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이나 시리아의 비포장도로에 비가 내릴 경우
발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질척거린다.
모든 흙들이 매우 차지기 때문이다.
특별한 포장재가 없던 시절에 돌 포장은 최상의 작업이었겠다.
군대이동이나 물자수송을 위해서 도로개설은 필연인데,
로마제국은 정복한 땅의 기존도로나 신설도로에 돌을 깔아 포장했다.
군인이나 마차가 다녀야할 도로를 포장하는 일은 정복자가
피정복민들을 다스리는 ‘통치차원의 작업’이기도 했겠다.
그렇게 해서 모든 도로는 로마와 연결 되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겼다.
시리아의 알렙포에서 안디옥으로 가던 로마의 돌도로 흔적이 있고,
<시리아는 이 도로를 잘 보존하고 있다.>
요르단에는 트라얀의 도로(왕의 도로), 페트라의 로마도로,
<페트라의 협곡(Siq)에 남아있는 로마 돌도로와 양 옆에 인공으로 판 수로>
<페트라 개선문 근처에 남은 로마의 맥시무스카르도, 맞은편에 왕들의 무덤이 보인다.>
와디람의 싸메르텐트촌 근처의 로마도로 그리고 제라시나 가다라(움카이스) 유적,
마다바의 마리아교회 발굴지점 혹은 세렛골짜기 상류의 일부지역에 돌을 깐 로마도로의 흔적이 남아있다.
<세렛강(와디엘하사) 상류 로마군 진지였다고 알려진 곳에 남아있는 로마도로>
그러데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모든 길은 도피성’으로 통하도록 되어 있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신19:3, 9~10)
모두 여섯의 도피성을 지정했다.
실수로 살인한 경우 가해자가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도피성을 마련하게 한 것이다.
현재의 요르단에는 도피성 ‘베셀’과 ‘길르앗라못’이라고 추정되는 곳이 있다.
3천년도 더 오래된 지역이라 장소를 확인하려는 학자들마다 다른 견해가 있기도 한데,
그래서 베셀로 추정하는 다른 곳(움엘아마드, 텔잘룰)도 있지만,
베셀로 추정되는 세 곳은 모두 르우벤지파에게 분배되었던 지역 안에 있었다.
베셀로 설명하는 움엘라사스(메바앗) 주변 지역은 매우 넓고 완만하며 비옥한 고원지대이다.
<움엘라사스 가까운 평원지대 : 해발 600~800미터의 산지다.>
동쪽으로 세렛강상류와 그데못광야로 추정되는 곳이 멀지 않고
서쪽으로는 디본(혹은 디본갓)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아로에르 평지가 있고,
북으로는 메드바와 헤스본이 있다.
가까운 곳에 아르논강이나 왈라계곡에 사철 물이 흐르고,
주변에 오아시스 마을도 많아서 사람이 살거나 목축이 가능한 곳이다.
왕의 도로도 가까워서 접근하기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적갈색 황토는 농사짓기에 적합해 보이고,
이른비와 늦은비가 적당히 내린 해에는 야생화들이 즐비한 목축지이다.
제사장족속인 레위지파에게 가히 맡길 만한 좋은 땅이다.
1. 도피성은 접근이 쉬운 곳에 위치해야 한다.
2. 도피성은 주변 환경이 비옥해서 자급자족이 가능해야 한다.
이 조건에 맞는 지역이 ‘움알라사스’다.
<폐허가 된 움엘라사스(Mother of Lead)유적지 -비잔틴시대-
창조주 하나님이 흔드시면 남아나는게 없다.>
도피성 제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살리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안전과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움알라사스에는 나바테왕국이나 로마제국의 유물이 발굴되었지만,
보이는 대부분은 비잔틴시대의 잔해로 보인다.
성내에 4곳, 성 밖에 6곳의 교회 터가 확인 되었고,
그중에 성스테반 교회의 유적은 모자이크 바닥이 생생하게 발굴되어서
가건물을 지어 바닥을 보존하고 있다.
<성스테판교회 터: 가건물로 수많은 모자이크 그림들을 보호하고 있다.>
<모자이크 문양은 당시 유명한 교회가 있던 지역을 형상화한 그림이라 한다.
매우 정교하고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제한된 지면에 다 실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모자이크는 다채로운 천연색 돌을 엄지나 새끼손가락 굵기의 네모로 깎아 맞춘 그림이다.
허허벌판에 이처럼 커다란 성의 잔해가 남아 있는 걸 보아,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르우벤 지파는 요단동편에 정착하기를 원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고 주변에 작은 동네가 형성되어 있을 뿐이다.
<성내에 발굴된 우물 혹은 지하 물저장소 아구>
도피성으로 가는 도로도 포장했을까?
로마시대로 부터 천년도 더 거슬러 올라가는 땐데....
첫댓글 요르단 여행 했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목사님의 글과 사진 너무 생생한 현장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박성준 목사님, 주안에서 항상 건승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