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6일
진주& 촉석루 & 사천 &백천사
拱北門
공북문은 17세기 이후에 그려진 진주성도와 진주지도에 북쪽으로 나 있는 문입니다.
공북문의 공은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 올려 공경한다"는 뜻이고 북은 "임금이 계시는
북쪽인 북두"를 뜻합니다. (안내문)
김시민 장군 동상
대로 같은 넑은 길도 있습니다.
帥 ① 장수 수 (군대의 장군)
② 거느릴 솔.
矗石樓
진주성의 남쪽 벼랑 위에 장엄하게 우뚝 솟은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임을
자랑합니다. 고려 고종 28년 (1241)에 김지대 (金之垈)가 창건한 후 여려차래 고쳐
지였습니다.촉석루라는 이름은 "강가운데 돌이 우뚝 솟은 까닭"에 누 (樓)의 이름을
촉석이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안내문)
촉석루
경남 진주시 본성동. 경남문화재자료 제8호. 의기 논개가 순국한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6·25전쟁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60년에 재건한 것이다. (네이버)
촉석루
경남 진주시 본성동. 경남문화재자료 제8호. 의기 논개가 순국한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6·25전쟁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60년에 재건한 것이다. (다 음)
義 巖 :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왜장과 같이~
義妓祠 (의기사)
의기사는 조선 선조 26년(1593)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논개의 영전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嶺 南 布 政 司
北 將 臺 (북장대)
백천사 [百泉寺]
경상남도 사천시 백천동 와룡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팔만구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와룡산 기슭에 있다. 신라 문무왕(663년) 때 의선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僧軍)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옛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의 모습은 현대에 와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약사와불전에 있는 길이 13m·높이 4m의 목조와불로 유명한데, 와불의 몸속에 작은 법당이 있다. 대웅전·약사와불전·산령각·용왕각·요사 등으로 구성되며, 절의 외부에는 약사여래좌불이 있다. 납골당 시설인 극락전 추모관을 비롯해 오방여래불 소원기원탑·금종·포대화상·산신할미상 등 각종 조형물이 있다. (다 음)
목탁소리 내는 소(우보살)
KBS 2TV에서 방송 후 백천사가 전국으로 알려지는 계기와 더불어 유명세를
더 한 것은 목탁소리를 내는 소(우보살) 덕이 일조를 했다.
우보살 이야기스님의 꿈에 소가 나타나서 엎드려서 우는데 그 소리가 스님이 치는 목탁소리와 똑같아서 아마도 저 소가 전생(前生) 에 스님이거나 보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꿈에서 깨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꿈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잊혀지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상도 고성 지방에 목탁을 치는 소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소문은 급기야 매스컴에 보도가 되고 스님은 혹시나 이 소가 꿈에 나타났던 우보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은 그 소가 있다는 곳으로 가서 소를 사들이려 했으나 여의치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웃에 또 다른 목탁을 치는 소가 있다고 해서 그 소를 사들여서 데려왔다는 것이다.(문화저널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