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고려청자 바가지 논란
10억! 1억!… 재감정 후에도 공방 고미술시장 패권싸움의 결정판
수십억 문화재 육안·경험으로 평가, 과학적 분석 없어
감정 결과에 막대한 이권·명성 걸려… 서로 흠집내기 다반사
상인단체인 고미술협회가 감정… 정부 전담기관 있어야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81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지난 10월 18일, 서울 강남의 한 특급호텔 중식당. 해가 기울어 날이 어슴푸레해지자 지긋한 연배의 남녀 10명이 도착했다. 이날은 “강진군이 고려청자 2점을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값에 구입했다”는 이른바 ‘바가지 논란’과 관련, 문제의 청자에 대한 공개 재감정이 이뤄지기 하루 전날이었다.이날 모인 사람들은 국정감사에서 ‘바가지 의혹’을 처음 제기한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 측 관계자, 성 의원에게 ‘구입 가격의 10분의 1 가치밖에 안 된다’는 감정 결과를 제시한 고미술협회의 K 회장, 이튿날 공개재감정에서 ‘시가보다 비싸다’는 의견을 낸 학계 인사, 고미술협회의 부회장 L씨·다른 L씨·K씨·S씨, 이사 L씨·P씨, 직원 K씨 등 10명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부에선 “이들은 모두 바가지 의혹을 제기한 사람과 그 의혹을 뒷받침한 사람들”이라며 “이들이 재감정 하루 전날 모여서 대책회의를 한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 ▲ 강진군이 2007년 10월 10억원을 주고 구입한 고려청자. 이 청자를 놓고 한쪽에선 “1억원 가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다른쪽에서는 “10억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진군 고려청자를 둘러싼 논란이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강진군이 구입한 고려청자를 둘러싸고 한쪽에서는 1억원, 또 다른 한쪽에서는 10억원이라는 엇갈린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공개 재감정까지 했지만 공방은 그치지 않고 있다.
‘바가지 논란’이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 10월 5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장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성윤환 의원은 “강진군이 2007년 10월 10억원에 사들인 청자상감연국모란문과형주자(靑磁象嵌蓮菊牡丹文瓜形注子)는 1992년 소더비 경매에서 감정가 1만5000~2만달러에 출품됐던 것”이라며 “(자신이) 한국고미술협회에 의뢰한 감정가도 9000만원을 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성 의원은 또 “강진군이 지난 2009년 6월, 10억원에 구입한 청자상감모란문정병(靑磁象嵌牡丹文淨甁)도 (자신이) 의뢰한 감정기관(한국고미술협회)에서는 1억4000만~1억50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감정했다”며 ‘바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강진군은 이 작품의 원소장자와 ‘1억원대’라고 감정한 한국고미술협회 K 회장 등을 형사고발한 뒤, 10월 19일 기자들을 불러 공개적으로 재감정을 실시했다. 이날 재감정은 최초 감정을 했던 사람들이 아닌, 새로운 전문가 4명에 의해 실시됐지만 가격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재감정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강진군이 구입한 고려청자에 대해 “2억원 미만” “3억~4억원 정도” “10억원이 적절한 수준” “9억~10억원 정도”라며 각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4명의 재감정위원 중 2명은 높게, 2명은 낮게 감정한 것이다. 논란이 식지 않음으로써 ‘복마전’이라는 말을 들어온 고미술 시장과 고미술 감정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도자기 감정 어떻게 하나
- ▲ 한국 고미술협회 감정위원이 수십억원대의 진품으로 감정해 물의를 빚은 가짜 금동여인상. 실제 가치는 수십만원에 불과하다. / photo 검찰
그런데 이 협회는 ‘누가 감정을 했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협회가 발부하는 감정서엔 ‘약 얼마의 가치가 있다고 사료된다’는 문구와 함께 회장의 직인만 찍혀 있을 뿐, 어느 감정위원이 뭐라고 감정했다는 구체적 내용은 들어 있지 않다.
