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1-11절
1절의 어떤 사람들은 2:17절의 수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고린도 후서의 말씀을 나누면서
계속 말씀 드렸듯이 고린도 교회에 들어 온 거짓 선생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일정한 교회를 섬기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떠돌이 설교자들 이라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추천서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내보일 추천서나 여러분에게 받을 추천서가 필요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자신이야 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추천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이 세운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이 자신들의 추천서이며
이러한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추천서의 내용을 알기도 하고 읽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 마지막 어구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 과의 관계가
목회자와 성도 간의 건강한 관계였다는 것을 드러낸 것과는 달리
바울의 대적자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상대함에 있어서
바울과 동역자들처럼 당당하고 떳떳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훼손될 수 있는 종이나 깨질 돌 판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성령님에 의해 쓰여진 편지는
우리의 마음과 영에 쓰여진 것이므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편지는 예수님을 알기 이전인 옛 사람과 달리
변화되어 가는 성도의 모습이며 , 그 모습이 추천서라고 말합니다.
3-4절에서 추천서에 대한 논란은 바울 자신에게는 더 이상 논란이나
논쟁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못 박습니다.
5절을 원어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해 보면, (만족은 능력, 역량, 자격이라는 의미)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격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이나 자격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온다 라는 의미입니다.
8절의 영의 직분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시간이 흘러도 시들거나 변하거나 훼손되지 않는 항상 그대로의 직분을 말합니다.
영의 직분의 영광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만이 나오는 빛입니다.
그 빛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 이신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 가던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나님만이 인간들의 영원하신 아버지 이신 것을 알게 하시고
끊어진 관계를 회복 시켜 주셔서
아버지와 자녀로의 관계와 화평한 관계로 만들어 주는 빛입니다.
그 빛은 어두움을 밝히고, 희망이 없는 곳에 소망을 갖게 하며,
내버려 두면 반드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영혼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그 문으로 인도하는 하는 빛입니다.
10절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대조를 말하는데
특히 언약의 영광의 차이를 대조합니다.
이전에 영광이었던 것이 이제는 이전 것보다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이전 영광은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11절
없어질 영광==율법 조문, 심판하는 조문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려올 때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출34:29-30)로 상징되며
길이 있을 것의 영광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본 예수의 영광(4:4,6; 행 9:3)을 말합니다.
바울은 옛 언약의 특징을
영광과 함께 왔을지라도 없어지고 있는 것(7절 없어질 영광)입니다.
이렇듯 옛 언약의 영광은 원칙적으로 그 시작부터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영광은 영원하며, 결코 사라지거나, 빛을 잃지 않습니다.
이 새 언약의 영광은 비할 데 없고 영원한데,
이 영광이 하나님의 형상인(4:4; 참고 3:18)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빛난
하나님의 영광이기(4:6)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모습과 어떤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성령으로 인해
영화로운 그리스도의 형상과 완전한 영광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3;18)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