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장 1-8절. 스데반의 설교 시작. 요약설교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성전 파괴를 말하고, 모세 율법을 변경한다는 것을 죄목으로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이 두 가지는 결코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 아니라고 설교하면서, 그 증거로 구약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듭니다.
즉 스데반은 아브라함은 성전이 있기 전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잘 섬겼고, 모세 율법과 할례를 받기 전에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설교했습니다.
이처럼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은 약속의 자손 예수님을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녀가 되는 것이나 할례나 성전이나 모세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설교했습니다.
1절.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대제사장은 스데반이 고소인들의 말과 같이 성전을 모독하고, 모세의 율법은 파기한 것이 사실이냐고 스데반에게 심문했습니다.
만일 스데반이 성전 모독과 모세 율법 파기를 주장했다면, 성전 모독죄만 해도 사형이고, 유대 나라의 국법인 모세 율법의 파기만 주장해도 당연히 사형에 해당했습니다.
2절.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스데반은 성전 모독과 모세 율법 이 두 가지 죄목에 대해서 길게 변론을 합니다.
즉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성전과 모세 율법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서 의로운 자로 인정되고 복 받았음을 근거로 반론을 제기합니다.
이처럼 스데반이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증언한 것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다미아에 있을 때>라는 말은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 전에 메소보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를 모시고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를 떠납니다.
즉 아버지 데라도 우상 장사를 못하게 하고, 갈대와 우르에서 하란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런데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가 돌아가시니까, 그때 다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가나안 땅으로 이사를 합니다.
3절.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이 보이시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1. 2절의 ‘영광의 하나님’이란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영광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전에 영광으로 임재하신 영광의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즉 이 영광의 하나님은 하늘나라와 온 천지에 현존하시지, 예루살렘 성전에만 국한되어 계시는 우상 같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이실 땅으로 가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고집하고 있지만, 참으로 들어가야 할 고향은 하늘나라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5장 말씀대로 만일 갈대아 우르가 아브라함의 진정한 고향이었다면, 아브라함은 생전에 고향인 갈대아 우르로 돌아갈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추구하고 진정한 고향은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가나안 땅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꾸 육신적인 고향과 친척에 머무르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장차 천국 본향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는 우리가 땅에서는 나그네와 외국인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참된 본향은 하늘나라라고 했습니다.
4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 거주하다가 아버지 데라가 죽으니까, 지금 이 땅 즉 가나안 땅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말씀 믿고 가나안 땅으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5절. 그러나 여기서 발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1. 그런데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고, 아직 땅을 기업으로 받을 자식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두 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는 땅을 주시겠다는 땅에 대한 언약이고, 다른 하나는 자식을 주시겠다는 씨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직 이 두 가지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확실히 그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식에 대한 약속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지 25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즉 75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100살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2. 그리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약속은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장사 지낼 매장지가 없어서 돈을 주고 가나안 원주민에게서 막벨라 굴을 사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이처럼 언약이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6-7절.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1. 아브라함도 연약한 사람이고 죄성을 가진 인간인지라, 한때 이 믿음이 약해져서 실수를 했습니다.
첫째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빼앗길 뻔했고, 자신도 죽을 뻔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애굽에서 종노릇 하다가 해방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노릇 하다가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서 구출해내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을 여호수아를 통해서 점령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한때 믿음이 약해져서 실수를 했지만, 하나님은 언약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내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있습니다.
2. 둘째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사라의 믿음 없는 말을 듣고 애굽 여인 하갈을 첩으로 들여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이 이스마엘 때문에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 후손이 지금까지 대대로 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죽은 자처럼 발기가 안 되고 사라가 생리가 끊어졌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삭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활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좋은 사람도 중간에 흔들려서 실수를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불가능한 가운데서 기적을 이루어내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래서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을 태어나게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 그러므로 성도들의 삶이란 어려움과 역경이 없는 만사형통의 길이 아니라,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로마서 8장 28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하면, 반드시 어려움을 극복하고 복된 날이 올 것입니다.
8절.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1. 하나님은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두 약속을 받고, 그 후에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즉 할례로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된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표로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중요한 것이지 할례는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배반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2. 물론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믿음은 실제 내용이지만, 형식인 세례는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안 받아도 예수님만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교회를 통해서 세례도 받아야 합니다.
내적인 믿음도 바울의 말처럼 입술로 고백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3. 물론 믿음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와 감동과 인도와 능력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기도를 열심히 해서, 성령 충만과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처럼 날마다 성령님 모시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어떤 경우에는 기적적인 은혜들을 주시기도 합니다.
4. 그런데 어떤 성도는 초자연인 기적만 바라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법칙이나 의술을 무시하는 잘못된 신앙을 가진 성도듥이 있습니다.
그래서 통상 목사님들은 ‘믿음이 너무 좋아도 현실을 무시하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한다’고 합니다.
즉 문제를 인간적인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해야지,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기도만 하면서 무책임하게 놔두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아기가 병들었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통상 인간과 자연법칙과 사회질서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특별 섭리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섭리와 특별섭리를 받으면서 올바른 믿음 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올바르고 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큰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