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내내
습관처럼 아침 저녁으로 걸을 때에도
바쳤던 기도가 있었다.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아버지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질때 감사하게 받아들일수 있는
마음과 믿음을 주소서”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이루고 싶은
순례길이 아니라 하느님께 내어 맡기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순례길
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다 순례기간중 가장 큰 위기가 닥치고
말았다. 카미노30일차 리나레스에서 사모스
로 가는길이 다른 구간에 비해 좀 긴 거리라
30키로 정도 가까이 되는 거리다 보니
점심시간때에 맞춰서 사모스에 들어가기 위해
전날 자기전 모든 짐을 다 싸놓고서
리나레스에서 새벽4시쯤에 조용히 나왔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보니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난 바지가 젖지않기 위해 반바지로
갈아입고 판쵸우의를 쓰고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후레시로 비춰봐도 앞도 잘 보이지도
않고 폰에도 카미노앱을 깔고 길따라 걷는다고
해도 길도 보이지가 않았다.
어두움과 폭우속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그 순간에도 내가 할수 있는건 없었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다가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그만 철조망에 다리가 그을려 비도
억수같이 내렸지만 나의 왼쪽 종아리에서도
피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에 아버지께 기도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비를 쏟아주게 해주시고
길을 헤메게 해주시고 넘어지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다친것이 아버지의 뜻이
라면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서 말한 기도를 했던것이 습관이 되었는지
그 순간에서도 그러한 기도가 나오게 된
것이었다. 습관이 되어서라기 보다는 하느님
의 은총의 덕분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헤메다 길을 찾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종아리상처도 빗물에 씻겨지고 지혈이 되고
더 걷다보니 바가 하나 나와서 아침 먹으려고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외국인 자매님
이 나의 다친 종아리를 보고서는 말없이 빨간
소독약으로 상처부위를 발라주었다.
“땡큐, 그라시아스~ 땡큐 베리머치~”
되지도 않는 영어 스페인말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문득 그 자매님의 손을 보니 묵주반지를
끼고 있는것을 보았고, 난 다시 한번더 하느님께
기도드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난 사실 순례기간중에 만났던 수 많은 한국사람들
스페인 사람들, 세계 여러나라에 온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때 내 종아리에 약을
발라 주었던 묵주 반지를 끼고 있었던 그 외국인
자매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례자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순간 내가 할수 있는 말은
“땡큐, 그라시아스” 밖에 없었지만 내가 좀더
언어가 되고 영어라도 좀 잘할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좀 더 기억에 남는 순례기간이 되지 않았
을까 하는 아쉬움.. 이 남는다.
지금도 남아있는 왼쪽 종아리의 상처는
볼때마다 카미노 순례길을 기억하고 그 순간
기도했던 많은 날들, 만났던 좋은 사람들, 잊지
못하는 아련한 추억이다.
첫댓글 감동 입니다,그 순간에도 감사 기도드린 수사님과 그 상처에 약 발라주신 그 분의 마음도 감동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