어떻게 감정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홈페이지엔 “감정은 매주 화요일 10시까지 실물을 갖고 와서 감정신청을 하면 된다”고 기재돼 있을 뿐, 육안으로 감정을 하는지 아니면 탄소연대측정 같은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는지 아니면 이 두가지 방법을 병행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감정에 대한 전문가들 의견 역시 과학적이지 못하다. “도자기의 경우 성분분석이나 탄소연대 측정 같은 과학적 기법으로 분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도자기는 규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금속과 달리 탄소연대 측정으로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분분석 역시 쉽지 않다”고 한다. 다른 전문가는 “출토된 청자나 백자의 수량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 성분분석을 할 만큼 충분한 샘플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9일 있었던 ‘강진 청자 재감정’ 때와 마찬가지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일차적 방법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학자들의 경우엔 각 고미술품이 쓰였던 시대별 유행, 양식, 기법, 재료 등 당시의 특징과 고미술품이 일치하는지를 따진다”며 “하지만 상인들의 경우엔 대부분 이 같은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행위를 하면서 축적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오랫동안 쌓인 체험을 기준으로 감정을 한다”며 “태토(도자기의 재료가 되는 흙)와 유약의 상태, 도안 등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 ▲ 도굴범들이 보관하고 있던 청화백자(왼쪽)와 금동신발. 검찰이 압수해 공개했다. / photo 조선일보 DB
학계 관계자들 역시 “기계를 동원한 감정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학계의 한 저명인사는 “도요지를 발굴하고 실측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오랫동안 훈련된 체험을 바탕으로 감정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업계와 학계의 설명은 ‘도자기에 대한 사진 감정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강진군과 강진청자박물관은 지난 10월 이후 수차 보도자료를 내고 “(바가지 의혹을 제기한) 성윤환 의원 측이 실물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만 보고 감정을 했으며 그 결과를 갖고 ‘(청자 가격이) 1억원 안팎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성 의원 측과 고미술협회는 10월 19일 있었던 공개재감정 자리에서 “해당 청자는 인사동 바닥에서 워낙 유명한 작품이어서 도록만 갖고도 충분히 검증이 가능하다”며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실물을 보지 않고 감정을)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K 회장도 지난 11월 10일 강진청자에 대해 “오랫동안 전시돼 있던 물건으로, 도록만 보고도 감정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사진 감정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학계의 한 저명 인사는 “사진만 보고 감정을 할 수 있다면 사람이 아니라 신(神)”이라고 말했다. 도자기를 담당하는 문화재청 동산문화재과의 관계자 역시 “사진 감정은 어렵다”며 “최종적으로는 직접 만져보고 (감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시 “아무래도 사진 감정은 어렵다”고 말했다.
오판(誤判) 가능성은 없나
- ▲ 3986만홍콩달러(약 60억원)에 낙찰된 중국 건륭제의 용무늬 술병. / photo 조선일보 DB
한 전문가는 “희소품을 제외하면 고미술품은 대부분 비슷한 유형의 물품을 거래한 기존 실적이 있다”며 “당시 거래됐던 가격을 참고하고 여기에 전문가의 안목을 곁들이면 가격 차가 크게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는 “이번 강진 청자처럼 감정가 차이가 10배 이상 벌어진 전례는 보지 못했다”며 “한쪽에선 10억원이라 평가하고, 다른쪽에서는 1억원이라 평가하는 극단적인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고 말했다.
성분분석 같은 과학적 기법이 동원되지 않기 때문에 오판 가능성과 함께 제기되는 것이 ‘가짜 의혹’이다. 그런데 업계에서 의미하는 ‘가짜’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가짜’와 약간 다르다.
