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청에서 행정 업무를 보조해주다 보면
그 답답함과 억울함, 분노를 참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다.
가끔은 그런 나를 보며, 그 혈기왕성함에 뿌듯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너무도 화가 나서 미치겠다는 것이다.
화가 날 일은 무척 많다.
공무원의 권위주의, 비합리적 행정 관행 등
무엇보다 공무원의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진지전'을 통해
타파해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이 점은 confidential 로
붙여둔다.
오늘 말하고 싶은 점은
민원인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살펴본 시민(여기서 시민은 정치학의 citizen 개념이 결코 아님을 염두하자. 단지 행정구역의 단위, 시에서 살고 있는 이들일 뿐)들의 정치의식에 대해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날 한국의 시민들의 정치의식은 너무도 열악하다는 것이다.
첫째, 시민들은 '정치'와 행정을 구분하고 있지 못한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물론 정치란 행정을 포함하는 광의로 쓰일 수도
있으나, 대체로 행정의 의미는 결정된 정책을 수행하는 업무로서,
정치란 정책결정과정을 의미한다. 우리가 반드시 이러한 이론적 구분을
따를 필요는 없으나 다음의 사례는 정치와 행정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조차 없는 한국 시민들의 수준을 잘 말해준다.
전화가 온다.
"안녕하십니까, 관악구청 교통지도과, 공익요원 함현호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보세요, 지금 과태료 딱지가 붙어있는데! 도대체 이게 뭐요?"
"예에, 무슨 문제시죠? "
"아니 불법주정차인데 말이야! 단속을 뭐 그 따위로 하냐? 차를 잠시도 못세워?!"
"예에 선생님께서 차도에 차를 세우셨나본데요, 차도에 차를 세우시면
도로교통법 29조로 교통 소통에 지장이 되게 세우셔서 단속조가 단속을 한겁니다."
"야이 XX놈아! 난 멀리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김대중이 그렇게 시키더냐? 김대중 놈이 대통령되고서 별이상한 짓을 다 겪어보네?"
참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 답답함과 ...한심함을...
그러나 옆에 공무원이 앉아있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아, 예에..." 말을 흐리고 있었다. 공익요원으로서 또 행정관청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무원이 화장실을 가려 일어났다.
"선생님, 어찌 그렇게도 모르십니까? 대통령이 법을 제정합니까?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의원이지요. 그리고 그 중 반이상이 한나라당
의원이고요. 한나라당의원들이 그렇게 많이 당선된 곳은 부산이에요.
아주 싸그리 당선됐죠."
"..."
잠시의 정적. 그리고 그 사람은 전화를 끊었다.
뭐 조금은 재미난 에피소드이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즉 시민들은 정치를 그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행정을 통해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주차단속을 당하거나, 동사무소에서 서비스를 받
거나 할 때, 그들은 그것을 정치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이
거기에서 불편을 느끼거나 억울함을 느낄 때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대강으로 들은 정치적 사실들과 연결시켜 버리는 측면이 많다.
즉 주차단속으로 인한 억울함을 김대중 정권에 대한 반감과 연관시키고
동사무소 직원의 불친절함을 국회의원의 무능함과 연결시킨다.
한편, 사무실에서 민원처리를 하는 경우에 많은 시민들이 국가에
대해 적지않은 반감을 가질 때가 많이 있음을 목격한다.
물론 내가 속한 과가 교통지도를 하는, 쉽게 말하자면 "과태료 딱지'
를 붙이는 과라 그러한 불만이 많기도 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불만을 적극적으로 사고해서 정치
적으로 발전시키고 적극적 정치 행위로 연결시키기 보다는 개인 감정의
폭발에 그친다. 즉, 분명 그들은 예컨대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개인을 억압하는 구조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고,
제도적으로는 민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고, 비제도적으로는 운동을
할 수도 있다.
그 비용이 크다면 최소한 '국가'라는 것에 대한 '정치의식'을 갖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을 개인적 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체로 민원 전화를 받는 나를 온갖 감정을 다 해서 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로 끝난다.
한편 다음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시민의 정치의식의 부재가 과거의
왜곡된 정치사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며칠전 아침, 한 아주머니가 전화를 했다.
"아니 내가 어제 남현동에 차를 세웠다가 견인당했는데 왜 그러는거요?!"
"네 선생님께서 거주자 우선주차제 구역에 차를 세우셨나본데요.
현재 거주자 우선주차제 구간은 월별로 이용료를 납부하시고 이용하는
분들만 이용하실 수 있고, 그곳에 서있는 안내 표지판 보시면
아시겠다시피 지정받지 않은 차량이 주차할 경우 즉시 견인조치됩니다 "
"아니 빨갱이 국가도 아니고 뭐 이래요?"
중요한 것은 내가 전화를 받으며 이 단어 "빨갱이 국가"라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듣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사례들의 경우 모두 실제적으로
"빨갱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였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사용하는 빨갱이의 개념을 들어보면 보통 "나쁜 놈"을
대체하는 용어로서 사용하는 것이다.
굳이 어떻게서든 고상하게 표현해보자면 '강제적인 국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과거 스탈린주의 국가를 제외하고,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오히려 '국가'의 역할을
부정한다. 한편 거주자 우선주차제를 비롯한 주차문제의 경우에는
오히려 신자유주의 정책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경우로 '빨갱이'와
는 대척점에 서있다.
즉, 신청을 받아 월별로 이용료를 납부하는 사람들이 일정한 공간에
주차하게 하고 그 주차를 관리 해주는 것이고, 공영 주차장은
점차 민영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동안의 한국정치사, 즉 분단과 군부세력, 수구세력들의
언론 플레이는 "나쁜 것은" "빨갱이"로,
"빨갱이"는 "나쁜 것"으로 주입시켜 왔다.
이러한 왜곡된 정치사회화의 과정은 잘못된 정치개념을 심어줬고,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정치 의식을 왜곡시키고, 미숙하게 만들었다.
아까 그 아주머니와의 통화 때문에 너무 열이 받았다.
옆에 공무원이 있으니...
"아주머니, 빨갱이는 그런게 아니에요. 오히려 아주머니께서 제대로 알
지 못하는 그 빨갱이는 국가의 역할을 부정한답니다.
지금 아주머니께서 목도하신 현실은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더러운 모습을 보고 계신거에요.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랍니다."
라고 말해줄수고 싶었는데!...속타서 죽는 줄 알았다.
아~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그 마음 누가 알아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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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할 노릇 - 관악구청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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