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6:6-9 상처로 말미암아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여러분에게 목돈이 필요한데,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그 돈을 무이자로 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해 준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여러분이 너무 가난해서 힘들게 살고 있는데 돈을 잘 벌 수 있는[가게 매출을 더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누가 가르쳐 준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여러분이 병으로 매우 고생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치료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여러분이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 자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가 알려준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귀가 번쩍 뜨일 것이다. 어떻게든 알고 싶어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은 모세도 이스라엘의 구미에 당기는 내용을 이스라엘에게 설교했다.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6-8) -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대대로 애굽 사람들에게 지배를 받으면서 노예로서 노역에 시달려 왔다. 최근엔 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애굽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고, 지긋지긋한 중노동에서 해방되고 싶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애굽처럼 이스라엘 자신들만의 나라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 나라에서 자기 명의로 된 집과 땅[전답과 과수원]을 갖고 싶었을 것이고, 그 집과 땅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든 욕구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채워주겠다고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무조건 감동될 것 같다. 양손을 들고 진심으로 ‘아멘’하며 격하게 기뻐할 것만 같다. ‘역시 우리 하나님이야!’하며 하나님을 더욱 믿고 신뢰할 것만 같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혀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모세의 설교에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 아예 듣지 않았다. 매우 의아[疑訝]하다.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말을 들었는데, 왜 이스라엘은 기뻐하지 않고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을까? 왜 콧방귀도 끼지 않았을까? 왜 시큰둥했을까? 마음의 상함[상처]과 가혹한 노역 때문이었다(9).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모세의 설교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모세의 설교를 처음 들었을 때, 그들은 믿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여러분들의 고난을 살피셨다”(출 4:31)고 설교하자 머리 숙여 경배까지 했다. 그런데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을 보내달라고 하자 바로는 이스라엘에게 과거보다 더 가혹한 노역을 시켰다. 그들을 힘들게 만든 모세에게 격하게 분노했다. ‘모세 너 때문에 우리가 혹독한 고생을 하고 있어. 네가 바로에게 찾아가 그런 제안만 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나름대로 살만 했어! 네가 뭔데 바로에게 찾아가 우리를 힘들게 만든 거야! 아 짜증나! 꼴보기 싫어’ 미움과 분노의 상처가 생긴 것이다.
모세로 인해 가혹한 노역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생각한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 말씀이라도 거부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에도 계속 이런 식이었다. 마음이 상하면 불평, 불만, 분노, 미움, 대항했다. 하나님이 왜 이런 힘든 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도한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동의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은 거절했다. 이스라엘이 바로와 애굽으로부터 독립을 하려면 고난은 필수였다. 모세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바로에게 전하고 바로가 이스라엘을 가혹한 노동으로 괴롭히는 것은 당연한 필연이었다.
딤후 1:8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이스라엘은 이런 영적 구조를 이해하고 그 고난이 힘들지만 감내해야 했다. 수세에 몰린 모세를 응원해 주었어야 했다. 응원을 못해 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힘겹지만 따랐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부분에 무지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욕구충족]과 모세가 바로에게 제시한 말씀으로 인해 생긴 불이익 사이에서 자신들의 불이익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자 모세는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나쁜 놈이었다. 불일듯이 분노, 미움, 불평불만이라는 상처가 일어났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은 마치 예수님의 비유 중 돌밭과 같았다. 처음엔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받았다. 그러나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자 곧 넘어졌다(마 13:20,21).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무시한 모세를 하나님이 보내셨는데, 그 하나님의 계획과 권위를 우습게 여긴 어리석음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상처가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은혜가 되지 않는다. 교만, 거짓, 분노, 불평불만, 시기, 질투, 미움, 욕심, 조급, 비난, 비판, 누설이 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졸리기만 한다. 우울, 게으름, 두려움, 의심, 근심 걱정이 깊으면 아무리 은혜로운 설교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음란, 쾌락, 유흥, 술, 담배, 우상, 일 중독에 빠져 있으면,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셔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교회로 오는 것조차 힘들 수 있다. 상처가 여러분을 삼켜버린 것이다.
벧전 5:7,8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엡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 상처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개하길 바란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남이 여러분을 달래준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처음엔 달래준 기분에 말씀을 들을 수 있지만, 또다시 처리되지 못한 상처와 악감정은 불이익이 올 때 고개를 든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성장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직접 회개하길 바란다. 회개하여 상처와 악감정들이 여러분에게서 떠날 때 여러분의 영혼이 깨끗해진다. 동시에 상처와 악감정의 틈을 타고 들어온 마귀들도 다 떠난다. 먹을 상처와 악감정이 없으니 그들이 여러분의 영혼에 머무를 수가 없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해진다. 깨끗해진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시 24:3-6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상처를 회개하여 영혼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 은혜가 된다.
이렇게 되면 가정이 화목해질 수밖에 없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존경]하기를 주께 하듯 할 것이고(엡 5:22-24,33), 남편은 아내를 자기를 사랑하는 것같이 사랑할 수 있는데,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줌 같이 사랑할 수 있다(엡 5:25-28).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할 수 있고(엡 6:1,2),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수 있다(엡 6:4). 이렇게 성경의 원리대로 살면 가정은 매일 평안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상처를 그대로 방치하면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분 나쁘다고 분노와 미움과 시기의 상처를 그대로 두면, 복종, 존경, 사랑, 공경, 양육이 불가능해진다.
일하는 회사와 사업도 그렇다. 상처를 회개하면 직원들은 그리스도에게 하듯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고용주에게 순종할 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주를 섬기듯 리더를 섬길 수 있다(엡 6:5-7). 고용주도 직원에게 그리스도에게 하듯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대하면 위협하기[권력 남용]를 멈출 수 있다(엡 6:9). 행복한 일터가 될 것이다. 기분 나쁘다고 분노하면 그리스도에게 하듯 순종할 수 없고, 비난, 비판, 위협만 난무한 일터가 될 것이다.
교회도 그렇다. 가르침을 받는 성도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고(갈 6:6), 순종하고 복종할 수 있다(히 13:17). 목회자는 성도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할 수 있다(히 13:17). 목회자나 성도가 성도들을 대할 때, 어르신들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하듯 꾸짖지 말고 권하고, 젊은 남성에겐 친형[친오빠]이나 친동생에게 하듯 하고, 젊은 여성에겐 온전히 깨끗함으로 친여동생[친누나]에게 하듯 할 수 있다(딤전 5:1,2). 행복한 교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상처를 회개하지 않으면 목회자와 좋은 것을 함께 할 수 없고, 순종도 복종도 불가능하다. 목회자도 영혼을 위하여 경성[목자가 밤샘해서라도 양을 지킴]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결론 – 상처로 말미암아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사람이 피가 흐르지 않으면 죽는다. 기계에 기름이 흘러가지 않으면 멈춘다. 상처를 회개하지 않아 교회와 가정과 일터에 사랑이 흐르지 않으면 멈춘 것이요 죽은 것이다. 어떤 말씀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는 말씀이라도. 회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