고미술품, 특히 도자기는 매장·발굴과정에서 파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온전하게 제모습을 갖춘 것을 찾기가 어렵다. 가짜 의혹은 그래서 제기된다. 깨진 조각을 정교하게 잇고 붙여 원래의 모습으로 되살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일부는 진짜 조각을 사용하지만 제 조각이 없는 ‘결손부’의 경우엔 새롭게 조각을 만들어 붙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이렇게 만든 ‘물건’이 일부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경우도 있다”며 “박물관의 특성상 깨진 물건을 전시할 수는 없는데 온전한 유물이 발굴되지 않은 경우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고미술시장에선 이렇게 만든 ‘일부 가짜’에 대해 ‘복원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가짜도 진짜도 아닌 애매한 상태이기 때문에 ‘가짜’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수입한 합성수지가 필요하다. 한 전문가는 “국내에서 생산된 합성수지는 못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예를 들어 청자를 복원할 경우엔 진짜 청자 조각을 가루로 만들어 합성수지와 섞은 뒤 이 합성수지를 굳혀 새 조각을 만든다”고 했다. 이 전문가는 “이렇게 조각을 새로 만들어 붙이고 착색을 한 뒤, 유약을 바르고 그림을 그려 넣으면, 웬만한 사람은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진짜 청자가루가 들어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전문가라 해도 식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화재를 ‘복원’해서 변조품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작품당 평균 2~3개월. “파편처럼 잘게 부서진 조각을 정교하게 붙이는 세밀한 작업이기 때문에 1~2주일 만에 뚝딱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 관계자는 “주요한 작품의 경우엔 한 점당 수천만원의 ‘수리비’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 기술로도 ‘복원’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한 전문가는 “요즘엔 워낙 기술이 좋아졌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태토(도자기를 만든 흙)의 구성물이나 도자기의 광택은 똑같이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미세한 기포가 발생하게 되는데, 현대 복원가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기포의 크기와 배열까지 똑같게 만들지는 못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감정 전담 정부기관이 필요하다
문화재 감정은 막대한 이권을 의미한다. 어떻게 감정하느냐, 얼마나 ‘복원’했느냐, 나아가 진짜냐 가짜냐에 따라 한 건당 수십만~수천만원, 많게는 수십억원 이상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같은 물건을 놓고도 감정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가치를 달리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가짜 작품을 전시해 놓은 한 미술상. / photo 조선일보 DB
고미술품 감정의 객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미술협회와 관련된 크고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08년 7월엔 ‘가짜 백자를 진품이라 보증하는 허위감정서를 협회로부터 받은 뒤 거액을 받고 이를 골동품상에 넘긴 혐의’로 전직 감정위원이 입건됐으며, 2007년 12월엔 ‘돈을 받고 가짜를 진품이라 감정해준 혐의’로 이 협회 감정위원이 구속됐다. 또 2002년 1월엔 ‘변조품을 진품이라 감정한 혐의’로 협회의 전 회장이 구속됐다.
잇달아 잡음이 불거지다 보니 이 시장에서 ‘실력있는 권위자’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그림은 누구, 불상은 누구, 도자기는 누구” 하는 식으로 각 분야 권위자들 이름이 공식처럼 거론되고 있다.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구매자들은 대부분 막강한 재력을 갖춘 실력자들이며 이들은 권위자의 감정에 크게 의지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고미술 시장에선 최근 불거진 ‘강진 청자’ 문제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누가 권위자로 인정받느냐 하는 사실은 곧 ‘누가 막대한 이권을 좌우하느냐’ 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문화재 감정을 놓고 벌어지는 시장의 패권 다툼이 ‘강진 청자’를 계기로 불거졌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10억원이라 감정하고 다른쪽에선 1억원이라 감정했다는 사실은 어느 한쪽이 잘못된 감정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로 인해 어느 한쪽이 상처를 입게 되면 시장의 주도권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미술품을 거래하는 상인들이 고미술품을 직접 감정하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고미술품 감정을 전담하는 전문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수사를 실시해 ‘누가 왜 잘못된 감정을 했는지’를 밝혀야 고미술시장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 ▲ 검찰이 압수해 공개한 밀반입 도자기들. / photo 조선일보 DB
한국고미술협회는 어떤 단체인가
30년 전 고미술 상인들의 친목모임에서 출발
회장 교체규정 애매… 현재 회장 13년 연임 중
문화재 ‘복원’이 일종의 ‘필요악’이다 보니 고미술 시장에선 누군가가 복원한 ‘일부 가짜’, 나아가 전체를 복원한 ‘완전 가짜’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누구누구가 어디어디에 판 ‘물건’이 가짜이며, 그 가짜를 진짜라고 감정해준 사람은 누구누구이고, 그 물건을 누가 샀는데, 이 물건이 나중에 다시 어디로 넘어갔다” 하는 식의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다. “업계의 어느 인사가 검찰과 경찰, 국회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도 공공연하다. 폭력조직과의 연계설까지 나돌고 있다.
