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오스카
박재연
얼마 전 TV에서는 신기한 능력을 지닌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미국의 한 호스피스 병원에 ‘오스카’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와 함께 있던 환자들은 모두 사망했다. 오스카는 의사들이 병실을 회진하는 동안에만 활동했는데 회진 후에도 고양이가 병실에서 나오지 않으면 해당 환자는 얼마 후에 숨졌다. 이 고양이는 죽음이 다가오는 환자가 생기면 어느 샌가 그 방에 들어가 환자가 숨을 거둘 때까지 침대 옆에서 바라보며 함께 있어준다는 것이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병자의 침대에 고양이가 누우면 곧 죽음이 찾아온다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핀란드에는 고양이가 죽은 영혼과 사후세계를 동행한다는 믿음이 퍼져있다.
개나 고양이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집안에 초상이 나면 기르던 개와 고양이를 따로 격리시키거나 잠시 내보냈다는데 이는 육체를 벗어난 사람의 영혼이 얼떨결에 동물들 몸속으로 들어갈지 모른다는 염려와 함께, 영혼을 본 동물들이 흥분하는 것을 막으려는 이유였던 것 같다. 특히 ‘고양이는 복수에 탁월한 동물이므로 구박하면 안 된다’는 격언(?) 덕분에, 고양이 앞에서만큼은 나도 너그럽고 인내심 있는 제법 괜찮은 인간이 되곤 하는데 이는 고양이에게 정말 감사할 일이다. 이와 같이 동서고금을 통해 고양이는 영물(靈物)로 여겨져 왔던 것 같다.
오스카의 행동에 대해 어떤 동물 행동 연구가는 특정 냄새인 ‘케톤’ 때문일 것이라고 추축했는데, ‘케톤’은 체내 인슐린이 급감할 때 간에서 생성되는 것으로서 죽기 직전 환자들에게서 많이 생성돼 특유의 냄새를 발생시킨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함께 지내는 여러 고양이 중 유독 오스카만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냄새 때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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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無緣)사회가 되어가면서 ‘고독사’가 만연한 요즘 한 신문에 가슴 아픈 기사가 실렸다. 혼자 살던 40대 남자는 지병을 앓던 중 마지막을 직감하고는 시골에 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많이 아프니 좀 올라오시라”는 아들의 간곡한 요청을 듣고 그가 좋아하는 김치를 담아 이틀 후 도착했을 때 아들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마지막 긴박한 순간 초조하게 어머니를 기다렸을 아들은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옛날 같으면 고양이 오스카는 불길하고 재수 없는 존재로 취급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을 혼자 쓸쓸히 떠나는 요즘 이 고양이는 영원한 여행을 배웅해 주는 호스피스요 조력자로 환영받게 되었다. 남자가 떠날 때 오스카라도 곁에 있었다면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안락사 운동단체 ‘헴록(Hemlock Society)’의 창립자인 데렉 험프리는 조력자살을 다룬 그의 유명한 책 《마지막 비상구》에서 죽음을 ‘돕는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미국에서는 자살하려는 행위를 보고도 이를 저지하지 않은 것이 죄가 아닌데 그 이유는 아무도 혼자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 되며,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다면 서투르게 자살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죽음을 ‘돕는다’는 것은 일(?)이 진행되는 동안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면서, 삶을 마감하는 행위에 애정을 보내고 정신적인 지지를 해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부모님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기에 당신들의 죽음을 돕지 못한 나와는 달리 오스카는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가족에게 둘러싸여 마지막을 맞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소박하되 결코 쉽지 않은 바램이다. 다행히도 복제기술이 발달하고 있으니 가까운 미래에는 저마다 오스카를 한 마리씩 키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2014.7.<<좋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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