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