이 같은 구설이 떠돌게 된 근본원인은 문화재를 감정해줄 정부기관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국립박물관이나 문화재청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개인소유의 문화재는 감정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소장유물에 대한 감정을 받으려는 일반인은 대부분 한국고미술협회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고미술협회의 옛 명칭은 사단법인 한국고미술상협회. 그랬던 것이 1977년 사단법인 한국고미술상중앙회로 이름을 바꿨다가 1985년 사단법인 한국고미술협회로 개명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단체는 고미술품을 거래하는 ‘상인’들의 사적(私的) 모임일 뿐, 고미술품 감정을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공무원이나 학자는 회원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단체의 정관(2008년 3월 6일 개정) 역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인의 목적을 규정한 정관 4조는 “본회는 문화재 애호사상을 고취시키면서, 문화재의 건전한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회원 상호간의 친목 및 권익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그런데 이 협회의 정관은 여타 협회의 통상적인 정관과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가장 큰 점은 ‘회장의 선출과 해임에 관한 규정’이다. 협회 정관 14조엔 회장 선출에 대해 “회장단에서 추천하고 이사회 인준을 받아 총회 참석인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추대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은 “만약 회원이 1000명인 경우 이 중 10명이 참석해 6명이 찬성하더라도 회장으로 추대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H&P 법률사무소의 홍봉주 변호사는 이 규정에 대해 “통상적으로 일반 협회 회장은 (회장단이 아니라) 회원들로부터 추천을 받아서 총회 과반수 출석·과반수 찬성을 거쳐 추대된다”며 “하지만 이 협회 정관은 ‘참석 인원의 과반수’로 규정돼 있는 데다 회장을 추천하는 ‘회장단’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정관의 또 다른 특징은 ‘회장 해임이 어렵다’는 점이다. 해임을 규정한 정관 29조는 “출석한 회원의 3분의 2 이상으로 하되 총회원(지방회원 포함)의 3분의 1 이상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고 정해 놓았다. 홍봉주 변호사는 “선출과 해임의 비대칭성이 너무 크다”며 “이는 사실상 해임을 불가능하게 만든 정관”이라고 말했다.
부회장과 이사를 총회에서 직접 선출하도록 한 여타 정관과 달리 5~7인의 전형위원회를 통해 부회장과 이사를 선출하도록 한 점도 특이하다. 또 법령을 위반하지 않은 이상, 회원을 제명하기 위해서는 총회의 의결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협회 정관(11조)은 “이사회의 의결을 얻어 회장이 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이 협회의 K 회장은 1997년 2월 21일 18대 회장으로 취임해 2009년 현재까지 5대에 걸쳐 무려 13년간 회장을 맡고 있다. 9개월~2년2개월간 재임한 전임 회장들과 임기에서 6배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이 협회 정관은 1988년, 1995년, 1999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등 8차례에 거쳐 개정됐다. 특히 K회장 재임 중인 2004~2008년엔 해마다 정관이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정관이 또 다시 개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협회의 주요 목적인 ‘친목도모’를 제치고 ‘미술품 감정’이 주된 사업으로 떠오르면서 이 협회의 사업 목적엔 ‘신용협동조합 사업(5조)’까지 추가됐다.
협회 정관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정관은 회원들에게 공개돼야 마땅하지만 취재차 만난 회원 중 정관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취재원 중 일부는 “곤란해진다”거나 “장사 못하게 된다”는 등의 이유로 취재를 거부했고 다른 일부는 “두렵다”면서 “(취재원을) 보호해주겠다는 각서를 써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K 회장은 “왜 이렇게 정관 구하기가 어렵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미술협회장직을 그만두고 싶지만 회원들이 ‘조금만 더 봉사해 달라’고 하도 강력하게 요청해 오기에 차마 이를 거절할 수 없어 연임하게 됐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K 회장은 지난 10일에도 “그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런데 협회 회원인 상인들 주장은 이와 다르다. 이 협회 회원 185명은 K 회장 임기 중인 2006년 2월 8일 연대서명을 첨부해 ‘회장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K 회장이 자기의 개인 점포에 협회 간판을 달아놓고 개인 장사를 목적으로 (협회를) 이용하고 있다”며 “문화재청으로부터 15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2005년 5개 박물관서 전시회를 갖는 과정에서 문화재청 감정위원들에 의해 모조품이라 판명된 물품까지 전시했다”는 주장이 담긴 탄원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2006년 4월 24일자 공문을 통해 “협회의 운영 등에 관한 것은 협회가 자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며 “협회 내에서 대화와 조정을 통해 원만히 해결돼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대한 질문을 K회장에게 던지자 그는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말문을 닫았다.
협회 정관 6조에 따르면 정관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총회 의결을 거쳐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비대칭적”이란 지적을 받는 이 정관은 2008년 3월 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출처] 강진 고려청자 바가지 논란|작성자 무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