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오전 10시. 평소라면 숙취에 시달리거나 늦잠을 잘 일요일 오전, 사직단 공원 입구는 일군의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나이도 제각각, 옷차림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기웃거립니다. 이윽고 사파리의 동물조련사가 쓸 법한 모자를 쓴 키 큰 아저씨가 성큼 걸어들어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합니다. 맞습니다. 유홍준 선생님입니다.
다들 뭐하냐.
멀뚱히 있지 말고 이리 모여
한국 대표 답사꾼답게 거침이 없는 유홍준 선생님입니다.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을 한방에 정리합니다.
오늘은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하는 서울답사 첫날입니다. 오늘의 답사를 위해 특별히 모신 국문학자 임형택 선생님과 답사를 도와줄 스태프들, 유홍준 선생님의 친구들, 그리고 신청을 통해 모은 18명의 '로또' 당첨자들입니다. 1000명이 넘는 신청자들 중에 딱 18명만 뽑았으니 유홍준 선생님의 표현대로 '로또' 맞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온 곳도 각양각색입니다. 경남 창원부터 진주, 안양, 인천, 양평 등등 멀리서도 왔습니다.
유홍준 선생님은 앞으로 있을 서울답사를 바탕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 편을 쓸 계획입니다. 이왕이면 시민들과 함께 서울의 숨은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이번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습니다. 유홍준 선생님, 상기된 표정의 답사 초보들과 함께하는 것이 싫지 않은 모양입니다. 얼굴이 싱글싱글합니다.
사직단 - 토지와 곡식의 신을 만나다
이곳이 바로 사직단!
첫 답사지는 사직단입니다. 사극 대사에 늘 나오는 '종묘사직'의 그 사직입니다. 사직단은 토지신('사')과 곡식신('직')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서울뿐 아니라 모든 지방 관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과거 사람들이 토지와 곡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유홍준 선생님은 그야말로 청산유수로 사직단의 유래와 현재, 사직단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조선 4대 구라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습니다. 초보 답사객들, 쏟아지는 이야기에 정신 못 차리고 빠져듭니다.
사직단은 이러쿵저러쿵
필운대 - 천지가 이렇게 개벽할 줄 몰랐지
두번째 답사지는 필운대입니다. 필운대는 위치가 그야말로 기묘합니다. 우선 사직단 공원 뒷문으로 나가 배화여고로 향합니다. 골목을 지나 배화여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배화여고 후정에 짠 하고 필운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학교 소각장이 있을 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까요.
이것이 필운대
학교 안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필운대는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의 집터이기도 합니다. 19세기에는 장안의 풍류객들이 찾아와 풍월을 읊던 곳으로 유명했답니다. 과거에는 여기서 한양 일대가 내려다보였다는데, 지금은 배화여고에 가려 답답하기만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랄까요. "옛사람들은 천지가 이렇게 개벽할 줄 몰랐지." 유홍준 선생님이 허탈하게 말합니다.
첫댓글 좋은자료 운반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